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수필/ '길'( LA STRADA)
우리나라에도 한때 유랑극단이란 것이 있었다. 필자는 어린 시절 남강 모래밭에다 텐트를 치고 구슬픈 트럼벹 소리를 울리던 유랑극단을 기억한다. 1954년 페데리코 펠리니 감독은 '길'( LA STRADA)이란 영화에서 이 유랑극단의 모습을 애상과 페이소스 가득한 예술로 승화시켰다. 영화는 2차 대전이 끝난 이태리 어느 가난한 바닷가 마을에서 시작된다. 그 동네에 찢어진 가죽잠바 차림에 시커먼 눈썹에 몽당 담배를 입에 문 야수처럼 생긴 잠파노(앤서니 퀸)가 나타난다. '잠파노 사람 좋다. 너 잠파노와 같이 갈래?' 잠파노가 동네 꼬마들에게 구겨진 지폐를 나눠주어 인심을 쓰자, 젤소미나(줄리에타 마시나)의 어머니는 딸에게 이렇게 묻는다. 이렇게 젤소미나는 1만 리라에 팔려 백치 같은 웃음을 띄우며 삼륜 오토바이 뒷칸 너덜너덜한 천막 덮개 아래로 손을 흔들며 동네를 떠난다. 잠파노는 전국을 순회하며 쇠사슬 끊는 차력을 보여주고 밥벌이하는 방랑자다. 전에도 이 마을에서 젤소미나의 언니를 데려간 적 있는데 언니가 죽자 다시 찾아온 것이다. 잠파노는 사람들을 모아놓고 웃통을 벗고 이를 악물고 가슴에 댄 쇠줄을 끊고, 젤소미나는 북을 치며 '잠파노가 왔어요'를 외친다. 음식 하나 제대로 만들지 못하던 젤소미나는 처음에는 모두가 서툴다. '잠파노가 왔어요' 큰 소리로 외쳐봐!' 잠파노는 젤소미나가 큰소리로 외치지 못한다고 나무가지로 회초리를 때리기도 한다. 그러나 차차 익숙해지자, 젤소미나는 북을 치며 관객을 끌어들이고, 두 사람은 총을 쏘며 오리 사냥 단막극을 벌리기도 한다. 겨울이 오자 잠파노는 몸을 의탁하려고 서커스단을 찾아간다. 거기서 서커스단 외줄타기 마토를 만나는데, 마토는 처음부터 잠파노와 서로 인상이 좋지 않다. 마토는 '강철 허파'의 사나이 잠파노가 가슴에 쇠사슬 걸고 끊는 순간, '밖에서 전화가 왔대요' 농담을 해서 군중을 웃겨버린다. 흥분한 잠파노는 마토를 혼내주려 하고, 한편 마토는 악기에 관심을 보이는 젤소미나에게 트롬본을 쥐어주며 자기 조수로 삼으려고 한다. 이에 격분한 잠파노는 칼을 들고 마토를 쫒아가고 마토가 숨은 문을 부순다. 그때 경찰이 나타나 잠파노는 구금되고, 단장은 잠파노와 마토를 해고시킨다. 마토는 젤소미나에게 '잠파노가 내일 나온다'라고 알려주고, 젤소미나는 '나는 뭐하러 세상에 태어났는지 모르겠어요. 나는 사는 게 지겨워요' 라고 하자, 마토는 '이 세상에 흔한 돌 하나도 다 있어야 할 존재이기 때문에 있는 것이다. 이 돌맹이가 뭐에 쓰는지는 하나님만이 안다'라고 따뜻하게 말해준다. 젤소미나는 마토의 말에 용기를 얻고 '나는 그 사람을 기다릴거야' 잠파노를 기다리기로 한다. 마토는 오토바이를 구치소 앞에 끌어다주고, 목에 걸고 있던 목걸이를 풀어 젤소미나 목에 걸어준 후 떠난다. 출감한 잠파노는 젤소미나와 삼륜 오토바로 방랑길을 가다가 수녀를 태워주고 하루 밤 수녀원 신세를 진다. 잠파노는 도끼로 장작을 패고, 젤소미나는 나팔을 불어 칭찬을 받고 으쓱해 한다. 수녀가 '여기 수녀원에 있고싶으면 원장님께 말씀 드리겠다'고 말 하자 젤소미나는 고개를 저으며 반대한다. 잠파노는 밤에 수녀원 은촛대를 훔치도록 강요하다가 거부하는 젤소미나의 뺨을 때린다. 다시 길을 가다가 어느 인적 없는 곳에서 마토를 만난다. 자동차를 세워놓고 타이어를 갈고 있던 마토는 젤소미나를 보자 자스민 꽃이라 부른다. 잠파노는 마토에게 주먹다짐을 하고, 마토는 두어 걸음 걸어가다가 쓰러져 버린다. 젤소미나는 '마토가 아프다' 며 울음을 터트리고, 잠파노는 '엄살 떨지마!' 발로 마토를 툭툭 차다가 죽음을 확인하자, 주변을 살펴본 후 시체와 자동차를 다리 밑에 밀어버리고 도주한다. 세월이 흐른 5년 후 어느 날. 써커스단과 같이 바닷가 동네에 나타난 잠파노는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산책 하다가 어디서 흘러오는 낮 익은 곡을 듣게 된다. 돌아보니 빨래를 널고 있는 부인이 그 노래를 부른다. '그 노래 어디서 배웠소?' 잠파노가 닥아가 물어보니, '유랑극단 여인이 간혹 정신이 돌아오면 이 노래를 나팔로 불었는데, 오래전에 병으로 죽었어요.' 철조망 너머 여인이 대답한다. 젤소미나는 잠파노가 자기를 찾아오기를 기다리며 서커스 따라다니다가 병 들어 삶을 끝낸 것이다. 그 소릴 들은 잠파노는 충격을 받는다. 너무나 젤소미나가 너무나 그리워 공연을 끝낸 후 술집에 가서 엉망으로 취해 사람들과 다투다 술집에서 쫒겨난다. 잠파노는 세상에서 자기가 가장 외로운 존재임을 깨닫는다. 파도가 하얀 은파로 밀려오는 바다에 들어가 얼굴을 씻고 밖에 나와 젤소미나를 생각하며 휑한 눈으로 허공을 바라본다. 그러다 갑자기 감정이 솟구쳐 털썩 모래밭에 엎어진다. 손바닥으로 모래를 움켜쥐며 오열하는 것으로 영화는 끝난다. <자전거 도둑>과 함께 리얼리즘의 명작으로 꼽히는 이 흑백 영화는 페데리코 펠리니 감독이 직접 각본을 쓰고, 그의 부인 줄리에타 마시나가 젤소미나 역을 맡았다. 둘은 로마의 대학에서 같이 드라마를 전공한 사이인데, 젊은 시절 펠리니가 대본을 쓴 라디오 연속극에서 마시나가 주연을 맡고 그해 결혼했다. 원래 '길(La strada)'은 제작사 파라마운트사가 주인공으로 실바노 망가노와 버트 랭커스터로 배역을 정했는데, 감독이 자기 부인 줄리에타 마시나를 주연으로 삼아 흥행에 성공했다. 줄리에타 마시나는 이 영화에서 젤소미나 역으로 영원히 영화사에 남게 되었고, 1994년 남편 죽은 지 몇 달 후에 세상을 떠나자 두 사람이 리미니 묘지에 함께 묻힐 때, 유언으로 젤소미나 곡을 장례식에서 트렘펫으로 연주하도록 했다. 이 곡은 니노 로토가 작곡한 것인데, 니노 로토는 1960년에 '태양은 가득히' 테마곡을 만들었고, 1974년에 '대부' 배경 음악으로 아카데미 음악상을 수상했다. (지구문학 2022년 여름호) |
영화 수필/ '길'( LA STRADA)
우리나라에도 한때 유랑극단이란 것이 있었다. 필자는 어린 시절 남강 모래밭에다 텐트를 치고 구슬픈 트럼벹 소리를 울리던 유랑극단을 기억한다. 1954년 페데리코 펠리니 감독은 '길'( LA STRADA)이란 영화에서 이 유랑극단의 모습을 애상과 페이소스 가득한 예술로 승화시켰다. 영화는 2차 대전이 끝난 이태리 어느 가난한 바닷가 마을에서 시작된다. 그 동네에 찢어진 가죽잠바 차림에 시커먼 눈썹에 몽당 담배를 입에 문 야수처럼 생긴 잠파노(앤서니 퀸)가 나타난다. '잠파노 사람 좋다. 너 잠파노와 같이 갈래?' 잠파노가 동네 꼬마들에게 구겨진 지폐를 나눠주어 인심을 쓰자, 젤소미나(줄리에타 마시나)의 어머니는 딸에게 이렇게 묻는다. 이렇게 젤소미나는 1만 리라에 팔려 백치 같은 웃음을 띄우며 삼륜 오토바이 뒷칸 너덜너덜한 천막 덮개 아래로 손을 흔들며 동네를 떠난다. 잠파노는 전국을 순회하며 쇠사슬 끊는 차력을 보여주고 밥벌이하는 방랑자다. 전에도 이 마을에서 젤소미나의 언니를 데려간 적 있는데 언니가 죽자 다시 찾아온 것이다. 잠파노는 사람들을 모아놓고 웃통을 벗고 이를 악물고 가슴에 댄 쇠줄을 끊고, 젤소미나는 북을 치며 '잠파노가 왔어요'를 외친다. 음식 하나 제대로 만들지 못하던 젤소미나는 처음에는 모두가 서툴다. '잠파노가 왔어요' 큰 소리로 외쳐봐!' 잠파노는 젤소미나가 큰소리로 외치지 못한다고 나무가지로 회초리를 때리기도 한다. 그러나 차차 익숙해지자, 젤소미나는 북을 치며 관객을 끌어들이고, 두 사람은 총을 쏘며 오리 사냥 단막극을 벌리기도 한다. 겨울이 오자 잠파노는 몸을 의탁하려고 서커스단을 찾아간다. 거기서 서커스단 외줄타기 마토를 만나는데, 마토는 처음부터 잠파노와 서로 인상이 좋지 않다. 마토는 '강철 허파'의 사나이 잠파노가 가슴에 쇠사슬 걸고 끊는 순간, '밖에서 전화가 왔대요' 농담을 해서 군중을 웃겨버린다. 흥분한 잠파노는 마토를 혼내주려 하고, 한편 마토는 악기에 관심을 보이는 젤소미나에게 트롬본을 쥐어주며 자기 조수로 삼으려고 한다. 이에 격분한 잠파노는 칼을 들고 마토를 쫒아가고 마토가 숨은 문을 부순다. 그때 경찰이 나타나 잠파노는 구금되고, 단장은 잠파노와 마토를 해고시킨다. 마토는 젤소미나에게 '잠파노가 내일 나온다'라고 알려주고, 젤소미나는 '나는 뭐하러 세상에 태어났는지 모르겠어요. 나는 사는 게 지겨워요' 라고 하자, 마토는 '이 세상에 흔한 돌 하나도 다 있어야 할 존재이기 때문에 있는 것이다. 이 돌맹이가 뭐에 쓰는지는 하나님만이 안다'라고 따뜻하게 말해준다. 젤소미나는 마토의 말에 용기를 얻고 '나는 그 사람을 기다릴거야' 잠파노를 기다리기로 한다. 마토는 오토바이를 구치소 앞에 끌어다주고, 목에 걸고 있던 목걸이를 풀어 젤소미나 목에 걸어준 후 떠난다. 출감한 잠파노는 젤소미나와 삼륜 오토바로 방랑길을 가다가 수녀를 태워주고 하루 밤 수녀원 신세를 진다. 잠파노는 도끼로 장작을 패고, 젤소미나는 나팔을 불어 칭찬을 받고 으쓱해 한다. 수녀가 '여기 수녀원에 있고싶으면 원장님께 말씀 드리겠다'고 말 하자 젤소미나는 고개를 저으며 반대한다. 잠파노는 밤에 수녀원 은촛대를 훔치도록 강요하다가 거부하는 젤소미나의 뺨을 때린다. 다시 길을 가다가 어느 인적 없는 곳에서 마토를 만난다. 자동차를 세워놓고 타이어를 갈고 있던 마토는 젤소미나를 보자 자스민 꽃이라 부른다. 잠파노는 마토에게 주먹다짐을 하고, 마토는 두어 걸음 걸어가다가 쓰러져 버린다. 젤소미나는 '마토가 아프다' 며 울음을 터트리고, 잠파노는 '엄살 떨지마!' 발로 마토를 툭툭 차다가 죽음을 확인하자, 주변을 살펴본 후 시체와 자동차를 다리 밑에 밀어버리고 도주한다. 세월이 흐른 5년 후 어느 날. 써커스단과 같이 바닷가 동네에 나타난 잠파노는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산책 하다가 어디서 흘러오는 낮 익은 곡을 듣게 된다. 돌아보니 빨래를 널고 있는 부인이 그 노래를 부른다. '그 노래 어디서 배웠소?' 잠파노가 닥아가 물어보니, '유랑극단 여인이 간혹 정신이 돌아오면 이 노래를 나팔로 불었는데, 오래전에 병으로 죽었어요.' 철조망 너머 여인이 대답한다. 젤소미나는 잠파노가 자기를 찾아오기를 기다리며 서커스 따라다니다가 병 들어 삶을 끝낸 것이다. 그 소릴 들은 잠파노는 충격을 받는다. 너무나 젤소미나가 너무나 그리워 공연을 끝낸 후 술집에 가서 엉망으로 취해 사람들과 다투다 술집에서 쫒겨난다. 잠파노는 세상에서 자기가 가장 외로운 존재임을 깨닫는다. 파도가 하얀 은파로 밀려오는 바다에 들어가 얼굴을 씻고 밖에 나와 젤소미나를 생각하며 휑한 눈으로 허공을 바라본다. 그러다 갑자기 감정이 솟구쳐 털썩 모래밭에 엎어진다. 손바닥으로 모래를 움켜쥐며 오열하는 것으로 영화는 끝난다. <자전거 도둑>과 함께 리얼리즘의 명작으로 꼽히는 이 흑백 영화는 페데리코 펠리니 감독이 직접 각본을 쓰고, 그의 부인 줄리에타 마시나가 젤소미나 역을 맡았다. 둘은 로마의 대학에서 같이 드라마를 전공한 사이인데, 젊은 시절 펠리니가 대본을 쓴 라디오 연속극에서 마시나가 주연을 맡고 그해 결혼했다. 원래 '길(La strada)'은 제작사 파라마운트사가 주인공으로 실바노 망가노와 버트 랭커스터로 배역을 정했는데, 감독이 자기 부인 줄리에타 마시나를 주연으로 삼아 흥행에 성공했다. 줄리에타 마시나는 이 영화에서 젤소미나 역으로 영원히 영화사에 남게 되었고, 1994년 남편 죽은 지 몇 달 후에 세상을 떠나자 두 사람이 리미니 묘지에 함께 묻힐 때, 유언으로 젤소미나 곡을 장례식에서 트렘펫으로 연주하도록 했다. 이 곡은 니노 로토가 작곡한 것인데, 니노 로토는 1960년에 '태양은 가득히' 테마곡을 만들었고, 1974년에 '대부' 배경 음악으로 아카데미 음악상을 수상했다. (지구문학 2022년 여름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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