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라 천리 길 1

동기회 지리산 합동 시산제 다녀와서

김현거사 2018. 4. 26. 08:15

 

동기회 지리산 합동 시산제 다녀와서

 

 고등학교 졸업한지 50년 쯤 된다. 대구 최용남 선수가 진주중고 933 싸이트에 올려주는 부산 울산 대구 등산팀 소식은 볼 때마다 기특하다. 모르긴 해도 이렇게 세 도시 정기산행 모임은 별로 없다. 인생 70 고래희라는데 이제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이름도 얼굴도 희미한 그들이 보고싶었다. 그래 지리산 시산제 소식 듣고, 서울 친구 몇이 나섰다. 하필이면 버스 타니 내 옆 좌청룡 우백호가 그럴듯하다. 좌측엔 김두진 교수 우측엔 이종규장군이다. 한쪽은 무골, 한쪽은 문신이다. 두 선수 다 겸허하고 안목 높다. 같이 여행하긴 그들보다 좋을 짝지 없다. 원지 가서 중산리로 전화하니,

'거기서 점심 묵고 꾸물거리지 말고, 빨리 3만5천원 주고 택시 타고 오이라.'

이병옥 교장이다. 얼굴부터 보잔다. 하기사 고등학교 졸업하고 첨이다. 택시 집어타고 단숨에 두류동 도착하니 닭 장작불에 삶는 맛있는 냄새가 천지 진동 중이다. 분위기 첨부터 확 일어난다. 이번 시산제 축문 작성한 강정 선수, 시조창으로 전국을 누비는 오태식 교장, 시산제 돼지 대가리 메고 온 부산 강종대, 시산제 주무 맡은 이병옥 교장, 고등학교 시절 내 옆에 앉았던 '앵두나무 우물가에 동네 처녀 바람났네' 최용남 선수, 뉴욕서 근년에 귀향한 김병지 선수가 있다. 서로 붙잡고 악수하는데 진동인 선수 나타난다. 옆에 누군가 키 크고 젊잖은 신사 하나 데려 온다.

'누고? 얼굴도 모르것다.'

'백일선이 모르나? 우리나라 아마 바둑 최고수 아니가?'

'오매 그러코나 반갑다.'

 서로 손잡고 지리산 싱싱한 나무토막으로 불길 활활 타오르는 뜨껀뜨껀한 난로 옆에  마주보고 좌정하니, 술은 덕산 양조양 사장 조소길 선수가 보낸 막걸리다.  맛 텁텁하고 걸찍한게 꼭 조소길 친구 인품 같다. 칼바위 올라간 등산 주멤버 아직 오지않았으나. 우선 뭉텅뭉텅 돼지고기 썰어 잔부터 채워보는데, 비장의 술 나온다. 송이주 지리산 산죽주는 오태식 교장이 들고 온 것이다. 서울서 들고간 산토리도 한 병 나온다. 삶은 닭고기 연하고 혜근이가 내놓은 곳감 달콤하다. 서로 한참 떠들기 시합하는데 부울대 등산팀 돌아왔다. 부산 울산 대구 합동팀이다.

 진주 강남 명문 천전초등 출신 전봉길 선수가 인사말 하고, 답사는 이종규장군, 그리고 덕산 초야에 묻혀 유유자적하는 조재현 선수 제안으로 각자 한마디씩 서분찮게 인사말도 해보았다. 말로만 보고싶다 그립다 해싸면 뭐하나? 요렇게 해삐리야 진짜제. 흥이 한참 고조될 무렵 진주 목사로 칭하는 강홍열 선수와 문성열 박사 들이닥친다. 해운대 신사 이건영 화백과 고려대 동기 이걸 선수도 왔다.

 요대목 이후부터 나는 좀 아리까리하다. 이미 송이주 산죽주 산토리주로 알콜 기운이 농후해졌기 때문이다. 이때부터가 피크인데, 실은 두 가지 방향이 있을 수 있었다. 하나는 지리산 깊은 밤에 고교 친구들끼리 난로불에 구운 뜨거운 고구마 먹어가며 오손도손 정담 나누는 방향과 하나는 아예 덕산 노래방에 가서 한바탕 불러제끼는 방향이다. 그날 누가 결정했는지 모르지만 노래방으로 정했고, 혜근이가 봉고차 한 대 대기시켜 놓았다. 덕산 노래방 가서는  인원은 많지 전부 술은 취했지, 그 중에 진주 유명한 풍류객도 섞였겠다. 멋대로 안주 시키고 멋대로 놀다가 백전노장답잖은 잠간 실수도 있었다. 시골 노래방에 백만원 상당 매상 올려주었으니, 촌닭이 도시닭 눈깔 빼먹은 셈이다. 술값 계산은 진주서 병원하는 문박사가 했지만, 그 덕에 모처럼 50년만의 친구들 노래 감명 깊었다. 명함에 노래 부르기가 취미라고 적어놓고 다니는 덕산 조재현의 박자 완벽한 노래, 거사와 쌍벽을 이루는 문박사의 남인수 모창 '추억의 소야곡'. 한때 방송국 피디했던 진동인의 노래, 수많은 졸병 거느리고 사단장한 이종규의 노래, 마산여고 국어선생 출신 백일선의 노래 들은 건 참으로 감회로운 장면이다. 언제 그런 귀한 시간 다시 올 것인가. '다시 한번 그 얼굴이 보고싶구나' 완전 추억의 소야곡 가사였다. 

 이튿날 아침에 일어나니, 어제밤은 꿈을 꾸었나. 모였던 친구들은 썰물처럼 빠져버리고 쓸쓸하기 그지없다. 인생이 이런 것인가. 왕희지가 난정이란 곳에서 지기들과 한잔 꺽은 이야기가 난정서(蘭亭序)다. 그 글은 당태종이 자기 무덤에 같이 묻어라고 할만큼 천하명필이다. 허전한 김에 나는 혜근이 방 벽에 붙어있는 <반야심경>을 친구들 앞에서 풀어보았다. 글씨는 난정서처럼 명필 아니지만 내가 추사체 모필하여 쓴 글씨다. '색즉시공 공즉시색이라, 우리의 모든 감각 지식 행동도 원래 다 텅 빈 공이다.' 백일선은 '매화는 춥게 살아도 일평생 향기를 팔지않고, 오동은 천년을 살아도 항상 제 곡조를 지닌다.'는 상촌 신흠의 시로 응답했다.

 그날 거사는 아마 최고수 백일선에게 세 점 깔고 신년대국 한 수 지도 받았고, 후에 모두 통영서 싣고온 싱싱한 굴 넣은 떡국 맛있게 먹고, 지리산록 산보했다. 거기 맑은 공기 무진장 많고, 시원한 물 무진장 많다. 계곡엔 용처럼 굵은 머루 다래 넝쿨 나무를 타고 올라가고 있고, 집채만한 바위는 그 아래 푸른 물이 얼어붙었고, 수정 고드럼 주렁주렁 달렸다. 돌탑 쌓아놓고 촛불 밝히고 정성드리는 굿집도 있고, 편백나무 숲은 향기롭기 그지없고, 당뇨에 특효약 산죽은 널린 것이 다 산죽이다.

 산책 중에 세 통 전화를 받았다. '온김에 천황식당 가서 홍어회에 비빔밥 좀 묵고가라'는 진주 목사 강홍열의 지극한 전화. '자갈치 가서 회 좀 묵고 케이티엑스 타고 가라'는 부산 노지심 강종대의 통 큰 전화, '먼 길에 만나서 반가웠고 조심해서 잘 올라가라'는  해운대 신사 이건영의 신사같은 전화였다. 이런 뜨끈뜬끈한 전화 받고 감동하지 않는 자는 아마 목석 밖에 없을 것이다.

 등산로 입구 산골식당의 씨레기 해장국과 순두부 지짐이는 고소했다. 그 점심 값 서로 계산하겠다고 진동인과 오태식 선수가 티깍때깍 싸우는 모습 정답다. 그리고 우리는 원지 가서 진동인 백일선은 부산으로, 김두진 이종규와 거사는 서울로, 너는 상행선 나는 하행선 버스에 몸을 실었다. (2011년 1월)

'진주라 천리 길 1'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제비가 물고온 박씨'에서 있었던 일  (0) 2018.05.01
고향 친구의 맛  (0) 2018.04.30
무호(無號) 스님  (0) 2018.04.24
진주는 천리길/경남진주신문 2018년 5월1일   (0) 2018.04.17
청춘백서  (0) 2018.04.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