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라 천리 길 1

무호(無號) 스님

김현거사 2018. 4. 24. 11:40

 

 

 무호(無號) 스님

 

 평소 신부나 스님 친구가 한사람 있었으면 했다. 스님 친구라면 이 나이면 선사(禪師)나 선지식으로 불릴만 하다. 7일간 통도사 화엄산림 기도 끝난 후, 몇 번 연락 끝에 부산의 무호(無號)스님을 만났다. 무차선원(無遮禪院)은 지하철 전포동 8번 출구 근처 삐걱거리는 대문 안에 있다. 무차란 이름이 좋다. 뭐던지 차단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무호대사(無號大師) 계시오?’

 큰소리로 불러 서로 합장 한 후 악수 한번 하고 마주 앉았다. 무호(無號)란 법호는 호가 없다는 뜻이다. 피차 고교 졸업 후 40여년 만이다. 벽엔 그가 그린 대형 탱화가 있고, 탁자 옆에 벼루와 먹이 보인다. 선친께서 진주서 한약방 하신 영향인 듯 서가엔 한의학 서적도 많다. 선친 글씨가 진주 여러 곳에 현판으로 걸려있다길래,

 ‘무호대사! 중생에게 글씨 하나 하사하시게.’

그러자,

‘법성게 병풍 만들어 보내까?’

하고 대답한다.

 ‘병풍은 제작비가 백만원 나올테니, 그냥 글씨만 보내주소.'

거사는 메모지 달라해서 주소와 이름 적고 그 밑에 법성게라 쓰고, 옆에 동행한 부산 강모 양모 친구의 주소와 이름 뒤에는 달마도라 썼다. 강은 키가 팔척 거구요, 그 옆의 거한은 진주 씨름판에서 유명한 양점배 씨 아들이다.

 무호가 보살을 부르더니 '그거 두 알과 즙'을 가져오라 지시한다. 보니 공진단(供辰丹)과 사과즙이다. 공진단은 사향 들어간 한약 중에서 제일 비싼 약 이다. 공진단 씹어먹으며 이야길 시작했는데, 먼저 침술부터다. 그러찮아도 옆 방엔 침 맞으로 온 노보살님들이 여나믄 명 누워있다. 불교 포교에는 침술이 좋은 방편이라 한다. 혈이 어떻고 인체 면역체계가 어떻고 하는 침술에 대해 나는 문외한이다. 그러나 직장에서 재벌 회장 경동시장 한약 심부럼을 20여년 쯤 했다. 공진단이 어떻고 경옥고가 어떻고 사향이 어떤지 잘 안다. 서로 죽이 맞자, 무호는 신이 났다. 두 돈짜리 사향을 내오라해서 진품을 자랑한다.  나도 사향은 안다. 재벌 영감 심부럼 가서 두어번 설악산과 향로봉에서 나온 진짜 사향 본 적 있다. 두 돈이면 대략 2-3천만원 하는 고가품이라, 사향은 사향노루를 한마리 그대로 통채로 가져와서 뱃바닥에 붙어있는 걸 보여주고 팔고, 사는 사람은 그걸 확인한 후 사향만 오려간다. 공진단은 옛날엔 황제만 먹었다는 사향이 들어간 고귀한 단약이다. 서민들은 먹기 어려운 약이다.

 무호는 정보살 부르더니 나에겐 공진단 한 박스와 사향소합원, 보명환 각각 한 박스, 세 박스를 선물하고, 두 사람에겐 공진단만 빼고 선물한다. 보명환은 무호 선친이 만든 처방이다. 60 가지 약재 중 40개에 암 예방하는 약재가 들어간 것이다. 우리 동기들은 대개 무호를 하종인이라 부른다. 불교신문 기자였던 나만 무호대사라 부른다. 그바람에 무호는 나를 칙사대접 한다.

  테스트 겸해서 선(禪)에 대한 이야기도 좀 물어봤다. 그런데 무호는 조사선, 달마선, 간화선의 경전 출처와 내력을 논한다. 숱한 선지식 만나본 내가 봐도 많이 안다. 이런 기인(奇人) 친구가 있는 건 청복(淸福)이다. 

 통도사 노장급에 속하는 스님들이 그와 친구이니 

 무호는 한 때 감방에 들어가 암흑가의 보스 김*촌을 만났다고 한다. 일당이 모두 사형 선고를 받아, 무호가 탄원서를 써줬는데, 신기하게도 무호가 탄원서 써준 사람은 모두 감형되어 나중에 풀려났다고 한다. 그후 김*촌이 그후 무호를 고문으로 모셨다고 한다.

 저녁은 영도에 있는 그의 단골집에 가서 먹었다. 이층 별실에 앉으니, 백초(百草) 들어간 흑미백초죽에다 오리찜, 산삼주가 나왔다. 음식이 깔끔하고 고급스러웠다. 같이 간 두 거한이 걸구처럼 마구 먹기 시작했다. 배고픈 노점 상인 중국집 자장면 먹는 형용이다. 내가 코스 요리는 첫 음식은 맛만 보고 나중에 메인 요리 나올 때 그 진미를 감상해야 한다고 속도조절 하라고 주의 주었다. 그러나 소 귀에 경 읽기다. 초판부터 홀딱홀딱 청소하더니 막상 메인 음식 나오자 먹질 못하고 눈만 끔벅꿈벅한다. 웃으며 무호에게 주인에게 요리를 두 개의 도시락으로 포장 해달라고 부탁해보랬더니, 나중에 포장된 도시락 두 개 준다.

 무호와 거사는 올라간 산이 비슷하다. 초년에 불교신문 기자였다가 속세로 나온 사람이 거사고, 초년에 감방까지 헤매다가 불교계 입문한 사람이 무호다. 30년 전에 서로 길은 교차되었으나, 회포 남다르지 않겠는가. 그는 학창시절 겁 없고 거침없던 사람이고, 거사는 백 잔 술 마신 이태백의 풍류를  존경한 사람이다. 두 사람 다 불경 좋아하고, 한약 취미 있다. 오랜만에 마주앉아 천정 대들보가 흔들리도록 한번 통쾌하게 웃었다. 무호는 목소리가 너무 커서 귀머거리도 알아들을 정도다.

 밤 9시에 무차선원으로 돌아오는데, 그랜져 차 운전수가 아무래도 보통 운전수 아니다. 사연을 물어보니 그가 길바닥에 쓰러져 있는데 무호가 진맥해보니, 구급차 부르고 병원 가고 시간 보내면 그동안에 목슴이 끊어질 상태였다고 한다. 무호는 의사 면허증 없어 응급조치 하면 무면허 의료행위 된다. 그러나 사람부터 살려야 하지 않는가. 그래 응급조치 해서 그는 살아났고, 그후 그는 차 몰고 와서 생명의 은인 잔심부럼 해준다고 하는데, 작은 건설업체 사장이었다. 그후 무호가 일회 왕복에 백만원 받고 일주일에 한번씩 침을 놓아주던 울산 정주영 누님한테 그 분 이야길 해서 작은 공사를 얻어준 후론 더 극진하다고 했다.

 그날 우리는 무차선원으로 돌아와 정수리 백회혈과 발바닥 용천혈에 쌀알만한 쑥뜸을 받았다. 백회혈에 뜸을 세 개 놓자, 기가 하늘로 통하는지 머리가 시원하고 눈이 그처럼 맑아질 수 없었다. 그리고 무호는 보살님들 침 놓으러 가고, 우리는 선물보따리 들고 돌아왔다. 무호는 기인(奇人)이다.

                                                                                                                           (2008년 12월)

 

 후에 무호는 내 호를 만들어 돌에다 낙관을 새기어 보내왔다.

  

 동재(桐梓) 선생

 

 길가에 서서 황급히 몇마디 나누다, 벌에 쏘인놈처럼 허겁지겁 그렇게 헤어져 오면서 과연 이렇게 살아가는 내가 잘사는 것인지를 생각해보게 되더이다. 이제는 좀 여유롭고 좀은 편안해 보이는 그런 삶을 살아야 할 것인데도 잘못 보내버린 시간에 대한 보상 심리일런지. 나는 그렇게 아직도 다른 사람들이 당황해 할 삶을 살아가는구나 하고. 고등학교 졸업후 처음 만나는 것이 아닌가하면서 부산에서 거사 얼굴 보고 얼핏 생각난 말이 봉(鳳)이라는 말이었소. 마음대로 자란 반백의 수염이랑 하얀 머릿칼이 더 없는 여유로움으로 세월을 즐기는 모습에 한번도 본 일 없는 봉황(鳳凰)이 왜 떠올랐는지는  알 수 없지만, 아마도 무위자연(無爲自然)이 어떤 경지인지를 가르쳐 주는듯한 느낌이었소. 그래서 봉황이라는 단어가 출현하는 문장을 찾아보니 마침 시경 '대아'(大雅)의 '생민지십' 편에 봉황이 들어가는 문구가 나옵니다. 鳳凰鳴矣니 于彼高岡이로다. 梧桐生矣니 于彼朝陽이로다. 菶菶萋萋하니 雝雝喈喈로다

봉황새가 저 높은 산등성이에서 우네. 오동나무가 저 밝은 산 동쪽 기슭에서 자라네. 오동나무 무성하고 봉황의 울음 들려온다.

 

鳳凰之性은 非竹實不食, 非梧桐不棲, 非醴泉不飮.

 

'봉황의 성격은 대 열매 아니면 먹지를 않고, 오동이 아니면 깃들지 않고, 예천이 아니면 마시지를 않는다.' 라고 했네, 이 글에서 봉황이 깃드는 곳은 오동나무인 것을 알고, 동(桐)자가 들어가는 문장을 찾아보니 맹자 고자(告子) 상편에 나옵니다.  孟子曰 拱杷之桐梓를

 

'여기서 공(拱)은 두 손으로 에워싸는 것이요, 파(把)는 한 손으로 잡는 것이다. 동(桐)과 재(梓)는 오동나무 가래나무 두 나무를 말한다.'

이 글을 보면 동(桐)자 재(梓)자가 연합하여 단어를 이루고 있어 거사의 호를 동재(桐梓)로 정하였던 것이고, 동(桐)과 재(梓)는 모두 예부터 귀한 재목으로 악기나 고급가구 또는 의식용 목재로 쓰인 고급 원자재라 세상을 이루는 격조 높은 밑바탕이 되고 있음을 의심치 않는 내 거사에 대한 믿음이고, 또 동재(桐梓)는 맹자에서 누구나 기르고자 하는 나무라고 하여, 세상을 두루 포용하는 거사의 성품과 열망을 모두 담고있다고 생각 했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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