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진주라 천리길/1

김현거사 2011. 6. 16. 21:14

 

아름다운 고향스토리 한번 엮어봅니다.습작이라 소설이 될지 뭐가 될지 모르지만요.

 

  

   <진주라 천리 길>

 

 

 이 이야기는 픽션일 것이다. 사실과 환상이 섞인 것이 분명하다. 어느 토요일, 김교수가 들려준 이야기다. 그는 은퇴 후, 고향인 진주(晋州)의  모 대학교 겸임교수를 지내고 있다.


 그는 강의 차 매주 진주로 내려갔다. 그런데, 갈적마다 고향 친구 신세 지는 것이 번그럽더라고 한다. 그래 대개 잠은 찜질방에서 자기로 하고, 점심은 그곳 교수들과 하지만, 저녁은 혼자인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이야기는 어느 날 밤에서 시작되었다. 강의를 마치고 드라이브 겸 식사나 하려고, 신안동 들판으로 차를 몰고 서장대 밑으로 갔다고 한다.  망진산 지나 약수암 건너편  ‘습지원’이란 곳에 차를 세웠더니, 달이 밝더라고 한다. 달빛은 기암절벽을 비치는데, 강물은 잔잔하더라고 한다. 약수암은 그가 초등학교 시절에 선생님 따라 동요를 부르며 소풍다닌 곳이다. 화강암 원석 징검다리 밑에는 해오라비 몇 마리가 고요히 잠들어 있었다.

이런 풍경을 보니, 그냥 고향에 돌아와 저 대밭 속에 초막을 하나 짓고, 한복 입고, 차나 끓이며 살고싶다는 생각이 와락 들더라고 한다. 그는 대학 졸업 후 직장생활을 서울서 보냈다. 그런데 고향은 이처럼 고요하고 아름다웠다. 그동안 그가 50년간 무얼 찾아 타향을 헤매였는가. 문득 눈시울이 시큰하더라고 한다.


 그때 김교수 눈에  대밭 속의 한옥 한 채가 보이더라고 한다.

‘어떤 사람이 이 멋스러운 곳에 한옥을 저렇게 운치있게 지어놓고 살까!’

그래서 닥아가보았다고 한다. 대로 만든 사립문도 맘에 들고, 그 사립문 위에 핀 붉은 복숭아꽃 몇송이가 그렇게 곱게 느껴질수가 없더라고 한다. 집은 겨우 두어칸 될듯말듯. 앙증맞도록 작은 한옥이었다.  지붕의 골기에는 푸른 이끼가 고풍스러웠다고 한다. 마당엔 쌍사자가 받친 석탑도 있고, 오죽(烏竹)과 소나무 분재가 몇 점 있었다. 달빛 속 그 모든 풍경은 김교수 자신이 그렇게 살아보기를 원하던 것이었다고 한다. 

‘누구세요?’

그때 안에서 한 여인의 목소리가 들렸다. 삼십 초반 여인이었다. 비에 젖은 배꽃 같이 하얀 피부가 무척 곱더라고 한다. 난초잎처럼 가늘고 깔끔한 눈섶이더라고 한다. 그런 눈섶을 김교수는 좋아한다.

 ‘어머나! 서울 교수님 아니세요?’

여인이 자신을 알아보더라고 한다. 

‘어떻게 오셨어요?’

 연거퍼 질문하는 여인을 보니, 진주 시내 모처에서 본 여인이었다. 김교수는 간혹 진주 다도회에 나가 진주 해인대학 최범술 스님의 <한국의 다도>란 책을 교재로 강연을 한 적 있었다. 거기 총무를 맡은 여인이었다.

‘우연히 강의 끝나고 드라이브 나왔다가....'

그가 설명하자,

‘잠시 들렸다 가세요’

이렇게 그 여인을 만났다고 한다. 실내는 간결하고 깔끔했다. 창가에 난화분 몇개, 바닥에는 원목 차탁이 있더라고 한다.

'사는게 이렇게 단순해야 더 운치있지...'

그는 이런 생각을 했다고 한다. 여인은 뒤에서 김교수가 벗어놓은 신발을 바닥에 가지런히 해놓고 올라오더라고 한다. 신발을 가지런히 해놓는 올라오는 마음씨가 맘에 들더라고 한다. 그건 한 시대전 양갓집 풍속이다. 밖에는 개골개골 개구리 울음소리만 들려오고 있었다고 한다. 밖에서 들어온 달빛이 여인을 비치고 있었다. 달빛 속 여인 모습은 마치 선녀 같았다. 

‘그렇지 않아도 교수님의 심오한 다도 이야기에 감동했었는데....'

 미리 김교수에게 여인은 관심이 있었단 표시였다.

'아니예요. 감동이랄 것 까진..... 다도를 말로 해서 뭐합니까? 그냥 이처럼 고요히 사시는 모습이 바로 다도 속의 경지인데요.'

 몇마디 이야기 오간 후, 여인이 식사 전이냐고 묻더라고 한다. 그리고 일방적으로 부얶에 들어가 추어탕을 내오더라고 한다. 그리고 음식상 앞에 고요히 마주 앉더니, 얌전하게 두손으로 수저를 건네주더라고 한다. 내놓은 식기는 고태 나는 놋제품이고, 추어탕은 따끈하고, 산초는 향기로웠다. 김교수가 원래 복고풍 사람이다. 여인의 음식 수발에 큰 감명을 받았다고 한다.

김교수는 이런 분위길 좋아하는 사람이다. 그러나 그의 현실은 좀 달랐다. 아내는 남자가 담배 피운다고 구박한다. TV는 챈널을 독차지 하고, 자동차 세차는 물론, 설겆이까지 시키는 편이다. 요즘 부인은 남자의 또하나 상전 이다. 남자를 쓸쓸하게 한다. 옛날 여인을 그립게 한다. 자식들도 허전하기는 같았다.  강남에 집까지 주어 내보낸 자식은, 며느리까지 직장 다니지만, 한번도 외국 여행 가시라며 봉투 내민 적 없고, 보약 한 첩 보낸 적 없다고 한다. 이제 돈벌던 불쌍한 기계는 폐품 취급이고, 이게 요즘 풍조라는 거다. 그래 김교수는 진주에 오면, 매번 지리산엘 들린다. 그 아래 어디 자그만 다원이나 차려서 살아볼까 싶어 혼자서 땅을 찾으러 다닌 일이 많다.

‘머루주 한잔 드릴까요?’

식사가 끝나갈 즈음 이렇게 물러준 여인이 또 무척 맘에 들더라고 한다. 밖엔 달이 휘영청 밝고, 아무도 없는 빈 집에서 미인이 술한잔 서비스 하겠다는 제안에 어느 목석같은 남자가 반하지 않을 수 있겠더냐는 것이다. 여인은 머루는 약수암 근처서 따와서 직접 담은 것이라 설명하더라고 한다. 약수암은 그가 초등학생 시절 소풍다닌 곳이라 더 반갑더라고 한다. 잔을 건네는 여인의 숙인 아미(蛾眉)도, 진홍빛 술빛도 한편의 고전으로 느껴지더라고 한다.

‘술은 많이 마신다고 좋은 것이 아니고, 단 한 잔 마셔도 이래야 천금의 가치가 있는 것이지.’

이야기 도중 김교수는 득의양양하여 덧붙인 대목이다. 대숲에선 잠 든 새소리만 나직이 들려오는 밤이었다고 한다. 호젓이 이야기 나누다 밤 깊어 김교수가 일어났다고 한다.

‘ 진주에 오시면 저희 집을 꼭 찾아주셔요.'

달빛 속 여인이 차 앞에서 이렇게 말하더라고 한다. 꼭이라는 그 말이 너무 행복하게 느껴지더라고 한다.

                                                                                                               (1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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