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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는 더이상 예향이 아닌가(2).

김현거사 2019. 3. 29. 07:10

 

 진주는 더이상 예향이 아닌가(2).


 진주 출신 출향작가 모임으로 남강문학회란 것이 있다. 회원이 3백여명 되고, 그 중에 한국문인협회 고문과 문협 부이사장 역임한 사람이 다섯이다. 매년 '남강문학'이란 책자 내고, 가을에 진주서 출판기념회 연다. 필자는 진주 갈 때마다 진주가 더이상 이래서는 않된다는 아쉬움 매번 느꼈다.

 우선 진주는 왜 문학비 공원 하나 없는가. 진주 작가들 문학비는 전부 딴 동네에 세워져 있다. 동시의 비조로 알려진 최계락 시비는 동래 금강공원에 있고, 전 문교차관 정태수 시조시인 시비와 현 문인협회 고문 이유식 평론가 문학비는 보령 문학공원에 있다. '타임'과 '라이프' 등 외국 잡지에 그 사진이 실리던 박용수 시인 시비는 미천면 밤실마을에 있고, 진주고가 낳은 천재 시인 허유 시비는 고성 남산공원에 있다. 한국 수필의 양대산맥 '수필문학' 이사장 강석호 문학비는 하동 금성면에 있고, 문인협회 부이사장 강희근 시비는 산청 조산공원에 있고, 한국수필가협회 이사장 정목일 시비는 마산 '만날 고개'에 있다. 

 진주는 이런 실정인데 통영은 어떤가. 박경리 기념관 통영 산양읍에 있고, 김춘수 유품전시관 봉평동에 있다. 미륵산에 충청도 출신 정지용 시인 문장비 엉뚱하게 서있으니, 그가 청마 유치환 만나러 통영에 자주 간 이유 때문이다. 열사 옆에 백석 시비가 있으니, 백석이 이화여고 다닌 통영 박경련에게 반해 통영까지 천리길 세 번 발걸음 한 이유 때문이다.  통영 중앙동은 완전 예술의 거리다. 우체국 옆에 빨간 우체통과 나란히 청마 유치환의 흉상과 '향수' 시비가 있다. 이곳은 유치환이 여류시인 이영도와 지인들에게 5천여통 편지를 보낸 곳이라고, 청마우체국으로 개명하자는 이야기가 있었다. 그 옆에 '초정 김상옥 거리'란 표석이 있다. '이 길은 통영이 낳은 시조시인 김상옥 선생의 생가(항남동 64번지)가 있는 곳입니다. 이 거리를 특색있는 문화공간으로 조성하기 위해 '항남 1번가'와 '초정거리'를 함께 쓰기로 하였습니다'라고 새겨져 있다. 이 일대는 유치환의 동상과 '행복'과 '향수' 시비, 김상옥 '사향' 시비, 박경리 '사마천' 시비, 김상옥 시조 '봉선화' 동판 벽면, 김상옥 생가 터 표지, 김춘수 '꽃' 육필 시비가 몰려있다.

 대구는 어떤가. 시티투어 버스가 관광객을 '청라언덕'으로 안내한다. '봄의 교향악이 울려퍼지는 청라언덕 위에 백합 필 적에...'. '청라언덕'이란 이름은 원래 서양 기독교 선교사들이 담에 푸른 담쟁이를 많이 심어 그리 붙여졌다. 대구의 몽마르트라 불리는 이 언덕에 안내판 세워져 있다. '이 노래는 박태준이 계성고 다닐 때 등하교 길에서 짝사랑한 언덕 아래 신명고 여학생 이야기를 경남의 한 고교에 같이 근무하던 동료 이은상에게 말하여 그가 노랫말 쓰고, 박태준이 곡을 썼다'고 적혀있다.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이상화가 살던 생가가 있고, 고종 때 국채보상운동을 주장한 서상돈 고택이 있다. 대구문화원은 매주 토.일요일 10명 이상 신청하면, '대구문학 로드'라 해서, 8명의 전문해설사가 1920년 이후 출판인쇄소, 예술인이 모이던 다방, 옛거리, 이상화, 이육사, 현진건 등 문인의 생가 및 고택을 해설해주는 프로그램이 있다.

 반면 진주는 어떠한가. 진주는 1949년 당시 경남일보 사장이던 설창수 시인이 우리나라 지방 예술제 효시 영남예술제(현 개천예술제)를 개최, 한때 전국 최고 예향으로 이름났었다. 제주도, 마산, 삼천포 등지의 문학 청년이 운집하여 많은 문인을 배출했다. 당시 영남예술제에 참가했던 영덕의 한 언론인은 8순을 넘긴 지금도 그때 친구가 그리워 남강문학회 모임에 참석하고 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떠한가. 더 이상 예향이기를 포기한듯 싶다.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 변영로의 '논개' 와 설창수의 '의랑 논개' 시비는 촉석루 옆에 있다는데 잘 보이지 않고, 파성의 흉상은 배건너 망경동에 있다. 최계략과 이형기 시비는 신안동 녹지공원에, 박경리 문학비는 진주여고, 남인수 노래비는 진양호에 뚝뚝 흩어져 있다. 이래서야 누가 진주에 가서 예향의 냄새라도 맡아보겠는가.

 필자는 작년에 진주교 옆에 새 공원 만든다는 소식을 듣고, 이제는 되었다 싶었다. 그래 시에 의견을 타진해보았다. 새 공원에 설창수, 박재삼, 이현기 시비와 현재 타지역에 문학비 세운 작가 등 20여기 쯤 문학비를 집중적으로 세우면 어떤지. 남인수 손목인 이재호 이봉조 정민섭 등 음악인 노래비를 세우면 진주의 인상이 달라지지 않겠느냐. 그 방안 검토해보자고 했다. 그랬더니 답은 노 였다. 사정이야 있겠지만, 이래서야 예향 타령은 물 건너 갔다.

 청동다방을 예로 살펴보자, 거긴 자기 그림 '명성황후'를 피카소의 '게르니카'와 비교했던 국의 피카소 박생광 화백이 살던 살림집 겸 다방이 있었다. 그곳은 6,25 때 친구 화가 이중섭이 손님들이 버리고 간 은박지에 그림을 그린 곳이고, 피난 온 시인 구상이 설창수와 만난 곳이다. 그 청동다방 유적 지금 어디 있는가. 산부인과 병원이 들어서 있다. 도대채 개념이 없다. 송도 해수욕장에 가면 현인 동상이 있고, 코인을 넣으면 '굳세어라 금순아'가 나오는 기계가 있다. 진주는 한국 '가요계의 황제'로 불리운 남인수를 위시한 기라성 같은 음악인 배출했다. 진주는 한국 토롯트의 메카다. 우리나라 가요사에 큰 족적 남긴 그런 분들 초상 세우고, '애수의 소야곡'이나 '밤안개' 나오는 기계 설치하면 어떤가. 그 소리에 메아리가 없다. 현재 진주 근처 소읍인 하동과 남해와 의령은 기금을 만들어 문학상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진주만 없다. 진주는 지리산 정기가 모인 남강이 있고, 남명의 절개를 배운 구슬 같은 인재가 많다. 그러나 지금 진주는 김정희 시인이 자비로 세운 시조문학관과 진주시립 이성자 미술관만 있다. 이 모든 것이 안타깝다. 

 

개천예술제. 유등 유감.  진주의 여류시인   김여정 김정희 정혜옥


  진주는 문향이다. 예술의 도시다. 이미지가 중요하다. 거기 새 공원에 무엇을 세울 것인가? 진주시 관계자가 미리 계획을 시민 앞에 공지하면 어떨까? 우선 새로 만들 공원 이름부터 알고 싶다. 박물관이 선다는데, 그건 현 진주공원 안에 있는 박물관과 중복 아닌가 싶다.

 

 진주는 옛부터 예술의 도시, 역사의 현장, 교육도시로 알려져 왔다.

  

 진주 문인 20여명의 문학비도 파격으로 대거 세우면 좋을 것이다.(설창수 선생부터 현역까지)

남강문학회 고문이며 현 한국문인협회 고문인 이유식의 에세이집 <풍속사로 본 한국문단>에 보면 진주 출신 작가 문학비가 잘 소개되어있다.

이형기(진주 신안동 녹지공원) 강희근(산청읍 조산공원. 금산면 덕의마을) 정목일(마산 만날공원) 강석호(하동 금남면) 이병수(산청 생비량면) 박경리(진주여고) 변영로의 시 <논개>(촉석루 앞) 설창수의 시 <의랑 논개>(촉석루 앞) 최계략의 <해 저문 남강>(신안동 녹지공원) 김기원의 시 <화개동천>(화개면 차문화센터 광장) 허유(고성 공원) 허윤정(산청).

그 모든 비에 대표작을 새겨 새 공원 안에 세우는 것은 어떨까? 예술의 도시다운 면모가 설 것이다.

 

  참고로 고성은 문학비를 20개나 세우고 거기 진고 출신 허유선배님 시비 세웠다. 하동과 남해도 상금 마련하여 매년 문학상 제도 운영하고 있다. 예술의 도시 진주만 없다.

전주는 한옥마을 홍보하려고 매년 한번 관광버스 도착하면 시장이 직접 나와서 관광객에게 차를 대접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