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라 천리길

The autumn leaves/2012년

김현거사 2018. 4. 4. 16:21

        The autumn leaves

 

   나이 들어도 누구나 젊은 시절 애창하던 노래 하나는 있다. 손자가 넷이나 되는 나 역시도 총각 때 애창한 곡이 있다. 그 노래는 오랜 세월을 거친 古家의 이끼처럼 고색 찬연하다. 그러니 누가 한번 나에게 평생을 통하여 가장 잊혀지지 않는 노래가 무어냐고 물어달라. 나는 서슴없이 이 노래를 소개할 것이다.

 '고엽(The autumn leaves)'은 60년대의 노래이다. 당시 젊은이 누구나 이 노래 몇구절 부를 줄 알았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유행은 지나갔고, 사람들은 <고엽>을 잊어버렸다. 그래서 이젠 어디서 문득 이 노래를 들을라치면, 그때사 잠시 '아! <고엽>' 하며 잊혀진 이 가을노래와 재회한다.

  <고엽>은 샹숑이다. 그러니만치 부드러운 불어의 콧소리 섞인 비음을 유심히 들어야 제 맛이 난다. 이 노래는 이벹트지로나 에딧삐아프, 이브몽탕을 세계적으로 유명하게 만든 노래다. 그들의 여운 깊은 간드러진 바이브렡으로 들어야 제 격이다. 불어의 뜻은 모르지만, 그때 불어가 이리도 감각적이고 세련된 언어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당장 불어 배우고 싶은 생각이 난다. 세상에 이벹트지로나 에딧삐아프란 여자가 다 있구나 싶다. 그들의 목소리는 바이올린 현 보다 섬세하고, 가늘다. 음색이 비단 실 같다. 이 비단 실은 우리를 천상인지 지상인지 알 수 없는 황홀한 음의 오솔길로 인도한다. 그때 우리는 이 목소리를 내는 여인의 입술을 홀린듯 바라보게 된다. 그들을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으로 생각한다. 이브몽탕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의 노래를 듣노라면 빠리가 과연 예술의 중심지라는 생각을 한다. 그의 노래는 부드러우면서 쓸쓸하다. 그리고 세련되다. 연인이 있던 없던 연인을 그립게 한다. 추억에 잠기게 한다. 그의 표정과 절제 속에서도 다정한 목소리는, 어쩌면 저렇게 남자가 멋있게 나이 들었는가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특히 이 곡은 노래 나오기 전 도입부 피아노 전주곡이 사정없이 가슴을 친다. 망치로 치듯, 한 음 한 음 똑똑 떼어서 치는 둔탁한 음 사이로, 재빨리 몇번씩 반복하며 높은 음에서 낮은 음으로 숨 막히게 내려가는 피아노 반주는, 우리 가슴을 통채로 후벼 판다. 어쩌면 이 전주는 이리 매정하게 남의 마음을 그리움으로 아프게 쑤셔놓나 싶다. 참으로 세기에 하나 나올까 말까한 명곡이다.

 원체 유명한 곡이었다. 그래서 영어로도 많이 불리었다. 낫킹콜, 패티페이지, 도리스데이, 프랭크씨나트라, 앤디월리암스, 톰존스 등 수많은 추억 속 가수들이 이 노래를 불렀다. 영어로 들으면 가사의 뜻을 음미할 수 있어 좋다. 가사는 시로 손색 없음을 느끼게 한다. 바이런이나 키이츠같은 서구 어느 시인의 시 못잖음을 알 수 있다.  'The falling leaves, drlft by my window'  원래는 자크풀르베르의 시다. 이 시는 영어로 번안되면서 좀 변했으나, 첫대목부터 우릴 멜랑코리에 잠기게 한다. '창가에는 낙엽이 떨어지고 있다. 낙엽은 붉고 노란빛이다. 나는 당신의 입술을 본다. 그 여름의 키스들을 생각한다. 내가 잡았던 햇볕에 탄 손목을 생각한다. 그러나 당신이 가버린 지금, 날들은 길어져만 간다. 나는 곧 겨울의 노래를 듣게 되나니. 사랑하는 이여! 당신이 가장 그리운 때는 바로 낙엽이 떨어지는 때 입니다.' 

 나는 <고엽>이란 노래를 평생 사랑해왔다. 'The falling leaves, drlft by my window'  첫구절만 들어도 금방 타임머신 타고 옛날로 돌아간다. 순결한 하얀 탱자꽃 피던 집이 있었다. 그 집에는 한 소녀가 살았다. 이 노랠 부르며 나는 그 집 옆을 얼마나 서성거렸던가. 소녀를 단 한번도 만난 적 없다. 단 한번 말을 건네본 적도 없다. 그러나 이제 세월은 가고, 소녀는 어딘가로 떠났다. 소녀가 가버린 고향은, 더 이상 고향이 아니다. 더 이상 꽃은 신비롭지 않고, 달빛은 애잔하지 않다. 예전처럼 더 이상 강물은 다정하지 않다. 오직 그때 부른 노래만 사무치게 남아있다. 소녀는 이제 <고엽>이 되었다. 샹숑이 되었다. 세월에 실려 사람은 가고, 노래만 남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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