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 기고 글

계수나무 꽃향기 가득한 계림 여행/동방문학 6월호

김현거사 2014. 8. 2. 14:27

   계수나무 꽃향기 가득한 계림 여행 

 

  여행사는 중국에서 볼만한 경치는 장가계와 계림인데, 장가계는 남성적이요, 계림은 여성적이라 말한다. 그 중 장가계는 이미 가 본 곳이고, 봉오리들이 우뚝우뚝 솟은 계림은 언제 가보리라 생각만 해왔다.

 그런데 칠순 기념으로 고교동창들이 단체로 계림에 간 것이다. 밤에 인천공항에서 비행기에 올라, 이태백의 장진주(將進酒)란 시를 생각했다.

 

 '그대는 보지 못하는가. 황하의 물이 천상에서 내려와, 세차게 흘러 바다에 이르러 다시는 돌아오지 못함을. 또 보지 못하는가. 높은 집 사람이 거울 속 백발을 슬퍼함을. 아침에 푸른 실 같던 머리카락이 저녁에는 눈 같이 희어졌네. 인생은 모름지기 뜻을 얻었을 때 기쁨을 함께 누려야 할지니, 친구인 잠부자 단구생이여! 술잔을 올리니 그대는 부디 거절하지 마시라.'

 

 머리카락 백설처럼 희게되니, 그 시가 더 공감간다. 

 

 나는 계림에서 무엇을 보고가나 미리 생각해둔 것 있다.

 첫째가 산수(山水)요, 둘째는 골동품 이요, 세번째는 인심이다. 

 중국은 하나의 거대한 골동품 시장이다. 가는 곳 마다 도자기와 산수화다.  이건 모르면 비지떡이요, 알면 보석이다. 고르는 안목이 있어야 한다. 또 계림은 소수민족의 순박한 인심도 볼만하다.

 

 멀리 갈 것 뭐 있는가. 아침에 호텔 로비 대형 도자기부터 찬찬히 살펴보았다. 

   

 

  산은 구름에 덮혀있고, 암봉에는 폭포가 걸려있다. 냇물에는 다리가 놓여있고, 다리 위에는 산에 숨은 은자가 걸어가고 있다. 그 옆에 파초가 자라는 작은 초옥이 있다.

 호텔 문 밖 나서기 전에 벌써 산수화 속에 든것 같다.   

  정원도 볼만하다. 장방형 연못엔 비단잉어가 헤엄치고, 물에 잠긴 돌 위에 나무로 만든 회랑이 있다. 소철과 종려나무 심어져 있고, 로비에서 정원 건너가는 돌로 조각한 연꽃 징검다리 발판도 운치있다.

 내가 무슨 신선인가, 날더러 연꽃을 밟으며 건너가라는듯 하다. 배려 한번 고맙다. 

 

 

  계수나무 많다고 계림(桂林)이다. 가로수는 온통 계수나무다. 꽃향기 가득한 철을 잘 골라간 것이다. 

 계수나무는 밭에 심어, 꽃으로 향수 만들고, 술을 담는다고 한다. 굳이 더 알아보니, 우리나라 만리향 사촌뻘이라는데, 향기도 좋거니와 지금 막 보라빛과 흰빛 꽃이 피어 매우 운치있다.

 '푸른 하늘 은하수 하얀 쪽 배에 계수나무 한 나무 토끼 한마리' 윤극영 선생이 여길 다녀갔는지 모르겠다. 계림이 계수나무 아래서 토깽이가 떡방아 찧는 고장인줄 아시는지 모르겠다.

 

 첫 날, 배 타고 리강(漓江) 유람하면서, 베니스가 물의 도시라지만, 계림이 더 운치있는 도시라는 생각을 했다.

 시내 곳곳에 강의 지류가 많아, '이강(漓江)이 저강이고, 저강이 이강(漓江) 이다'란 말 있다.

 계림에서 양삭(陽朔)까지 83km 뱃길이 선경이다.

 '백리리강(百里漓江) 백리화랑(百里畵廊)'이란 말처럼, 백리길 전부가 산수화 같다. 산은 그림에서 튀어나와 강변에 우뚝우뚝 서 있다. 천하 절경이다.

 봉오리들은 모두 백운대 인수봉 같고, 마이산 같다. 이런 봉우리 숫자가 자그만치 3만5천개라는데, 저마다 구름 비단 스카프를 허리에 둘렀다. 멋 있다. 

 밤에 달빛 비치면 여긴 또 어떤 선경일까. 

 달빛 아래, 고유 의상 입은 까무잡잡한 가날픈 몸매의 장족(壮族)  아가씨와 계수나무 꽃으로 담근 삼화주(三花酒)에 취해봐야 제격일 것이다. 투명하고 부드러운 그 술은 동굴에서 3년 숙성시킨다고 한다.

 

 여기서 하롱베이가 가깝다고 한다. 산맥이 하롱베이로 이어져있고, 날씨는 여름은 40도라, 시멘트 바닥에 놓으면 계란이 익는다고 한다. 대나무 계수나무가 많고, 비파 유자 과수원이 많은데, 벼농사는 일년에 3모작이라고 한다.

 다행히 1년 365일 중 300일은 흐리지만, 흐려도 관광엔 지장 없다고 한다. 맑은 날은 물에 비치는 봉오리 모습이 멋 있고, 흐린 날은 산 허리에 걸친 구름이 멋있고, 비오는 날은 리강에 피는 물안개가 멋있다고 한다.

 

 

 이날 우리는 배위에서, 삿갓 쓴 어부가 수묵화처럼 아름다운 강물에서 가마우지로 고기 잡는 목가적인 풍경은 볼 수 없었다. 가이드 설명에 의하면, 가마우지는 야행성이라 주로 밤에 고기 잡는다고 한다.

 그날 밤 저녁 식사에 잉어찜 요리가 나와서, 그게 아마 가마우지 선생이 입으로 잡은 것이지 짐작만 해보았다.

  

 다음날 시내에 있는 첩채산(疊綵山)에 올라갔다. 비단을 첩첩히 쌓아놓은 것처럼 보인다는 첩채산(疊綵山)이다. 

 바위에 '願作桂林人 不願作神仙'이라 새겨서, '계림 사람 되기가 원이지, 신선 되기는 바라지 않는다'고 써놓은 걸 보니, 그들의 자부심 알만했다. 이런 데서 그 흔한 과일의 여왕이라는 망고와, 듀리안과 비파, 무공해 채소와 신선한 물고기 먹고 사니, 신선 부럽지 않다는 그 말 옳커니 싶다. 

 

 

 

  불상이 암벽 여기저기에 새겨진 산을 올라가니, 계림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 보인다. 첨봉은 시내 여기저기 솟아있고, 집들은 숲에 가려있고, 7층 단청 탑은 물가에 고요히 서있다.  

 

 

  인구 50만 이라는 계림이 아마 중국 전체서 가장 웰빙도시 아닐까 싶었다.  

 계림 시민의 휴식처 우산공원, 호수와 산이 잘 어울린 천산공원, 서양인들이 모여들어 또하나 풍물을 이룬 양삭(陽朔)의 재래시장, 동굴 안에 케이불카와 배가 동시에 다니는 관암동굴 등은 모두 하나하나가 볼만하였다.

 

 그러나 내게 가장 인상적인 곳은, 세외도원(世外桃園)이다. 

 거긴 내가 대학시절 그의 시에 반했던 중국의 전원시인 도연명의 '도화원기(桃花源記)' 장소처럼 만들어놓은 곳이다. 

 작은 동굴 속을 배가 지나가자, 복숭아나무 숲이 나온다. 

 3월이면 도화 만발한 도원경 이룬다고 한다. 황금색 유차화(油茶花)와 눈처럼 흰 여채화(茹菜花)도 핀다고 한다. 자홍색 홍화초가 알록달록 피어, 현란한 비단 자수 수놓는다고 한다. 

 

 

  '진나라 태원년간에 무릉 사람으로 고기잡이를 업으로 하는 사람이 있었다. 하루는 물길을 따라 멀리 갔다가 홀연히 복숭아꽃 만발한 곳에 이르렀다. 어부는 이상하게 여기고 계속 앞으로 나가 복숭아 숲 끝에 무엇이 있는지 알고자 했다. 숲은 강 상류에서 끝났고 그곳에 산이 있었으며, 산에는 작은 동굴이 있고 그 속으로 희미하게 빛이 보였다. 어부는 즉시 배에서 내려 동굴 속으로 따라 들어갔다. 동굴은 처음에는 몹시 좁아 간신히 사람이 통과할 수 있었으나 수십 보를 더 나가자 갑자기 탁 트이고 넓어졌다.'

 

 도연명의 시 그대로였다. 

 

 물은 한없이 맑고 투명하고, 바닥이 환히 보이고, 산은 높고 고요하다. 속세의 근심이 싹 가신다. 물 위에 도화꽃 하나씩 흘러오는 여기가 그야말로 신선향 아니겠는가.

 거기 하얀 회칠을 한 민박집 두어채가 보였다. 제비가 들어와 살라고 집마다 벽에 구멍을 두어개 뚫어

놓았다. 호수 이름이 제비 연(燕)자 들어간 연자호라 한다. 여기가 강남 제비의 고향인가.

 언제 여기 며칠 묵으며, 수필이나 서너 점 만들어 올 수 없을까.  그러나 꿈과 현실은 항상 조우가 어려운 법이다. 소수민족 음악처럼 가날픈 미련만 세외도원 하늘가에 뿌리고 왔다.

 

 3박 5일 마지막 날 밤, 계림 야경도 잊을 수 없다.

 우리를 태운 유람선은 불 밝힌 정자와 누각과 7층탑과 화려한 호텔 옆으로 지나가고, 조명은 푸른 나무잎을 싱그럽게 비쳐준다.

 여기서 두 강이 만나서 네개 호수를 만들었다고 한다. 

 밤인데도 호반에 사람들이 많았다. 계림 청춘들은 주로 여기서 연애질 한다고 한다. 이북 가이드 말이다. 그들은 연애도 연애질이라 하는 모양이다. 

  어부가 불을 밝히고 가마우지로 고기 잡는 시범도 보이고 있었다. 가마우지가 날개를 퍼득이며 고기를 입에 물고 배에 올라올때 마다 사람들 박수가 터졌고, 카메라 후랏쉬가 터졌다.

 

 그러나 그 밤 우리 유람선에서 결정타 날린 것은 은은한 해금 소리였다.

 배가 호수를 반쯤 돌았을 때다. 누가 뱃머리에서 부드러운 해금소리를 들려준다. 

 은은한 소리는 물결 타고 흐르듯, 별빛 따라 흐르는듯 하였다. 아리랑에서 시작하더니, 심심산천 백도라지, 푸른 하늘 은하수를 거쳐, 서양곡 뷰티풀드림머와 올드랭사인으로 끝을 맺는다.

 이럴 때 가만 있는 사람을 목석이라 한다. 우리는 같이 험잉을 하고, 그 부드럽고 은은한 음률이 하나하나 끝날 때마다 부라보! 만장의 박수를 보냈다.

 대표는 금일봉을 내놓았고, 각자도 얼마씩 돈을 내놓았다.

 나는 여기 화강암 다리 밑바닥에 새겨진 유려한 필치의 한시와 그윽한 산수화를 보고, 물가 곳곳에 불상과 7층탑이 조명 속에 서있는 것을 보고, 계림에 대한 정의 내렸다.

 이곳이야말로 호수와 강과 시와 그림과 글씨와 음악이 절묘하게 어울린, 진정한 물의 도시였다. 이에 비하면 그냥 곤돌라와 아리아 둘만 있는 베니스는 저 아래 동생뻘 이다.

 그리고 비행기 출발 시간 밤 12시 40분에 맞취 대절버스 오르니, 연인을 두고 떠나듯, 아쉬운 마음 촉촉히 창가에 서린다. 

                                                                                                                    (2014년 4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