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라 천리길

내가 만난 여류시인/2015년

김현거사 2018. 4. 4. 16:57

내가 만난 여류시인/1

 

  여류시인은 어딘지 모르게 신비롭다. 그 분이 고향 사람이면 거기 정다움이 보태진다. 나는 매년 개천예술제 때 남강문학회 회원 자격으로 진주에 간다. 그 여행에서 세 분 여류를 만났다.

 한번은 이영성 시인과 너우니 물박물관에 갔을 때다. 나는 고향에 갈 때 마다 매번 쓸쓸함을 느끼곤 했다. 파성 선생 가신 후 진주는 어떤 문인이 사는지 모르겠고, 학생 시절 느끼던 은은한 예술의 향기가 사라졌다. 사람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나는 배 떠난 항구를 찾은 나그네 같았다. 

 그러다가 너우니 물박물관에서 어떤 시를 하나 발견하였다. 아직도 진주에 이런 여류시인이 있구나 싶어, 나는 속으로 무척 기뻣다. 수몰되어 사라진 까고실이란 동네를 읊은 시였다. 

'어이 농파! 이 시를 쓴 김정희란 여자 아나?'

 '잘 알지.' 

'그럼 됐다.  언제 그 사람 한번 소개해주소.'

 토백이 시인 농파에게 이렇게 부탁을 해놓은 얼마 후 그 분을 만났다. 진주고 강당에서 열린 남강문학회 모임에서다. 교정에 고급승용차가 하나 스르르 멎더니 노부인 한 분이 내린다. 그러자 친구 영성이가 나를 불렀다.

'거사야! 이분이 자네가 물박물관에서 소개해달라고 부탁한 그 분이다.'

이렇게 김정희 선배님을 만났다. 난초를 사랑하여 1974년에 첫시집 <소심(素心)>을 낸  분 다웠다. 동양적인 외모였다.

 인연의 첫고리는 이렇게 맺어졌고, 이어 두번째 세번째 고리도 맺어졌다.

 그 분은 진주 세비리에 약간의 땅을 가지고 계셨다. 아래로 남강과 도동이 내려다보이는 경치 좋은 곳에다 한옥을 지어놓고 문학관 간판을 달았다. 나는 진주에 문학관이 선다는 그 자체가 반가웠다. 그래 자주 전화 드리고, 내 책도 서너권 보내드린 참이었다. 그 바람에 김선배님이 내 동기 김두진 교수 숙모님이란 것도 알았다. 그 분은 나에게 진주에 와서 집필할 생각이 있으면, 언제던지 문학관에 와서 묵으면서 글을 써보라고 권해주시기도 했다. 

 그런 저런 인연으로 2013년 남강문학회 진주 모임 숙소는 거기로 정해졌는데, 다음 날 새벽 6시에 나 혼자 일어나 전시실에 올라가 불을 켜놓고 구경하는데, 누가 새벽부터 불을 켰나 궁금하셨던 모양이다. 김선배님이 컴컴한 새벽에 문학관에 올라와 대화를 나눠주시고, 이영도의 <탑>이란 시 앞에 이르자, 나지막한 음성으로 그 시를 읊어주셨다.

 

너는 저 만치 가고

나는 여기 섰는데

손 한번 흔들지 못하고

돌아선 하늘과 땅

애모는 사리로 맺혀

푸른 돌로 굳어라 

 

아시다시피 미인이 시를 읊어주면 시가 더 감동적이다.

 

    

 

 문학관엔 청마와 김영도 사이에 오간 편지, 이호우의 달밤, 김소월의 육필 시, 육당 최남선과 노산 이은상의 시집 등 희귀본이 많았다. 거기서 선배님의 고마운 배려도 만났다. 문학관에 진주 문학의 좌장격인 청다 이유식 선배님 코너야 당연히 있을만한 것이지만, 그 옆에 이름도 없는 이 후배 코너도 조그맣게 만들어놓았던 것이다. 너우니 물박물관에 전시된 시를 보고. 특별히 자기를 만나고 싶어한 후배에 대한 배려인듯 싶었다.

 그 뒤 나는 선배님의 저서 한 권을 받고, 또한번 반가움을 느꼈다. 불교 공부 하시면서 엮은 <화엄을 꿈꾸면서>란 제목의 책인데, 펼쳐보니, 추천의 글에 동국대 목정배 교수 글이 실려있다. 목교수는 나도 잘 아는 분이다. 불교신문 기자 출신으로 당시 동대 총장 비서로 있으면서 간혹 신문사 들리면, 걸찍한 농담을 잘 하던 분이다. 김선배님 서문 첫구절도 반가웠다. '귀의(歸依) 삼보(三寶) 하옵고' 였는데, 그 구절은 내가 교계에서 늘상 듣던 것이고 나도 자주 사용하던 서두다.

 그 책에선 선배님 인생관을 엿볼 수 있었다. 우주는 거대한 하나의 연꽃이다. 세상사 밝고 어두운 부분이 있지만, 크게 보면 한송이 연꽃과 같다. 모두 아름답다. 희노애락과 시비선악이 여기선 한송이 꽃으로 승화된다. 이 화엄사상이 또한번 반가웠다.

 그  분이 경주 남산을 읊은 시는 불교적 색채 농후했다.

 

<경주 남산에 가면>

 

경주 남산에 가면

내 그리운 사람이

바위 속 문을 열고

걸어서 나오실까

감실의 부처님처럼

집 지키고 계실까

 

하략

 

 나는 바위 속에서 그리운 사람이 걸어나오기 기다리고, 감실 부처님을 만나려는 사람을 사랑한다. 또한번 반가웠다. 그 이후 나는 진주에 가도 별로 쓸쓸하지 않다. 선배님같은 분이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