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일의 노래(욕지도에서)

내가 만난 절세미인/5

김현거사 2019. 3. 24. 07:16

   내가 만난 절세미인/5


  내가 하숙했던 집 아주머니는 욕지도 사람들이 초도(草島) 혹은 풀이섬이라 부르던 섬이 고향이다. 허구헌날 풀이섬 경치 좋다고 한번 가보자고 노래를 불렀다. 그래 어느 날 둘이 같이 갔는데, 거기서 나는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처녀를 만났다. 그런데 남자는 미인을 만나려면 항상 모험이 필요한 법이다. 욕지도서 그 섬 가는 길이 보통 길이 아니었다. 뗀마가 포구를 벗어나 한바다로 나오자, 거긴 파도가 거대한 산줄기 같다. 배는 한 잎 가랑잎이 되어 산을 올라갔다 내려갔다 한다. 올라가면 산 위에 있는 것 같고, 내려가면 골짝 아래 있는 것 같다. 나는 배 타고 그런 높은 파도 위에 올라본 적 없다. 아슬아슬하다. 배가 시퍼런 파도 타고 내려오다 언제 뒤집혀 물 속에 나를 쳐박을지 알수 없다. 나는 대학 시절 미식축구 선수였다. 동대문운동장에서 서울농대, 성대, 한양대, 팀을 연파하고 돌아올 때마다 담당 교수가 학교 운동장에 나와 금일봉 전해주었다. 그러면 그 당시 신상사파니 뭐니 하는 깡패로 유명한 명동을 막걸리 찬가 부르며 스크람 짜고 다녔다. 떼로 종3 음악실 몰려가 덩치값 한다고 어깨에 힘 주고 안하무인으로 놀았고, 군에서도 부산의 지옥대대로 알려진 항만사 229자동차 대대에서 중대열외 였다. 나는 감방 다녀온 사고자들 배려로 단체기압 한번 받은 적 없다. 그러나 그 관록 바다에선 소용없었다. 나는 공포심에 사로잡혀 두 손으로 뱃전 바짝 움켜잡고 얼굴이 하얗게 질려버리고 말았다. 육지 남자는 이렇다. 반면 바다 여인은  반대다.십대 초반 우리 아주머니는 욕지도에선 보기 드믄 미인인데, 그 가날프고 연약한 손목으로 용케도 커다란 노를 저어 파도를  넘어간다. '여기는 섬과 섬 사이라 조류가 급하다'며 날 안심시켜준다. 이렇게 여인 치마폭에 쌓여 아슬아슬하게 도착한 곳이 풀이섬이다. 

 나는 전에 '수정같은 맑은 물(Christal water)'이란 노래 가사가 그냥 문학적 수식어인 줄로만 알았다. 그러나 실제로 그런 곳이 있었다. '그리운 카프리에 섬나라에, 아름다운 꽃들이 만발하고, 수정처럼 맑은 바닷가에 처녀들 미소가 풍기네.'라는 가사는 바로 풀이섬을 읊은듯 싶었다. 둥그런 만(灣)의 바닷물은 유리알처럼 투명하다. 물 속에는 헤엄치고 다니는 팔뚝만한 고기가 보이고, 밑바닥에는 멍게와 소라가 보인다. 바람은 부드럽고 공기는 신선한데, 해변에 빈 배 하나 파도에 몸을 맡긴채 흔들리고 있다. 물끼 머금어 보석처럼 영롱한 자갈은 자르르 자르르 소리 내면서 파도에 씻기고 있다. 언덕에 커다란 동백나무가 많다. 떨어진 동백꽃은 나무 아래 붉은 카펫을 깐 것 같다. 고갱이 만난 타이티 풍경이 이랬을 것이다. 화가가 거친 텃치로 땅에 붉은 물감을 마구 칠한듯 싶다.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동네랄 것은 없는 동네에 집은 동백나무나 팽나무 밑에 뚝뚝 떨어져 서너 채 있는데, 담은 없다. 앵두가 붉게 익은 집이 그 맨 꼭대기 아줌마네 집이었다. 장독대 옆에 매여있던 소가 사람 기척에 고개를 들자, 딸랑! 방울소리가 정적을 깬다. 싱싱한 호박줄기는 소리없이 지붕 위로 뻗어가고 있다.

'있나?'

언니가 묻자,

'언니야!'

동생이 대답한다. 진흙 벽에 달린 방문 열어젖히고 동생이 나왔다. 산에서 나무하고, 갯가에서 조개 캐어 그런가. 뗀마 저어 고기 잡고, 자맥질하여 미역 뜯어 그런가. 처녀는 사슴 같았다. 늘씬한 몸매에, 사람의 시선 피하는 몸짓이 꼭 야생 사슴같다. 바람에 날리는 삼단같은 머리결과 까무잡잡한 피부가 천부적인 남국의 미녀다. '듀마휴이스'의 소설 여주인공 '춘희'가 저랬을 것이다. 주변에 동백꽃 지천이겠다, 귓가에 동백꽃만 꽂으면, 그대로 동백나무 춘(椿), 계집 희(姬), '춘희' 아닌가. '태양이 쓰다듬어주는 향기로운 나라에서, 나 알았었나니, 남모를 매력 지닌 식민지 태생의 한 부인을.’ 보들레르의 '식민지 태생의 한 부인에게'란 시가 생각난다. 

 처녀는 미리 언니와 연통이 있은 모양이다. ‘아부지는?' 언니가 묻고, '밀감나무 심으러 산에 갔다.' 

동생이 대답하자, '아부지 보고 오께.' 언니는 이 말 남기고 산에 가더니, 종일 돌아오지 않았다. 암말 흘레 부칠려고 종마 데려온 것 같았다. 언니가 노랠 부르며 풀이섬 가자고 한 이유가 이것이다.

 빈집에서 처녀 총각 할 말 없었다. 나는 마당가에 날고있는 고추잠자리만 보고 있고, 복숭아꽃처럼 얼굴 붉힌 처녀는 말못하는 누룽이 황소만 보고 있었다. 처녀가 이윽고 바가지로 볏짚을 한옹큼 퍼주니, 소가 코뚜레 위로 혀를 낼름 내밀어 손을 햟는다. '그 소 몇 살 짜리요?' 내가 묻자, 처녀는 늦가을 감나무 가지끝에 매달린 서리 맞은 홍시가 된다. 

 수줍음이란 얼마나 아름다운 것인가. 계산된 교태와 수줍음의 차이는 인공과 자연의 차이만큼 크다. 나는 동백꽃같이 아름다운 처녀에게 동박새처럼 날개 퍼덕이며 힘차게 날아가고 싶었다.

 그러고 얼마나 있었던지 모르겠다. 손바닥만한 쪽마루 저편에 한참 어색하게 앉았던 처녀가 부얶에 들어가더니 불을 붙인 모양이다. 낮으막한 마당 굴뚝에서 연기 나고 청솔가지 태운 알싸한 냄새가 코에 닿는다. 달거락거리는 소리 나더니 조금 뒤 처녀가 개다리 밥상에 뭘 얹어 내 앞에 놓으니, 이것이 내가 한 처녀가 오직 나만을 위해 차려준, 내 인생 최초의 밥상이다. 고구마가 주식인 욕지도라 상엔 고구마 한 소쿠리와 돌나물 한 접시, 간장 한 종지만 달랑 놓여있다. 

 식사 후 대청에 놓인 날개 달린 사자 그려진 비사표(飛獅標) 통성냥 끌어당겨 담배불 부치니, 처녀가 얼른 부얶에 들어가 대접에 물을 떠온다. 찰랑거리는 대접 조심스레 내 옆에 놓고, 저만치 떨어진 쪽마루에 앉는다. 내외한다고 멀찍이 앉은 처녀에게 '저 꽃 이름 뭐라 합니까?' 물어보니, 처녀 얼굴이 유도화처럼 붉어진다. 사실 그 꽃은 유도화(柳桃花)다. 잎은 버들같고 꽃은 복숭아꽃 같은 유도화다. '같이 식사라도 하지 그랬어요?'  뭔가 대화를 해야겠어서 또 말을 부치니, 처녀가 이번에는 후따닥 뒤뜰로 달아난다. 쳐다보면 시선 피하고, 말 걸면 달아나는 모습이 영판 사슴이다. 인적 없는 마당엔 숲매미만 울고, 지붕을 덮은 감나무는 시퍼런 감만 주렁주렁 달았다.

 '산이 날 에워싸고 씨나 뿌리고 살아라한다. 밭이나 갈고 살아라한다. 어느 산자락에 집을 모아 아들 낳고, 흙담 안팍에 호박 심고, 들찔레처럼 살아라한다. 쑥대밭처럼 살아라한다. 산이 날 에워싸고, 그믐달처럼 사위어지는 목슴, 구름처럼 살아라한다. 바람처럼 살아라한다.' 박목월이 이런 시를 썼다. 아주 이 처녀와 여기서 들찔레처럼 살아볼까 하는 생각 들지않는 것 아니었다. 도시의 그 어느 여인이 이처럼 천하절색인가.

 아버지와 언니는 일부러 점심을 굶었을 것이다. 해거름에사 산에서 내려왔다. 

'면에서 밀감나무 심으라고 보내줘서...' 

노인이 변명 비슷한 말을 했고, 

'제주도는 밀감나무 키우모, 자식 대학공부 시킨다 않캅디꺼? 3년 뒤 우리도 밀감 수확합니더.' 

누구 들으라는지 언니는 해설을 한다.

 이렇게 풀이섬을 다녀왔다. 뗀마를 타고 바다로 나오니, 산 위에 아직 금빛 구름 몇 가닥 남았는데, 진홍빛 물결 위에 먼 등불 하나 별처럼 빤짝이기 시작했다. 처녀네 집 아주까리 장명등일 것이다. 나에게 손짓하는 것 같았다.

 ‘순이 벌레 우는 고풍한 뜰에 달빛이 조수처럼 밀려왔구나. 달은 나의 뜰에 고요히 앉았다. 달은 과일보다 향기롭다. 동해 바다물처럼 푸른 가을 밤 포도는 달빛이 스며 곱다. 포도는 달빛을 머금고 익는다. 순이 포도넝쿨 아래 어린 잎새들이 달빛에 젖어 호젓하구나.' 장만영의 시처럼 아름다운 풀이섬 떠날 때, 뗀마는 피아노 은반 같은 바다를 노저으며 가고, 은파는 왈츠를 추며 끝없이 따라왔다.

그때 그 처녀와 맺어졌다면, 지금 나는 시가 필요없을 것이다. 풀이섬 자체가 시이기 때문이다. 노인이 심었던 밀감나무 모두 누구 것이랴. 오렌지 향기는 바람에 날리고, 동백꽃은 해마다 붉은 카펫을 해변에 깔 것이다. 낙원의 연인처럼 두 사람은 그 위를 손 잡고 거닐 것이다. 노인과 언니는 성경과 원고지만 들고 나타난 스물 세 살 청년 때문에 아닌 말로 애간장 탔을 것이다. 작심하고 내 눈치 살폈는데, 그때 내가 마음만 먹었다면 해변의 소라와 전복은 누구 것이랴.  

 아! 그러나 사람은 항상 엉뚱한 길로 빠지곤 한다. 나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천사를 외면하고, Tabula rasa  같은 순진한 처녀를 외면하고는 서울로 올라왔던 것이다. 솔로몬의 영화보다 귀한 황야의 백합을 외면하고, 50년 전에 나는 서울로 와서는 평생 생활고에 시달리는 이름 없는 봉급생활자로 전락했던 것이다.



 왔던 솔로몬 50

 자살 충동/6 

이 당시 비로소 나는 인생의 생살에 닿았다. 나는 비로소 내가 잊혀진 사람이란 걸 알았다. 세상에서 잊혀진 사람처럼 비참한 건 없다. 그 전에는 생살을 보호하는 위에 다른 피부가 있었다친구가 자살하여 군에 자원입대한 처음에는 주변에 걱정하는 사람 많았다. 형은 편지를 보냈고, 나는 파도 밀려오는 제3부두 데크에 주차한 GMC 운전대에서 답장을 쓰곤 했다. 남해에 있을 때도 편지가 왔다. 친구들은 철수 자살과 나의 입대, 그리고 섬으로 떠난 일련의 행적을 낭만적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자 나를 잊어버렸고 소식을 끊어버렸다. 이때 비로소 나는 진짜 외롭게 된 것이다. 학교는 제적되어 있었다. 퇴로가 없었다. 고독이 뼈에 사무쳤다. 그 전 나의 절망은 전부 가짜였다. 낭만적 염세주의 였다.

 깊은 밤 혼자 펄럭이는 촛불 앞에서 눈물 흘리며 성경을 읽곤했다. 해무가 짙게 끼면 두 손을 앞으로 벌려도 손 끝이 보이지 않았다. 천지를 구분할 수 없는 그 해변을 무작정 걸어다녔다. 들려오는 것은 끼룩끼룩 우는 갈매기 울음소리와 파도소리 뿐. 잠 자다가 꿈속에서 '종암동 서울역 가요!' 하고 외치던 18번 버스 차장의 목소리를 들은 밤은 혼자 일어나 서러워 울었다.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서울이 그리워 한없이 울었다. 나는 비로소 키엘케골, 쑈펜하우엘, 니체 같은 사상가들의 철학이 엉터리란걸 깨달았다. 지식인의 말잔치에 불과했다. 현학적이지만 실제 상황에선 아무런 약효가 없다.

 어느 날 모종의 결심을 하고 나는 동항리 절벽을 타고 내려갔다. 주머니엔 소주 한 병과 유언장이 들어있었다. 밑엔 출렁이는 바다가 있었다. 중간에 소나무가 있다. 나는 그 소나무에 기대어 소주를 마시고 취해 잠들었다가 떨어질 심산이었다. '운명아 데려가고 싶으면 네 맘대로 데려가라'는 심보였다. 내 시신은 파도 따라 떠다닐 것이다. 유언장은 비닐로 싸서 주머니에 넣어두었다. 사람들은 유서를 읽어본 후 진주로 연락할 것이다.

 그러나 이때도 운명의 여신이 작난을 쳤다. 내가 눈을 뜨자 거기가 저승이 아니었다. 바다는 진홍의 포도주 빛이었다. 해지기 전 구름은 찬란한 황금빛 이었다. 

'천지창조 했나?'

 씨니컬한 생각이 들었다. 자살이 실패한 것이다. 잠버릇 심한 내가 바다에 떨어질 것이라 믿었는데, 소나무를 붙들고 얌전히 깬 것이다. 

'그렇다면야 운명한테 더 이상 굽실거릴 필요 없다. 아직 죽을 때가 아닌가보다. 운명이 날더러 더 살아라면 살아보자.'

 그런 생각을 했다. 나는 죽음이 무섭지 않았다. 나는 마치 백년 인생 다 산 사람 같았다. 마음은 식은 재처럼 싸늘했다. 절벽 위로 올라오니 빤짝이는 별이 보였다. 별을 본 순간 나는 니체의 '초인'을 생각했다. 그리고 서울로 올라온 나는 냉정했다. 사람을 만나지 않았다. 수도승처럼 밥 먹는 시간 잠 자는 시간 빼고 공부만 했다. 더 이상 키엘케골이나 쇼펜하우엘에 관심 두지 않았다. 그런 건 사춘기 아이들 작난이다. 나는 서양철학을 버리고 미친듯이 동양철학을 공부했고 그 후 불교신문 기자가 되었다.

 

 최옥녀란 이름 앞에서 이렇게 깊이 생각에 잠겨있는데 한 여인이 닥아왔다.

'오빠! 옥녀가 철수 오빠 동생인건 알지요?'

정애여사다. 그는 옥녀하고 동기다. 정애는 집이 사천인데, 여고 시절 동생 명애가 우리집에 하숙하여 자주 온 적 있다. 

'알지. 서울 사는 모양이네?' 

'아까 잠깐 보였는데, 집에 간 모양이네요. 남편하고 사별하고 송파에 혼자 살고있습니다.'

'옥녀 밑에 또하나 여동생이 있고, 철웅이라는 남동생도 있었는데?'

'네! 철수 오빠 밑에 철웅이가 있고, 지금 철웅이가 부산서 어머님 모시고 살아요.'

정애가 소식을 잘 안다.

'정애씨도 이젠 칠십 넘었으니 정애여사라고 부릅시다. 정애여사! 옥녀는 내가 죽기 전에 꼭 한번 보고 싶은 사람입니다.'

'오빠가 옥녀한테 그런 맘을 가지고 있었어요?'

'그게 아니고...철수 자살하고 나도 자살한다고 대학 중퇴하고 입대하고, 제대 후도 2년을 섬에서 살았어요. 그동안 옥녀 오빠 노릇 해줘야한단 생각도 많이 했고...해줄 이야기 많고.'

'그럼 오빠가 옥녀를 한번 보고싶긴 하겠다.'

'그래서 정애여사한테 부탁인데, 한번 자릴 만들어 주면 어떨까?'

'내가 죽전역 근처에 자리 만들어 볼께요.'

 정애여사는 만사 똑똑한 여자다. 그런데 소식이 없다. 혹시 옥녀가 아직도 날 원망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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