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기

서대문포럼 남이섬 여행

김현거사 2013. 7. 5. 06:39

 

  서대문포럼 남이섬 여행

 

 

 포도주는 오래된 것이 맛이 깊지만, 친구도 그렇다. 3년 이상 숙성된 묵은지처럼 서로의 대화가 사근사근 씹히는 맛이 있다. 한 50년 넘는 친구들이니 3년 묵은 묵은지 하고 비교가 무리인지 모른다.모처럼 중고등 친구 11명이 가평 남이섬에서 하루밤 자고 왔다. 강정 권순탁 김두진 김덕균 이주호 이한봉 전영숙 정우섭 정호영 홍형유

 아침 9시 용산역은 공중에서 천둥번개가 우루룽 쿵쾅 법석 떨고, 장마비가 화강암 바닥에 물보라 튀기고, 우산 쓰고 지나가는 아가씨 뽀오얀 종아리를 촉촉히 적신다. 담배 한 대 물고 돌계단에 앉아 그 모든 모습 지켜보는 거사에게 좋은 눈요기감 이다.  ITX청춘열차란 걸 타니, 한남동 강변, 청량리를 거쳐 딱 1시간만에 가평역에 닿는다. 시속 180킬로 거참 희안하다. 세상 참 좋아졌다.

 역에 내리니 순환광광버스란게 온다. 먼저 <아침고요식물원>으로 가는데 남이섬에서 강 따라 청평 가는 강변길이 완전 예술이다. 청옥처럼 맑은 물은 산을 휘돌아 흐르고, 산은 그 아름다운 물이 아쉬워 고개를 돌려 바라보고 있다. 강물은 초록 거울 되어 산그림자를 비치고, 푸른 산은 하얀  운무를 덮어쓰고 산봉오리를 감춘다. 오호라 이곳이 한강 제일 풍광이다. 이곳을 촌놈처럼 그냥 무덤덤히 지나가면 안되지. 거사는 잠시 버스 마이크를 빌려, '白頭山石磨刀盡 (백두산 돌이 칼을 갈아 없애고) 豆滿江水飮馬無(두만강 물은 말을 먹여 없애겠다) 男兒二十未平國( 남아 스물에 나라를 평정하지 못하면) 後世誰稱大丈夫 ( 뒷날 누가 대장부라 하리요?)' 남이(南怡)장군의 시를 소개하였다. 우섭이도 송강 정철의 관동별곡을 외웠다. '(양주의) 평구역에서 말을 갈아 타고 (여주의) 흑수로 돌아드니, (원주의) 섬강은 어디인가, 치악산이 여기로다. (춘천의) 소양강에서 흘러내리는 물이 어디로 흘러간다는 말인가? (임금님 곁을 떠나) 외로운 신하가 서울을 떠나니 백발(근심과 걱정)도 많기도 많구나. 요렇게 풍월 외고 <아침고요식물원> 앞에 있는 <옛골>이란 한정식집에 닿았다. 일행 중 하나가 가져온 산삼주를 내놓았고, 산채요리 시키니. 이한봉 친구가 키마이 쓴다. 더덕구이 두 접시 더 시킨다. 부귀영화 별거던가. 이것이 그보다 차원 높은 것이다.

 얼큰한 기분으로 <아침고요식물원> 입장하니, 비는 왔다가 그쳤다가를 반복하는데, 비온 뒤 시원한 산바람이 살랑살랑 군선(群仙)의 귓전을 간지럽힌다. 불어난 계곡물은 바위를 적시고, 바람은 숲을 파도처럼 흔든다. 솔향기는 천지에 가득하고, 산수국꽃은 비에 젖어 더 곱다. 여행은 비오는 날 여행이 또 별미다. 이런 곳 애써 찾아와 무슨 시장판처럼 열심히 걷기만 해서 쓰는가? 거사와 일공은 잣나무 밑 나무의자에 앉아 고요한 숲의 향기, 빗소리 물소리를 감상하였다. 자라섬 <이화원>에 들러 비파나무 커피나무 구경하고, <겨울 연가> 덕에 외국 여행객들 많은 선착장에서 배 타고 강 건너 남이섬으로 들어갔다.   

 

 낮 시간 이렇게 보낸 후, 밤은 더 좋았다. 물가 숙소에 짐을 푸니, 방가로 데크에 숯과 번개탄이 있다. 거기 불 붙여 강물 보면서 삼겹살 파티를 벌일려고 했더니, 바람이 심하다. 연기만 잔뜩 마신 후, 포기하고 방에 들어가니, 강정 친구가 가져온 훈제오리가 접시에 얌전히 앉아서 기다린다. 달콤한 동동주에 입추기며, 깻잎과 마늘 상추, 겨자향까지 즐기노라니 밥이 익는다. 밥은 이한봉 솜씨고, 된장국은 권순탁 솜씨, 설겆이는 정우섭 솜씨다. 이런데 오느라고 전철과 버스 시간 체크하고, 음식점과 숙소 예약하고, 배에서 숙소까지 이동시는 서로 다투어 음식 재료 든 박스를 메고, 집에서 훈제 오리 가져오고, 방에서 식사할 때 서로 밥그릇 옮기고, 숟가락 젓가락 놓고, 수박 잘라 내오고, 나중에 설겆이 하고, 솔선수범하는 모습에 홍형유 장로가 놀래버렸다. '내가 모처럼 참여해보니, 나이 칠십의 우리 친구들이 이렇게 멋있게 늙었는가 싶다' 몇번이고 소회를 피력한다. 하기사 우리가 잘 다녀오라고 김두진 회장이 10만원, 933 회장단에서 20만원, 그 외에 금일봉 내놓은 친구들이 더 있다. 멋 있긴 하다. (이름 기억 안난다. 댓글 달아주소.)

 한번 보따리 풀자,이야기는 실비 내리는 외로운 등불 아래, 축축히 젖은 데크에서 새벽 3시까지 계속되었다. 고등학교 때 싸움패들 이야기, 타계한 친구 이야기, 인생론이 주제다. 늙은 이 마당에 잘난들 못난들 부잔들 가난뱅인들 어떤가. 서로 서로에게 관심 가져주고, 다정히 싸안아주면 된다. 그것이 학문이나 부귀보다 가치있고 더 깊은 철학이라는 결론 이다. 밤새워 이야기 원없이 했다.

 

이튿날 새벽은 전영숙과 불교에 대한 이야기 나누었다. 불교는 모든 것을 공으로 본다. 색즉시공 공즉시색 이다. 우리가 아는 선악미추가 다 허상이다. 상에 집착하지 말자. 안다는 것에도 집착하지 말자. 염불 외고, 경 읽는 것은 잘 하는 일이다. 그러나 그가 불교를 안다고 말하는 순간, 그는 불교에서 가장 멀어진다. 안다는 상, 자랑하고 싶은 마음, 그 자체가 불교사상과 천리 백리 멀다. 배치된다. 대략 이런 이야기 였다. 이날 끝까지 이야기 하고, 두시간 잔 후, 새벽 5시에 남이섬을 한시간 산책한 사람은 이한봉이다. 대단한 체력이다.

 이쯤에서 이번 우리들 여행 점수가 나온다. A 학점이다. 식사후 우리는 소양댐 구경하고, 춘천서 가장 잘 하는 막국수집 찾아갔다. 거기 감자전과 도토리묵 음미했다. 그 맛은?  ㅎㅎㅎ! 약 올리는 것 같아서...... 생략합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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