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비가 물고온 박씨>에서 생긴 일
'울고 왔다 울고 가는 서러운 사연을, 당신이 몰라주면 그 누가 알아주나요?' <알뜰한 당신> 첫 구절이다. 예술 도시 진주의 지금은 개천예술제가 활발치 않다. 그러나 그 옛날 스타들은 몇 분 남아있다.
1월7일, 인사동 <제비가 물고 온 박씨>에서 남강문학회 멤버 중에 60년대 문인 냄새 풍기는 두 분을 만나보았다. 술 잘 드시는 박용수와 허유 시인이다.
박시인은 미천면에서 태어났고 진주고 23회 졸업생이다. 중학교때 장티푸스를 앓은 후 청력을 잃어 말이 어눌하고 메모지에 글을 쓰면서 필담(筆談) 나누는 분이다. 부산 김재문 선생 문하에서 사진 수업 한후 진주 연일 사진관을 경영했는데, 파성 설창수 선생 막걸리 파티 물주 노릇 많이 했단 후문이다. 60년도에 문단에 들어가 각종 공모전에서 특선, 준특선. 개천예술제 사진 분과 차장으로 일하면서 시가족동인, 흑기시동인으로 문학활동 했다.
1970년 '시인의 꿈'을 찾아 서울에 올라와 63명이 일하던 허바허바 사진관 사진 기술자로 일하며, 소설가 이문구, 김정한, 박태순, 송기원, 시인 고은, 신경림등과 1974년 자유실천문인협회(민족문학작가회의 전신) 창립에 참여했다. 민통련보도실장, 민족문학작가회의 이사, 나라사람청년회 지도위원, 한국민주노동자연합 지도위원등을 역임하고, <타임> <라이프> 리포터로 활동했다. 저서로는 장시 <바람소리> <우리 말 갈래 사전> <겨레 말 용례 사전>등이 있다.
그가 만든 <우리 말 갈래 사전>은 남한과 북한 그리고 국어대백과사전을 뒤져 토박이말 3만 6000여개를 강, 바다, 식물 등 주제별로 나눠서 1989년에 출간한 것이다. 이 사전은 '가나다라'순이 아니라 생활, 문화, 사람등 주제별로 정리해 어떤 분야의 단어가 생각나지 않을 때 쉽게 찾아 볼 수 있는 점이 특징이다. 이 사전은 1989년 북한을 방문한 문익환 목사가 당시 김일성주석에게 선물했다.
지금 박용수 시인은 한글문화연구회를 통해 외래어에 밀려 급속도로 입지가 좁아지고 있는 우리말을 컴퓨터로 검색하여 사용 빈도를 높여 겨레문화에 이바지하기 위해 <자연어 검색 전자 갈래 사전>을 편찬하는 일에 몰두하고 있다.
시인 고은은 그의 시집 <만인보>가운데 '박용수'편에 " 그가 찍은 사진들은 예술이기 전에 역사다. 그가 쓴 시는 예술이기 전에 인간. 반드시 있어야 할 인간이다."라 했고, 문익환 목사는 " 불가능을 가능으로 전환하는 힘, 최악을 최선으로 바꾸는 기적을 믿음이라고 한다면, 박용수 선생은 온 몸으로 자나깨나 이 믿음을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라고 했다.
박시인은 1970년대와 1980년대 그는 우리사회 가장 뜨거운 현장에서 카메라를 들고 (민중의 길-분도출판사). 문익환, 제정구, 김대중, 노무현의 중요한 장면들을 찍었다.
그는 진주 장대동 멤버 이병주, 리명길, 김여정, 정혜옥, 허남벽(재독 시인 허수경의 아버지), 최용호, 정재필, 손상철 중 한명이며, 현재는 민주화 투쟁 다큐사진작가 타이틀을 뒤로 한채, 한글문화연구회를 이끌고 있다. 미천면 밤실마을에 그의 시비가 서있다.
허유 시인은 1936년 생으로 고성 마암면 정신리 출신. 진주고 26회 졸업이다. 서울 상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한국투자증권 사장을 역임했다.
(사진 좌측은 소설가 강남구)
대학 2년 재학중 1958년 평화신문 신춘문예에 당선(심사위원 서정주)한 후, 조연현의 추천으로 문단을 횡행한 그를 진주고 천재시인으로 부른다. 허시인은 이날 모임의 감회가 새로운지, 옛날 김진홍 행장 부인 소설가 한무숙 집 안방에 무단친입하여 양주 마신 이야기, 친구 정공채 시인, 하동의 작사가 정두수 이야길 털어놓았다. 58년도에 당시 회사원 월급에 해당하는 상금 3천원을 받아 고급 라듸오 산 이야기, 한무숙의 집에 기숙하고 있던 천상병 시인에게 술 얻어먹은 이야길 되풀이로 몇번씩 읊었다. 천상병이 원래 가난해 자주 돈을 빌려준 허유 선배님이 문단에서 술을 얻어먹은 유일한 존재였다고 한다.
지금 진주를 형평운동 농민궐기의 발상지로 이야길 한다. 그 때는 다들 허유의 유명한 시, <진주>에 나오는 ‘새벽잠 끝에 정수리에 퍼붓는 냉수 한 바가지/ 우리나라 정수리에 퍼붓는 냉수 한 바가지/ 진주에 와보면/ 그렇게 퍼뜩 정신이 들고 마는 것을 안다’라는 구절이 인용되고 있다.
허선배님 시비는 고성에 최계락, 서벌, 김열규, 김춘랑, 이문형, 정완영의 시비와 나란히 서있다.
이날 두 분은 초대형식으로 모셨지만, 이유식 현 문인협회 고문도 참석했다. 허유선배님 한 해 후배인 이유식 평론가는 원래 초대 대상이지만, 현역으로 아직도 활발하게 활동하는 점, 진주 문단의 대부격이라는 점을 고려해서, 회비를 내고 참석했다. 그 밖에 안병남 시인, 강남구 소설가, 구자운 박사, 필자가 참석했다.
강남구 소설가는 이날 이채로운 학설을 전개했는데, 진주가 한국 대중음악의 메카라는 것이다. 남인수 이봉조는 다 아는 이야기지만, '저녁 한 때의 목장 풍경' 노래한 가수 위키리(이한필)도 진주 사람이고, '오늘도 걷는다 마는 정처없는 이 발길'의 작곡가 이재호, '사공의 뱃노래 가물거리고 삼학도 파도 깊이 스며드는데...' <목포의 눈물> <짝사랑> <아빠의 청춘>을 작곡한 손목인, 김추자가 부른 '월남에서 돌아온 김상사' 작곡한 정민섭(진주사범). 그리고 진주중학 이재호 선생 제자 이봉조 이야기가 나왔다. 심지어 의령의 이호섭, 밀양의 박시춘, 하동의 '흑산도 아가씨' 작사한 정두수 이야기까지 나오고, 진주에 작곡가 단체가 있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근래 진주문단의 인물을 한번 간추려보면, 소설에 진주여고 박경리, 김지연, 진농의 이병주, 시에 박재삼, 이현기, 최계락, 김여정, 강희근, 김정희, 평론에 진주고 이유식, 수필에 진주고 정목일, 진주사범 강석호, 진주여고 정혜옥. 황소지 이야기가 나왔다. 구슬도 꿰어야 보배 아니던가. 모두 촉석공원에 문학비 하나 세워놓아야할 분들 이다.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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