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감상편

9월이 오면

김현거사 2019. 9. 8. 08:38


 

   9월이 오면


 '가을엔 편지를 하겠어요. 누구라도 그대가 되어 받아주세요. 낙엽이 쌓이는 날. 외로운 여자가 아름다워요.' 노래 <가을편지>는 고은이 시를 쓰고, 당시 대학교 3학년 여학생 김민기가 곡을 붙인 것이다. 최양숙, 이동원, 최백호가 불러 히트했는데, 서정적인 가사와 어딘가 낮고 쓸쓸한 멜로디가 고급스럽다.

 가을이 오면 코스모스가 더 외롭고, 낙엽이 더 쓸쓸하고, 기러기 날라가는 하늘이 더 애상적이다. 그 가을에 듣고싶은 곡이 있다. 벤쳐스와 빌리본 두 악단이 연주한 'come september(9월이 오면)'란 곡이다. 고등학생 시절 나는 이 노랠 들으면,  공연히 마음이 싱숭생숭해져서 진주 시내를 헤매곤 했다.

 최근 영화 '9월이 오면'이 상영되길래 같이 갈 사람 없나 찾아보니 아무도 없다. 극장 대형 스피커로 음악이나 원없이 들어보자고 혼자 갔으나, 음악은 영화 중간에 잠간 경음악으로 나온다. <길>, <모정>, <돌아오지 않는 강>처럼 영화 전편에 애상적으로 흐르는 그런 게 아니다. 



 여하튼 나는 지나롤로 부리지다를 사랑한다. 캐서린 햇번과 셔리 맥레인도 좋아하지만, <노틀담의 꼽추>에서 짚씨 여인으로 뇌살적인 연기를 펼친 지나롤로 부리지다를 사랑한다. 그가 이 영화에서 록 허드슨과  보여준 춤 솜씨 하나 본 것으로도 나는 본전 뽑았다. 눈이 뚫어지라고 그를 쳐다보았다. 같은 배우라도 우리나라 영화배우 누가 그런 춤솜씨 가졌을까. 그의 춤은 그냥 춤이 아니고 완전 예술이었다.  어쨌던 내가 사랑하는 지나 롤로브리지다는 실제로 벤츠 스포츠카를 몰며 여류 사진가로도 이름을 얻은 이태리 여배우다. 억만장자 하워드 휴즈가 그를 흠모하여 여러번 헐리웃 진출을 제의 했지만, 휴즈의 바람기를 알아채고 거절한 일화가 유명하다. 


 영화는 이태리식 코메디 영화였다. 미국인 갑부 로버트 탈보트(록 허드슨)는 매년 9월이 되면 이탈리아의 별장에서 이탈리아인 여자친구(지나롤로 부리지다)와 휴가를 보낸다. 그런데 어느 해 별장 관리인에게 연락을 하지 않고 7월에 별장에 들렀다가 엉뚱한 꼴을 당한다. 
 별장지기는 그가 안 올 때 그 별장을 몰래 호텔로 운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탈보트는 투숙객들을 내쫒으라 지시하지만, 투숙자가 이탈리아로 여행온 젊은 미국인 남여 대학생 두 팀이다. 별장 관리인은 투숙객들에게 탈보트는 2차 대전 때 뇌를 다쳐서, 그 후유증으로 자기가 그 호텔 주인인 줄 아니까 그런 척 해주라며 미리 선수를 쳐놓았다. 정신병자란 말을 들은 심리학 전공 여학생(산드라 디)이 탈보트를 찾아가 정신병 고치려고 상담하는 장면 코믹하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사이 이탈리아인 여자 친구 리사 펠리니(지나 롤로브리지다 분)가 도착한다. 결국 두 사람은 이미 2층 방을 차지하고 있던 샌디(산드라 디) 일행과 또 꽃을 본 벌처럼 여학생 쫒아 다니는 토니(보비 달린) 일행을 내쫒지 못하고, 객지에서 사고칠까 염려되어 도리어 따라다니는 보호자가 된다. 그 와중에 여대생 샌디와 탈보트의 현지 애인 펠리니는, 자신의 값을 올리려고 짐짓 자기 상대편 남자를 바람 먹인다. 결국 코믹한 스토리 끝에 두 커풀이 해피 앤딩으로 꼴인되고 영화는 끝난다.   



  이 영화는 호화 출연진으로 처음부터 흥행 보증 수표였던 영화다. 촬영은 이태리 쪽 리비에라 바닷가에서 했는데, 주연 지나롤로 부리지다와 록 하드슨은 이미 알만 하지만, 신인 두 사람도 명성이 자자했다. 테마 음악 '9월이 오면'을 작곡한 봅 달린은 당시 틴에이저들에게 최고의 인기를 누리던 가수고. 산드라 디는 <피서지에서 생긴 일>로 이미 최고 줏가 청춘스타였다. 두명은 단 10일간 촬영 후 막 바로 결혼에 골인, 엄청난 화제를 만들었다. 
  이 영화는 유럽과 미국을 연결하는 논스톱 국제 비행노선에서 처음으로 기내 상영한 기록을 갖고 있다. 지금이야 당연히 DVD 와 프로젝터를 통해 쉽게 보는 기내 영화이지만, 당시로서는 네거티브 복사 필름을 영사기로 직접 돌려가면서 이 영화를 보았다. 당시 이 영화의 인기를 짐작할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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