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소리
우리나라 범종 중에 가장 소리가 아름다운 종이 상원사 동종(銅鐘)과 경주 에밀레종이다. 상원사 동종은 맑고 은은한 천상(天上)의 소리고, 에밀레종은 ‘에밀레 에에에~’사바의 슬품이 끊어질 듯 끊기지않고 한없이 이어지는 이승의 음이다. 두 종 모두 희대의 천재가 만든 신품(神品)이다.
새벽에 일어나 불교방송 켜놓고 향을 피우고 종을 친다. 우리집 종은 모양은 에밀레종 같고, 소리는 상원사 종 같고, 크기는 10쎈티 쯤 된다. 30년 전에 조계사에서 산 것인데, 종신(鐘身)에 푸른 녹이 가득하고 상서로운 구름 속에 합장한 비천상(飛天像)이 나르고 있다.
절에서는 생사윤회 헤매는 중생 모두 이고득락(離苦得樂)하시라며 종을 친다고 한다. 지옥도(地獄途) 아귀도(餓鬼途) 축생도(畜生途)에서 헤매는 중생들이 고를 여의고 낙을 얻으라고 친다고 한다. 나 자신 지옥도 아귀도 헤매는 중생이니, 남을 위해서 치는 자비의 타종은 아니다.
그러나 새벽에 일어나 죽비로 어깨 두드리며 먼저 나를 깨우고 종을 치면, 종소리가 혈관까지 들어가 속진을 씻어주고,영혼에 스미는 느낌이다. 영육(靈肉)이 종소리에 청신해진다. 종소리가 그리 아름다울 수 없다.
종 뒤에 관음죽 심은 큰 화분이 있다. 관음죽 아래는 홍옥(紅玉)으로 조각된 포대화상이 앉아 계신다. 한가닥 향불은 대밭에 안개처럼 고요히 피어오른다. 숲이슬 머금은 진달래 적시고, 흐르는 시냇물과 구름 적시는 그윽한 산사의 범종 소리는 아니지만, 도심 속에서 대밭 속에 앉아계신 선인을 보며, 한줄기 향연기 위에 종소리를 얹는 것으로 나는 만족한다.
년초에 엎드려 절함이 건강에 좋다고하여 108참회를 시작하였다. 제사보다 젯밥에 신경 쓴 셈이다. 나이 들면 대개 척추에 이상이 온다. 매번 108번 허리 굽히고 엎드려 절하는 것이야말로 허리에 신통한 묘약이라고 한다. 그래 절을 시작해보니 서른번 쯤 절해도 온몸이 따뜻해지고 백을 넘기면 심신이 그리 개운할 수 없다.
기도는 마음을 청정케 한다. 엎드려 절하며 마음도 낮추고 겸허해지기 염원한다. 하심(下心)토록 참회한다. ‘법의 경계에 들어서면 늙고 죽는 것이 없고’(無老死), ‘생사나 열반이 항상 조화를 이룬다’(生死涅槃常共和)는 반야심경(般若心經)을 외운다. 이 구절은 엄청난 실존적 초극(超克)을 의미한다. 현대 철학보다 더 심오한 철리를 말하고 있다. 생사(生死)가 여일(如一)하여 서로 조화(調和)되는 경지란 어디일까? 얼마나한 염원과 수련과 내공이 필요한 것일까?
그런데 묘한 일이다. 내가 종 치고 절하는 그 시간, 우리집 욕셔테리아는 마치 산신도(山神圖)의 호랑이처럼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며 얌전히 내 옆에 엎드려 있다. 간혹 머리를 내 무릅에 비벼대기도 하고, 머루알처럼 맑은 눈으로 빤히 나를 지켜보기도 한다. 나는 절을 끝내고 신선마냥 호랑이 거느리고 여명의 뜰을 거닌다. 뜰에 이제 막 수선화가 피어오르고 있다. 소나무에 아침안개가 걸려있다. 아침이 그리 청량할 수 없다.
종소리
우리나라 범종 중에 가장 소리가 아름다운 종이 상원사 동종(銅鐘)과 경주 에밀레종이다. 상원사 동종은 맑고 은은한 천상(天上)의 소리고, 에밀레종은 ‘에밀레 에에에~’사바의 슬품이 끊어질 듯 끊기지않고 한없이 이어지는 이승의 음이다. 두 종 모두 희대의 천재가 만든 신품(神品)이다.
새벽에 일어나 불교방송 켜놓고 향을 피우고 종을 친다. 우리집 종은 모양은 에밀레종 같고, 소리는 상원사 종 같고, 크기는 10쎈티 쯤 된다. 30년 전에 조계사에서 산 것인데, 종신(鐘身)에 푸른 녹이 가득하고 상서로운 구름 속에 합장한 비천상(飛天像)이 나르고 있다.
절에서는 생사윤회 헤매는 중생 모두 이고득락(離苦得樂)하시라며 종을 친다고 한다. 지옥도(地獄途) 아귀도(餓鬼途) 축생도(畜生途)에서 헤매는 중생들이 고를 여의고 낙을 얻으라고 친다고 한다. 나 자신 지옥도 아귀도 헤매는 중생이니, 남을 위해서 치는 자비의 타종은 아니다.
그러나 새벽에 일어나 죽비로 어깨 두드리며 먼저 나를 깨우고 종을 치면, 종소리가 혈관까지 들어가 속진을 씻어주고,영혼에 스미는 느낌이다. 영육(靈肉)이 종소리에 청신해진다. 종소리가 그리 아름다울 수 없다.
종 뒤에 관음죽 심은 큰 화분이 있다. 관음죽 아래는 홍옥(紅玉)으로 조각된 포대화상이 앉아 계신다. 한가닥 향불은 대밭에 안개처럼 고요히 피어오른다. 숲이슬 머금은 진달래 적시고, 흐르는 시냇물과 구름 적시는 그윽한 산사의 범종 소리는 아니지만, 도심 속에서 대밭 속에 앉아계신 선인을 보며, 한줄기 향연기 위에 종소리를 얹는 것으로 나는 만족한다.
년초에 엎드려 절함이 건강에 좋다고하여 108참회를 시작하였다. 제사보다 젯밥에 신경 쓴 셈이다. 나이 들면 대개 척추에 이상이 온다. 매번 108번 허리 굽히고 엎드려 절하는 것이야말로 허리에 신통한 묘약이라고 한다. 그래 절을 시작해보니 서른번 쯤 절해도 온몸이 따뜻해지고 백을 넘기면 심신이 그리 개운할 수 없다.
기도는 마음을 청정케 한다. 엎드려 절하며 마음도 낮추고 겸허해지기 염원한다. 하심(下心)토록 참회한다. ‘법의 경계에 들어서면 늙고 죽는 것이 없고’(無老死), ‘생사나 열반이 항상 조화를 이룬다’(生死涅槃常共和)는 반야심경(般若心經)을 외운다. 이 구절은 엄청난 실존적 초극(超克)을 의미한다. 현대 철학보다 더 심오한 철리를 말하고 있다. 생사(生死)가 여일(如一)하여 서로 조화(調和)되는 경지란 어디일까? 얼마나한 염원과 수련과 내공이 필요한 것일까?
그런데 묘한 일이다. 내가 종 치고 절하는 그 시간, 우리집 욕셔테리아는 마치 산신도(山神圖)의 호랑이처럼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며 얌전히 내 옆에 엎드려 있다. 간혹 머리를 내 무릅에 비벼대기도 하고, 머루알처럼 맑은 눈으로 빤히 나를 지켜보기도 한다. 나는 절을 끝내고 신선마냥 호랑이 거느리고 여명의 뜰을 거닌다. 뜰에 이제 막 수선화가 피어오르고 있다. 소나무에 아침안개가 걸려있다. 아침이 그리 청량할 수 없다.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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