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강문우회

남강문우회 진주모임 다녀와서

김현거사 2011. 10. 6. 20:44

  <남강문학> 3호 출판기념회로 진주 가기 전 날 전화 한 분이 있다. '잘들 다녀 오시라'고 전화하신 그 분은 성금 30만원을 보내오셨다. 김한석 시장님이다. 이번에 함께 가신  박성순 선생님도 20만원 봉투를 내밀었다. 박선생님은 진고서 성종화 남강문우회 2대 회장님이 까까머리 총각 때 가르키신 노 선생님이다. 문학이 머신지, 고향이 머신지 모르겠다. 진주 남강처럼 따뜻한 두 분 마음이 가슴에 느껴졌다.

 버스 타고 내려가며 창 밖을 보니, 안성 그 넓은 들에 노란 벼가 고개를 숙였고, 간간히 논둑엔 하얀 삐비꽃이 바람에 날리고 있다. 버스 안에는 일이 바쁜 강석호 수필문학 사장님과 이자야 편집장도 앉아있다. 이분들은 진주라 천리길 함께 내려가 달랑 출판기념회 행사만 참석하고 저녁에 귀경했다. 국악방송 박준영 사장님도 평일에 일이 얼마나 많겠는가. 만사 제쳐놓고 함께 갔다. 이번에 함께 못간 이유식 이영호 허유 박용수 선배님 생각났다. 정 때문에 술자리서 일어설 줄 모르는 그분들이 동행못해 허전했다. 전부 7학년 후반.대한민국 중앙문단에 이름 뚜루루낸 그 분들은 사실 이 뜻깊은 행사에 꼭 참석해야 할 분들이었다. 

 

 일행은 중앙로타리 옆 오복식당에서 육회비빔밥 먹고 영남포정사 밑 <民커피하우스>에서 커피 한 잔씩 마셨다. 자칭 천재란 분이 쏜 것이다. 그 분은 자기가 원래 천재인데 진주서는 아무도 알아주질 않아서 서울로 왔더니 전혀 다르더란다. 여기저기서 천재를 알아보고 찾더라는 것이다. 일행들 입과 기분 즐겁게 해준 분은 강석호 선배님이다. 여기서 설창수 선생님 이후 진주 문학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촉석공원 둘러보니 진주고에 가보니 합천 이영성 시인이 맞아준다. 둘이 환담 나누는데 고급 승용차 하나 가 젊잖게 서더니 청치마 한복 차림의 노숙녀 한분이 내린다. 여기 온 분이라면 다 문인 아니겠는가. 영성이가 인사하길래 나도 닥아가 '김창현 입니다' 인사를 건넸더니, '아 김창현 선생님!' 그 분이 반갑게 아는 체를 해준다. 뉴욕에 사는 진고 출신 아들 태홍이한테서 내 수필집을 받아 본 적이 있다고 한다. 웬 나같은 쫄짜의 수필집을 다 읽고 기억을 다 하시나? 싶었다. '문학에 대해 관심이 많으신 거 같습니다. '내가 이러자 '김거사! 자네가 너우니 물박물관에 걸린 시를 읽고,그리 감탄했던 그 분 아니시냐.' 농파시인이 옆에서 코멘트 해준다. 아뿔싸! 나는 그때 그 시를 읽고 '도대채 이 시 쓴 여류가 누구냐. 언제 꼭 한번 얼굴을 보고싶다'고 선언한 바 있다. <素心>  그 분 아호가 난 중에 가장 맑고 고결한 향을 지닌 소심이다. 박사인 아들도 뉴욕 진주고 싸이트서 나와는 아는 사이요, 내 동기 진단학회 회장 김두진 박사도 그 분 조카다. 감격같아서는 난처럼 고운 선배님을 한번 살짝 안아드리고 싶었으나 참았다. 맘 속에 존경하던 선배님 만난 것으로 나는 진주 온 본전 다 찾았다. 그런데 영남예술제 때 <국화>로 장원한 대구 정혜옥 선배님 부산 황소지 선배님 만났으니 본전이 아니라 완전 흑자였다. 태평양 건너서 온 김호길 문우도 마찬가지. 63년도 영남예술제 장원 출신 그는 비행기 조종사를 하다가  최근에는 미국서 하던 농장을 아들에게 넘기고 고향에 올 계획을 검토중이라 한다. 부산 정재필 허일만 선배님 진주 강희근 교수님, 남강문우회 카페지기 대구 김혜숙 선생님 못 뵌 것은 좀 섭섭했다.

 

 문우란 평소 글로 마음으로 만나는 벗이다. 직접 만나 얼굴 본 것은 완전 덤이다. 어찌 기쁘지 않으랴. 회원들 시와 수필 낭속하고 이영혜 선배님 피아노 솜씨도 듣고, 홍성실 선배님 멋들어진 쎅스폰 연주 들으니 마음 속에 아름다운 오색무지개가 선다. 어제도 오늘도 남강은 한 편의 시처럼 흐른다. 그 남강 보면서 성장한 사람들에게서 남강의 향기가 풍기지 않으랴. 50년 전 떠나온 고향길 눈물겹게 만든다.

 

 감동의 행사 끝나니, 천수식당에 만찬이 마련되어 있다. 정봉화 선배님이 통크게 한 턱 쏜 것이다. 외국 나가면서 참석은 못하시면서 조치해놓은 것이다. 잘 먹고 아름다운 삼천포대교 건너 남해 물건리 호텔에 여장 풀고, 밤은 노래방에서 흥을 풀었다. 이형기 시인이 최계락 시인을 '수염난 천사'라 했다고 한다. 술 잘 먹는 남자는 무엇인가. '술 취한 천사' 아니던가. 선후배끼리 천진난만한 천사처럼 노래 불렀다.그 자리엔 봉화 물망초 선배님을 위시한 여류들도 꾀꼬리 목소리 한곡조씩 냈다.

 

 다음날은 이태리 나포리보다 아름다운 물건 미조 바닷가 풍경 구경하고, 상주 해수욕장 둘러보고, 김만중 유배지 노도가 보이는 앵강만 둘러보고, 용문사와 미국마을 둘러보고, 창선도 횟집에 오니 남해의 온갓 괴기가 진수성찬으로 차려져 있다. 양왕용 회장 송영기 부회장님이 베푼 자리다. 점심 잘 묵고, 하태무 후배가 운영하는 '아라클럽'서 차 한잔 대접 받고 진주로 왔으니,서울팀 부산팀은 거기서 이별했다. 터미날엔 4시에 서울 가는 우등버스가 대기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정봉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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