잡지 기고 글

손자와의 저녂 산책/동방문학 2014년 8월호

김현거사 2014. 8. 1. 15:19

   손자와의 저녁산책

 

 내가 사는 아파트 아래는 광교산 형제봉에서 흘러내린 물이 꼬불꼬불 흘러간다. 거기 아스콘 깐 산책로 둑에는 하얀 마가렛, 자주빛 들장미, 보라빛 창포꽃이 피고, 물에는 오리가 새끼를 거느리고 유유히 헤엄친다.

 그 냇가를 손자와 산책하는 일처럼 행복한 일 없다.

 '저녁 먹고 할아버지 하고 산보 갈래?' 물으면, 손자는 '네!'하고 씩씩하게 대답한다. '밥 천천히 먹고, 양말 신고, 할아버지한테 와서 말 해라!' 이렇게 당부해놓고 서재에서 기다리면, 아이가 나타난다. 

 여름날 황혼에 손자의 부드러운 손목을 쥐고 시냇가를 산책해본 사람들만 그 재미를 알 것이다.

 나는 둑에 가득 핀 마가렛 꽃들을 보며, 'I dream of Jeanie with the light brown hair' 나직히 옛날 노래를 불러보기도 한다. '너 들장미 노래 피아노 칠 줄 아니?' 손자에게 물어보면, '네!' 하고 밝게 대답한다.

 냇가를 걷노라면, 바람은 수면에서 불어와, 풀잎과 꽃잎을 흔들고, 산책하는 사람의  얼굴을 스친다. 노을은 물과 구름을 물들인다. 냇물은 황혼의 노래를 부르며 흘러간다. 무언가 아련한 그리움을 느끼게 한다. 하루 중 가장 낭만적인 시간이 바로 이 시간이다

 이 시간에 손자의 부드러운 손을 잡고가노라면, 천사의 손을 잡고 천상을 걷는듯 하다. 초여름 산들바람에 갯버들 나부끼는 그 아래 물 밑이 훤히 보이는 맑은 물에 빨간 고추잠자리는 날아다닌다.

 황혼의 산들바람과 흰구름은, 문득 나를 60년 전 소년시절로 데려간다. 그때도 흰구름은 그렇게 고왔고, 산들바람은 그렇게 감미로웠다. 앞산에 황새가 하얗게 앉아있던 문산의 중고등학교 교장이시던 아버님은, 황혼이면 나를 데리고 산책을 나가시곤 했다.

 그때, 나는 바지가랑이가 젖는 것 쯤 아랑곳 하지않았다. 물 속에 들어가 고무신에 피래미와 고동을 잡기도 했다. 까만 줄무뉘 친칠라와  하얀 토끼를 키웠다. 망태에 토끼가 좋아하는 크로바를 가득 뜯어오곤 했다. 

 손자와 내가 중간에 잠시 앉아서 쉬는 벤치가 있다. 거기 앉아, 나는 지나가는 사람들을 바라본다.

 내가 가장 보기 좋아하는 것은, 롤라스케이트 타고 쌩! 하고 내 앞을 지나가는 작은 소녀 모습이다. 소녀의 모습은 마치 물속의 피리 같다. 언제 보아도 생기차다. 유모차에 아이를 태운 젊은 새댁도 나타난다. 그 모습을 보면, 젊은 시절 가난해서 프라스틱 바가지도 기워쓰던 아내가 생각난다. 

 주인을 졸졸 따라가는 강아지도 바라본다. 사랑스럽기는 저 자신도 마찬가진데, 어린아이들은 대개 강아지를 좋아한다. 고사리손으로 강아지를 쓰다듬으려고 뒤뚱뒤뚱 걸어가다가, 움찔 놀라 엄마 품으로 달아나는 애기를 본다. 미리 멀찍히 피해 돌아가는 가날픈 겁쟁이 소녀를 본다.

 아이들은 모두 왕자와 공주같은 품위가 있다. 머리에 귀여운 리번을 단 모습, 자랑스럽게 불이 빤짝빤짝 들어오는 뽀로로 운동화 신은 모습, 손목에 인조보석 팔찌 한 모습, 그 모두가 귀엽고, 천진난만하고, 아름답다. 이 세상의 어느 최상급 패션 모델이라도 그들을 따라올 수 없다. 나는 미소를 지으며, 아이들의 그 우아한 여러 모습을 살펴본다.

 간혹 눈이 마주치면 미소를 보내는 부인도 있다. 나는 그런 분을 품위가 있다고 생각한다. 썬글라스 낀 아가씨와 털이 숭숭한 다리를 내놓은 반바지 청년이 나란히 걸어가기도 한다. 은백의 노부인이 고요히 걸어가기도 한다. 나는 이 모든 사람들을 르노아르의 그림처럼 바라본다.  

 벤치에서 좀 떨어진 곳에 다리가 있다. 떵거미가 지면, 다리 위 가로등은 불을 켠다. 아파트 창문에도 불이 켜진다. 아파트 안에는 반도체, 조선, 자동차, 가전제품, 휴대폰 등 세계 1위의 제품을 만든 나라 사람들이 산다. 30년 뒤에 우리나라 GDP는 세계 2위가 된다. 나는 그들이 사는 아파트 불빛을 사랑하고, 물에 비친 가로등을 사랑하고, 어둠이 오면 향기가 더 짙어지는 들장미를 사랑한다. 

  손자는 에너지가 넘친다. 할아버지 옆에 잠시도 붙어 있질 못한다. 공연히 저만치 달려나갔다간 다시 돌아온다. 그 활발한 에너지가 그의 미래일 것이다. 얼마 전에 미국서 돌아온 손자다. 간혹 예쁜 강아지가 앞에 닥아오면, '0h my God!' 서양식 발음으로 감탄한다. 미국 유치원에는 눈동자가 파란 금발소녀가 있었다고 한다. 손자가 반에서 모든 것이 일등이라, 그 소녀는 손자에게 시집온다고 약속했는데, 손자가 한국으로 돌아간다고, 울쌍을 지었다고 한다. '너도 그애가 좋더냐'고 물어보니, 손자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인다. 

 이윽고 하늘에 별이 총총 나타나기 시작하면,  '할아버지! 이제 집으로 가자!' 손자가 닥아와 내 손을 잡는다. 벤치와 다리와 수양버들은 이제 어둠에 덮히고, 공기는 차급게 식고, 별빛과 가로등은 물에 어린다. 그 길을 걸어오며, 나는 이런 생각을 해본다. 

 내가 토끼풀 뜯던 그 길, 아버지 손잡고 걷던 그 길을,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시냇물과 흰구름이 있던, 사모치게 그리운 길로 기억하는 것처럼, 손자도 훗날 할애비와 걷던 이 길을,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마가렛과 들장미와 창포꽃 피던 길이라고 기억해주면 좋겠다는 그런 생각이다. 혹시 이왕 기억한다면, 감미로운 산들바람과 물에서 새끼를 거느리고 유유히 헤엄치던 오리도 기억해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