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야기

애수 (Waterloo Bridge, 1940)

김현거사 2019. 6. 28. 07:33

 애수 (Waterloo Bridge, 1940)
 

 이 영화는 6.25 전쟁 당시 임시수도였던 부산에서 처음으로 개봉되어 수많은 관객을 울린 영화다. 머빈 르로이(Mervyn LeRoy) 감독이 연출한 영화 애수(Waterloo Bridge,1940)는 처음과 마지막  두 장면이 잊을 수 없는 장면이다. 첫 장면은 로버트 태일러와 비비안 리가 촛불클럽(Candle Club)에서 올드 랭 사인 곡에 따라 마지막 촛불이 꺼지자 키스하는 장면, 둘째 장면은 창녀가 된 마이러가 로이를 처음 만난 워털루 다리에서 군용 트럭들 헤트라이트 속을 걸어가다가 몸을 던지는 장면이다.


 영화 첫장면은 영국이 독일에 대해 선전포고를 한 1939년 9월, 안개 자욱한 런던의 워털루 다리 위에 한 대의 지프가 멎고, 기품 있는 군복에 대령 계급장을 단 중년의 신사가 차에서 내리는 데서 시작된다. 그는 2차 대전으로 프랑스 전선으로 나가는 도중 잠시 워털루 다리에 차를 세우고 난간 위에 기대어 손에 쥔 작은 상아로 된 마스코트를 내려다본다. 그의 눈 앞에 슬픈 사랑의 추억이 서서히 물결을 이루며 다가온다.



 

 1차 대전이 한창이던 1914년 무렵이다. 프랑스 전선에서 싸우다 휴가를 얻어 런던에 온 스코틀랜드 귀족 영국군 젊은 대위 로이 크로닌(로버트 테일러)은 전선 복귀 바로 전날 워털루 다리 위를 지나다 갑자기 울리는 공습경보에 놀라 대피한다. 혼란스런 인파 속에서 핸드백을 떨어뜨려 당황하면서 쏟아진 내용물을 줍고 있는 한 여자를 본다. 그녀의 이름은 마이러 레스터(비비안 리)다. 로이는 물건을 주워 함께 대피소로 향하고, 혼잡한 대피소 안에서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누다가 그가 올림픽 극장에서 공연 중인 발레에 출연하고 있는 발레리나임을 알게 된다. 공습경보가 해제되자 마이러는 로이가 내일 전쟁터로 떠나는 걸 알고, 로이에게 작은 마스코트를 주며 행운을 빌어준다.

 그날 밤, 무대 위에서 춤 추던 마이러는 문득 객석에 있는 로이의 얼굴을 발견하고 깜짝 놀란다. 로이는 같은 귀족 집안 아저씨 연대장과의 식사 약속을 미루고 마이러를 보러 극장으로 달려온 것이다. 공연이 끝나자 로이는 마이라에게 만나자는 메모를 보내지만, 엄격한 단장에게 발각되고, 단장은 마이라에게 만날 수 없다는 답장을 보내라고 명령한다.

 거절 편지를 받고 돌아서던 로이에게 마이라의 친구 키티가 찾아와 약속장소와 시간을 알려주면 마이라를 보내겠다며 도와준다. 약속 장소는 캔들 클럽(Candle Club)이다. 초조하게 기다리던 로이는  마이라와 재회한다. 다음 날 로이는 전선으로 떠나면 언제 다시 만날지 기약 없는 사람이다. 촛불클럽의 음악은 올드 랭 사인(Auld Lang Syne)을 연주하고 있다. 촛불은 음악에 맞추어 하나씩 꺼져가고, 마지막 촛불이 꺼지자 두 사람은 키스한다.


 이 올드 랭 사인(Auld Lang Syne)이별의 왈츠(Farewell Waltz) 혹은 촛불 왈츠(Candlelight Waltz)로 불리지만, 우리에게 낮익은 곡이다. 상해임시정부에서 한때 애국가로 차용했던 곡이다. 영어 직역은 '오래된 그리운 옛날'(Old Long Since)인데, 1788년 로버트 번스(Robert Burns)가 발표한 시를 가사로 인용한 스코틀랜드 민요이다.


 이튿날 아침, 쓸쓸한 비가 내리고 있다. 그런데 프랑스 전선으로 떠나간 줄 알았던 로이가 창 밖의 빗속에 서성거리고 있다. 마이러는 자신을 보러 온 것을 발견하자 뛰어나가 로이의 품에 안긴다.


 

 

 날씨 때문에 로이는 귀대가 48시간 연기된 것이다. 로이는 마이라에게 청혼하고 마이라는 청혼을 받아드린다. 두 사람은 결혼식을 올리려고 성당의 신부님을 찾아 가지만 신부님은 규정시간인 3시가 넘어서 지금은 결혼식을 할 수 없으니 다음 날 11시까지 오라고 한다. 공연 준비하러 기숙사에 돌아온 마이라는 동료들에게 결혼소식을 전하고 축하를 받는다. 그러나 로이의 일정이 변경되어 25분 뒤에 워털루역에서 열차로 런던을 떠난다는 연락을 받고 역으로 급히 달려간다. 차가 막혀 늦게 도착한 마이라는 열차 창밖으로 몸을 내밀고 손을 흔들며 멀어지는 로이를 안타깝게 바라본다.

 로이를 배웅하고 돌아온 마이라는 공연에서 무단이탈 했다는 이유로 단장에게 해고 통보를 받는다. 이를 말리려던 키티도 함께 무용단에서 쫓겨난다. 무용단에서 쫓겨난 마이라와 키티는 새직장을 얻어보려고 애를 써보지만 전쟁 중 직장 구하기가 너무나 어렵다. 키티는 발레단에 쫓겨난 사정을 로이에게 말해서 도움을 받으라고 조언하지만 마이라는 로이가 걱정한다며 알리지 않는다.

  이런 어느 날 인편으로 로이의 편지가 도착한다. 꽃다발과 함께 보낸 편지 내용은 자기 어머니가 마이라를 만나러 런던으로 갈거라는 것이다. 만나기로 한 장소에서 마이라는 종업원이 건네준 신문에 실린 전사자 명단에서 '로이 크로닌' 이름을 발견한다. 너무나 큰 충격을 받고 망연자실하여 잠시 후 나타난 로이의 어머니에게 횡설수설한다. 이런 마이러를 보고 로이의 어머니는 실망한채 돌아간다.


 마이러는 친구 키티와 함께 생활하는 집으로 돌아와 실신하여 병상에 눕게 된다. 그런 어느 날 마이러는 그녀의 약값과 생활비를 벌기 위해 키티가 몸을 팔아왔다는 사실을 알게된다. 마이러 역시 자포자기하여 키티와 같은 밤의 여인으로 거리에 몸을 내던지게 된다.
 이렇게 1년이 지난 어느 날, 그날도 군인들에게 몸을 팔기 위해 마이러는 짙은 화장을 하고 워털루 역으로 나간다. 역전 앞을 서성거리다가 수많은 군인들 속에서 낯익은 얼굴 하나를 만난다. 로이는 마이러를 보자,  '마이러!' 이름을 부르며 달려와 그녀를 안는다. 로이는
'어떻게 알고 마중 나왔느냐'고 신기해 한다. 로이는 전쟁 중 부상을 입었으나 인식표를 잃어버리는 바람에 전사자로 잘못 발표된 것이다.
 로이는 마이러에게 일어났던 그간의 변화를 전혀 눈치채지 못한다. 결혼 승낙을 받기 위해 그녀를 데리고 그의 어머니가 있는 스코틀랜드로 간다. 대저택에서는 로이와 마이러의 결혼을 축하하기 위하여 성대한 파티가 열린다. 품위있는 로이 어머니는 1년 전 처음 마이러와 만났을 때 로이가 전사자 명단에 있었다는 자초지종을 몰랐던 점을 사과한다. 로이의 사랑을 받아들일 수 없는 마이러는 그날 밤 로이 어머니에게 진실을 털어놓고 로이에게는 비밀로 해달라고 간청한 뒤 저택을 빠져나간다.
 뒤늦게 이 사실을 안 로이는 마이러를 찾아 헤맨다. 결국 마이러의 친구 키티를 만나 마이러의 과거를 알게된다. 사랑하는 사람에게서 도망친 마이러는 안개 짙은 워털루 다리 위를 걷고 있다. 그곳은 로이와 처음 만난 곳이다. 셀 수 없이 지나가는 시끄러운 군용 트럭들의 눈부신 헤드라이트들 속에, 순간 마이러의 눈물 젖은 모습이 잠시 비친다. 귀를 찢는 급브레이크 소리가 난다. 사고 현장에는 로이가 전쟁 중 간직해 왔다가 스코틀랜드 저택에서 마이러에게 돌려준 상아 마스코트가 차가운 보도 바닥에 나뒹굴고 있다.


 그로부터 25년 세월이 흐른 후 안개 낀 워털루부릿지에 트렌치코트 깃을 세운 한 중년의 대령이 서있다. 그의 귓전에는 아직도 '당신만을 사랑해요. 그건 앞으로도 마찬가지예요.' 속삭이던 마이러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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