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라 천리 길 1

2009년 남강문학회 진주 지리산 유람 다녀와서

김현거사 2018. 5. 8. 10:57

   2009년 남강문학회 진주 지리산 유람 다녀와서

 

  가을에 내고향 작가 열여섯분과  고향길 나섰다. 전직 시장, 대학원장, 언론계, 문단 원로, 여류까지 끼여 우선 분위기가 좋다. 분위기가 마치 어릴 때 우리가 멱감던 남강물처럼 포근하다. 남부터미날서 김밥 한 줄, 생수 한 통, 차표 한장씩 들고 버스에 올라 대전 거쳐 금산인삼랜드 도착하니, 비 그친 산에 안개 덮힌 모습 산수화처럼 아름답다.

 진주 도착하여 우선 중앙로타리 옆 <오복식당> 찾아갔다. 참기름 묻힌 소고기육회 싱그럽고, 국물맛 시원하다. 그 집 추천한 사람은 내 친구 진주 한량 기화제약 하위수 사장이다. 필시 그 집 막걸리 지리산서 흘러온 반가운 남강물로 만든 것일 터, 목에 넘기는 마음부터 들뜬다.

 그분은 1958년 서울 상대 재학 중에 <평화신문> 신춘문예에 '낙재기중(樂在其中)'이 당선되었고, 그 후 한국투자증권 사장, 삼일회계법인 고문을 지낸 분이다. 허유시인이 녹이 새카맣게 낀 골동품 라이타 하나 꺼내더니 모두가 보란듯이 담배를 한대 척 붙인다. 그리고는 이 지포라이타는 1968년부터 쓰던 것이니 오십년 접어든 물건이라며, 라이타에 영어로 자작시가 새겨진 이 놈을 본인의 관에 함께 묻어달라고 요청한다.

그러자 정태범 박사도 일어나더니 지갑을 척 꺼낸다. 거기 옛날 호랭이 담배 묵던 시절 도민증에 정박사님 자모님 흐릿한 사진을 자랑한다. 정교수는 서울사대 출신으로 문교부 편수국장을 거쳤고, 1982년 일본 교과서 왜곡사실을 발견하여 일본으로부터 시정약속을 받아낸 분으로, 그 일이 독립기념관 건립의 기초가 되었다. 

 누가 '둘 다 훗날 진주에 문학관이 세워지면 거기 유품으로 전시해야 한다'고 미리 선언을 해둔다.

 한잔씩 쭈욱 마시고 촉석루 찾아가는 감회는 깊다. 모과나무엔 노란 모과가 주렁주렁 탐스럽게 열렸고, 의암으로 내려가는 가파른 절벽길 푸른 시늇대에 이슬비 뿌린다. 어디선가 은은한 가야금 소리 들리고, 강물 위엔 황포 돗배 뜨있다. 촉석루와 가야금 소리 잘 어울린다. 누각에 오르니 정중앙에 정태범 학장 8대조 명암(明庵) 정식(鄭栻) 선생의 <촉석루 중수기>가 붙어있다. 촉석루의 웅장한 자태, 논개가 적장을 죽인 일의 역사적 의미, 주변의 아름다운 자연환경을 찬탄한 글이다. 

 발길 돌려 용트림한 고목과 잔디밭으로 잘 조성된 공원길 걸어 월영산(月影山) 호국사(護國寺)란 현판 붙은 호국사에 이르렀을 때다.

'이곳 산이름이 달그림자가 비친다는 월영산인줄 처음 알았네요. 아이고!고마 고향에 돌아와 살고싶네.'

 한 여류가 아주 탄식을 한다.

 

 4시에 <남강문학> 창간호 출판기념식장에 닿았다. 나이 7십 넘었어도 남학생들은 역시 남학생이다. '금남의 집' 진주여고 문턱을 처음 넘어본 할배들이 이구동성으로 가슴이 두근반 세근반 요동을 친단다. 행사장엔 진주서 문인이란 이름 부치고 행세하는 사람은 다 왔다. 부산서 본회 회장단도 대절버스로 왔다.

 서로 손잡고 식장에 들어갔지만, 내가 제일 반갑던 분은 누구던가. 김정희 시인과 정혜옥 수필가다.

 김정희 시인은 1974년 시조문학으로 등단하여, 한국 시조시인협회 부회장을 역임했고, 정혜옥 수필가는 진주여고 1학년 때  쓴 산문 '어머니의 손'이 경남일보에 실린 재원으로. 1954년 개천예술제 백일장에서 '국화'란 시로 시부문 장원한 분이다. 대구 수필가협회 1,2대 회장 역임한 분이다. 나는 두 분 시를 좋아했고, 내고향에 이 아름다운 분들이 있어 항상 믓했는데, 이날 쌍으로 만난 것이다. 정목일군 만난 것도 반가웠다. 그는 나의 고등학교 동기이다. 경남일보 편집국장을 거쳐 현대문학수필작가회 초대 회장, 한국수필가협회 이사장을 역임한 한국 수필계 원로다. 

 둘이 나란히 앉은 바로 앞에 정혜옥 노선배가 앉아있다. 그만 있기 그래서 살짝 어깨 두드리고 사탕 두개 손에 쥐어드릴 때 돌아보던 그 미소가 고왔다.

 

 행사 끝나고 진주 문인들과 식사 하고 숙소인 산청 예담골 찜질방에 갔는데, 숙소가 문제였다. 사우나 마치고 모이니, 부산 미인 황소지 이숙례 숙녀, 그리고 서울 미인들은 어떻게 하느냐. 그냥 마구잽이로 남학생들과 혼숙을 시키느냐 마느냐 그것이 문제였다. 예약한 방은 다 혼숙방이고, 특별 예약한 작은 방은 단 한개 뿐이었던 것. 최고령 김시장님과 허유 노선배님께 그 방을 드려야 한다. 아니다 숙녀분들이 그 방을 쓰도록 배려해드려야 한다. 갑론을박 중에 지천선배님이 기발한 제안을 했다. 노장들과 숙녀분들을 한 방에 모셔야 한다는 거다. 이 소릴 듣자 싱글벙글 제일 좋아한 분은 이유식 이영호 선배님이다. 혹시 좋은 쪽으로 결론이 나 자신들도숙녀방 행운이 오지않을까 싶었던 모양이다.

 

 자정까지 환담한 후 새벽에 깨어보니, 거사 옆에 초영님과 벽옥님이 자고있다.

'선배님들 모두 잘 주무셨어요?'

 초저녁에 잠자는 숲속의 공주처럼 새근새근 잘 자고 꾀꼬리같은 목소리로 인사를 하는데,

'둘다 잠탱이들이네'

허일만 사무국장의 '잠텡이!'란 이 한방 진주 토종말이 새벽부터 사람들 배꼽 잡게 만든다.

 

 이날 지리산 가보지않은 사람은 모를 것이다. 비 온 후 단풍이 얼만나 곱던지. 백가쟁명 작가들이 얼마나 마이크 잡고 시끌벅적 했는지. 

 박용수 시인은 갈라진 우리나라 남한과 북한의 말을 정리하여 <우리 말 갈래 사전> 저술한 분이다. 70-80년대 민주화 운동의 가장 뜨거운 현장을 카메라로 표현한 민중사진 기록가다. 

  

 박용수 선배님(우측 앉은 분)과 필자

이유식 평론가는 부산대 재학중인 1961년 [현대문학]에 평론 <현대적 시인형(詩人型)> <프로메테우스적 인간상>으로 등단한 분이다. 배화여자전문대 교수, 강남문인협회 초대회장, 한국문인협회 부이사장, 고문을 역임한 분이다.

 이영호 아동문학가는 1966년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동화 <토끼>로 당선, 문단에 등단하여 한국문인협회 아동분과회장, 월간문학 편집주간을 거쳤고, 초등학교 5학년 교과서에 <남명 조식 전기>를 집필한 분이다.

 젊을 때 미모 뽑냈을  황소지 수필가는 성균관대 약대 출신으로 부산에세이문학회 회장, 부산 문협 부회장 출신이요, 가장 젊은 작가군에 드는 이숙례 시조시인은 문학박사로 부산불교문인협회 회장을 역임한 분이다.

 

 제일 먼저 포문을 연 사람은 정태범 박사다. 먼저 남명선생 유적부터 들렸는데, 산천재(山天齋)에선 지리산 최고봉 천왕봉이 보인다. 남명은 산천재서 <두류산 양단수 예듣고 이제 보니 도화 뜬 맑은 물에 산영조차 잠겨세라....>처억 읊었다. 삼장과 중산리 골자기서 흘러온 두 물줄기 과연 산천재 위에서 합수되고 있었다. 삼장은 세번 장원한 사람 나왔다고 삼장이다.

 남명의 <삼동에 베옷입고 암혈에 눈비 맞아 구름 낀 볕뉘도 쬔 적이 없건마는 서산에 해진다 하니 눈물겨워 하노라>라는 시조는 그가 명종 밑에서 벼슬하기는 사양하였지만, 임금이 승하하자 읊은 것이라 한다.

 정박사는 소싯적 지리산 장작 싣고 다니던 장작차 타고 진주 학교에 다닌 이야기, 남명이 즐기시던 매화 <남명매>를 소개하기도 했다. 

 남명선생 <유두류록>을 보면, 남명은 진주목사 김홍 고령현감 이희안 청주목사를 지낸 이정과 기생까지 데리고 지리산 답사한 이야기가 나온다. 점필재 김종직도 <유두류록>을 썼고, 김일손도 <속두류록>, 남효온도 <지리산일과>를 남겼다. 우리 남강문학회 선비들도 그처럼 떼를 이루어 어린애처럼 지리산 마고할매 치마자락 아래를 다닌 것이다. 

 덕천강변은 마침 가을이라 감나무 붉은 홍시들이 장관 이루고 있었다. 산허리는 비단띠같은 안개가 휘감고,집집 다락은 실에 뀌어 널어뜨린 곶감들이 발 이루고 있다. 이곳이 이순신 장군이 백의종군 하실 때 걸어가신 강변이다. 마침 덕산 장날이라, 우리는 차를 세우고 내려가 장터 구경도 하고 담배도 사고 당도가 전국 제일이라는 덕산 고종시 감을 사서 맛보기도 했다. 중간에 정박사님 부인 허윤정 시인 시비 앞에 잠시 하차 했어야 했고, 허일만 남강문학회 사무국장 생가 앞에서 잠시 멈췄어야 했다. 차 안에서 저기가 자기 생가라고 소개하고 혀를 낼름하며 앉던 허선배님 익살이 지금도 귀엽다.

 

턴널 지나 청학동으로 가는 길목은 펜션 별장촌이라, 여기가 스위스 어디 산골인가 싶었다. 가을 지리산이 참 좋다. 하동 들어서니 거긴 이유식 평론가 테리토리다. 평사리 토지문학제 심사위원장 역임하신 분답게, 조연현씨는 6개월 하동세무소서 근무했고, 김동리는 곤양 다솔사서 많이 집필했는데, <역마>의 무대는 화개장터요, 북천면이 이병주씨 고향이고, 시인 정공채는 고전면, 정두수란 이름으로 대중가요 천여곡 작사한 그의 아우 정두채는 지금도 간혹 만나 대포잔 줄기곤 한다. 술술 구수한 화술로 하동 저명인사와 하동 역사를 소개한다. 하기사 섬진강 강물이 그리 맑은데 인재들이 왜 없겠나? 

 중간중간에 허일만 시인이 <영도다리는 왜 서는가?> <그랜져와 티코> <코끼리 뜀띄기>같은 유머로 좌중의 흥을 돋구었다. 

 

 화엄사 사하촌에서 산채비빔밥 먹고, 생칡즙과 헛개즙 마즙 파는 성삼재에서 광활한 지리산 단풍 구경하고,하늘 아래 첫마을 심원마을 입구를 지나, <소문난 원조 짜장면>간판 붙은 둥구마천 돌아왔다. 그리고 4시 진주 시외버스 터미날서 부산팀들과 아쉽게 헤어졌다. 이날 지리산 유람한 남강문우회 시인묵객 행적을 간단히 남긴다.  

(09년11월 1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