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상

매화송(梅花頌)

김현거사 2019. 4. 9. 17:02

 

 매화송(梅花頌)

 

 달빛 아래 보는 매화가 가장 아름답다. 화선지에 그린듯 하얀 꽃잎이 밤하늘에 점점이 점 찍은 모습처럼 청초한 건 없다. 실바람에 꽃잎이 흔들리면 달빛 아래 사쁜사쁜 거니는 항아의 하얀 옷깃을 보는듯 하다. 

 매화꽃은 피는 방향에 따라 생동감이 다르다. 정면, 후면, 옆, 아래로 향한 것 모두 별도의 느낌을 준다. 반개(半開)한 것, 만개(滿開)한 것이 뒤섞여 더 생동감을 준다. 시간에 따라 운치와 감흥이 다르다. 아침 매화, 밤의 매화, 청명한 날 매화, 안개 낀 날 매화, 눈 오는 날 매화, 비 개인 아침 매화가 다르다.

 이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매화는 달빛 아래 매화가 아닐까 싶다. 달빛 아래 매화는 줄기가 희미하여 수묵화처럼 되고, 얼음같은 살결과 구슬같이 맑은 꽃은 더 선명하게 보인다. 월하(月下)에 후각을 자극하는 숨막히도록 청량한 향기는 말못할 사연을 지닌 여인의 체취처럼 신비롭다. 

 

 매화는 오랜 풍상을 겪은 고매(古梅)일수록 귀하다. 고승처럼 허리 구부정 땅으로 누운 매화는 격조 높다. 매화는 어린 것 보다 늙은 것을 귀하게 여기고, 살찐 것 보다 여윈 것을 귀하게 여긴다. 늙은 줄기는 기괴하게 굽어져야 귀하고, 새 가지는 섬세하면서 힘이 있어야 한다. 늙은 것과 어린 것, 드리운 것과 치뻗은 것, 성긴 것과 빽빽한 것, 강(剛)과 유(柔)가 조화를 이뤄야 한다.

 세월의 흔적으로 표피에 푸른 이끼가 무수한 태점(苔點)을 찍고 바위 옆에 비스듬이 선 매화 등걸은, 선풍도골 선비 같아서 반갑다. 매화는 산매(山梅), 강매(江梅), 원매(園梅), 반매(盤梅)가 있지만, 이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매화는 오래된 성터나 고찰에서 세월을 보낸 원매(園梅)다.

 찻잔 속 매화도 아름답다. 깔끔한 백자 잔도 좋고, 투박한 이조 다완도 좋다. 작은 찻잔은 꽃잎을 자세히 보도록 만든다. 찻물에 적셔진 꽃잎은 마음을 젖셔준다. 꽃에는 반드시 꽃받침이 있기 마련인데, 홍매는 붉고, 청매는 녹색이다. 매화는 여인이 화장을 바꿀 때처럼, 꽃받침에 따라 격조와 분위기를 바꾼다.

 매화차 만드는 물은 깊은 산 속 샘물이 제격이다. 가능하면 옥같은 흰 손으로 차 따르는 여인이 있으면 더욱 운치있다. 가난한 선비나 화가도 곁에 있으면 좋다. 가난한 선비는 청빈을 말할 것이고, 화가는 빛의 변화를 논할 것이다. 매화차 마시는 장소는 앞에 작은 연못이 있으면 좋다. 연못 옆에 초당이 있으면 더 좋고, 초당 옆에 대나무 몇그루 있으면 또 좋다. 문득 옆에서 누가 부드러운 해금을 타거나, 산사에서 풍경 소리가 울려오면 더 말할 것 없다.

 

 수많은 시인묵객이 매화시를 썼고, 매화를 사랑했지만, 절창은 상촌(象村) 신흠(申欽)이 남겼다. 

 

'오동은 천년을 늙어가면서 항상 가락을 잃지않고(桐千年老恒藏曲), 매화는 평생을 춥게 살아도 향기를 팔지않는다(梅一生寒不賣香). 달은 천번을 이지러져도 본질이 남아있고(月到千虧餘本質), 버들은 백번을 꺽여도 새가지가 올라온다(柳經百別又新枝).'

 

 

 매화처럼 고결한 사랑을 한 분은 누구일까. 퇴계선생 48세에 부인과 아들을 잃고 단양군수로 부임했다. 거기서 관기 두향(杜香)을 만났는데, 방면 18세이던 두향은 매화같이 깨끗한 살결에 옥같은 자태를 지닌 빙기옥골(氷肌玉骨)이고, 시문과 가야금에 능했다고 한다. 선생의 선비다운 모습을 존경하여 매화를 선물한 것이 계기였다고 한다. 두 사람은 같이 매화의 품격을 논하고, 매화시를 교환하곤 했는데, 퇴계선생이 9개월 후 풍기군수로 떠났다고 한다.  


'이별이 하도 서러워 잔 들고 슬피 울제, 어느듯 술 다하고 님마져 가는구나. 꽃 지고 새 우는 봄날을 어이할까 하노라.'

 

 그때 두향이 이 시를 읊고, 석 두 점과 매화 분재 한 점을 선생에게 선물했다고 한다. 야속한 운명을 원망하던 두향은 매화보다 향기롭던 두 눈에 이슬이 맺혀있었을 것다. 선생은 그 매화를 공조판서, 예조판서 등의 관직을 거쳐 69세에 고향 안동에 돌아와서 임종할 때까지 21년간 곁에 두고 끔찍이 아꼈다고 한다. 그동안 선생은 매화시첩(梅花詩帖) 만들어 거기 91수의 매화시를 남겼다고 한다.

 '누렇게 바랜 예 책에서 성현을 대하며, 비어있는 방안에 초연히 앉았노라. 매화 핀 창가에서 봄소식을 다시 보니, 거문고 마주 앉아 줄 끊겼다 한탄마라.'

인편으로 소식을 물어오는 두향에게 이런 시를 보내기도 했다고 한다.

선생은 노후에 병환이 깊어지자 매화에게 자기의 초췌한 모습을 보이기 민망하다며, 화분을 다른 방에 옮기라고 했다고 한다. 임종시에는 '매화에 물을 주라'는 말을 잊지 않았다고 한다. 두향은 남한강변에 움막을 치고 평생 선생을 그리며 살다가, 부음을 접하자 4일간을 걸어서 안동을 방문하고 돌아와, 곡기를 끊고 강에 몸을 던져 생을 마감했다고 한다. 매화처럼 향기로운 두향의 처신이다.

 두향은 매화의 혼이었던지 모른다. 인생이 한 편의 시라면, 두 분처럼 매화처럼 향기로운 사랑을 나눈 분도 없다. 가히 만고청향(萬古淸香)이라 칭하지 않을 수 없다. 나는 동서고금을 통하여 이처럼 그윽한 사랑 이야기 들은 적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