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일의 노래(욕지도에서)

욕지도

김현거사 2019. 3. 1. 17:36

 

 욕지도에서/1


 남해는 노량에서 해협 하나 건너면 되지만, 욕지도는 망망대해 속에 있는 섬이다. 통영에서 출발한 목선  여객선이 한산도 외해로 나가자 탈탈탈 발동기 소리만 내고 가랑잎처럼 흔들린다. 그렇게 한참 가니 노대도와 연화도가 눈 앞에 보아는데, 그게 신기루처럼 아무리 가도 닿지않는다. 여섯 시간만에 욕지도 닿았으니, 요즘 비행기 타고 일본 가는 것보다 멀다. 

제비집처럼 작은 집이 암벽에 붙어있는 상노대 하노대 지나자, '비 내리는 삼천포에 부산 배는 떠나간다.' 배는 갑자기 은방울 자매의 '삼천포 아가씨' 틀고, 먼 길 달려온 위세라도 부리듯 부웅부웅 뱃고동 울린다. 섬과 육지 잇는 꾀쬐쬐한 목선이 이때처럼 당당할 수 없다. 

 바다가 산속으로 호수처럼 들어간 곳에 부두가 있다. 상록수림 덮힌 동항리 부둣가는 이국적이다. 목로주점 아가씨가 화장 하지않은 부시시한 얼굴로 담배 물고 길에 어슬렁 거린다. 옛날 파시(波市) 한창이던 시절 이들이 뱃사람 상대했을 것이다. 파시의 아가씨는 갈매기 같다. 젊음도 가고, 건강도 상하고, 기둥서방마져 외면한 도시 창녀가 마지막 닿는 곳이 섬이다. 여인이 피우는 담배연기와 술잔에 어리는 실존의 애잔함을 찾아가면 보겠구나 싶었다. 오감도(烏瞰圖) 시인 이상(李箱)이 사랑한 금홍이도 저랬을 것이다. 몸서리칠만한 애수와 고독이 있을 것이다. 

  파도 넘실거리는 석축에 새카만 물개 새끼같은 아이들이 훌치기 낚시 하고 있다. 납뭉치에 큰 낚시 셋 달린 걸 바다에 던져놓고 줄을 잡아채고 있다. 미끼는 없다. 숭어철이라 물 속에 떼숭어 다니는게 보인다.나가던 숭어 배나 등이나 꼬리가 걸린다. 간혹 어떤 놈이 공중으로 이 미터 쯤 점프한다. 점프하고 철퍼덕 떨어지는 이유는 모르지만, 하여튼 놈이 슈벨트의 가곡 '숭어' 주인공이다. 옆에서 놀던 꼬맹이 하나가 갑자기 팽팽한 줄을 당기는데 아이보다 숭어가 힘이 센 모양이다. 한참 싱갱이하다 끌어낸 펄떡거리는 놈이 사십 센치 쯤 된다. 보리철에 참기름 발라 말린 숭어 어란(魚卵)은 일본에 수출하는 고급품 된다고 한다.

 아무래도 목로주점 근처는 곤란하겠다 싶어 동네 끄터머리 '자부랑깨'란 곳에 숙소를 정했다. 안주인은 집 옆에 선 큰 느티나무처럼 홀로 살고있었다. 손이 푸짐해 두터운 도다리 구이와 손바닥만한 삶은 홍합 상에 올려준다. 앞에 숲으로 덮힌 동그란 작은 섬이 있고, 옆에 옥동초등학교가 있었다.



 

어부사시사/2


 초등학교가 참 맘에 들었다. 운동장 축대 밑이 바로 바다다. 점심 시간에 아이들은 철봉대에 옷 걸어놓고, 차던 공 던져두고, 축대에서 풍덩풍덩 개구리처럼 물로 뛰어든다. 떠들며 들락날락 따이빙 하다가, 종 치면 교실로 들어갔다. 낙원의 학교 같다. 손으로 조개 잡고, 물장구 치고, 따이빙 하고, 운동장에서 낚시 던져 전어 망둥어 잡는 학교가 어디 있는가. 나는 아이들에게 씨름과 철봉 기술을 가르켜 주어, 아이들은 나만 보면 우르르 몰려온다. 그들이 좌우 중심 흔들다가 쏠리는 쪽 발목 걷어차는 씨름 기술,  배를 힘껒 앞으로 내밀며 나갔다가, 돌아오는 반동으로 무릎을 가슴쪽에 당겼다가 다리 쭈욱 뻗으면서 차올리는 철봉 '케라가리' 기술을 누구한테서 배우겠는가. 

 타골의 '바닷가'란 시가 있다.

'무한한 세계의 바닷가에 어린이들이 모여 외치고 춤을 춥니다. 어린이들은 모래로 집을 짓고, 조개껍질로 놀이를 합니다. 나무잎으로 배를 만들어 웃으며 넓은 바다에 띄웁니다. 진주잡이는 진주를 찾아 물 속에 뛰어들고, 장사꾼은 물건을 팔러 항해를 떠납니다. 그러나  어린이들은 돌을 주어모았다가 흩어버립니다. 물결은 아기의 요람을 흔드는 어머니와 같습니다. 알지못하는 노래를 부릅니다. 바다는 어린이와 더불어 놉니다. 무한한 세계의 바닷가에 어린이들이 모여 놀고있습니다.'

 타골의 시 같은 그곳에 나는 집에 뗀마 있는 아이가 있음을 알았다. 누가 뗀마 가져올 수 있느냐고 묻자 너도나도 지원한다. 

 어느날 바다로 나갔다. 섬아이는 자기 키 보다 긴 노를 어슬프지만 잘 젔는다. 바위는 홍합으로 까맣게 덮혀있다. 제사 때 탕수국에 넣는 말린 홍합 '합자'는 귀한 것인데, 여긴 지천으로 널린게 홍합이다. 

뗀마 타고 섬 한쪽으로 돌아가자 물이 그렇게 투명할 수 없다. 파도에 일렁거리는 미역과 톳나물이 선명히 보인다. 물속에도 땅 위처럼 산과 계곡이 있다. 그 아름답고 신비로운 물 속에 헤아릴 수 없을만큼 많은 치어들이 떼 지어 유영한다. 갑자기 마쓰게임 하듯 확 방향 바꾸면 등지느러미 날카로운 우럭, 금비늘 뻔쩍이는 도미 등 큰 고기 나타난다. 욕지도는 이런 엄청난 치어떼 덕분에 어족 고갈 걱정 없다.

 아이들은 나에게 잘 보이려고 눈치 본다. 하나는 노 젖고, 하나는 장대를 물속에 넣어 끝에 달린 창으로 먹을 걸 찔러 올린다. 아이들은 수경으로 물 밑 소라나 해삼을 잘 구별한다. 흙덩이처럼 보이는 물체를 창질하여 올리면 문어다. 아이 하나는 연신 찔러올린 멍게나 해삼 손질한다. 칼로 잘라 바닷물에 휑군 후 내 앞에 내놓는다. 하나는 초고추장 대령한다. 아이들은 내가 만족한지 아닌지 연신 내 얼굴 쳐다본다.

'우는 것이 뻐꾸긴가 푸른 것이 버들숲가. 어촌 두어집이 냇속에 나락들락, 말가한 깊은 소에 온갖 고기 뛰노나다. 연 잎에 밥 싸두고 반찬으란 장만마라. 청약립(靑蒻笠)은 써 있노라, 녹사의(綠蓑衣) 가져오랴. 무심한 백구는 내 좆는가. 제 좆는가.'

 내 할 일은 윤선도의 어부사시사 읊을 일 밖에 없다. 충성스런 어린 부하 데리고 이틀에 한번씩 바다로 나갔다. 


 

고래상어 잡으러/3


 어느 날 고래상어 잡으러 나갔다. '아저씨! 빨리 나와보세요. 물치 잡아왔어요.' 떠들썩한 소리에 나가봤더니, 학교 밑 백사장에 고래 한마리가 나자빠져 있다. 길이 십 미터, 높이 내 키만하다. 물치는 고래인가. 상어인가. 원 이름은 고래상어지만, 부산 지방에서 물치라 부른다. 상어처럼 주둥이가 삐죽하고 잇빨 날카롭지 않고, 몸 전체 생김새가 고래처럼 둥구스럼하다. 주둥이가 크서 그 안에 아이 하나가 얼굴 들이밀고 들어가 뱃속의 생선 꺼내고 있다. 멸치 잡는 정치망 근처에 출몰하는데, 거대한 큰 입으로 물과 플랑크톤을 마신 다음, 플랑크톤 섭취한다고 한다. '백경'의 에이하브 선장이 머리에 떠올랐다. '옳치! 다음에 물치 잡으러 갈 때 나도 따라 가야지. 어디서 그런 경험 해보겠는가.' 그래 선주에게 부탁하니, '그라소!' 쉽게 승락한다.

 오월 어느 날 연락이 와서 통통선 타고 바다로 한참 나가니, 저멀리 멸치 포식한 물치 몇마리가 보인다. 따뜻한 초여름 수면에 등을 내놓고 한가롭게 잠 자고 있다. 뱃사람들이 배를 옆에 대도 가만 있다. '이 놈이 크다', '아니다 저 놈이다.' 대작대기로 몸을 이리저리 찝적거려도 잠만 잔다. 물치가 순하다곤 하지만 덩치가 고래인데, 이래도 되나 싶다. 포경선 피쿼드 호 선장 에이하브는 모비딕에게 한쪽 다리 잃고 고래 뼈 의족을 하고 거대한 흰고래를 추적하여 작살을 던지지만, 결국 작살 밧줄에 목이 감겨 끌려가고, 성난 모비딕은 피커드 호를 들이받아 박살낸다. 화자인 이스마엘만 다른 배에 구조되고, 그를 제외한 전원이 전멸했다. 그런데 욕지도 물치는 순해도 너무 순하다. 그냥 꿈속에만 헤매고, 선원들이 잡을 놈 정하자, 선장이 배 이물을 물치 머리와 나란히 놓았다. 뱃머리를 놈의 머리가 나란히 해놓지 않으면 창 맞고 물치가 갑자기 달리면 배가 뒤집힌다고 한다. '총각도 힘 좀 쓰것는데, 창 하나 잡으소' 선장이 나한테도 창 하나 준다. 사람 키만한 철근 끝에 로프 매단 것이다. 

'하나 둘 셋!' 세 사람이 동시에 던졌다. 내 창은 물치 몸 속으로 푸욱 일 미터 쯤 들어간다. 잠자다가 몸에 창을 받은 물치는 한번 느리게 꿈틀 하더니, 쏜살같이 달리기 시작했다. 덜컹! 배는 충격을 받으며 끌려가는데, 물결이 고물 좌우로 쫘악 갈라지고, 바람은 획획 뱃전에 물보라 일으킨다. 엄청난 속도로 남쪽으로 달리길래 '이러다 혹시 이놈이 일본으로 가는 거 아니냐?' 싶은 생각도 들었다. 성난 모비딕은 자기를 공격한 피쿼드 호를 들이받아 박살내었다. '혹시 저놈이 물 속으로 들어가면 어쩌나?' 싶기도 했다. 헤엄에 자신 없는 나는 망망대해에서 물에 빠질 생각만 해도 오금이 저렸다. 그러나 입에 담배 문 선장은 태연했다. 한참 지나서 갑자기 키를 물 밑에 깊숙이 내리자, 배는 시퍼런 물살을 일으키며 버팅긴다. 그순간 등에 창이 박힌 물치가 아픈 모양이다. 갑자기 가던 방향을 획 튼다. 이렇게 키를 내리면 물치가 방향을 틀고, 키 내리면 또 틀고, 십여분 간격으로 몇 분 반복하자, 어느새 물보라 일으키며 달리던 물치가 힘 빠진 모양 역력하다. 꼬리 슬슬 흔들며 가는 둥 마는 둥 가더니 끝내 그 자리에 선다. 그때 선장이 뭉컬 매연 내뿜으며 시동을 걸고 배를 후진 시키자, 그 큰 물치가 꼬리를 헤우며 배를 따라온다. 싸움이 끝난 것이다. 졸이던 가슴 그제사 풀었다. 인간이 영물이다. 울산 태화강 지류 반구대 바위에 새긴 암각화에, 인간이 신석기시대부터 고래잡이 한 그림이 있다. 거기 호랑이, 사슴, 거북, 물고기, 사람 조각도 있다.

 물치는 화장품 회사가 백만원 정도 값으로 사간다고 한다. 섬에 돌아오자, 포구에 구경꾼 가득히 모여있다. 배는 대나무 끝에 붉은 깃발 올리고, 쾡가리패 태워 북과 장고 치며 포구를 천천히 돌았다. 


 

유토피아 같은 곳/4


 토마스 무어경(卿)은 자신이 저술한 책에서 'Utopia'란 섬이 브라질과 인도 사이 어느 지점에 실재한다고 주장했다. 프란시스 베이컨은 'New Atlantis'란 이상향이 South sea(남해)에 있다고 주장했다. 성경의 유토피아는 에덴동산과 신예루살렘 사이 어딘가에 있다 했다. 거기 성곽 기초석은 벽옥, 남보석, 녹보석, 홍마노, 청옥, 자수정으로 이뤄졌다고 했다. 중국에도 유토피아 사상 있다. 죽림에 모여 청담(淸談) 주고받은 완적(阮籍), 혜강(嵆康), 산도(山濤), 상수(向秀), 유령(劉伶), 완함(阮咸), 왕융(王戎) 등 죽림칠현(竹林七賢)의 사상이 그것이다. 우리나라도 그런 사상 있다. 고려가 망한 후 72인이 은거한 경기도와 강원도 사이에 있는 광덕산 기슭 두문동(杜門洞)이 그런 데고,  예천 금당실, 안동 화곡, 운봉의 향촌, 영월 동쪽 강 상류, 가야산 만수동, 부안 호암, 봉화 동촌, 속리산 사증항 등 풍수가들이 말하는 십승지지(十勝之地)가 그런 데다.

 나는 쑈펜하우엘 같은 염세 사상가 때문에 친구를 잃고 홀로 바닷가를 헤매면서, 유토피아를 찾아가고 싶었다. 서울로 돌아갈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한번은 동네 끄터머리에서 북쪽 바닷가로 난 오솔길을 발견하고 한없이 따라가보았다.

 도연명의 도화원기(桃花源記)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진(晉)나라 태원(太元) 연간에 무릉 사람으로 고기잡이를 업(業)으로 삼는 사람이 있었다. 하루는 물길을 따라 나섰다가 얼마나 왔는지 모를 무렵, 갑자기 복숭아꽃이 만발한 도화림(桃花林)이 눈앞에 나타났다. 냇물을 끼고 양편 기슭 수백 보의 땅에, 다른 나무는 한 그루도 없고, 향기로운 풀들이 싱싱하고 아름답게 자라며, 복숭아 꽃잎이 바람에 어지러이 날릴 뿐이었다. 어부는 계속 앞으로 나아가 복숭아 숲 끝에 무엇이 있는지 알고 싶었다. 숲은 냇물이 처음 시작되는 곳에서 끝났고, 그 곳에 산이 하나 있었다. 산에 작은 동굴이 있었는데, 그 곳에서 빛이 새어나오는 것 같았다. 어부는 배를 버리고 동굴로 들어갔다. 수십 보 나아가자 갑자기 앞이 탁 트이고 넓어졌다. 집들과 기름진 전답과 아름다운 연못, 뽕밭과 대나무밭이 있었다. 마을에서 농사 짓는 남녀의 옷차림은 다른 세상 사람들 옷차림 같았고, 노인들과 아이들은 모두 안락하게 보였다. 나중에 어부는 그 마을을 나와 버려 두었던 배를 타고 돌아오면서 곳곳에 표시를 해두었다. 태수를 찾아가 자신이 겪었던 일을 이야기 했고, 태수는 사람을 보내어, 어부가 표를 해 놓은 곳을 따라가 그 곳을 찾게 했으나, 도화원 가는 길을 찾지 못했다.'

 나는 오솔길이 나를 그런 땅으로 데려갔으면 싶었다. 길은 처음에는 솔잎 수북히 쌓인 소나무 밑으로 나 있었다. 산굽이 돌아가자 들리는 건 쏴아쏴아 키 넘게 자란 솔숲 바람소리다. 땅 위로 나온 소나무 뿌리는 이끼와 버섯과 고사리로 덮혀있고, 수북히 쌓인 솔잎은 흙으로 변하고 있다. 보이는 건 소나무 위 푸른 하늘 뿐이다. 산 속의 고요는 익숙하지 않은 사람에게 무섬증을 준다. 흙 위의 작은 구멍에서 나온 멧새가 은구슬 같은 목소리로 울고, 어디서 나타난 다람쥐 입을 오물거리며 까만 눈으로 나를 쳐다본다. 물소리 들려오면 산이 더 적막해진다. 작은 실개천과 폭포 만났다. 젖은 모래에 싱싱한 억새 자라고, 몇 촉 춘란도 피어있다. 너무나 빛이 고운 파란 물총새는 가지 끝에서 총알같이 물로 날라가 피래미 사냥한다. 바스락 낙옆 구르는 소리 사람 놀라게 한다. 아무도 모르는 작은 낙원이다. 거기서 한참 놀다가 반나절 더 걸어가서 닿은 곳이 와촌이란 동네다.

 여인들만 사는 동네였다. 남자들은 배 타고 나가 일년에 한 두번 집에 온다고 한다. 여인은 늙었거나 젊었거나가 문제 아니다. 젊은 총각 보자 모두 반색한다. 밥 먹었냐고 묻고, 제각기 자기 집에서 뭘 하나씩 들고온다. 소라니 문어니 하는 것들인데, 팔려고 말려놓은 가장 좋은 것이다. 나는 갑자기 한무리 물개 거느린 숫 물개가 된 느낌이다. 중인환시 속에 메고 간 트란지스터 트니, '섬마을 선생님' 주제가 나온다. '해당화 피고지는 섬 마을에, 철새 따라 찾아온 총각선생님.' 그 당시 인끼리에 진행되던 연속극 주제가다. 모두가 트랜지스터 처음 본듯 신기하게 쳐다보는데, 한 사람 예외가 있다. 젊고 수줍은 섬마을 여선생이다. 그를 따라가 교실에서 풍금 소리 들었다. 이미자 노래 아니라도 그리움 별처럼 쌓이는 바닷가다. 자기 부친이 삼천포 모 은행 지점장이라고 했다. 나도 자기와 함께 거기서 아이들 가르치고 살 의향이 없느냐고 물었다. 그런 섬마을 오지 동네는 고졸이면 자동으로 교사 자격증 나온다. 청춘은 이런 것이다. 거기서 섬 아이들에게 철봉과 씨름을 가르치며 살아볼까 하는 생각했다. '넓고 넓은 바닷가에 오막살이 집 한 채.' 혼자 산길 돌아오며 그런 노래 불렀다.


 내가 만난 절세미인/5


  파도 발 밑으로 밀려오던 동항리 하숙집 아주머니 때문에 그의 고향 풀이섬 가서 이 세상 최고 미인 만났다. 삼십대 초반 주인 아주머니는 욕지도에선 보기 드믄 미인인데, 내가 대학생인걸 알자, 허구헌날 풀이섬 같이 가보자고 노래를 불렀다. 욕지도 사람들이 초도(草島) 혹은 풀이섬이라 부르던 그 섬이 아주머니 고향이었다. 하도 경치 좋다며 가자고 보채는 바람에 둘이 갔는데, 뗀마가 포구 벗어나 큰 바다 나가니 한 잎 가랑잎 이다. 집채만한 파도에 이리저리 밀리는 품이 금방 뒤집어지는 것 같다. 나는 대학 시절 미식축구 선수라, 동대문운동장에서 시합도 해봤고, 은근히 덩치 자랑도 하고다녔다. 그런데 육지 남자 건장해도 소용없다. 엄청난 파도에 배가 산기슭 같은 물결 위에 두둥실 뜨자, 나는 한번 그 물 속에 쳐박히면 흔적도 못찾겠다 싶어, 그만 두 손으로 뱃전을 바짝 움켜잡고 얼굴이 하얗게 질려버리고 말았다. 그러나 섬여인은 달랐다. 보기에 연약하기만 한 그 손으로 파도 속을 태연히 노 젖는다. 거기가 섬과 섬 사이라 조류가 급하다고 일러준다. 

 이렇게 아슬아슬하게 파도를 넘어 도착한 곳이 풀이섬이다. 배가 닿은 곳이 자갈로 덮힌 둥그런 만(灣)인데, 물이 유리알처럼 투명하다. 물 밑에 헤엄치는 팔뚝만한 고기와 바닥의 멍게나 소라가 훤히 내려다보인다. 너무나 신기하다. 나는 전에 '수정같은 맑은 물(Christal water)'이란 표현이 문학적 수식어인 줄만 알았다. 그러나 실제로 그런 곳이 있었다. '그리운 카프리에 섬나라에, 아름다운 꽃들이 만발하고, 수정처럼 맑은 바닷가에 처녀들 미소가 풍기네.'라는 노래 가사가 바로 풀이섬을 말하는듯 싶었다. 

 빈 배 하나 파도에 몸을 맡긴채 흔들리고, 바람은 부드럽고 공기는 신선했다. 물끼 머금은 영롱한 자갈은 자르르 소리 내면서 파도에 씻기고 있었다. 사람은 아무도 보이질 않았다. 거기 보석 같은 자갈밭 뒤는 언덕이고, 큰 동백나무가 많아 숲에 떨어진 낙화가 붉은 카펫을 깐 것처럼 보였다. 고갱이 만난 타이티 풍경이 이랬을 것이다. 화가가 거친 텃치로 땅에 마구 붉은 물감을 잔뜩 칠해놓은듯 싶었다.  

 

   

 섬에 집은 서너 채가 전부였다. 저마다 커다란 동백나무 팽나무 밑에 있는데 담도 없다.

  아줌마네 집이 그 꼭대기에 있었다. 앵두가 붉게 익은 장독대 옆에 매여있던 소가 사람 기척을 듣고 고개를 들자 딸랑! 목에 걸린 방울소리가 정적을 깬다. 싱싱한 호박줄기는 소리없이 지붕 위로 뻗어가고 있다.  

'있나?'

언니가 소리치자

'언니야!'

진흙벽에 달린 방문이 열리더니, 동생이 나온다. 마당에 선 동생은 까무잡잡한 피부에 늘씬한 몸매, 가늘고 짙은 눈섶이, '고독'이란 영화에 나왔던 엘리자벹 태일러 보다 미인이다. 천부적인 남국의 미녀로, 바람에 날리는 삼단같은 머리결이 너무나 곱다. '듀마휴이스'의 소설 여주인공 '춘희'가 저랬겠다 싶다. 주변에 동백꽃 지천으로 피었겠다, 귓가에 동백꽃만 꽂으면 그대로 동백나무 춘(椿), 계집 희(姬), '춘희'다. 시가 떠올랐다.

 '태양이 쓰다듬어주는 향기로운 나라에서, 나 알았었나니, 남모를 매력 지닌 식민지 태생의 한 부인을’에서 시작되어, ‘마담, 그대 만일 영광의 쎄느강이나, 푸른 르와르강가로 가신다면, 고풍의 성을 아름다이 함직도 한 미녀’로 끝나는 보들레르의 '식민지 태생의 한 부인에게'란 시다.


 

 언니와 미리 말이 있었던 모양이다. 나를 의식한 처녀 얼굴 복숭아꽃 보다 더 붉어진다.

‘아부지는?'

언니가 묻자,

'밀감나무 심으러 산에 갔다.'

동생이 대답했다.

 

 언니는 '아부지 보고 오께.' 한마듸 말 남기고 산에 가더니, 하루 종일 돌아오지 않았다.

마치 흘레 부칠려고 암말한테 종마 데려온 것 같았다. 언니가 노랠 부르며 풀이섬 가자고 한 이유가 거기 있었다.

 

 빈집에서 처녀와 나는 할 일이 없다. 나는 마당가에 날고있는 고추잠자리만 보고 있고, 그는 저만치 있는 말못하는 누룽이 황소만 보고 있었다.

 시선을 피하는 처녀는 천상 사슴이었다. 산에서 나무하고, 바다에서 뗀마 젖고 고기 잡아 그런가. 자맥질하고 미역 뜯어 그런가. 몸매가 야생 사슴처럼 늘씬했다. 눈망울은 사슴처럼 맑다.

 그가 바가지로 볏짚을 퍼주니, 소가 코뚜레 위로 혀를 낼름 내밀어 손을 햟는다.

 '소가 몇 살 짜리요?'

 내가 말을 걸자,

'..... .... .... ....'

 처녀는 늦가을 감나무 가지에 매달린 서리 맞은 홍시가 된다.

 

 수줍음이란 얼마나 아름다운 것인가. 계산된 교태와 수줍음의 차이는 인공과 자연의 차이만큼 크다. 나는 동백꽃같이 아름다운 그에게 동박새처럼 날개 퍼덕이며 힘차게 날아가고 싶었다.

 

 그러고 얼마 쯤 있었던지 모르겠다. 손바닥만한 쪽마루 저편에 어색하게 앉았던 처녀가 부얶에서 불을 붙인 모양이다. 마당 낮으막한 굴뚝에서 연기가 나더니 청솔가지 태운 알싸한 냄새가 코에 닿는다.

 잠시 달거락거리는 소리 나더니 처녀가 개다리 밥상에 뭘 얹어 내 앞에 놓는다. 이것이 내가 평생 처음 받아본 한 처녀가 오로지 한 총각을 위해서 차려준 밥상이다.

 상 위엔 돌나물 한 접시, 간장 한 종지, 고구마 몇개 담긴 소쿠리만 달랑 놓여있었다. 욕지도는 주식이 고구마라 밥은 없었다.

 

 식사 후 한참 옛날에 보던 날개 달린 사자가 그려진 비사표(飛獅標) 통성냥에서 성냥을 꺼내 담배불 을 부쳤다. 처녀가 하얀 대접에 찰랑찰랑 물을 떠와서 조심스레 내 옆에 놓더니, 저만치 떨어져 쪽마루 끝에 앉는다. 내외는 하지만 아예 가버리진 않는다.

'저 꽃 이름은 뭐라꼬 합니까?'

 말을 걸어보니, 처녀는 오직 얼굴만 붉힌다.  

사실 그 나무는 유도화(柳桃花)다. 잎은 버들같고 꽃은 복숭아꽃 같다.

처녀가 버들보다 복숭아꽃 보다 더 곱다는 생각이 들었다.

 

'같이 식사라도 하지 그래요?'

 억지로 또 말을 거니 이번에는 후따닥 놀래서 뒤뜰로 달아나 버린다. 영판 사슴이다. 쳐다만 봐도 시선을 피하고,  말만 걸면 달아난다.

 인적 없는 마당엔 숲매미만 울고, 지붕 덮은 감나무는 시퍼런 감만 주렁주렁 달았다.

 

 박목월의 시를 속으로 외워보았다.

 

 산이 날 에워싸고 씨나 뿌리고 살아라한다. 밭이나 갈고 살아라한다. 어느 산자락에 집을 모아 아들 낳고, 흙담 안팍에 호박 심고, 들찔레처럼 살아라한다. 쑥대밭처럼 살아라한다. 산이 날 에워싸고, 그믐달처럼 사위어지는 목슴, 구름처럼 살아라한다. 바람처럼 살아라한다.

 

 아주 이 처녀와 여기서 들찔레처럼 살아볼까 하는 생각이 들지않는 것 아니었다. 그는 도시의 그 어느 처녀도 비교할 수 없는 천하절색이다.

 

 아버지와 언니는 일부러 점심을 굶었는지, 해거름에사 내려왔다.

'면에서 밀감나무를 거저 심으라고 보내줘서.'

노인이 변명 비슷한 말을 했고,

'제주도는 밀감나무 하나만 키우모, 자식 대학공부 시킨다 않캅디꺼? 3년 뒤에는 우리도 밀감 수확합니더.'

언니는 누구 들으라는지 해설을 한다.

당시는 관에서 밀감 재배를 권장하던 때다.

 

 이렇게 풀이섬을 다녀왔다.

 늦게 뗀마 타고 바다로 나올 때 어둠 머금었던 그 진홍빛 물결은 두고두고 잊지못하겠다. 산 위에는 아직도 황금빛 구름이 몇 가닥 남았는데, 어느새 먼 등불은 별처럼 빤짝이기 시작했다. 그 집의 아주까리 장명등일 것이다. 그가 나에게 손짓하는 것 같았다.

 뗀마는 피아노 은반 같은 바다를 노질하며 지나가고, 은파는 왈츠를 추며 끝없이 따라온다. 

 

 장만영의 시가 생각났다.

 

‘순이 벌레 우는 고풍한 뜰에 달빛이 조수처럼 밀려왔구나. 달은 나의 뜰에 고요히 앉았다. 달은 과일보다 향기롭다. 동해 바다물처럼 푸른 가을 밤 포도는 달빛이 스며 곱다. 포도는 달빛을 머금고 익는다. 순이 포도넝쿨 아래 어린 잎새들이 달빛에 젖어 호젓하구나.’

 

 당시 욕지면 전체에 대학을 다닌 사람이 별로 없었다. 거기 군 제대한 스물 세살 청년이, 부산도 아니고 서울서 대학 다닌다는 청년이, 글 쓴다며 원고지와 성경만 들고 나타난 것이다. 아버지와 언니는 아닌 말로 애가 탔을 것이다. 아주 작심하고 내 눈치를 살폈다.

 

 그때 내가 만약 그 처녀와 맺어졌다면, 나는 지금 오렌지 향기 바람에 날리는그  섬의 주인일 것이다. 동백꽃은 해마다 붉은 카펫을 깐듯 해변에 떨어질 것이다. 둘은 낙원의 연인이 되어 손 잡고 그 위를 거닐 것이다. 

 노인이 심었던 밀감나무 모두 누구 것이랴. 그때 만약 내가 마음만 먹었다면, 나는 평생 유토피아에서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천사와 섬에 핀 동백꽃 진달래꽃 할미꽃 친구하고, 우럭 감성돔 친구하고, 소라 조개들과 친구하고 살았을 것이다.

그랬다면 지금 나는 시를 읽을 필요가 없다. 풀이섬 생활 그 자체가 시이기 때문이다.

 

 아! 그러나 사람은 항상 엉뚱한 길로 빠지곤 한다.

 나는 아무 것도 그려지지 않은 Tabula rasa(백지)같은 순진무구한 처녀를 외면하고, 서울로 왔던 것이다. 솔로몬의 영화보다 더 귀한 황야의 백합을 외면하고 50년 전에 나는 서울로 와서는, 평생 생활고에 시달리는 초라한 이름 없는 봉급생활자로 전락했던 것이다.



 자살 충동/6 

이 당시 비로소 나는 인생의 생살에 닿았다. 나는 비로소 내가 잊혀진 사람이란 걸 알았다. 세상에서 잊혀진 사람처럼 비참한 건 없다. 그 전에는 생살을 보호하는 위에 다른 피부가 있었다친구가 자살하여 군에 자원입대한 처음에는 주변에 걱정하는 사람 많았다. 형은 편지를 보냈고, 나는 파도 밀려오는 제3부두 데크에 주차한 GMC 운전대에서 답장을 쓰곤 했다. 남해에 있을 때도 편지가 왔다. 친구들은 철수 자살과 나의 입대, 그리고 섬으로 떠난 일련의 행적을 낭만적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자 나를 잊어버렸고 소식을 끊어버렸다. 이때 비로소 나는 진짜 외롭게 된 것이다. 학교는 제적되어 있었다. 퇴로가 없었다. 고독이 뼈에 사무쳤다. 그 전 나의 절망은 전부 가짜였다. 낭만적 염세주의 였다.

 깊은 밤 혼자 펄럭이는 촛불 앞에서 눈물 흘리며 성경을 읽곤했다. 해무가 짙게 끼면 두 손을 앞으로 벌려도 손 끝이 보이지 않았다. 천지를 구분할 수 없는 그 해변을 무작정 걸어다녔다. 들려오는 것은 끼룩끼룩 우는 갈매기 울음소리와 파도소리 뿐. 잠 자다가 꿈속에서 '종암동 서울역 가요!' 하고 외치던 18번 버스 차장의 목소리를 들은 밤은 혼자 일어나 서러워 울었다.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서울이 그리워 한없이 울었다. 나는 비로소 키엘케골, 쑈펜하우엘, 니체 같은 사상가들의 철학이 엉터리란걸 깨달았다. 지식인의 말잔치에 불과했다. 현학적이지만 실제 상황에선 아무런 약효가 없다.

 어느 날 모종의 결심을 하고 나는 동항리 절벽을 타고 내려갔다. 주머니엔 소주 한 병과 유언장이 들어있었다. 밑엔 출렁이는 바다가 있었다. 중간에 소나무가 있다. 나는 그 소나무에 기대어 소주를 마시고 취해 잠들었다가 떨어질 심산이었다. '운명아 데려가고 싶으면 네 맘대로 데려가라'는 심보였다. 내 시신은 파도 따라 떠다닐 것이다. 유언장은 비닐로 싸서 주머니에 넣어두었다. 사람들은 유서를 읽어본 후 진주로 연락할 것이다.

 그러나 이때도 운명의 여신이 작난을 쳤다. 내가 눈을 뜨자 거기가 저승이 아니었다. 바다는 진홍의 포도주 빛이었다. 해지기 전 구름은 찬란한 황금빛 이었다. 

'천지창조 했나?'

 씨니컬한 생각이 들었다. 자살이 실패한 것이다. 잠버릇 심한 내가 바다에 떨어질 것이라 믿었는데, 소나무를 붙들고 얌전히 깬 것이다. 

'그렇다면야 운명한테 더 이상 굽실거릴 필요 없다. 아직 죽을 때가 아닌가보다. 운명이 날더러 더 살아라면 살아보자.'

 그런 생각을 했다. 나는 죽음이 무섭지 않았다. 나는 마치 백년 인생 다 산 사람 같았다. 마음은 식은 재처럼 싸늘했다. 절벽 위로 올라오니 빤짝이는 별이 보였다. 별을 본 순간 나는 니체의 '초인'을 생각했다. 그리고 서울로 올라온 나는 냉정했다. 사람을 만나지 않았다. 수도승처럼 밥 먹는 시간 잠 자는 시간 빼고 공부만 했다. 더 이상 키엘케골이나 쇼펜하우엘에 관심 두지 않았다. 그런 건 사춘기 아이들 작난이다. 나는 서양철학을 버리고 미친듯이 동양철학을 공부했고 그 후 불교신문 기자가 되었다.

 

 최옥녀란 이름 앞에서 이렇게 깊이 생각에 잠겨있는데 한 여인이 닥아왔다.

'오빠! 옥녀가 철수 오빠 동생인건 알지요?'

정애여사다. 그는 옥녀하고 동기다. 정애는 집이 사천인데, 여고 시절 동생 명애가 우리집에 하숙하여 자주 온 적 있다. 

'알지. 서울 사는 모양이네?' 

'아까 잠깐 보였는데, 집에 간 모양이네요. 남편하고 사별하고 송파에 혼자 살고있습니다.'

'옥녀 밑에 또하나 여동생이 있고, 철웅이라는 남동생도 있었는데?'

'네! 철수 오빠 밑에 철웅이가 있고, 지금 철웅이가 부산서 어머님 모시고 살아요.'

정애가 소식을 잘 안다.

'정애씨도 이젠 칠십 넘었으니 정애여사라고 부릅시다. 정애여사! 옥녀는 내가 죽기 전에 꼭 한번 보고 싶은 사람입니다.'

'오빠가 옥녀한테 그런 맘을 가지고 있었어요?'

'그게 아니고...철수 자살하고 나도 자살한다고 대학 중퇴하고 입대하고, 제대 후도 2년을 섬에서 살았어요. 그동안 옥녀 오빠 노릇 해줘야한단 생각도 많이 했고...해줄 이야기 많고.'

'그럼 오빠가 옥녀를 한번 보고싶긴 하겠다.'

'그래서 정애여사한테 부탁인데, 한번 자릴 만들어 주면 어떨까?'

'내가 죽전역 근처에 자리 만들어 볼께요.'

 정애여사는 만사 똑똑한 여자다. 그런데 소식이 없다. 혹시 옥녀가 아직도 날 원망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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