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기

정지용 생가 다녀와서

김현거사 2013. 7. 23. 08:40

   정지용 생가 다녀와서

 

 

 산 너머 남촌에는 어디 쯤에 봄이 왔을까. 3월에 날씨가 따뜻하다가 차다가 변덕이 동지섣달 팥죽 끓듯 하면 남쪽 봄이 궁금해진다. 그런데 마침 내가 사는 삼성동에서 테마여행이란 걸 간단다. 딸 덕에 부원군 된다는 말 있잖은가. 아침에 주민자치센타에서 정지용의 고향 옥천 가는 버스에 올랐다. 경부고속도로 지나가며 차창으로 보긴 많이 보았으나 옥천 방문은 이번이 처음 이다. 물이 정말 이름 그대로 옥처럼 아름다운 곳일까. 인솔자가 나눠준 커피 마시며, 소월과 한 시대 대표주자였던 정지용의 '향수'를 되뇌어 보았다. 그의 생가는 정말 넓은 들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즐대는 실개천이 휘돌아나가고, 얼룩백이 황소가 헤설피 금빛 게으런 울음을 우는 그런 평화로운 곳일까. 그런데 차는 대전서 산고개를 돌아돌아 대청호변 선다. 우선 부소담악(芙沼潭岳)이란 곳 구경하고 가란다. 

 

 

 하차하여 일견하니, 이곳은 거울같이 맑은 호수가 산자락을 적시며 절경 이루었고, 호수 가운데  한줄기 산 절벽은  물 속에 병풍을 펼치었다. 부(芙)는 연꽃이고, 소(沼)는 연못이니, 멀리서 보이는 풍경, 호수에 핀 연꽃이다. 일찌기 우암 송시열이 여기를 사랑하여 소금강이라 부를만 하다.

 

 

나무테크 조성해놓은 7백 미터 산책길 걸어보니, 소나무는 에메랄드 호수 위로 멋지게 용트림하며 늘어졌다.

 

 

 

이 멋떨어진 산에 아침 안개나 저녁 노을이 끼면 어떨까. 신선 하강의 운치 필연일 것이다. 한국의 아름다운 6대 하천에 선정된 곳이라 한다. 장수군에서 출발한 금강이 갈지자로 제멋대로 구부러져 흘러온다고 한다. 소백산맥과 노령산맥 중간에 자리잡은 이곳 옥천은, 과거 신라와 백제가 번갈아 주인이 된 격전지다. 월전리 서화천변은 백제 성왕이 신라군 매복에 걸려 죽음을 당한 곳이다. 어쨌던 당장 근처 추동리 마을에 방 한칸 얻어, 낚싯배 하나 띄우고 싶은 강한 충동을 느꼈다.  

 

 인솔자가 이렇게 일망무제 탁 터진 호수 먼저 보여준 것은 잘 한 일이다. 그 다음에 정지용 생가로 가는 순서 맘에 든다. 호수의 감흥 위에 시의 감흥을 포개자는 것이다. 버스 속 인원은 40여명 전부 여인이고, 남성은 딱 둘이다. 곁에 앉은 숙녀가 대추 토마토, 비스켙, 바나나를 자꾸 권한다. 그것도 맘에 든다. 임진란 때 의병장 조헌(趙憲) 선생이 향리에 돌아와 후학 가르킨 서당을 구경한 후, 옥천읍에서 생선국수와  도리뱅뱅이를 맛 보았다. 여기서 한 숙녀가 밤막걸리 두병을 사와서 섬섬옥수로 따라주었다. 명색이 문학기행 아닌가. 그것도 맘에 든다.

 

 정지용 시인의 생가 들린 감회는 약간 실망 이었다. 집은 어떤 모습이고, 앞의 동쪽 들판은 얼마나  넓고, 실개천은 어떤 소리로 지즐대며 흐르는가, 물빛은 옥빛일까가 상당히 궁금했는데, 막상 가보니, 깔끔히 복원해놓은 초가는 있었지만, '향수'의 작품 배경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지금 동네 가운데 비집고 앉은 시멘트 포장된 실개천이 어찌 빠르게 흐르며 지절대는 소리를 내겠는가. 낡고 지저분한 집들 많은 그 일대 어디에서 누른 황소가 헤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소리를 내겠는가. 다만 집이 실개천에 바짝 붙어있어 물소리는 잘 들릴만한 곳이다. 그래 '지즐대는' 이라는 표현이 나왔겠다는 짐작만 했다. 

 

 생가 옆에 정지용 기념관이 없었더라면 좀 허전할뻔 하였다. 기념관 앞에는 옥천 사람들의 긍지, 한복 차림 정지용의 동상이 우뚝 서 있다. 한국의 현대시는 지용에서 비롯되었다 한다. 소월과 동갑내기지만, 지용의 시가 한 100년 앞섰다고 유종호는 말했다고 한다. 1902년 생이고, 휘문고를 거쳤는데, 그때 선배인 홍사용 박종화 김윤식, 후배 이태준 등과 동인지를 만들었고, 휘문고보 교비생으로 교또의 도지샤(同志社) 대학 영문과에 입학하였다고 한다. 

 

 

여기서 정지용의 문학세계는 논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다만 그는 고어와 방언을 시어로 폭 넚게 활용하였고, 소월이 자아표출을 통하여 자기 감정을 과다노출한 감상적 낭만주의 경향이었다면, 지용은 대상의 뒤에 자신을 숨기고 대상을 정확하게 묘사하는 명징한 모더니즘 이미지즘 시 세계를 펼쳤다고 한다. 그래서 속으로 내가 소속된 남강문우회 시인 몇사람 성향을 한번 소월파 지용파로 구분해보기도 했다. 기념관에서 가장 반가웠던 것은, 유리 진열관 속에 진열된 <문장>지를 본 것이다. 정지용과 조지훈의 친필도 반가웠다. 정지용은 이 <문장>지 시 부문 추천위원으로 있으면서, 조지훈 박목월 등 청록파 시인을 등단시켰다고 한다. 

 

 

 기념관 한바퀴 돌아보고 나오다가 입구에서 나무의자에 앉아있는 노시인 한 분을 만났다. 검은 한복에  하얀 동정 깃, 동그란 안경, 검정고무신이 인상적 이다.  '안녕 하세요?' 나는 그 노인에게  인사를 드린 후, 나란히 곁에 앉아 기념촬영을 했다. 이 명징한 모더니즘의 작가 정지용이, 조지훈 선생의 은사 격이다. 그리고 대학 시절 내가 가장 존경한 은사 한 분이 조지훈(본명 조동탁)이다.

 

 

 기념관 돌아본 후 버스를 탄채 옥천공립보통학교(현 죽항초등학교)를 구경했다. 정지용이 여길 다녔고, 육영수 여사가 여기서 교편을 잡았다는 유서 깊은 학교다. 거리 이름은 '향수로' 몇 번지라고 적혀있었다. 잠시 육영수 여사의 생가도 둘러보았다. 남편도 딸도 일국의 대통령이 된 운명의 여인이 자란 집이다. 돌로 축대를 쌓은 연못에는 잎 진 연꽃 대궁이 몇개가 보였다. 생전에 연꽃처럼 국민들에게 사랑 받았던 고인 생각하다가 상경하였다.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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