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는 천리길 2

It's lonesome old town

김현거사 2019. 9. 13. 19:54

 It's lonesome old town


 우선 헬렌 오코넬의 목소리로 <It's lonesome old town>을 한번 들어보고 이야기를 시작하자. 이 노래 낫킹콜도 불렀고, <밤안개>란 제목으로 현미도 불렀다.  





 가사를 보면, It's a lonesome old town, When you're not around(당신이 곁에 없는 여기는 적막한 거리예요).  I'm lonely As I can be(참을 수 없을 만큼 외로워지네요). I never knew How much I'd miss you(이렇게 당신이 그리울지는 몰랐어요). But now I can plainly see(하지만 이제 명백히 알았어요). It's a lonesome old town, When you're not around(당신이 곁에 없는 여기는 적막한 거리예요). How I wish you'd come back to me(당신이 돌아오시길 어떻게 바라나요)로 되어있다.


 20년 전 나는 진주의 어떤 목로주점에서 한 여인과 둘이 앉아있었다. 시간은 자정 넘은 시간이고, 위치는 YMCA 앞인데, 차를 집 앞에 주차시킨 건 기억나지만 주점 이름은 기억나지 않는다. 어쨌던 길에 차를 세우고 불문곡직 불 꺼진 컴컴한 술집 창문을 두드려 잠든 여주인을 만났다. 정란이는 흩어진 머리에 파자마 바람으로 백열전등 스위치를 켜고, 문을 열어주었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나는 고향 떠난지 20년도 넘었던 때다. 별로 출세도 못한채 였다. 마침 모시던 회장이 김해 수로왕릉을 참배하고, 산청 양왕릉을 참배하러 가다가 진주서 묵는 바람에 호텔에서 잠시 나와 여자 동창생 술집에 찾아간 것이다. 정란이와 나는 과거에 무슨 사연이 있던 사이는 아니다. 초등학교 시절 학교 남녀 육상선수 였었다. 여름 방학 때 둘이 학교 나가서 선생님 지도를 받은 일 밖에 없다. 그러나 그는 여고 입학하여 대대장이 되자, 남학생들에게 유명해졌는데, 기가 센 편이라 별명이 '맥아더'였다. 시근방만 떠는 꼬맹이 남학생이 놀릴려고 별명 부르면 혼쭐을 내주던 여걸이었으나, 덩치 큰 나에겐  여자티를 내며 수줍어 했다.

 나는 고등학교 마치고 63년도에 서울 와서 대학 졸업하고 기자가 되었지만, 뜻을 펴지못하여 회사원이 되었다. 사정이 여의치 못해 이십 여년 넘게 한번도 고향 못간 처지였다. 진주 친구를 만나고 싶었으나, 아는 연락처가 없었다. 고향에 와도 만날 사람 없는 초라한 중년이 된 건 쓸쓸한 일이다. 멜랑코리한 기분 때문일 것이다. 사촌 여동생과 통화 하다가 정란이 소식을 안 것이다. 

 정란이는 첫 번째 결혼이 파탄나고, 뒤에 진주 모 검사와 이상한 소문만 잔뜩 남긴 채 술집을 차렸다고 한다. 정란이가 건강해 검사가 복상사 했다는 소문이다. 그 뒤부터 얌전한 주부가 된 여고 후배들이 기피하는 요주의 인물이 되었다고 한다. 세월 속에 두 사람 다 인생의 애수를 알만한 나이로 변해 있었다. 그녀 침실의 개다리 소반에 간단한 술상이 차려졌다. 두 사람은 처음 한동안 그냥 마주본 채 말이 없었다. 이따끔 잔이 비면 서로 상대 잔을 채워주었다. 나는 20년 만에 와서 진주가 타향이란 것, 친구들 연락처는 모르고 너무나 쓸쓸하던 차에 정란씨 연락처를 알자 너무 반가웠다는 것, 내일 새벽 5시면 회장 모시고 산청으로 가야한다는 것, 시간이 없어 한밤이지만 잠시 얼굴이나 보고 가려고 찾아왔다는 걸 이야기 했다. 정란이는 내가 K대 진학한 것, 친하던 철수가 자살하자 자원입대해서 월남에 갔다는 소문, 서울서 기자했다는 소문을 알고 있었다. 나는 진주에 떠도는 정란이 소문을 들었다며, 왜 차라리 진주를 떠나 마산이나 타향에 가서 살지 않느냐고 물었고, 정란이는 그래도 자기는 고향을 떠나기 싫었다는 쓸쓸한 대답을 해서 내 심금을 울려주었다. 

'이번에 다녀가면 10년 20년 뒤에 언제 또 올런지 모르겠네요?'

정란이가 물었고 나는 머리를 끄떡였다. 

 잠시 후 정란이가 옆 방에 가더니 휴가차 온 군인 아들을 깨워서 데려왔다. 

'엄마 초등학교 동창 김선생님이다. 인사 올리거라'

아들은 엎드려 큰 절을 하고 물러갔다.

 이렇게 정란이와 만나고 헤어진게 20년 전이다. 그날 정란이와 헤어진 골목길엔 밤안개가 가득했다. 

'정란씨 먼저 들어가세요'

'아니예요, 창현씨가 먼저 떠나세요'

 이렇게 차는 떠났고, 잠시 후 돌아보니, 정란이는 밤안개 속에 차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못 박힌듯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그 후 정란이가 죽었다는 어렴픗한 소문만 서울에서 들었다. 


'진주는 천리길 2'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아버님  (0) 2019.09.14
남강문학회 회원 시비   (0) 2018.05.18
첫사랑 /3  (0) 2018.05.18
첫사랑 /2  (0) 2018.05.18
첫사랑 /1  (0) 2018.05.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