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기

아름다운 만남

김현거사 2014. 3. 10. 07:11

이중환의 택리지 복거편에 보면, '사람이 살만한 곳을 고를 때는, 첫째로 지리가 좋아야 하고, 다음으로 그곳에서 얻을 경제적 이익 즉, 생리가 있어야 하며, 다음으로 그 고장의 인심이 좋아야 하고, 다음은 아름다운 산수가 있어야 한다.'고 하였다. 진주가 아마 이 네가지 요소를 두루 갖춘 곳일 것이다. 진주는 지리산과 남해 바다를 낀 지리, 넓은 신안동 도동같은 들판을 낀 생리,  남강과 촉석루의 산수가 있다. 그런데 진주의 가장 큰 장점은 어디일가. 바로 세번째 항목인 인심, 사람일 것이다. 진주 사람은 어떤 사람들일가. 나는 얼마 전 '배건너의 추억'이란 글에서 '배건너 소년들은 남강 은어처럼 민첩하고, 강변에 움 트는 버들처럼 싱싱하고, 칠암동 대밭 속에서 자라는 죽순처럼 부드럽고 거침없다'고 표현한 적 있다. '소년들은 바람을 사랑하고, 비를 사랑하고, 강을 사랑하고, 구름을 사랑하고, 숲속의 매미를 사랑하고, 남강의 버들피리를 사랑하고, 하늘의 종달새를 사랑한다'고 하였다. 소녀에게 바치려고 봄에는 망진산 절벽에 핀 꽃을 꺽으러 올라가고, 가을에는 밤늦도록 편지를 썻다'고 하였다.

 

  나는 내고향 사람을 이렇게 인식하고 있다. 내가 남강문학회서 만난 문학하는 분들, 국회의원, 장군, 대학교수, 공무원, 기업인 역시 이런 인식의 범주를 벗어나지 않는다. 나는 진주에 촉석루나 남강이 있음도 자랑스럽게 생각하지만, 가장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부분은 진주 사람이다. 진주 사람들의 성품과 낭만이다.

 

 이번 22일 그 실례를 하나 눈으로 보고 왔다. KTX가 도착하는 울산역 프랫홈에서다. 진주 금성학교 출신의 한 소녀와 소년의 만남이 있었다. 소년은 년매출 1조가 목표인 기업 회장이었다. 소녀는 매주 시를 1편씩 쓰는 여류였다. 아마 그 옛날 소년의 눈에 소녀는 빤짝이는 작은 루비나 사파이어처럼 아름답게 보였을 것이다. 일흔을 훌쩍  넘긴 소년의 손에는 장미꽃 꽃다발이 쥐어져 있었다. 기차표를 보내고 소녀를 초대한 것이다. 역의 프랫홈에서 한 노신사가 어릴 때 그 소녀 손에 꽃다발을 쥐어주는 그 장면은, 영화의 한장면 이었다.

 

 소년은 아마 그 소녀에게 평생 마음에 간직할 추억을 남겨주고 싶었을 것이다. 일분일초 시간이 아깝다면서도 소녀에게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식사를 대접했다. 그 사실을 생생히 증명할 사람이 곁에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다. 이유식 성종화 두 분이다. 두 분 다 김회장과 진주고 동기이다. 한국 문단의 원로가 된 서울의 이유식 평론가는 김회장과 57년도에 같이 진주고를 졸업한 후, 57년만의 첫대면 이었다고 한다. 그 분의 시와 인품이 마치 청노루같은 부산의 성종화 시인과 세 분 만남도 또다른 의미였을 것이다.

 

 마침 점심 시간이었다. 간 곳은 봉계란 곳이다. 울산광역시 안에 언양이란 곳이 있고, 언양 안에 봉계란 곳이 있다. 부산 울산의 식도락가라면 이곳이 어떤 곳인지 모두 안다. 버선발로 뛰어나와서 김회장께 인사한 그 집 사장은 어떤 부위가 가장 최고급인지 잘 안다. 고랑치고 가재 잡고, 원님 덕에 나팔 분다는 말 있다. 소년 소녀 당사자들이야 서로 할 말 많고, 감회 깊었으리라. 대동한 사람들은 그 덕에, 한 병에 백만원 하는 술과 입에 넣으면 살살 녹는 한국 최고의 한우를 제대로 즐길 수 있었다. 저녁은 기장의 명물 대게로 대접 받았다. 소녀는 하루 종일 품에 꼭 안고다니던 장미꽃다발을 옆에 놓더니, 소년에게 잔을 권하였다.

 

 김회장은 대기업을 일군 총수답게 거동이 신중하였다. 노련한 외모였다. 10만평 공장에서 자동차의 핵심부품인 트랜밋션 등을 생산하는데, 종업원 급료는 동업계에서 가장 높다고 한다. 그러나 역시 지리산 산삼 썩은 물 흘러온 남강에서 물장구치고 자란 분이다. 멋이 있었다. 이튿날 올라오는 기차 속의 소녀에게 문자메세지를 보냈다. '동행하신 분들께도 편안히 올라가시라고 안부 전해 주세요.'  두 분 때문에 아마 앞으로 진주에서 금성초등학교 줏가가 상종가를 치지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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