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기

고사심매도(高士尋梅圖)

김현거사 2012. 11. 24. 08:30

 

      고사심매도(高士尋梅圖)

 

 

 이른 봄에 학처럼 여윈 노선비가 지팡이 짚고 매화가 피었는가해서 눈밭을 헤매는 그림이 그처럼 인상 깊었던지 모른다. 겨울이 얼마나 삭막했으면 잔설(殘雪)의 계절에 서둘러 매화를 찾아 나섰을까?

 올해 심춘(尋春) 여행 동행은 서도생활을 해온 잠실의 이정수 장군 부부다. 3월3일 서울에서 승용차로 대전에 가서, 작년에 개통한 고속도로를 단숨에 달려 천리 길 진주에 도착하니, 서울은 겨울인데 여기는 훈풍이 얼굴을 간질인다. 사천으로해서 고성반도에 들어서니 가로변 붉은 동백꽃 너머가 한려수도다. 보리싹 푸른 들 끝에 시원히 펼쳐진 바다와 봄나물 캐는 아낙 모습이 정겹다. 길가에 차 세우니, 보라빛 꽃  야생화가 여기저기 봄빛을 비춘다. 한 치도 않되는 작은 풀에 종처럼 생긴 꽃 줄줄이 매단 것으로 보아, 정확한 이름은 모르나 꿀풀 아종(亞種) 이다. 단원(檀園) 김홍도(金弘道)가 이런 시를 남겼다.

 

              봄 물에 배를 띄워 가는대로 놓았으니
              물 아래 하늘이요 하늘 위가 물이로다
              이 중에 늙은 눈에 뵈는 꽃은 안개 속인가 하노라

 

 

 서울의 공해 속에 천금을 쌓아 무엇하리. 노안(老眼)이 와서 돗보기로 서류 보는 나이가 되어도 탈속(脫俗)을 모르면 이야기는 끝났다. 봄빛 보려고 차 몰고 여기 온 것을 어떻게 설명하리.
 통영에서 거제대교를 건너가 이정표를 보니, 북쪽 길은 성포로 해서 YS 생가가 있는 장목으로 가고, 남쪽 길은 청마(靑馬) 유치환 생가와 해금강을 거쳐 지세포로 간다. 우리가 누군데 YS 생가를 택하겠는가? IMF 국난(國難) 불러, 온 국민 거지로 만들뻔한 그 죄 이완용 형님 이거늘.
 청마는 경주 출신 이군 부인의 고등학교 교장선생님이다. 사람들은 여류시인 이영도씨와 청마의 부적절한 관계를 문제 삼지만, 나는 두 시인의 프라토닉 러브는, 미국 대통령 클린턴이 루윈스키 양과 벌인 섹스 스캔들과는 다르다고 생각한다.  
사십여년이 훌쩍 지나 우리는 고등학교 교과서에 실렸던 청마의 ‘깃발'을 기억에서 재구성하는데, 넷의 두뇌를 다 동원해야 함을 알았다. 
                            

            이것은 소리없는 아우성 
            저 푸른 해원(海原)을 향해 흔드는
            영원한 노스탈지어의 손수건.
            순정은 물결같이 바람에 나부끼고
            오로지 맑고 곧은 이념의 푯대 끝에
            애수(哀愁)는 백로처럼 날개를 펴다.
            아아 누구인가!
            이렇게 슬프고도 애달픈 마음을
            맨 처음 공중에 달 줄을 안 그는.

 

 

 청마 생가 들어가는 도로변 동백은 눈여겨 볼만한 것이다. 남도(南道) 동백은 잎이 기름 바른 듯 윤끼로 반질거린다. 꽃이 여인의 입술처럼 붉다. 복원해놓은 생가는 기역자 구성으로, 본채는 멀리 들녘을 내려다 보고있고, 사랑채 손바닥만한 툇마루는 그 밑에 달랑 놓인 요강 하나로 육십년 전 풍물을 연출하고 있다. 흙 부드러운 채마밭에는 마늘과 유채를 심어놓았고, 가지런한 돌담 밑 모란 몇 그루는 긴 남도의 봄볕에 졸고 있다.
 동행의 두 여인이 나란히 안내문을 읽고 있는 새에 밖에 나와 보니, 선 풍수 눈에 문장(文章)이 나온다는 직립(直立) 문필봉(文筆峰)은 보이지 않으나, 대시인 길러낸 곳답게, 일월(日月)은 화창히 빛나고, 삼태기 모양 둘러싼 산세는 연꽃처럼 부드럽다.
 동네 초입의 정자나무도 일품이다.
‘김교수! 저거 완벽한 분재다.’

 외치는 이군 말에
‘이 동네는 백만불 짜리 분재 심어놓고 사는 셈이구먼.’ 
맞장구쳤다. 즐그운 환담하며 달리노라니 점심 시간이다. 논을 쓰레질해놓듯 푸른 바다를 하얀 스티로폴로 덮은 양식장 옆에 서툰 글씨로 ‘굴 구이’라고 간판 붙인 식당이 있다. 많은 차들 파킹한 것으로 보아 음식맛은 좋은 모양이다. 홀 안에 들어가니, 몸매 관리라곤 해본적 없는듯, 팔뚝이 우리 허벅지같은 촌부(村婦)들이 남편으로 보이는 얼굴 시커먼 남자들과 시끌벅적 떠들고 있다. 우리는 만 천원 하는 굴구이 하나와 하나에 2천원 하는 굴 죽 네 개를 시켰다. 식당아줌마가 숯불 넣고, 손바닥만한 굴이 가득 담은 가로 세로 4-5십 센티 스테인레스 철판을 화덕에 올리고, 뚜껑을 덮어놓고 간다. 한참 뒤 마늘과 채소가 든 쟁반과 면장갑 네 개와 나무 자루 달린 칼 네 개 갖다주고는 금방 저쪽으로 간다.
‘소주는 필요 없어예?’

멀리서 묻고는 딴 데로 가버린다.
‘아줌마 이제 먹어도 됩니까?’

고함쳐 물으니,
‘좀 더 계시이소.익어야 굴 껍데기가 벌어짐니더.빨리 열모 껍데기가 잘 안벌어집니더’

멀리서 대답만 한다. 서비스는 이랬으나 맛은 장난이 아니다. 왼손에 면장갑 끼고 칼로 벌려 먹어보니, 씹히는 촉감 미감 모두 엑셀런트다. 텃밭에서 키운 배추 겉조리도 고소하다. 굴 껍질에 고인 짭조롬한 국물을 죽에 넣어 비비니, 낙산사 전복죽 맛을 무색케 한다. 탕!탕! 뒷자리 손님은 굴껍질이 벗겨지지않는지, 탁자에 두들기는 소리 요란하다.
‘이렇게 무식하게 많이 퍼담아 주는게 경상도식인 갑다’
‘굴 하나로만 배 채워보기 난생 처음이다’
‘서비스는 드세요가 아니라 쳐묵어라다’
‘일식집에서 이 정도 먹으려면 10만원은 나온다.’
희희낙락 소감 피력하며 맛 음미하다가, 먹다 남은 굴은 비닐봉지에 싸가지고 나왔다. 이런 엉뚱한 음식점 만나는 것도 여행의 한 즐거움이다. 

 이군은 장군 출신답게 독도법(讀圖法)에 밝다. 지도를 보며 거리와 시간을 대충 예측하니 나까지 편하다. 저구에서 비포장 길로 조금 가니 홍포가 나온다. 바다는 푸른 비단인양 부드럽기 그지없고, 깍아지른 바위 절벽 아래 하얀 포말은 마음까지 시원하다. 암벽은 동백과 천년 노송이 어울어졌다. 멀리 욕지도와 매물도가 보이고, 눈 아래 병대도 크고 작은 섬들 모습이 수반 위 돌처럼 준수하다.
‘카메라 어딨노?’
바쁘게 카메라 찾는 품은 맘에 든 표시다.
‘정말 잘 왔다.우리나라에 이런 곳도 있었나?’
‘나폴리나 산타루치아와 비교해 어떠냐?’
‘차로 미국 40여개 주도 다녀봤고, 나폴리 모나코같은 지중해 절경(絶景) 다녀봤지만, 여기도 좋다’
‘나폴리는 절벽 사이로 길을 낸 동네들이 멋 있더라’
‘창가에 걸어둔 꽃화분도 인상적이고’
홍포는 언덕 위에 서너 가구가 사는 한적한 곳이다. 여차는 노래방과 콘도식 대형 민박집이 두 개나 있다. 영화 ‘은행나무 침대’의 크라이막스 장면에서 미단공주의 정인 (情人)이 처형된 애달픈 그 바다가 여차다. 파도에 씻긴 반질반질한 몽돌들이 아름답다.
‘여보 단지에 묻어둔 돈 있지? 여기다 호텔 하나 세우자’
경치 좋다는 표현을 이군은 이렇게 한다.
‘여보 우리도 통장 털자. 여기서 이장군하고 만년에 바둑이나 두며 살란다’
여행은 죽이 맞아야 흥이 더 난다.

 장승포에 닿으니, 7척 거한이 부두에서 우릴 기다리고 있다. 부산서 온 강사장이다. 섬에서 섬으로 가는 배가 있다. 고려호가 승선 인원 삼십명을 양쪽 뱃전 때리는 파고(波高) 3미터의 물결과 뒤흔드는 바람을 뚫고, 우릴 지심도(只心島)에 내려준다. 지심도는 하늘에서 내려보면 마음 심(心)자 같다고 붙여진 이름이다. 면적은 길이 2킬로 폭 5백 미터, 약 10만 평 정도 섬이다. 14 가구가 주민등록 되어 밀감과 민박으로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 일제 때 해군기지였다고 한다. 수령 백년도 넘는 원시 동백림과 희귀종인 거제 풍란을 비롯, 비파나무 후박나무 소나무 대나무가 있다. 섬 북쪽에는 어른 둘이 팔을 벌려야 겨우 껴안을 수 있는 거대한 동백도 몇그루 있다고 한다.
 하얀 삽살개가 뱃머리에 나와 손님을 반기더니, 한낮에도 그늘진 동백숲 터널로 사람들이 민박집으로 올라가자 안내라도 하듯 꼬리 흔들며 앞서간다. 떨어진 동백꽃 밟고 올라가 김선장 집에 짐 맡기고 어둠 오기 전에 섬 구경 나갔다. 가을에 밀감나무 하얀 꽃이 피어 겨우내 노란 밀감 향기롭게 익고, 11월 부터 4월까지 동백꽃 피는 이 섬에 나는 세번째 왔다. ‘그대는 아는가 저 남쪽 바다를? 오랜지 향기는 바람에 날리고’  싯구절도 외어보았다. 이웃 외도(外島)는 사람이 가꾼 낙원이요, 이곳 지심도는 자연이 가꾼 파라다이스다. 상춘곡(賞春曲)의 정극인(丁克仁) 선생 생각나는 지심도다. 

 이보소 이웃들아 산수(山水) 구경 가자스랴.
 답청(踏靑)일란 오늘 하고,욕기(浴沂)는 내일 하세.
 아침에 채산(採山)하고 나조에 조수(釣水) 하세. 
 갓 괴어 익은 술 갈건(葛巾)으로 받아놓고,
 꽃나무 가지 꺽어 수 놓고 먹으리라.
 화풍(和風)이 건 듯 불어 녹수(綠水)를 건너오니,
 청향(淸香)은 잔에 지고, 낙홍(落紅)은 옷에 진다.
 봉두(峰頭)에 급히 올라 구름 속에 앉아보니,
 천촌만락(千村萬落)이 곳곳이 버려있네.
 연하(煙霞)일휘(日輝)는 금수(錦繡)를 재폈는듯.
 엇그제 검은 들이 봄빛도 유여할 사.
 공명(功名)도 날 괴우고 부귀도 날 괴우니,
 청풍명월(淸風明月) 외에 어떤 벗이 있사올꼬?


민박집 뒤의 매화나무 수형을 감탄할 줄 아는 이군이 상춘(賞春) 친구로 적격이다. 같이 잘 왔다. 우리는 수확 끝난 밀감 밭 사이로 난 길을 따라 섬 서쪽의 벼랑으로 갔다.



 바위 위에 아열대 식물군과 잔디가 자라는 작은 평지가 있다. 여름에 야생화 만발하는 곳이다. 이 절벽에 제주 일출봉 벼랑에 피던 그 순결한 황금빛 원추리꽃이 핀다. 풍란이 자라는 가파른 절벽 밑에 그렇게 바람이 부는 데도 감성돔 잡는 꾼 몇이 질기게 바위에 붙어있다.

 그러나 날씨가 춥고 바람이 심해서, 지나가는 선박을 감시하기 위해 일본군이 나바론처럼 구축한 포 진지 옆에 있는 밭에서 방풍(防風)을 캐고 금방 돌아왔다. 밤에만 전기불 들어오는 선장님 집에서 저녁 먹으며, 남자들은 풍(風)을 예방하고 약독(藥毒)을 푼다는 방풍을 술안주해서 소주를 먹었고, 여인들은 군불 뜨껀뜨껀한 윗 채 황토방에서 노독을 풀었다.
인생은 여행과 같다.돌아가면 여행은 잊혀진다. 두사람은 중고등학교 친구인데, 이순(耳順)을 앞두고 있다. 남가일몽(南柯一夢)도 끝나가고 있다.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니, 바람은 개고 햇볕은 화창하다. 몇년 전 모 방송사에서 ‘팔색조’란 드라마를 촬영했고, 조류학자가 10여 차례 다녀간 지심도다. 지심도는 동백과 후박 비파 대나무 열매를 즐기는 새들만 모이는 곳이라, 새소리가  정말 청아하다. 비파는 맛이 시큼하나 신선이 즐기는 과일이요, 죽실(竹實)은 봉황이 먹는 열매다. 동백과 후박은 팔색조 흑비둘기가 좋아하는 열매다. 나무도 그렇고 새도 그렇다. 속기(俗氣)를 벗어난 점이 좋다. 울창한 동백숲 사이를 날아다니는 새 울음이 신선의 음악이다. 


 밤늦게 담소 나누고 강사장은 여차를 구경하러 첫 배로 떠났다. 부산서 일부러 와서 하루밤 같이 자고 떠난 것이다. 그가 굴원(屈原)이나 한고조(漢高祖)가 아닌들 어떠랴? 필부(匹夫)의 사귐도 이만하면 된 것이다.
 아침 산책은 땅을 점점히 수놓은 붉은 동백 낙화(洛花)를 밟았다. 표토의 낙엽층이 두꺼워 길은 카폐트 같다. 발에 푹신푹신한 촉감을 준다. 굵은 맹종죽 대밭 사이로 난 길로 세 가구가 살고있는 섬 북쪽으로 갔다. 맹종죽은 죽순 굵기가 종아리만하다고 한다. 죽순 무침 하면, 철마다 여기서 잡히는 다종(多種)의 생선회 와의 조화가 기막힐 것이다. 동백은 차나무와 사촌이다. 대밭 속에 차나무 심으면 죽로차(竹露茶)를 생산할 수 있다. 죽림이니 옹달샘 수질도 최상일 것이다. 주민등록 여기 옮기고 사슴 몇 마리 키우며 살 수 없을까. 정다산(丁茶山) 처럼 다도(茶道) 즐기며 살 수 없을까? 마침 일제 때 지은 일본식 기와가 아직도 깔끔한 목조 건물을 보며, 그런 생각을 하였다. 
 북동쪽 해안이 지심도 최고의 비경(秘境)이다. 하늘 가리는 낙락장송(落落長松) 숲 아래는 발목 파묻히도록 쌓인 부엽토에 몇가닥 들어온 빛이 동백 싹을 틔우고 있다. 해안 절벽 위로 난 아슬아슬한 좁은 길은 춘난같은 푸른 풀로 덮혀있다. 아열대 상록수림 사이로 뻗은 길 따라가니, 발 아래 바위는 푸른 파도를 훔뻑 뒤집어썼다가 물이 빠지면 수많은 폭포를 연출한다. 맑은 바람 쉴새없이 불어오고, 웅장한 파도소리 끊임없이 들린다. 도대채 말 못하는 바위가 상록수들과 그렇게 멋들어지게 어울어지면서 파도를 껴안고 그리 완벽한 아름다움을 만들 수 있더란 말인가? 인간의 어떤 이름난 천재가 이처럼 완벽한 조경(造景)을 만들 수 있더란 말인가?



 돌아오는 길에 인가(人家) 뒤에서 수줍은 미인같은 매화를 만났다. 무심코 지나갈뻔 하다가 백설꽃 핀 매화밭에 들어가니, 매실 딸려고 낮게 키운 매화 가지가 얼굴에 닿는다. 눈 높이 매화꽃이 그리 청초하다. 꽃바침이 녹색인 청매(靑梅)는 소녀같고, 꽃바침 붉은 홍매(紅梅)는 여인같다. 매향(梅香) 
진동하는 향기가 아까워 몇가지 꽃을 꺾었다. 술잔에 띄워볼 생각이었다. 한가지씩 오십대 두 선녀 옷깃에도 꽂아주었다. 봄바람은 두 선녀의 옷깃에 매화 향기 날리고, 우리는 향기를 따라갔다.

 장승포로 나가는 배를 기다리던 지심포 부두는 학꽁치 천지다. 댓가지로 네 귀퉁이 묶은 모기장같은 것을 바다에서 올리자, 스무 마리씩 학꽁치가 담겨온다. 사람들은 이상한 그물이 학꽁치를 막 퍼담아 올리니까, 낚시는 다 집어치운다. 다투어 초장과 소주 내놓고, 낮 선 사람끼리 서로 권해가며 판을 벌린다. 태초의 에덴동산 이후 처음으로 네 것 내 것 없이 벌린 흐믓한 파티다. 나와 이군은 학꽁치 세점 씩 얻어먹었다.
 지심도를 통채로 사서 필리핀의 수상(水上) 호텔처럼 만들면 어떨까. 민박집들을 운치있는 초옥(草屋)이나 방갈로로 개조하면 될 것이다. 죽순 녹차 매실 비파 방풍 밀감 수확하는 일도 관광객 유치에 좋은 이벤트다. 훈제 생선도 만들고, 진주(眞珠) 양식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어이 김교수,내가 여차로 가다가 산채로 장끼를 잡았다.’
강사장한테서 핸드폰이 왔다.
‘장끼를?’
‘응! 여차 가다가 도로에서 잡았다’
‘혹시 그 꿩 눈이 봉사더냐?’
‘봉사 아니다. 깜깜한 새벽에 자동차 헷트라이트에 눈이 부셔 꼼짝 못하는 걸 잡았다. 부두에 맡겨놓았으니, 니들 선물 가져가거라’
장승포 부두에 닿으니, 장끼가 멸치박스에 들어있다.  
‘어쩌면 이렇게 잘생긴 꿩을 잡았을까요?’
숨쉬라고 뚫어놓은 구멍으로 안을 들여다보며 두 여인이 번갈아 감탄사를 발한다. 검붉은 털빛은 황홀하도록 곱고, 움직이는 몸짓도 민첩하다.

 통영에서 고성 나가다가 잠시 쉬려고 들른 카폐가 또 맘에 든다. 카폐는 하얀 선박 모양이다. 곁은 푸른 바다다. 여인들은 커피 시키고 남자들은 쟈스민 차를 시켰다.
‘카폐가 너무 아름다워요’
‘마치 배를 타고 바다 위에 뜬 기분이예요.’
두 여인의 감탄이 나온다.
‘정말 김교수는 차만 대면 멋진 곳에만 대는구나!’
‘굴구이부터 시작해서리?’
‘여차도 얼마나 좋았어요?’
‘지심도 동백하고 해안 풍경은?’
‘부두의 학꽁치는?’
‘거기다 강사장 꿩 선물.’
‘이번 여행은 완전히 이벤트다’ 

 사천으로 가서 남해고속도로로 하동에 닿았다. 섬진강 강물은 하얀 백사와 푸른 대숲에 비쳐 더 맑다. 산이 높아 강은 더욱 평탄하게 흐르는가? 강 양안(兩岸)은 매화꽃에 덮혀있고, 흐르는 강변에 몽오리 맺힌 배밭이 꿈결처럼 뻗어있다. 외로운 물새 나르는 모습은 한 폭 산수화다

 

        

 처음에는 지리산 온천에서 목욕하고 상경하자고 의견을 모았다. 그러나 우리는 화개장터 산채비빔밥을 먹다가 계획을 수정했다. 나는 지리산 밑 형제봉이라고만 위치 밝힌 사람이 인터넷에 올린 ‘녹차를 만드는 사람’이란 홈페이지에 자주 간다. 향토색 물씬 풍기는 홈페이지다. 감 중에서 제일 큰 대포감 사진을 칼라로 올리고, 자기들은 겨울 내내 독에 넣고 먹는다고 설명을 붙인 것, 집 주변 돌밭에 심어놓고 비료도 물도 주지않고 자연 그대로 키운다는 야생차 소개를 한 것, 국화 중에 향이 제일 좋은 감국차 소개한 것이 무척 호감 갔던 곳이다. 근처에 소규모 다원(茶園)과 제다공장(製茶工場)도 많다고 한다.  평사리는 풍수(風水)로 평사낙안(平沙落雁)이라니, 백사장에 기러기가 날아내리는 형국이다. 유명한 길지(吉地)이니 한번 볼만한 곳이다. 그런데 일은 묘하다. 주소와 전화번호도 없고 어딘지도 모르는데, 혹시나해서 식당 아줌마에게 형제봉을 아느냐고 물었더니, 자기 집이 바로 형제봉 밑이란다. 할아버지가 다원(茶園)을 하는데, 거기가 악양이란다. 승용차로 15분이면 가고, 소설가 박경리씨의‘토지’의 무대가 된 최참판댁이 있다는데 어쩔 것인가.
‘그렇다면 한번 숙녀분들 의견을 물어봅시다. 온천욕으로 모실까요? 최참판댁으로 모실까요?’
‘길상이와 최서희가 살던 집을 보고싶어요’

 최참판댁은 실망이었다. 수십 칸 가옥은, 해방 전 양반집같은 푸른 이끼 덮힌 골기와나 빛 바랜 현판이 있는 그런 고풍이 없다. 눈에 거슬리는 것이 까만 인조기와다. 지방 업자가 망쳐놓은 듯 하다. 황토에 초가 얹은 후원 별당만 옛 멋이 조금 보인다.



집을 둘러보고 나오면서,

'진주여고 출신 박경리씨가 이런 집 보고 퍽 실망했겄다’ 

이야기 나누다 차 한 대 겨우 비켜갈만한 논 사이 좁은 길에서 그랜져 두 대가 만났다. 그런데 스쳐가던 차에 탄 젊잖은 노부인이 뜻밖에 날 보고 반색을 한다. 네 살 때 걸프랜드, 심화자이다. 함께 대작대기 말을 함께 타던 그는 이화여대를 나와 서울대 출신 선배와 결혼했다. 이런 죽마고우를 백발에 만난 것도 완전 이벤트였다. 

아름다운 바다 본 김에, 지리산도 보여주고 싶었다. 그래서 화엄사 쪽으로 가서 노고단을 넘었다.
지리산은 경남 산청과 하동, 전북 남원과 전남 구례를 밟고 선 웅장한 산이다. 1507미터 높이의 노고단은, 도가(道家)에서는 ‘할미단’으로 부르며, 국모신 (國母神)인 선도선녀(仙挑仙女)가 산다고 믿는다. 산상(山上) 휴게소에서 웅대한 산용(山容)을 구경하고 함양으로 내려가는 중이었다. 노을은 어둠으로 바뀌고 있었다.
‘교수님 부탁 하나 드려도 되겠읍니까?’
이군 부인이 말을 건넨다.
‘말씀 하십시오’
‘아까 그 꿩 저 주시겠습니까?’
‘네에? 그러시지요’
‘여기 방생해주고 가도 되나요?’
‘아! 좋습니다. 그처럼 아름다운 제안에 어찌 반대하겠읍니까.’
우리는 산세 안온한 곳을 골라서 차를 세우고 꿩을 날려보냈다.
‘지리산 선녀(仙女)님이 거제 바다 정령(精靈)이 보낸 꿩을 보면 퍽 좋아하실꺼야.’
‘그 장끼 너무 잘 생겨서 지리산 과부 까투리들이 환장할꺼다’
‘방생해주니 기분이 이렇게 후련쿠나.'
 구름 위 학을 타고 온듯, 밤 11시에 서울 닿았으나, 그날 우리 사선(四仙)은 전혀 피곤치 않았다.  

(200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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