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기

진주를 다녀와서

김현거사 2013. 6. 4. 12:34

 

 

 

  동국여지승람에는 '북평양 남진주'라는 말이 있다. 북에 평양이 있고, 남에 진주가 있다는 말이다. 평양에 대동강 있으면, 진주에 남강 있고, 평양에 부벽루 있으면 진주에 촉석루 있다. 평양에 계월향 있으면, 진주에 논개 있다. 태조 이성계는 '조정인재(朝廷人才) 반재영남(半在嶺南), 영남인재(嶺南人才) 반재진주(半在晉州)'라고 했다. 이런 진주를, 나는 서울 출신 아내에게 항상 자랑 해오던 차였다. 그래 지난 6월1일, 큰맘 먹고 같이 진주로 향했다.  

우선 냉면집부터 찾아갔다. 양반은 그 집 음식을 보면 안다. 음식문화부터 보여주기 위해서다. 진주는 맛고을로 육회비빔밥 냉면 헛제사밥이 유명하다. 지리산과 남해안에 신선한 재료가 풍부하기 때문이다. 진주냉면은 교방요리 이다. 교방요리란 무엇인가. 기생집 요리를 말한다. 교방의 교자상은 상차림이 화려하다. 한 시대 전만 해도, 한양 풍류객들이 천리길 멀다않고 진주를 찾아왔다. 냉면은 진주기생들이 선비들과 야참으로 찾는 별미였다. 그럼 진주 기생들은 어떤 사람들인가. 진주기생은 평양기생과 함께 조정의 큰 잔치에 초대되던 전국 제일 기생이다. 시서화는 물론 기예에 능한 예술가 들이다. 진주엔 일제시대에 기생조합이 있었다.  품계 따라 일급 기생을 불러 주연을 열라치면, 인력거를 보내 데려와 인력거로 모셔 보냈고, 그들의 보수는 일반 사람보다 수 십 배 였다. 그 입맛이 얼마나 고급스러웠겠는가. 그 전통을 이어온 것이다.

 '잡으시오 잡으시오. 이 술 한 잔 잡으시오. 불노초로 술을 빚고 신선이 사는 연못 복숭아로 안주 삼아 만수무강 하십시오'. 권주가 한대목 이다. 그때 연주한 악기는 8가지다. 쇠(金)로 만든 것은 '편종' '요' '탁 '정' '순' '방향' '향발' '동발'이 있다. 나무(木)로 만든 것은 '부' '축' '어'가 있다. 돌(石)로 만든 것은  '경'(12매)이 있고, 실(絲)로 만든 것은  '금' '슬' '현금' '가야금' '월금' '해금' '비파' '대쟁'이 있다. 대나무(竹)로 만든 것은 '소' '약' '관' '적' '지' '당적' '퉁소' '대금' '중금' '소금' '당필률' '태평소'가 있고, 바가지(匏)로 만든 것은 '생' '우' '화'가 있다. 흙(土)으로 만든 것은 '훈' '상' '부' '토고'가 있고, 가죽(革)으로 만든 것은 '진고' '뇌도' '응고' '대고' '소고' '교방고' '장고' '세요고' 가 있다. 이를  팔음(八音)이라 하니, 팔음은 순임금 때부터 사용된 말이다. 팔(八)은 우주만물의 생성원리인 "음양오행"과 "팔쾌"와 관련있다. 

  이 수많은 악기 연주 속에 권주가와 가무를 듣고 본 것이다. 그때 즐긴 냉면 이다. 그 전통을 생각하며, 하연각이 내놓은 냉면을 살펴보니, 우선 묵직한 놋쇠그릇이 맘에 든다. 기품도 있고 고풍스런 전통을 느끼게 한다. 육수도 맛 있다. 주재료가 해물이라는데, 맛이 깊고 산뜻하다. 느끼한 구석이 없고 시원하다. 고명으로 얹은 쇠고기 육전은 매우 고소하다. 사각사각 씹히는 배와 오이 촉감도 싱싱하다. 이 정도면 되었다 싶었는데, 마침 가는 날이 장날이다.  KBS 7 TV에서 취재를 나왔다. 그리고 나에게 카메라를 들이댄다. 떡 본 김에 제사 지낸다고 한다. 기꺼이 응해, 걸쭉하게 진주 냉면의 역사를 한번 읊어주었다. 

 

 다음날은 진주성 돌아볼 차례다. 새벽 일찍 진주성에 올라가니, 성곽은 안개 속에 덮혔는데, 눈에 띄는 것은 성벽에 구멍을 뚫어 밖에서 성벽을 기어오르는 적에서 활을 쏘도록 만든 치(雉)다. 총구 사이로 보이는 물안개 피는 남강이 운치있다. 강 건너는 망경동 이다. 50년 전에 내가 살던 동네다. 그리운 망경산도 보인다. 푸른 대숲은 봉황의 먹이인 죽실(竹實) 열리라고 만든 숲이다. 비봉산 옛이름이 대봉산이다. 산 밑에는 봉이 알 품으라고 봉의 알자리가 있다. 촉석루의 촉석(矗石)이란 말은 돌이 삐죽삐죽 높이 솟는 모양을 말한다. 그 아래 의암(義岩)은 논개가 왜장을 껴안고 깊은 남강물에 뛰어든 유서 깊은 바위다. 촉석루에서 서장대 가는 길 잔듸밭은 너무나 정갈하다. 새삼 맘에 사무쳐 오는 것이 고향의 푸른 언덕 이다. 옆에는 임진난 때 사용하던 천자총통·비격진천뢰 등이 보인다. 아침 햇살은 절벽에 우거진 수백년된 고목 숲 사이로 금실을 수놓는다. 프랑스를 다녀온 사람들이 하는 말을 들은 적 있다. 쎄느강이 한강 보다 생각보다 초라하더라고. 나는 라인강의 고성들을 떠올려 보았다. 어느 성이 진주성과 비교가 되는가. 어느 성이 임진난 같은 비장의 역사를 품고, 논개같은 충절의 여인을 가졌던가. 새벽의 촉석공원을 조용히 산책하는 사람이 아름다웠다. 무지개를 찾아 떠난 소년이 나였을 것이다. 돌아보니 무지개는 어느새 뒤에 솟았다. 공원을 산책하는 시민들이 한없이 부러웠다. 촉석루는 퇴계와 다산을 비롯한 이 땅의 역대 글쟁이 모두 다녀간 곳이다. 관련된 시와 글이 640여편이나 남아 있다고 한다. 한가지 아쉬운 점은 설창수 이현기 최계락 박재삼 ... 진주를 대표하는 문인들 시비가 여기 하나도 없는 점이다. 

 

 산책 후 아침 식사를 하였다. 진주 중앙시장은 '중 상투와 처녀 불알 빼곤 다 있다는 곳'이다. 초등학교 동창인 오교장 집에서 식사를 했는데, 부인의 음식솜씨 좋고, 죽순요리와 뽈래기 구이가 별미다. 죽순은 싱싱하고, 뽈래기는 통통하고 탄력 있다. 모과차 한 잔한 후, 습지원과 진양호 둘러보았다. 가는 길  차속에서 성 밑의 골동품 거리를 구경했다. 여기는 우연히 서울 인사동과 동명이 같은 진주 인사동이다. 돌절구 맷돌 불상 돌탑 갖가지 석물들이 많았다. 습지원은 진양호 아래 만든 수중공원이다. 물속에는 창포와 노란 붓꽃 가득하다. 수련은 봉오리 맺었고, 수련 잎 밑에는 개구리가 헤엄친다. 물버들 드리운 아래로 뻗은 꼬부라진 화강암 징검다리는 마치 그림 같고, 그 사이로 헤엄치는 오리들은 동화같다. 푸른 산빛은 건너편 절벽을 싱그럽게 가리웠고, 물가를 거니는 것은 한가한 해오라비다. ' 진주가 이렇게 좋은 곳인 줄 예전엔 미쳐 몰랐어요.' 아내가 감탄을 하길래, '저 산그늘에 낚싯배 하나 띄우고 그냥 여기 와서 삽시다.' 맞장구를 쳐줬다.

 마침 청보리 피는 철이다. 습지원 산책길에는 뽕나무가 많다. 오디 따먹고 진양호 전망대 올라가니, 키큰 벚나무, 키 작은 차나무들이 보인다. 벚꽃은 봄철을 화사하게 만드는 꽃이요, 차꽃은 가을철을 청량하게 만드는 꽃이다. 그늘에 노란 인동초, 하얀 자스민꽃이 피어있다. 새삼 내고향에 이렇게 아름다운 꽃이 많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시가지 아파트 울타리를 덮은 야생 자스민꽃 향기는 퍽이나 인상 깊었다. 전망대 커피점에서 차를 시켜놓고 바라보는 호수는 일망무제다. 하늘은 흰구름을 품었고, 물결은 굴곡이 많은 섬들을 품었다. 연초록 잎 흔드는 바람은 그리도 싱그럽다. 바로 눈 앞의 섬에는 산책길이 있었다. 점점이 가로등이 서있다. 달 뜨는 밤, 물에 비친 등불엔 서리서리 낭만이 어리리라. 선경이 따로 없다. 아! 이곳이 나의 고향이다.  

 

 

가만히 속으로 진주의 옛노래를 불러보았다. 

 

삼천리 방방곡곡 아니간곳 없다만은
비봉산 품에 안고 남강에 꿈을 꾸는
내고향 진주만은 진정 못해라
유랑천리 십년만에 고향 찾아왔노라
마음을 채찍치며 달려왔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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