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야기

만날 땐 언제나 타인(Strangers When We Meet)

김현거사 2018. 11. 8. 19:51

만날 땐 언제나 타인(Strangers When We Meet)

 

1960

 

래리(커크 다글라스)와 마거릿(킴 노박)은 같은 초등학교를 다니는 아이를 둔 이웃집 학부모이다. 영화의 첫장면은 아이의 등교길에서 래리와 마거릿이 눈이 마주치는 데서 시작된다. 커크 더글라스가 연기하는 건축가 래리 코는 꽤 성공한 건축가이다. 그는 당대 최고의 베스트셀러 작가 로저 아르타의 새 집을 설계중에 있다.

최고의 아티스트와의 만남은 늘 그를 스트레스의 극단으로 몰고가죠.

그에게는 어쩌면 해방구가 필요했을지 모릅니다.

그런 래리의 눈에 마거릿이 들어온 것입니다.

이 영화에서의 킴 노박의 쓸쓸한 눈빛은 여러 갈래로 겹쳐집니다.

마거릿의 남편은 이미 그녀에게 눈길을 거두어버린 지 오래입니다.

그래서 그녀는 늘 공허하고 허전합니다.

래리와 마거릿,두 사람은 천천히 친구가 되어 갑니다.

빅 트리 

 

전쟁이 끝난 후 커크 더글러스는 뉴욕으로 돌아와 라디오나 연극, 광고와 같은 곳에서 일자리를 찾았다. 다행히 <키스 앤 텔>(Kiss and Tell)이라는 작품으로 무대에 복귀할 수 있었고, 이후 다른 역할도 맡게 되었다. 당시 그는 무대 위의 배우로 남길 원했다. 하지만 그는 여배우 로렌 바콜(Lauren Bacall)의 권유로 스크린에서 연기를 하게 됐다. 그리하여 그는 첫 영화로 루이스 마일스톤(Lewis Milestone)이 연출하고, 바브라 스탠윅(Barbara Stanwyck)이 주연을 맡은 <마사의 낯선 사랑>(The Strange Love of Martha Ivers, 1946)에 출연했다. 당시 제작자 할 월리스(Hal B. Wallis)는 바콜의 제안으로 더글러스를 보러 직접 뉴욕에 왔고, 연극의 리허설 중이었던 더글러스는 바로 캐스팅되어 할리우드로 향하게 되었다. 그는 데뷔작에서 무정한 여자에게 복종을 하는 약한 남자로 출연을 했다.

이후 더글러스는 로버트 미첨(Robert Mitchum)과 제인 그리어(Jane Greer)가 출연한 <과거로부터>(Out Of The Past, 1947)라는 느와르 영화에 조연으로 출연했는데, 암흑가 보스이자 잔인한 음모를 지닌 남자를 연기했다. 그런데 더글러스는 자신의 여덟 번째 작품인 <챔피언>(Champion, 1949)에서 이기적인 복서를 맡아 연기하면서 거친 남성 캐릭터로 변신을 시도했다. 몇몇 영화에서 경력을 쌓은 그는 스타가 되기를 열망했다. 특히 그는 부끄러움을 잘 타는 성격을 극복하고 강인한 역을 주로 택했다. 사실 그는 자부심이 강한 배우였고, 독립심이 강한 성격 탓에 스튜디오와의 계약을 파기하기도 했다. 그는 어머니의 이름을 따서 자신의 프로덕션인 브리나(Bryna)를 만들기도 했다.

1950년대 들어서 더글러스는 드디어 할리우드의 스타배우가 될 수 있었다. 특히 그는 거친 역을 주로 맡았는데, 우선 국경지역의 보안관 역을 맡은 <대분수계를 따라서>(Along the Great Divide. 1951)을 통해 인기를 끌었다. 이 영화는 그의 첫 번째 서부극 출연작이기도 했는데, 여기서 그는 말을 탄 총잡이 역을 멋있게 소화를 했다. 그는 이 작품 이후 더 많은 서부영화에 출연할 수 있었는데, 그 가운데 대표적인 것은 존 스터지스(John Sturges) 감독이 연출한 <오케(OK) 목장의 결투>(Gunfight at the O.K. Corral, 1957)이다. 이 영화에서 오랜 친구이자 동료인 버트 랜카스터(Burt Lancaster)가 전설적인 보안관 와이어트 어프(Wyatt Earp)를 맡았고, 더글러스는 닥 할리데이(Doc Holliday)를 맡아 환상적인 연기호흡을 보여주었다.

다음 더글러스는 아카데미상 3개 부문에 걸쳐 후보에 올랐던 빈센트 미넬리(Vincente Minnelli) 감독의 <미녀와 건달>(The Bad And The Beautiful, 1952)에 출연해 비정한 영화제작자인 조나단 쉴드(Jonathan Shields)를 연기했다. 이 당시 그는 <영 맨 위드 어 혼>(In Young Man with a Horn, 1950)에서 실제 호른(Horn) 연주자인 빅스 바이더벡(Bix Beiderbecke)을 연기하기도 했는데, 이 연주자의 동료인 피아니스트 호기 카미첼(Hoagy Carmichael) 또한 출연해 더글러스가 바이더벡의 역을 더 사실적으로 연기할 수 있었다.

1950년대 후반부터 더글러스는 군대를 다룬 영화(military film)에서 다양한 역을 맡으면서 자신의 존재감을 확실하게 드러냈다. 이 당시 그가 출연했던 작품들은 다음과 같다. <탑 시크릿 어페어>(Top Secret Affair, 1957)를 비롯해서 <영광의 길>(Paths of Glory, 1957), <동정 없는 도시>(Town Without Pity, 1961), <후크>(The Hook, 1963), <세븐 데이즈 인 메이>(Seven Days in May, 1964), <텔레마크 요새의 영웅들>(Heroes of Telemark, 1965), <인 함스웨이>(In Harm's Way, 1965), <팔레스타의 영웅>(Cast a Giant Shadow, 1966), <파리는 불타고 있는가?>(Is Paris Burning, 1966), 그리고 <최후의 카운트다운>(The Final Countdown, 1980) 등이 그것들이다. 이중 <영광의 길>은 명감독 스탠리 큐브릭(Stanley Kubrick)이 연출을 맡은 작품으로 더글러스는 장군 미로(Mireau)에 의해 무모한 전투에서 목숨을 잃고 또 법적 처벌을 받게 된 병사들을 변호하는 닥스 대령(Dax)을 맡아 호연을 보여주었다.

Lust for Life

더글러스는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의 일대기를 다룬 <열정의 랩소디>(Lust for Life, 1956)에서 일생일대의 연기를 보여주었는데, 대부분 프랑스에서 촬영된 이 영화에서 더글러스는 고흐의 외형적 모습과 함께 예술가의 내적 불안(不安)을 탁월하게 연기했다. 그는 이영화로 1956년 뉴욕영화비평가협회(New York Film Critics Circle Awards)에서 최우수연기상을 수상했고, 1957년에 골든 글로브(Golden Globe)에서 남우주연상을 받았다. 빈센트 미넬리(Vincente Minnelli) 감독은 그의 연기에 대해서 매우 인상적인 연기였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더글러스는 이 역할이 쉽지 않았다고 했는데, 생김새뿐만이 아니라 촬영할 당시 자신의 나이와 고흐가 자살한 나이가 같았기 때문이었다.

이후 더글러스는 자신의 또 다른 대표작이자 올스타 캐스팅 작품인 <스파르타쿠스>(Spartacus, 1960)에 출연했다. 이 영화도 역시 스탠리 큐브릭이 연출을 맡은 작품이었는데, 더글러스는 이 작품에서 특히 연기가 돋보였던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여기서 그는 로마 제국에 대항하여 반란을 일으킨 노예 무리의 지도자를 연기했다. 더글러스는 이밖에도 코믹한 분위기의 작품들에 출연하기도 했다. 그중 대표적인 것은 <해저 2만 리>(20000 Leagues Under the Sea, 1954)라는 모험영화인데, 여기서 그는 미지의 해양생물체를 추적하러 떠나는 베테랑 포경꾼을 연기했다. 이와 더불어 그는 킹 비더(King Vidor) 감독의 코믹한 서부극인 <별 없는 사나이>(Man Without a Star, 1955)와 마이클 고든(Michael Gordon) 감독의 코미디 영화 <돈 또는 사랑을 위해>(For Love or Money, 1963)에 출연하기도 했다.





에반 헌터의 소설도 훌륭했지만 소문에 의하면 <티파니에서의 아침을>의 대사를 쓴

트루만 카포티가 에반 헌터의 시나리오에서 대사 부분을  많이 손봤다고 합니다.

그래서 래리와 마거릿이 나누는 대사들은 시어 같습니다.

최성수의 <해후> 가사 같다고나 할까요?

창넓은 카페에서 이룰 수 없는 사랑의 결말을

눈빛으로 예감하는 두 사람의 사랑은

열정과 정념 그 이상의 성숙된 절제가 바탕을 깔고 있습니다.

사랑은 꼭 이루어져서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사랑의 태생은 필레오 같아서,

어차피 서로의 상처입은 정신을 보듬고 토닥여주는 것이

한 층 더 성숙한 사랑의 본질임을 두 사람의 인생 연륜 정도면 아는 것이죠.

드라마 <애인>에서 세월히 많이 흐른 뒤

유동근과 황신혜가 롯데월드에서 우연히 마주치는 장면이 참 근사했었죠.

< 만날 땐 언제나 타인>도 그만큼 멋진 엔딩이 기다리고 있답니다.


생애와 이력

미국의 영화배우, 제작자. 커크 더글러스(Kirk Douglas)는 1916년 12월 9일 미국 뉴욕 주 암스테르담(Amsterdam)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이수르 다니엘로비치 뎀스키(Issur Danielovitch Demsky)이다. 더글러스의 부모는 러시아 출신의 유대인 이민자였다. 아버지 쪽 형제 중 일찍이 외국으로 나간 이가 뎀스키(Dembski)라는 성을 썼는데, 더글러스의 가족도 미국에 이민을 오면서 그 성을 썼다. ‘커크 더글러스’라는 이름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해군으로 입대하기 전에 개명한 것이다. 그의 가족은 이민 초기에 힘겨운 시절을 겪었다. 아버지는 러시아에서는 말 장수였으나 미국에 와서 폐품 장수로 전락했다. 더글러스도 배우가 되기 전 40여 종이 넘는 직업을 전전했다. 그는 고등학교에 입학하여 연극을 했고, 그러면서 배우의 꿈을 키우게 되었다. 이후 대학에 진학했지만 학비가 없었던 그는 학자금을 대출받고, 정원사 및 수위 등의 일을 했다. 그러던 그는 자신의 재능을 눈여겨본 뉴욕의 아카데미에 의해 장학금을 받으며 학업을 마칠 수 있었다. 드라마 스쿨을 졸업한 그는 브로드웨이에서 첫 데뷔작에 참여했는데, <스프링 어게인>(Spring again)에서 단역인 전보치는 소년을 맡았다.

더글러스는 <과거로부터>(Out of the Past, 1947), <챔피언>(Champion, 1949), <비장의 술수>(Ace in the Hole, 1951), <미녀와 건달>(The Bad and the Beautiful, 1952), <해저 2만 리>(20000 Leagues Under the Sea, 1954), <열정의 랩소디>(Lust for Life, 1956), <영광의 길>(Paths of Glory, 1957), (Gunfight at the O.K. Corral, 1957), <바이킹>(The Vikings, 1958), <스파르타쿠스>(Spartacus, 1960), <세븐 데이즈 인 메이>(Seven Days in May, 1964), <토성 3> (Saturn 3, 1980), 그리고 <해리와 아치>(Tough Guys, 1986)와 같은 유명한 영화들에 출연하면서 세계적인 배우로 인기를 누렸다. 더글러스는 1960년 명예의 전당(Walk of Fame)에 입성했다. 그는 1991년 미국영화연구소(American Film Institute)에서 평생공로상(Life Achievement Award)을 받았고, 1996년에는 아카데미(Academy Awards)에서 50년간 영화계를 위해서 활약한 공로를 인정받아서 공로상(Honorary Award)을 수상했다. 또한 그는 지난 2001년에 베를린국제영화제(Berlin International Film Festival)에서 명예황금곰상(Honorary Golden Berlin Bear)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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