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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의 날에 걸려온 전화

김현거사 2019. 9. 19. 06:06

 스승의 날에 걸려온 전화


 몇년 전 '스승의 날' 아침에 전화 한 통을 받았다. 나야 교편 잡은 적 없으니, 제자가 없다. 전화하신 분은 팔순 넘기신 노인이다. 돌아가신 아버님 제자였다. 

'오늘이 스승의 날이라, 평생 마음 깊이 흠모하던 선생님은 뵈올 수 없어, 대신 아드님에게 전화를 한 것입니다.'

 정태수 총장님은 서두를 이렇게 꺼냈다. 순간 '세상에 이런 일이!'란 방송 제목이 생각났다. 팔순 넘긴 노인이 스승의 날이라고 스승의 아들에게 전화한느 것이 바로 '세상에 이런 일이!' 아닌가. 요지는 대략 이런 것이었다.

 '오늘은 스승의 날이라 선생님의 은혜 세 가지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첫째는 진주사범에서 국사를 그렇게 재미있게 강의하여 학생들이 심취하도록 하신 것입니다. 그게 계기가 되어 나는 사범 졸업하고 대학에서 법학을 배우면서도 국사에 특별히 취미를 가져 더 공부했고, 그 취미가 나를 고등고시 국사 점수가 좋아서 합격하도록 해준 겁니다. 두번째는 선생님이 교육감으로 계실 때, 나를 부산으로 보내주신 은혜 입니다. 나는 사범 다닐 때 선생님을 누구보다 존경했어요. 그래 교육감 은사님을 찾아가 '선생님 이 정태수가 문산 같은 시골에 있어서 되겠습니까? 부산으로 보내주십시오.' 당돌히 어리냥처럼 말씀 드렸지요. 그런데 선생님은 정말 날 부산으로 발령하셨고, 나는 거기서 같은 학교에 근무하던 평양사범 출신 동료 교사 따라 고등고시 큰 뜻을 품게 된 것입니다. 셋째는 내가 시조시인으로 <우주의 역사>를 소재로 시집을 발간케 해주신 은혜입니다. 선생님의 역사에 대한 지도가 나의 사고를 우리 역사에서 세계 역사로, 세계의 역사에서 우주의 역사로 발전시킨 것 입니다. 결국 그것이 우주를 소재로 한 시집이 나온 계기 입니다.'

 정총장님은 서울교육대 총장, 문교부 차관을 역임한 분이다. 교육자답게 스승의 은혜를 감명 깊게 말씀하셨다.  

'총장님 전화 받으니, 곁에 살면서 자주 찾아뵙지 못한 제가 민망해서 몸둘 곳을 모르겠습니다.'

 총장님은 출향 문인 모임인 남강문학회에서 처음 만났지만 개인적으로 처음 만난 일도 인상적이다. 나는 남강문학회에서 만난 정태수, 그 분이 생전에 아버님이 자랑스럽게 이야기 하던 진주사범 제자 중 한 분이란 걸 알았다. 아버님은 정희채 정태수 두 분 이야기를 자주 하셨다. 사법고시 출제위원으로 문교부 차관을 지낸 정희채 씨는 그림에 소질이 있어 고성에서 평교사로 있을 때 아버님 사진을 연필화로 그려 액자에 넣어 보낸 적 있다. 정태수 씨는 문교부 차관 때 진주 출신 모두를 살펴준 속칭 '문교부 진주 마피아' 대부였다. LG 회장 구자경씨도 제자지만, 아버님은 그 분 이야긴 하신 적 없다. 선친 구인회씨가 초창기 부산에서 <럭키>를 만들 때 아버님을 이사로 초빙한 적 있고, 구태희 씨가 명절에 세배 올 정도로 세교가 있지만, 진주에서 포목장수로 시작한 구씨 집안이 양반이라는 말만 하셨지, 구자경 씨 이야긴 없었다. 아마 재벌 보다 교육자 제자들이 더 소중하셨던지 모른다.  


 그 분은 내가 살고있는 수지 근처 기흥에 살고계셨다. 그래 한번은 내가 식사 대접 하겠다고 전화를 드렸다. 가까운 미금역 어느 음식점에서 만났는데, 식사를 끝내고 계산하러 가니 총장님이 미리 계산을 해놓았다. '제가 모신 자리인데, 선생님이 이러시면...' 그러자, '오늘 식사는 내가 늘 존경하던 선생님을 생각하여 그 자제분을 대접한 것입니다. 아무 말 마세요'그러셨다. 그래 암 말 못하고 왔지만, 그 말씀이 인상 깊었다. 

 그후부터 총장님을 자주 만났다. 우리 내외는 총장님 부부와 총장님 제자가 교장 은퇴해 사는 욕지도에서 하루밤 보내며 바다낚시 즐기고, 쌍계사 벚꽃 구경하고 오기도 하였다. 칠순 넘은 제자가 노스승께 도다리와 우럭 낚으라고 낚시 미끼를 달아주는 모습 보고, 과연 사도(師道)가 아름다운 것이구나 느꼈다. 

 철마다 남강문학회 회원과 총장님을 모시고 팔당, 남한산성, 분당 탄천을 산책 하고 식사를 하기도 했다.  



 사진 가운데 정총장님, 좌측 필자, 우측 김한석 전 진주 부시장


 최근에는 총장님이 자서전을 집필하여 내가 가지고 있던 딴 분 자서전 몇 권을 빌려드리기도 했다. 나는 두사람의 자서전을 쓴 적 있다. 아남그룹 창업주와 동대문 시장 상인 자서전이다. 참고서적으로 김성수, 장기영, 김정렴 등 열 몇 권 자서전을 갖고 있다.

 지금 진주는 사범학교는 없어지고 교육대학만 남았지만, 진사는 당시 서부 경남 최고 인재가 모인 학교이다. 거기 출신이 보여준 아름다운 인품을 글로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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