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라 천리 길 1

2008년 남강문학회 첫 진주모임 다녀와서

김현거사 2018. 5. 8. 09:34

 

 

  2008년 남강문학회 첫 진주모임 다녀와서

 

 그러잖아도 가을하늘은 더 높아지고 단풍 붉으작작 물드니 어딘가로 횡하니 나르고 싶은데, 마침 진주는 개천예술제다. 그런데 그냥 개천예술제면 그냥 지나갔을 터지만, 이번에는 갈 일 생겼다. 옛날 영남예술제에서 시인 소설가로 등단하여 활동하던 분들이 나이 70 넘어 남강문학회란 출향작가 모임을 만들어 그 첫모임을 진주서 갖기로 한 것이다. 나야 고등학교 시절 운동선수였지 문학하곤 거리가 멀다. 그러나 신문기자와 기업체 임원 은퇴하여 노년에 글 쓰자고 수필가 되었다. 이 모임 만든 왕년의 문학청년 정재필, 성종화,  김상남, 강남구 선배하곤 출신성분이 다르다. 

 혼자 분당 야탑서 7시 30분 버스 타고 진주 칠암동 내리니, 거기 고등학교 동기 몇이 있다. 창원 정목일, 합천 이영성, 제주 김영환, 진주 강홍열, 김병화다. 수필가 정목일은 고교 졸업 후 처음 만났다. 문단에서 '수필은 청자연적이요, 난이요, 학이요, 청초하고 몸맵시 날렵한 여인이다.' 어쩌고 한 유명한 피천덕의 수제자로 알아준다하여 혹시 목에 뻣뻣하게 기브스하고 나오지 않았나 유심히 살펴보니 아니다. 섬세하고 겸손하여 보기 좋다. 영환이가 운전하는 차로 금산 호숫가 어느 음식점으로 가서 주물럭에 일 잔 한 후 얼큰한 기분으로 호숫가 드라이브하고 청곡사 대웅전 부처님 앞에 가서 목일이와 홍열이 거사는 납작 엎드려 아홉 번 절 하였다. 일단 죄 많은 중생은 미리 부처님께 이리 아첨을 떨어놓아야 술 먹어도 뒤탈이 없는 것이다.

 저녁에 남강문우회 모임에 참석하였다. 개천예술제 등단작가 선배님들 처음 상견례 했는데, 문학한 목일과 영성이는 잘 아는 분들인 모양이고, 거사는 초면이다. 이분들 말씀 통하여 몇가지 사실 알았다. 파성선생 가신 후 이영성 장형인 이명길 시조시인이 개천예술제와 진주 문단 이끌 때, 동생 이영성 시인이 당시 실무 책임자였다. 1960년대니 영성이 문단 족보 대단하다.

 촉석루 올라가니 진주 밤거리는 인산인해, 강에는 유등 화려하고, 길에는 포장마차가 불 밝히고, 경찰들은 교통정리 한다고 땀을 흘린다. 낭만에 취한 청춘남녀들은 손잡고 인파 속에 오간다. 문득 리오의 삼바축제와 칸느 영화제 생각나고, 지금으로부터 사십년 전 소싯적에 학생들 동원해 흐르는 강물에 등 띄우던 그 시절, 여고생 흘끔흘끔 훔쳐보던 낭만도 살아난다. 그런데 등은 더 화려하고 크지만 저멀리 뒤벼리로 강물 따라 깜박이며 흘러가던 옛날 유등의 낭만과 멋은 없다. 또하나 문제 있다. 개천예술제인데 예술제 행사보다 유등축제가 더 비중이 크다. 이거 웬 일로 배보다 배꼽이 크다. 
 촉석루 돌아 서장대 밑 어느 주점에서 문우회 술자리가 마련되어 있는 모양이었다. 그러나 목일이는 인파 속에 잃어버렸고 영성이와 나만 핸드폰으로 연락되어 진주 친구들과 신안동 모처로 갔다. 노래방에서 실력을  견주어봤는데, 백점 4개 나온 영성이가 장원,  '추억의 소야곡' 등 백 점 3개 나온 거사가 차석이었다.

 이튿날 김병화 친구 안내로 <습지원>이란 곳에 가니, 기암괴석 절벽 아래 강물은 호수처럼 잔잔하고, 나무는 물 위에 그림자 던지고 있다. 커다란 화강암 원석으로 징검다리 해놓은 산책길 물속에는 수초가 무성한 것이 월척 붕어 많겠다. 하얀 해오라비 한 마리 조는 듯 앉아있는 것이 두보의 시처럼 '강물이 푸르니 새 더욱 희다'. 절벽 위 약수암은 초등학교 시절 소풍오던 곳이다. 아직 단풍 전이지만 좀 있다 단풍 들면 얼마나 좋을꼬. 거기 대숲 스치던 건 맑은 바람이다.
 '3천리 방방곡곡 아니 간 곳 없다마는
비봉산 품에 안겨 남강의 꿈을 꾸는 내고향 진주만은 진정 못해라.' 여길 보니 삼천리 방방곡곡 그만 헤매고, 여기 대밭 속에 초막 하나 짓고 은거하고 싶은 생각 간절하다. 끝으로 그 옆에 있는 물박물관에 가서 벽에서 멋진 시 하나 읽었다.

 

 

까꼬실           

                             김정희


남강물 물이랑이 쉬어가는 여울목

물은 물끼리 모여 상전벽해 이루고

물빛은 하늘 안고 구름 따라 흘러간다.


푸른 물살 헤짚고 떠오르는 옛 생각

불러야 할 살붙이며 아름다운 이름은

산수화 고운 그림 속에 메아리로 들리고


그 하늘 수놓으며 대숲에 살던 백로

정든 둥지를 잃고 어디를 헤매는가

물총새 물길 가르며 돌아갈 길 찾건만.


인생이란 꿈이런가 한자락 구름이던가

세전지물 버려두고 떠나야 할 사람들

속눈썹 고인 눈물에 진양호가 잠긴다.

 

 속으로 젊고 매력적인 여류시인을 그려보면서, 진주에 이런 멋진 시인도 있나 영성이 친구한테 물어보니 그가 아는 분이다. 자기는 김정희씨 시집도 갖고 있단다. 이 담에 꼭 소개해달라고 간절히 부탁했고, 과연 다음 해 남강문학회 모임에서 그 분을 만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