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 속의 아베마리아
노년이 되어 지하철 무료로 타는 '지공도사' 되면서 나는 옆이나 앞 사람들을 유심히 보는 버릇이 생겼다. 젊음 넘치는 여인, 양복차림 청년, 등산복 차림 사람, 흰머리 노인까지 찬찬히 살펴본다. 젊은 날에는 여인을 용모로 판단했다. 그러나 지금은 여인의 심성을 중요하게 여겨 눈빛을 본다. 양복 차림 청년들은 젊은 시절 나의 직장생활을 떠올리게 한다. 등산복 차림은 산 정상을 향해서 올라가던 날들을 떠올리게 한다. 하산 후 목로주점의 막걸리를 생각하게 한다. 머리 하얀 노인들은 내 친구들을 생각하게 한다. 그들은 병원 다녀온 이야기, 재산보다 건강이 제일이라는 이야길 자주 한다. 지하철 속에선 천진난만 천사같은 어린아이도, 세상에 찌든 험상궂은 얼굴도 볼 수 있다. 젊거나 늙었거나 여성이거나 남성이거나 악인 혹은 선인이거나 지하철에 모두 타고 있다.
그 북적거리는 인파 속 저멀리서 고요히 아베마리아가 들려왔다. 가만히 그쪽을 주시해보니, 한 손에 지팡이 짚고, 한 손에 동냥 바구니 든 걸인이 걸어온다. 그의 어깨에 멘 카셑에서 들려오는 소리였다. 그는 오십대 중반 장님이었다. 그런데 나는 그 모습에서 적지않는 마음의 동요를 느꼈다. 그의 감은 눈은 한없이 고요하고 평화롭고, 몸가짐도 그랬다. 인파 속을 혼자 걸어오는 그 모습은 마치 수행자의 걸음걸이 같았다. 그는 아무 것도 가진 것 없는 자의 겸허함을 지니고 있었다. 재물이나 명예에 대한 욕심을 포기한 평화가 그의 주변을 감돌고 있었다. 버릴려야 버릴 수 없는 것이 인간의 욕심이다. 그런데 가난의 푸른 파도는 얼마나 그의 마음을 오래 동안 씻고 또 씻었을까. 그리고 마침내 그의 얼굴을 저처럼 평화롭게 만들었을까. 십자가를 등에 지고 골고다 언덕을 오르는 예수님의 얼굴, 탁발하는 부처님 모습이 저랬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저 모습은, 수행한다고 절이나 수도원으로 뛰어다닌다고 되어지는 얼굴이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재물이나 명예 근처에 얼씬거리는 그런 얼굴이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욕망의 사슬을 벗어난 자의 얼굴이었다. 그 모습은 지하철 속의 한 폭 성화같이 보였다.
그가 들려준 음악은 너무나 아름다웠다. '아베 마리아'는 원래 로마 가톨릭 교회의 기도문이다. ‘아베(Ave)’란 ‘경축하다’, ‘인사하며 맞아들이다’라는 뜻을 지닌 라틴어다. 아베마리아는 성모님을 맞아서 기도하는 노래다. 누가복음 1장 28절과 1장 42절의 두 경축구절을 합한 것이다. 천사 가브리엘은 마리아에게 가서 말 했다고 한다. “기뻐하소서, 은총을 입은이여! 주님께서 당신과 함께 계십니다.”
그가 들려준 '아베마리아'는 슈벨트나 구노의 아베마리아가 아니었다. 나도 모르는 어떤 아베마리아였다. 그 성스런 음악을 성당이나 교회 아닌 도심의 인파 속에서 들려준 그는 누구였을까. 기독교인은 아니지만, 나는 참으로 평화롭고 성스러운 신의 은총을, 한 가난한 걸인의 모습에서 보았다.
수필문학 2013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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