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가에 서서 황급히 몇마디 나누다,
벌에 쏘인놈처럼 허겁지겁 그렇게 헤어져 오면서
과연 이렇게 살아가는 내가 잘사는 것 인지를 생각해보게 되더이다.
이제는 좀 여유롭고 좀은 편안해 보이는 그런 삶을 살아야 할 것인데도 잘 못 보내버린
시간에 대한 보상 심리일런지 .
나는 그렇게 아직도 다른 사람들이 당황해 할 삶을 살아가는구나 하고.
고등학교 졸업후 처음만나는 것이 아닌가하면서 부산에서 오랫만에 거사 얼굴을
보고 얼핏 생각난 말이 鳳이라는 말이었소
마음대로자란 반백의수염이랑 하얀 머릿칼이 더 없는 여유로움으로 세월을 즐기는
그 한번도 본 일 없는 鳳凰이 왜 떠올랐는지는 알 수 없지만 아마도 無爲自然이
어떤 경지인지를 가르쳐 주는듯한 느낌이었소.
그래서 봉황이라는 단어가 출현하는 문장을 찾아보니 마침 (시경,대아)의
(생민지십)편에 봉황이 들어가는 문구가 나옵니다
시경 /대아/생민지십/권아(卷阿)
鳳凰鳴矣니 于彼高岡이로다
梧桐生矣니 于彼朝陽이로다
菶菶萋萋하니 雝雝喈喈로다
봉황이 우니 높은 뫼에서하고 오동나무가 자라니 저
아침 해 뜨는 동산이로다 오동나무가 무성하니
봉황의 울음소리가 화 하도다.
이 아래의 주석에
山之東曰 朝陽이라 鳳凰之性은 非梧桐不棲하고 非竹 實불食이라 봉봉처처는
오동이자라기를 무성히 하는 것이요
옹옹 개개는 봉황이 울기를 화하는 것이다라고 했 다 .
이글에서 봉황이 깃드는 곳은 오동나무인 것을 알고 다시
桐자가 들어가는 문장을 찾아 보니 맹자의 (告子上)편에 나옵니다.
맹자; 고자상;13장
“ 孟子曰 拱杷之桐梓를.......
공과 파의 오동나무와 가래나무를 사람들이
만일 성장 시키고자한다면 모두 이것을 기르는 방법을 아는데,
자신에 이르러서는 몸을 기르는 방법을 알지 못하니 ,
어찌 몸 을 사랑함이 오동나무와 가래나무만 못해서 이겠는가,
다만 생각하지 않음이 심한 것이다.“
이 글을 보면 桐자가 梓자가 연합하여단어를 이루고 있어
거사의 호를 桐梓로 정하였던 것 이고 桐과 梓는
모두 예부터 귀한 재목으로 악기나 고급가구 또는
의식용 목 재로 쓰인 고급 원자재라 세상을 이루는 격조 높은 밑바탕이 되고
있음을 의심치 안는 내 거사에 대한 믿음이고
또 桐梓는 맹자에서누구나 기르고자하는 나무라고 하여
세상을 두루 포용하는 거사의 성품과 열망을 모두 담고있다고 생각 했소.
生處士 死居士라고 살아생전에는 거사로 죽어서는 처사로 불리는 것은 그냥 白頭의
호족쯤의 호칭인데 어쩌다 뒤섞여 죽은 놈 산 놈 구분도 없이 쓰이는 그 거사라는 칭호는 ,
적어도 선생안에 올라야 할 사람에게는 맞는 칭호가 아니니 그만 쓰시고
이제는 바꾸어 보십시오 桐梓선생
사족한마디 ; 1, 가래나무는 쌍떡잎식물 가래나무목 가래나 무과낙엽 활엽 교목
한국 중국 아무르 우수 리지역에 자생하는 높이20미터의교목
楸子木이라고도 하며 열매를 추자라 한다.
2, 아드님께 교육을 하시오 먼 훗날 위패는
桐梓先生 이라고 써야한다는 것을.
역시 무호스님 하종인은 말은 옛날 그대로 막 하는 것 같아도,이 글도 어디선가
깊이 공부한 냄새가 풍겨오는듯....불교로 유유상종이니 자주 만나세.
칠십의나이 아닐거라 생각케 하는 카랑한 육성은 옛날과 진배없데...
늦어 만난 친구의호까지 작명해 주심이 가히 깊은 마음이오 .
지는해 아쉬워 말고 어서 신선같은 그 桐梓와 한번 조우합시다 .
桐梓! 두 사람의 인연을 부러워하며 큰 소리로 불러보고싶다
동재선생, 우정어린 충고를 경청하여 "거사"라는 칭호는 이젠 거두시구려.
잘 보관하고 있오, 박 홍식이 생각이 나는구려, 민초들 잘 이끌어 주시고,
다음 한 번 만납시다, 건강하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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