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수화 화법과 수필 작법/ 수필문학 2013년 5월호 게재
김창현
산수화 이론을 보면, 산을 그린다고 눈에 보인대로 다 그린 것이 아니란 걸 알 수 있다.
'산에는 삼원(三遠)이 있다. 밑에서 꼭대기를 쳐다보는 것을 고원(高遠)이라 하고, 앞에서 산의 뒤쪽을 미루어 보는 것을 심원(深遠), 가까운 산에서 먼 산을 바라보는 것을 평원(平遠)이라 한다. 고원의 기세는 돌올(突兀)하게 솟아 청명한 것을 폭포를 그려놓아 표현하고, 심원의 뜻은 산 밖의 산들이 중첩한 것인데 구름을 그려 넣어 표현하고, 평원의 운치는 표묘(縹緲)한 데 있어 역시 안개나 구름을 그린다.'
산을 바라보는 안목을 말해주고 있다. 글 쓰는 것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눈에 보인대로 그린다고 그림이 아니며, 쓴다고 다 글이 아니다. 그림도 글도 먼저 사물을 바라보는 깊은 안목이 있은 연후에 가능함을 느끼게 한다.
'고인(古人)은 좋은 산이 있어도 좋은 로(路)가 없다고 하였다. 길은 산이 좋게 되느냐 나쁘게 되느냐의 분계를 짓는 중요한 것이다. 산길은 그윽한 은자가 산에 숨어 살고 있음을 암시해주는 것이다. 길은 구불구불 굽이굽이 숨었다가 보였다가 해야한다, 톱니처럼 삐쭉비쭉 해서도 안되고, 꼿꼿이 죽은 뱀처럼 그려서도 안된다. 구름은 산천에 비단 수를 입히고, 청청한 산은 더욱 한가롭게 하는 것인데, 산에 문득 백운이 가로질러 걸리어서, 층을 이루면, 보는 이로 하여금 감흥을 더욱 솟구치게 한다. 그래서 산은 운산(雲山), 물을 운수(雲水)라 부르는 것이다.'
산길을 그림에 은자가 숨어 살고 있음을 암시하는 산길, 살짝 제멋대로 곁가지 나가는 산길의 자유분방함을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고, 구름을 그림에 산에 비단 옷 입히는 구름, 산을 더욱 청정하게 하는 구름의 한가함을 마음에 새겨야 할 것이다. 이런 산길과 구름의 태(態)를 얻어와야 비로서 산수화에 격조가 묻어나오는 것이다.
'산을 봄에 있어서 주산(主山)은 높이 솟아야 좋고, 구불구불 연락되어야 좋고, 훤하게 트이어 널찍해야 좋고, 옹골차게 두툼해야 좋고, 세(勢)가 우람한 기상이 있어야 좋다. 위에는 덮은 데가 있고, 아래는 그것을 받드는 데가 있으며, 앞에는 손잡아 주는 데가 있으며, 뒤에는 의지되는 데가 있어, 산의 혈맥이 통하여야 한다.'
산 그리는 방법이 마치 수필 다듬는 과정같다. 구성면에서 본다면 글이나 그림 모두 공동 운명체인지 모른다. 무턱대고 그린 그림은 앞뒤가 혼잡하여 오직 답답할 뿐이다. 주제가 무엇이고, 연결이 무엇인지가 뚜렷해야 한다. 글맛의 변화도 논해주고 있다. 때에 따라서 은은한 시적 분위기도 있어야겠고, 올골차고 두툼하고, 우람한 세력도 있어야 할 것이다. 글귀는 때론 중첩으로 서로 덮어주고, 때론 아래서 받들어주고, 앞에서 손잡아 주고, 뒤에서 의지해주어 혈맥이 통해야 한다.
마힐(摩詰)은 '산을 그리는 법에는, 먼저 기상(氣象)을 살피고, 청탁(淸濁)을 분변하고, 주빈(主賓)의 조읍(朝揖)을 정하고, 군봉(群峰)의 위의(威儀)를 차리는데, 많으면 난(亂)하고, 적으면 엉성(慢)하다' 하였다.
마힐(摩詰)의 설은 수필가에게 좋은 참고가 되지만, 특히 마지막 구절, "많으면 난(亂)하고, 적으면 엉성(慢)하다'는 대목이 백미이다. 이처럼 산수화에는 법이 있음을 귀히 여긴다. 그러나 때로는 법이 없음을 귀히 여기기도 하여, 궁극에는 유법(有法)의 극치에서, 다시 무법(無法)으로 돌아간다.
'송(宋)나라 종병(宗炳)이라는 사람은 늙고 병들면 명산을 두루 보지 못하게 될 것이라 생각하고, 노년에 누워서 보기 위하여 유람했던 곳을 모두 그림으로 그려 방에 걸어두었다고 한다. 은일고사들이 이런 경우가 많았다. 도연명의 은거를 꿈꾸는 사람은 귀거래도(歸去來圖)를 걸어놓았고, 왕유 같은 별서(別墅)를 꾸미고 살고싶은 사람은 망천도(輞川圖)를 걸어놓았으며, 왕휘지처럼 곡수(曲水)에 술잔을 띄워 시를 짓고 싶으면, 난정(蘭亭)을 그린 그림을 구해와서 완상하였다. 조선 초기 채수(蔡壽)라는 사람은 집에 돌로 만든 인공 석가산(石假山)을 만들었는데, 산은 높이가 5척이고 둘레가 7척이며 폭포는 2척 남짓이고 나무는 4~5촌이었다. 사람 키만 한 높이의 석가산에 조그만 나무를 심었고, 특히 대통을 이용해 물길을 땅속으로 끌어와서 갑자기 연못 한가운데 있는 석가산 꼭대기에서 폭포가 되어 떨어지게 하였다.'
이렇게 사람이 산수를 완상하는 데도 나름대로 보이지않는 법식이 있었다. 이런 법식과 안묵이 없이 수필을 쓴다는 것이 얼마나 무모한 일인가 생각해 볼 일이다. 모든 수필가가 철학자가 되어 인생을 관조할 수 있거나, 시인이 되어 시어(詩語)로 인생의 희노애락을 읊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수필가가 필력이 약하여 주변 일상을 보고서나 일기장처럼 써놓는 일은 피해야 한다. 기험(奇險)과 신기(神氣)가 없어 답답하고, 고졸한 아취가 부족하여 취할 바가 못된다.
산중의 은자(隱者)는 반드시 그 마루와 안방을 들어가 본 뒤에 그 유정한적(幽靜閒寂)한 취(趣)를 보는 것이 아니라, 문에 들어가는 길에서 벌써 바라만 보아도, 도덕 높은 사람의 집임을 알게 되어서, 사람으로 하여금 흠모(欽慕)의 느낌을 일으킬만 하여야 한다고 하였다. 수필도 첫 일필(一筆)에서 벌써, 필외(筆外)의 뜻(意)이 나타나, 첫구절을 읽으면 먼저 인물의 맑기가 학(鶴)과 같은 사람이 보여야 한다.
도연명이 '밝은 달 아래 호미 메고 돌아오거나', '동쪽 울타리 밑에서 국화를 따면서 유연히 남산을 바라보는' 모습, 마힐(摩詰)이 '우연히 이웃 동네의 수척한 노인네를 만나 담소하다가 돌아갈 줄을 모르는' 모습, 이태백이 '두사람이 술을 대작하매, 산꽃이 피어나는' 운치, 두보가 ' 맑은 날 창 아래서 들에 숨은 고사(高士)의 시편(詩篇)을 점 찍어 가면서 읽는', 그런 모습이 보여야 한다. 개자원 화보를 보면 고사들의 이런 모습을 논하고 있다. 명아주 지팡이에 몸을 의지하여 샘물 소리를 듣는 모습, 천기 화창한 날에 피리 불거나, 거문고 타는 모습, 독좌(獨坐)하여 산밭에 핀 복숭아꽃을 보거나, 비 젖은 갈대 사립문에 핀 찔레꽃을 바라보는 모습, 달 밝은 물가 누각에 찾아가 시원한 바람을 쐬며 차를 다리는 모습, 나귀를 타고가며 시를 구상하는 모습, 갈대 우거진 곳에서 혼자 노를 젖는 모습, 비 개인 들판에 선 무지개를 바라보는 모습, 물 맑은 산골짜기에서 혼자 발을 씻는 모습이다. 이것이 동양 선비들이 수백년 추구해온 자연관이자 인생관 이다. 철학이자 격조이다.
요즘 아무리 시대가 변했다곤 하나, 상기한 자연관, 인생관, 격조의 맥을 잇지못하고 망각되어 사라지고 있음은 슬픈 일이다. 수필가들이 그냥 시정(市井)의 기(氣)만 잔뜩 느끼게하는 글, 어디 해외 여행 다녀왔다는 천박한 자랑 글, 일상사를 지루하게 쓴 글을 보면, 참으로 답답하고 민망스럽다. 이리도 소재가 빈약하고, 격조가 없고, 운치를 모르고, 쓸 것에 궁핍한가 싶다.
소재를 찾으려면 조금이라도 짬을 내어 고금의 문장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글 중의 보배를 추려놓은 고문진보(古文眞寶)란 책을 보면, 애국충정 표본이라할 제갈량의 출사표(出師表)가 있고, 고고한 절개를 읊은 굴원의 어부사(漁父辭)가 있고, 천하미인 양귀비를 읊은 백락천의 장한가(長恨歌 )가 있고, 선비를 논한 도연명의 오류선생전(五柳先生傳)이 있고, 천하를 통일한 한고조의 대풍가(大風歌)가 있고, 학문을 권하는 진종(眞宗)황제의 권학문(勸學問)이 있다. 대개 이들 사(辭), 부(賦), 설(說), 론(論), 서(書), 표(表), 서(序), 기(記), 잠(箴), 명(銘), 문(文), 송(頌), 전(傳), 비(碑), 변(辯), 가(歌), 행(行), 곡(曲) 등은 전부가 수필인 것이다. 수필의 소재는 무궁무궁한 것이다. 이를 모르고, 현재 이름 있는 시인 소설가들은 물론, 수필가 자신들까지 합세해서 수필을 좁게 옭아맨다. 기껒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 플라톤의 <대화편>, 몽테뉴의 <수상록(隨想錄)>, 루소, 찰스램, 프란시스 베이컨이 수필의 원조인양 치켜세운다. 이제현의 <역옹패설>은 설(說)이 아니고, 연암의 <열하일기>는 기(記) 아니던가. 역시 홍매(洪邁)의 <용재수필(容齋隋筆)> 은 수필이 아니던가. 시와 함께 가장 오래된 족보를 가진 수필을, 문학 장르 중에서 가장 늦게 탄생한 막둥이인양, 함부러 치부하는 현세태를 보면, 고소를 금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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