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에 관한 글

봄이 오면 산도 여심에 젖는가.

김현거사 2011. 4. 18. 14:40

    봄에는 산도 여심에 젖는가

 

 봄이 오면 산도 여심에 젖는가. 경부고속도로 타고 지리산으로 내려가며 그런 생각을 하였다.진달래는 여인의 입술 물들인 루즈빛이고,개나리는 손톱 물들인 금빛 매니큐어 빛이고,산벚꽃은 뺨에 물들인 분빛이다.암벽에서 허공에 뻗은 진달래,녹음진 숲 속에 홀로 핀 진달래 보면 여인의 루즈빛 연상되고,산 언덕 노란 황금빛 개나리 보면 여인의 길다란 손 손톱에 물들인 금빛 매니큐어 생각났다.푸른 물 위에 하늘하늘 떨어지는 벚꽃은 콤팩트에서 풍기는 파우더 냄새 나는듯 하다.산은 다투어 현란한 봄화장을 한듯 하다.만약 산이 무심하다면 어찌 저리 곱게 화장을 했으랴.봄마다 산은 여심에 젖는 것이 분명하다.그 낌새를 직통으로 알아채려야 정말 산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산의 봉긋봉긋한 젖가슴을 유심히 봐야한다고 생각한다. 절벽을 이루어 맑은 계곡물을 밟는 산의 각선미를 유심히 봐야한다고 생각한다.산의 늘씬한 허리,아련한 능선을 유심히 하나하나 뚫어지게 바라봐야 한다고 생각한다.수양버들에게 연록색 저고리 입혀 산을 헤매게 하고,느티나무에게 베이지색 트렌치코트를  갈아입히는 산의 계절 감각에 감탄을 토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가끔 산을 껴안고 싶은 생각이 들고,산에게 포근히 껴안기고싶은 충동을 느껴야 한다고 생각한다.그리하여 마침내 깊은 산속에서 산의 정령인 마고선녀를 은근히 혼자 만나고 싶은 생각까지 먹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당신은 어쩌면 이렇게 깜찍하고 상큼한 빛을 알고 계십니까?나는 정말이지 진심으로 당신에게 반했습니다.'는 고백을 해야 직성이 풀리겠다 싶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산벚꽃 바람에 날리어 어깨 위에 떨어지는 숲속을 산의 여신과 단둘이 거닐고 싶은 엉뚱한 생각까지 가야 단언컨대 산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마침 지리산 등산로 입구 중산리에 시카코서 귀향한 친구가 있다.들어가는 계곡길은 산벚꽃 곱게 피어있었다.벚꽃은 굽이굽이 물위에 날리고 있고,푸른 카페트마냥 싱그러운 봄풀은 언덕에 보라빛 제비꽃,노란 민들레꽃 피우고 있었다. 그의 초라한 오두막은 화장실이 푸세식이라 불편하기 그지 없지만,방은 뚫어진 벽지를 말끔히 도배 해놓았다.무릉도원의 집은 작을수록 제격이라는 생각도 들었다.낮엔 이리저리 산을 거닐고,저녁엔 시래기국 산채나물로 배를 채우고, 쌀알 둥둥 뜬 동동주 몇잔 마셨다.산속 사람은 조촐한 채식이 알맞다.밤 깊어 초등학교 교실에 있던 난로 장작불이 참 기특하게도 잘도 타올랐다.나무는 정결한 산속에서 자란 결고은 소나무 등걸이다.하도 향기가 좋아 산속에서 향을 피우는 기분이었다.그 불로 구운 고구마는 맛이 유달랐다.

 

 '산에 사는 사람은 겸손한 사람이 첫째다.''돈 욕심을 말끔히 버려야 한다''검소해야 한다' 대략 이런 이야기 나누었다. 속세의 먼지 묻은 적은 욕심 버리고 산속의 청정한 큰 것을 얻어야 한다는 결론이었다.버리면 얻는다는 것은 만고의 진리이다. 맑은 공기 맑은 물을 돈으로 계산할 것인가. 자정 넘어 등불 끄고 담요 덮고 소파에 누웠으니,밖은 보름달이 혼자 산속을 헤매고 있다.나도 그 달처럼 산 속을 헤매고 싶었다.이번에 지리산에 오면서 아무에게도 연락 취하지 않은 것은 참 잘한 일이다. 사람이 많았으면 이 봄 그 아름다운 산의 여심을 절감하지 못했을 것이고, 그 밤 산죽을 스치는 고요한 바람소리를 그렇게 싫컿 듣지 못했을 것이다.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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