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 기고 글

감사기도/한국수필 2013년 12월호

김현거사 2014. 2. 10. 10:54

<감사기도>

 

  청량한 가을아침 이다. 나는 내가 사는 아파트에 작은 산책로가 있음에 감사한다. 맑은 공기를 마시며 조용히 산책을 즐길 수 있음에 감사한다. 무엇보다 소나무가 많음에 감사 드린다. 소나무는 잎새에 황금빛 아침 햇살이 투과할 때가 가장 아름답다. 한계령에서 본 그때 그 소나무가 그랬다. 내가 본 가장 아름다운 소나무는 한계령 바위 틈에 서있던 소나무다. 아침 햇살은 소나무 잎새 사이를 투과하고 있었다. 햇살은 솔잎의 초록을 금빛으로 물들여, 나는 처음 거기서 소나무가 성스럽다는  느낌을 받은 적 있다. 우리 아파트 소나무 군식은 성스럽다고 까지는 할 수 없지만, 푸르다. 나는 잠시 소나무 밑에 앉아 솔내음을 맡는다. 솔 향기에서 양양의 시골 할머니들을 생각한다. 그분들 좌판 바구니에 담겨있던 향기로운 송이와 능이버섯을 생각한다. 

 소나무 다음으로 좋아하는 나무는 감나무다. 감나무는 아파트 건립 당시 정원을 조경 하면서 좀 형식적으로 심은듯 싶다. 소나무 느티나무 사이에 초라하게 끼여 있다. 그러나 잎 떨어진 앙상한 가지에 붉은 감 대롱대롱 매달린 모습은 역시 감나무 답다. 아름답다. 감나무는 나에겐 추억의 나무다. 어릴 때 나는 감이 미쳐 익기도 전에 나무에 올라갔다. 아직 떫은 풋감도 따먹었다. 가을이 깊어지면 서리 맞은 감은 더욱 붉고 탐스러워진다. 그 때 맛은 더욱 깊어진다. 감나무는 나의 감성에 깊이 박힌 나무다. 가지에 알알히 달렸던 홍시는 내 마음 속에 시가 되어 알알히 익어간다. 홍시 옆에서 울던 까치 울음이 생각난다. 그래서 감나무는 반갑고, 감나무와의 만남은 감사하다. 내가 본 가장 아름다운 감나무는 청학동 묵계마을에 있던 감나무다. 골짝골짝 논고랑에는 천 미터 이상 고지에서 흘러내린 물이 콸콸 넘쳐 흘렀다. 물빛은 청옥빛 이었다, 나락은 황금빛 이었다. 작은 초가는 논가에 납작 엎드려 있었다. 그 위를 가지 찢어지게 감을 단 감나무가 덮고있었다. 아무리 가난한 집도 감나무가 있어 가을이 풍요로워 보였다. 감사한 한 폭의 수채화 였다.

 단지 옆에 아파트 5층 높이의 버드나무가 있음에 나는 감사한다. 그 늙은 나무는 내가 옆에 지나가면 편지를 떨어트린다. 낙엽 편지다. 나는 그 버드나무에게 항상 감사한 마음을 갖고있다. 옛날 한 청년이 버드나무한테서 혼자 편지를 받곤 했다. 가을 편지다. 그의 가방 속에는 노트와 도시락 밖에 없었다. 주머니엔 왕복 버스표 밖에 없었다. 그는 쓸쓸한 바람 불어오는 캠퍼스 학생식당 앞 벤치에 앉아 있었다. 식당 안에 들어가서 물 한 컵 가져와 혼자 도시락을 비우곤 했다. 그는 맑스의 자본론에 심취하였다. 부의 균배에 목말라 있었다. 그때 멋있는 포물선을 그으며 푸른 하늘에서 날라와 살며시 청년 옆에 앉아준 존재가 바로 버들 잎이다. 청년은 버들잎의 부드러움이 어느 여학생 보다 좋았다. 애잔한 모습이 어느 여학생 보다 곱다고 생각했다. 노년에 이 버드나무와의 재회를 그는 만날 때 마다 감사하게 생각한다.

  아침 산책을 나가면 나는 나무에게 인사를 던진다. 나무 뿐 아니라 이끼에게도 인사를 던진다. 일본 사람들은 이끼를 사랑한다. 신사에 비로드보다 아름다운 이끼정원을 만들어 놓았다. 나는 내가 사는 우리 아파트를 일본의 오래된 신사처럼 생각한다. 건강하고 아름다운 이끼가 자라고 있음에 늘 감사한다. 높다는 면에서 우리 아파트는 세계 어느 궁전보다 우월하다. 그라나다의 알함브라 궁전, 프라하의 슈베르첸베르그 궁전, 샹트페트로부르그의 에르미타쥐 궁전, 런던의 버킹검 궁전, 터키의 돌바마흐체 궁전, 오스트리아의 쉔부른 궁전, 이탈리아의 베네치아 궁전보다 더 높다. 그들은 모두 삼사층에 불과하나 우리 아파트는 20층 이다. 나는 항상 내가 왕족보다 높은 데 살고 있음을 감사하게 생각한다. 봄이면 진달래와 개나리가 피고, 목련과 벚꽃이 핀다. 여름에는 분수 옆에 목백일홍 꽃이 피고, 가을에는 각 동 출입구마다 국화꽃이 핀다. 모과가 열리고 애기사과가 열린다. 나는 이 모든 것에 감사 드린다. 24시간 경비원이 정문을 지켜주고, 24시간 동마다 엘리베이터가 가동됨을 감사하게 생각한다. 

 아침 산책을 하면서 나는 이런 생각에 잠긴다. 모든 작은 일에 감사하자는 생각이다. 몸이 불편해서 조심스럽게 지팡이에 의지해서 걷는 옆 사람에게 감사 드린다. 건강에 유의하라고 나에게 일깨워주시는 분이기 때문이다. 사람은 다 부처라고 한다. 사람은 나무이고, 구름이고, 물이고, 바위이다. 다 신성한 존재다. 고요한 미소를 서로 교환해야할 존재다. 내가 왜 진작에 이런 생각을 못했는지 모르겠다. 이제사 마음 공부에 눈 뜨게 된 것인지 모르겠다. 그동안 다른 공부는 다 지엽적인 것임을 이제사 깨달았다. 요즘 나는 어린애가 되었다. 새 걸음마를 배운다. 한발짝 한걸음에 마음을 집중하여 조심스레 걷는다. 이른바 참선보행 이다. 이때 금빛 태양은 천지를 수놓는다. 태양은 진작부터 어둠을 광명으로 바꾸는 성스러운 작업을 멈추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 태양에게 감사기도를 올리지 않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