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향을 태우면서

김현거사 2013. 8. 26. 18:42

      

     향을 태우면서

 

 

  어릴 때 나는, 향은 어른들이 제사 지낼 때나 초상집에서만 쓰는 것으로 생각했다. 향을 귀신을 부르는, 금기시되는 물건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나중에 절에 다니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우선 향 연기가 고요히 타오르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고요히 달빛 비치는 법당이 좋고, 어둠 밝히는 황촛불이 좋았다. 향불 앞에서 기도하는 보살들 모습은 경건하고 신비로워 보였다. 홀로 피어오르던 한줄기 향이 타서 재로 변하는 모습은, 무언가 삶의 의미를 생각케 해주곤 했다. 

 

 간혹 향을 사와서 집에서 피운다. 조계사 앞에는, 감물 드린 법복(法服)과 벽조목으로 만든 목탁과 향을 파는 가게가 있다. 나는 향내를 맡아보고, 내 분수에 맞는 향을 고른다. 향 중에 귀한 것은 베트남에서 자라는 '그라스'란 나무에서 얻는 침향(沈香)과  인도의 '짠다라' 나무에서 얻는 전단향, 백단향이다. 침향은 물에 가라앉기 때문에 침향(沈香)이라 부른다고 한다. 나무에 상처가 나면 수액이 서서히 덮어 막을 형성한다고 한다. 이를 수지현상이라 부르는데, 그 부분이 수백년 지나면서 숙성된 결정체가 바로 침향이다. 매향(埋香)이란 것도 있다. 매향은 향나무나 참나무가 해수와 담수가 만나는 지점에 오래 동안 묻혀있던 것이다. 바닷물이 나무에 서서히 배여들어 나무의 성질이 변해서 향이 된 것 이다. 그러나 이들은 고가여서, 나는 구경만 한다.

 

 국산 향도 많다. 참선할 때 피우는 선향(禪香), 명상과 기도할 때 쓰는 명상향, 전통차 마실 때 쓰는 다향(茶香), 손님 접대용 금란(錦蘭), 그 밖에도 많다. 대개 만원에서 십만원 안팎이다. 일본산은 향은 짙으나, 어딘가 경박한 느낌이다. 향은 간혹 한약재를 섞어서 만든다고 하는데, 어떤 향은 몸의 병을 치유하는 기능도 있지만, 잘못 만든 향은 독이 있다고 한다. 

 

 향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지만, 금기시 하는 사람도 있다. 제사나 장례식이 연상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향의 역사를 살펴보면, 이건 편견이다. <향료전쟁>이란 책에 보면, 16세기 영국과 네들란드가 동인도제도에서 정향과 후추, 육두구란 향신료를 얻는 무역루트를 개발하기 위해 백년간  치열한 쟁탈전을 벌였다. 동방에서 온 향신료는, 같은 무게의 금 가격과 같아, 이를 취급한 베네치아 제노바같은 도시국가들은 막대한 부를 축적했다. 교회에서는 4세기 초부터 성체성사시 향을 사용하였다. 분향은 기도 존경 봉헌의 의미로 쓰였다. 향단은 아카시아나무로 만들고, 네 귀퉁이는 뿔과 순금을 입혔다. 그리스정교회 아르메니아정교회 로만카토릭 성당이 다 향을 사용하였다. 불교나 기독교나 마찬가지다. 거룩한 분 앞에 향을 바친 것 이다. 

 

 중국에서는 침향을 구하기 위해 인도차이나까지 가서 고려인삼과 교환하여 가져왔다고 한다. 침향정은 현종이 양귀비를 얻은 후, 정사를 보던 정자 이름이다. 침향으로 지었다고 한다. 이집트에서는 왕족의 미이라 만들 때 방부제로 침향을 사용하였다고 한다. 불교는 특히 향을 중요하게 여겼다. <법화경>에서는 침향 향기를 하늘의 꽃비로 묘사하고 있다. <삼국사기>에는 신라 헌덕왕이 왕명으로 '진골과 6두품들의 침향사용을 금지했다'는 기록이 있다. 귀족들이 일본에서 수입한 침향을 앞다퉈 사용하여 문제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고려 때는 송나라 사신이 오면, 금합과 은합에 침향을 담아 바쳤다고 한다. 그 정도로 귀한 향이다. 고려 말에는 미륵신앙이 널리 유행하여, 향을 물속에 묻는 매향의식이 성행했다고 한다. 당시 불자들을 향도(香徒)라고 부른다. 부처님의 힘으로 국난을 극복하려 했던 민초는 팔만대장경을 만들었고, 부처님을 조성할 때, 뱃속에 향을 넣기도 했다. 이를 복장 공양물이라 한다. 2005년 해인사 비로자나불을 개금할 때, 복장물에서 서기 883년 부처님 조성 당시의 침향이 원형 그대로 보존된 채 발견되었다고 한다.

 

 내가 향을 피우는 시간은 대개 이른 새벽이나 늦은 밤 이다. 별이 보이는 시간에 향 피우기를 좋아한다. 창 밖에 커다란 버드나무가 보이는 방이 내가 향을 피우는 방 이다. 새벽에 간혹 버드나무 위로 달이 지나간다. '푸른 하늘 은하수 하얀 쪽배에, 계수나무 한그루 토끼 한마리'. 달을 보면서 나는 하얀 쪽배처럼 어딘가로 흘러가는 나자신을 생각한다. 향 하나가 타서 연기로 변해 고요히 허공으로 사라지는 시간은 얼마나 될까. 일수유(一須臾)는 손가락 한 번 퉁기는 짧은 시간이다. 나의 평생도 수유였다. '가기도 잘도 간다.서쪽 나라로.' 하얀 쪽배는 어느듯 서쪽 나라에 닿아간다.

한밤의 버드나무 위 총총한  별빛 모습은 장관이다. 이럴 때 나는 아리랑을 생각한다. '청천 하늘엔 잔별도 많고, 이내 가슴 속에는 수심도 많다.' 세상 그 어떤 예술로도 표현할 수 없는 오묘하고 신비한 아름다움 가득한 곳이 인간 마음이다. 그 속엔 수심도 가득하다. 나는 참선의 깊은 경지는 모른다. 그러나 이런 생각을 한다. 향은 타고나면 재가 되지만, 향기를 남긴다. 수심도 가슴 깊은 곳에서 오랜 시간이 지나면, 매향(埋香)처럼 한조각 향기를 지니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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