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오는 날은 텃밭에서 방아 뜯어와 고추전 부쳐먹는 것도 좋지만, 미인과 연꽃 구경 가는 일도 좋다. 비 온 후 연꽃도 아름답지만, 시를 쓰는 미인을 연꽃밭에서 데이트 하는 일도 좋다. 내 궂이 그 분을 미당선생처럼,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천둥은 먹구름 속에서 또 그렇게 울었나 보다. 그립고 아쉬움에 가슴 조이던 머언 먼 젊음의 뒤안길에서 인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내 누님같이 생긴 꽃이여' 라고 읊지 않으련다. 양수리 洗美苑 연꽃밭에서 금요일에 데이트 하기로 한 그 분 젊은 시절은 국화 정도론 어울리지 않으니까. 신문기자 출신의 지성적이고 세련된 외모를 가진 분이 뛰어난 詩才 지녔으니, 한때 한양의 시인묵객들 얼마나 마음 설레었을까. 그런 누님 같은 분이, 글 쓰는 고향 후배라는 단 하나 이유로, 소탈하고 쾌활한 성품 그대로, 나의 작년 가을 북한강 단풍 테이트에 이어 이번 두번째 洗美苑 연꽃 데이트에 흔쾌히 수락해주니, 거사는 복도 많다.
그분은 한국 여류시단에서 아래 소나무 같은 분
아래 위치에 앉는분
거사는 이 분의 1968년부터 2012년 까지 열 몇 권 시집을 망라한 두번째 시전집을 기증 받아 처음부터 끝까지 읽은 적 있다.
'이렇게 청초하고 수줍은 여인이 있었나 저녁 어스럼 조심조심 밟아 내려오는 운악산 산자락 울울한 나무 그늘에 없는듯 조용히 해맑은 미소 머금고 있는 은난초꽃'
그런데 날 잡고 보니, 전날 밤 번개 치고 뇌성 울리고 소낙비 소리 요란했는데, 아침에 차를 몰고 하남시 가니, 검은 구름 사이로 푸른 하늘 쬐끔 얼굴 내밀더니, 아내와 함께 세 사람 양수리에 도착하니, 하늘이 너무 푸르다. 비온 뒤라 더 깨끗하다.
우리 집 내무반장도 같이.
洗美苑 연꽃밭을 두어 시간 산책 한 후, 양평 남한강변 초계탕 맛 보고, 바다같은 넓은 팔당호가 보이는 찻집에서 차 마시고. 문단 이야기 싫컿 들었다. 이영도 시인과 청마 사이에 오고 간 이야기.서영은과 김동리 선생과 손소희 선생 이야기. 초정 김상옥 선생 이야기. 이번에 두번째 문학관 만든 신봉승 선생 이야기. 실력 있고 매너 깔끔한 황순원 선생 이야기. 젊은 시절 박경리 선생 이야기.
나는 통영 박경리 선생 묘소에 가 본 적 있다. 통영이 작가를 마치 왕릉처럼 사후에 모신 것을 보고, 부러운 생각을 가진 적 있다. 출향 작가들 문학관 하나 만들어놓지 못한 고향 진주 생각 해봤다.
진주 문화예술회관 그 넓은 공간은 뭔데 쓰는 것일까. 진주 출신 시인 소설가 수필가 화가 작곡가 가수를 소개하는 전시실이 있는지. 사람들이 관람하도록 해놓았는지. 어차피 건물 관리하는 경비는 나가는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부산 송도 해수욕장에 있는 현인 동상과 번호를 누르면 노래가 나오는 뮤직박스가 생각났다. 우리 남강문학회 사람들 자갈치서 한 잔 하고, 언제 거기서 칠팔명이 아주 중인환시 속에 <굳세어라 금순아>를 비롯한 서너 곡 합창 하다가 온 적 있다. 진주도 남인수 이봉조 이재호 정민섭같은 음악인 얼마나 많은가. 촉석루 입구가 좋을까. 아니면 서장대 아래 신안동 초입이 좋을까. 아주 트롯트 본고장답게, 동전 넣으면 <애수의 소야곡> <밤안개>같은 음악 나오는 뮤직박스 서너개 만들어놓는다고 나쁠 건 없다. 공원에 시비, 문학비 한 스므개는 세우야 한다는 생각도 해보았다. 파성, 동기, 이병주. 박재삼, 이형기. 최계락....그리고 현역들.....
남들은 문학축제 얼마나 많은가. 하동은 토지문학제. 당진은 심훈상록문화제, 양평은 황순원문학관, 평창은 효석문학제, 고창은 미당문학제, 봉평은 메밀꽃 축제. 문학 축제 아닌 축제도 많다. 통영 연극축제. 부여 연꽃축제. 강진 청자 축제, 봉화 은어축제, 영광 갯벌축제, 보령 머드축제, 영월 동강축제, 충주 호수축제, 태안 튤립축제. 다 지역 행정관서에서 예산 내놓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이런저런 이야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나눈, 유쾌한 하루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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