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에 인삼 좀 심어놓고2011.06.08. 09:31
같은 약초도 지리산서 자라면 약효가 강하다. 그래 명의 허준과 유의태 선생이 산청에 살았던지 모르겠다. 나는 몇년 전에 지리산 남쪽 화개동천에 삼을 심은 적 있다. 이번 단오엔 동쪽 함양 서상과 산청 중산리 두곳에 심어놓고 왔다. 몸통에 주름이 잡힌 3년근이라, 당장 금년에 꽃 피고, 빨간 열매 맺힐 것이다. 열매 일부는 새가 먹고 날아다니며 배설하여 먼 곳에 싹을 튀울 것이다. 새야 어딘들 못날아 가랴. 지리산 이쪽저쪽에 다녀 애기삼 번질 생각하니 은근히 즐겁다. 난생 처음 삼 심어본 이장군 김교수 최상무 오교장이 그리 좋아하였다. 한 3년 지나면 20만원짜리 장뇌가 될 것이다. 고희연 때 그걸로 삼계탕 끓일 약속 미리 하며 다들 한바탕 통쾌히 웃었다.
사람들은 산삼 장뇌 인삼이 차이가 많다고 믿지만, 나는 믿지 않는다. 약간의 약효 차이는 있지만, 산에 서 자란 인삼이 산삼과 뭐가 그리 다르겠는가. 고려 때는 산에서 캔 산삼을 모두 인삼이라 불렀다. 다리 갈라진 모습이 사람처럼 생겼기 때문이다.
떡 본 김에 제사 지낸다고, 간 김에 주변도 좀 둘러보았다. 우선 청학동 원묵계 성낙근 시인의 <茶悟室>부터다. 시퍼런 물 위에 하얀 때죽나무 꽃잎들이 한없이 흘러가고 있었다. 그 옆 정자에 올라가니, 여기서 바둑 두거나, 낮잠 한번 깊이 들면, 세상의 그 시시한 일들 까맣게 잊어버릴만 하겠다 싶었다.
좌측부터 오태식교장 거사 김두진교수, 이종규장군, 성혜근. 뒤가 최상호 싸부님.
황토방에 들어가 감잎차 마시며 벽면 가득한 차관 구경하였다.
성시인이 티벳과 중국 고원 지대에서 수집한 것들이다.
직접 만든 찻숟가락들도 이채로웠다. 계곡에 떠내려온 나무가지를 주워와 조각한 것이란다. 제멋대로 생긴 나무숟가락들이 모두 지리산록 바람소리 물소리를 품고 있었다. 무심을 깍은 솜씨가 부러웠다. 지리산 골짝 골짝 안 가본데 없고, 지리산 깊은 골에 숨은 도인 모르는 이 없는 그의 삶이 부러웠다. 반가웠던 것은 그 분도 같은 진주 사람인 점이다. 무슨 인연인지 그분이 내 수필을 읽어본 적 있다고 말한 점이다. 감잎차 몇잔 대접 받고, 화개장터로 떠났다.
화개장터서 참게탕과 메기탕 놓칠 수 있던가. 배불리 먹고 장터 둘러보니, 그것도 풍류다. 죽순 한보따리가 만원이요, 매실 10킬로가 2만5천원, 지리산 약초 천지다. 상황버섯, 꾸지뽕, 인진쑥, 가시오가피, 삼지구엽초같은 귀한 약재 가득하다. 이장군은 흔치않는 커다란 천문동 뿌리를 샀고, 최상무 역시 흔치않는 적하수오 커다란 덩어리를 샀다. 그 다음 간 곳이 달빛초당이다. 초당 주인 김필곤 시인은 마침 부산에 가서 어긋났지만, 茶心亭은 우릴 반긴다. 바위 아래 돌확에 떨어지는 석간수에 목 축인 후, 다심정에서 참외를 깍았다. 땅은 좋은 주인 만나 곳곳이 운치 있다. 위에 세 개 폭포 품은 계곡 야생복숭아나무는 고목이 되어 비스듬히 누워있고, 烏竹은 죽순이 싱싱하게 뻗어간다. 흙 털어내고 조성한 커다란 반석 아래 연못엔 白蓮이 심어져있고, 그 위에 올라가 참선삼매 빠지면 딱 좋겠다싶은 넓적바위는 멀리 지리산 능선 조망하고 있다.
달빛초당 취나물밭에서
임자없는 초당 둘러보고, 칠불사로 갔으니, 쌍계사서 운상원에 이르는 꼬불꼬불 산길은 겨울에 칡꽃이 피었다하여 화개동천이라 부른다고 한다. 칠불사 절 입구에 돌로 쌓은 둥그런 연못 있으니, 이 '天飛淵'에서 가락국 허황후가 수도하던 일곱 왕자가 성불하여 황금가사 입고 승천하는 모습을 보았다고 한다. 산이 절을 손바닥으로 감싸고있는듯한 산세였다. 단아한 석축 밟고 오르니 普說樓의, 동국제일선원이란 현판이 보였다.
보세루 지나니 亞字房이 왼편에 나타난다. 담공화상이 신비한 기술로 구둘을 놓아, 동안거 시작 때 세개의 아궁이에 불을 지피면, 다음 해 정월 보름 해제시까지 온기가 가시지 않는다 한다. 대웅전 측면의 일곱 왕자상 배관하고 내려와서 최상호 상무가 단소를 불었다. 최상무는 국창 안숙선씨 남편이다. 여기 운상원은 옥보고가 거문고 타던 곳이다. 창공을 올려다보니, 절 지붕 위 수목 울창한데, 모든 나무들 잠시 움직임 멈추고 고요한 단소 소리에 귀 기울이는듯, 하늘의 흰구름도 가던 걸음 멈추는듯 했다.
해질녂도 좋았다. 옥종 덕천강변 文岩亭에 올라가 이순신 장군 백의종군 길 돌아보았다. 푸른 갈대는 바람에 흔들리고, 하얀 새는 한가로이 황혼의 덕천강 날고 있다. 오교장 안내한 집도 특별했다. 죽순과 가죽나물, 피리찜이 별미였다. 천리 밖의 그런 집 고향 친구 아니었으면 어떻게 알았겠는가. 참숯집에서 샤워하고 개운한 몸으로 중산리 꼭대기 두류동 밤하늘을 구경했다. 밤도 좋았다. 달은 초생달, 청천하늘엔 잔별도 많고, 거기 내지르는 오교장의 시조창도 일품이었다.
<산촌(山村)에 밤이 드니 먼딋 개 즈져온다. 시비(柴扉)를 열고 보니 하늘이 챠고 달이로다.
이튿날도 좋았다. 하루 종일 약초 캐기로 한 날이다. 새벽에 일어나니, 찔레꽃 여기저기 만발했고, 밭엔 도라지와 당귀 잘 자라고, 어딘선가 산비둘기 울고있다. 우리가 흔히 보는 자주빛 엉컹퀴 뿌리는 정력 허실한 남자의 보약이고, 도시 주변이나 길옆, 더러운 물이 흐르는 수채 주변에서 흔히 자라는 돼지풀이라고 부르는 소루쟁이는 모든 염증이나 암에 특효약이고, 우리 발에 자주 밞히는 질경이는 車前子라하여 이뇨에 좋고 혈압을 내려주는 약이다. 산마다 지천으로 깔린 그 흔한 山竹도 당뇨에 특효약이다. 산죽 중에 최상품은 지리산 산죽이다. 생강나무 잎으로는 쌈을 싸먹고 가지로는 차를 끓인다. 최상무는 보는 나무마다 풀마다 그 성능을 소개해준다. 장군 교수가 이렇게해서 처음에는 그를 선생님이라 부르다가, 나중에는 <本草선생>이란 고상한 아호를 지어 올렸다. 이날 제자들은 각자 한보따리씩 산죽 부위 중에서 가장 약효가 좋은 뿌리를 수확했다. 당뇨 고혈압 끼 있는 집사람들에게 점수 딸 일은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 즐거운 하루 노동이었다. 저녂엔 제피 부드러운 잎을 튀겨먹었다. 향긋한 제피 튀김에 삼천포 고등어와 민어조기의 고소한 배합을 속인들은 모를 것이다. 식후 덕산 수박 맛도 좋았고, 즉석에서 만든 생강나무 차도 그윽했다. 지리산은 온갖 약초와 나물로 덮힌 산이다. 생초 쯤에서 였을까. 상경하는 차 속에서 다시 높고 준수한 지리산 품을 돌아보았다. 내가 지금 뭐하러 공해에 덮힌 서울로 가고있나, 차를 돌리고 싶은 맘이 굴뚝같았다. (2011년 6월) |
같은 약초도 지리산서 자라면 약효가 강하다.그래 명의 허준과 유의태 선생이 산청에 살았던지 모르겠다. 나는 몇년 전에 지리산 남쪽 화개동천에 삼을 심은 적 있다. 이번 단오엔 동쪽 함양 서상과 산청 중산리 두곳에 심어놓고 왔다. 몸통에 주름이 잡힌 3년근이라, 당장 금년에 꽃 피고, 빨간 열매 맺힐 것이다. 열매 일부는 새가 먹고 날아다니며 배설하여 먼 곳에 싹을 튀울 것이다.새야 어딘들 못날아 가랴. 지리산 이쪽저쪽에 다녀 애기삼 번질 생각하니 은근히 즐겁다. 난생 처음 삼 심어본 이장군 김교수 최상무 오교장이 그리 좋아하였다. 한 3년 지나면 20만원짜리 장뇌가 될 것이다. 고희연 때 그걸로 삼계탕 끓일 약속 미리 하며 다들 한바탕 통쾌히 웃었다.
사람들은 산삼 장뇌 인삼이 차이가 많다고 믿지만,나는 믿지 않는다. 약간의 약효 차이는 있지만, 산에 서 자란 인삼이 산삼과 뭐가 그리 다르겠는가.고려 때는 산에서 캔 산삼을 모두 인삼이라 불렀다. 다리 갈라진 모습이 사람처럼 생겼기 때문이다.
떡 본 김에 제사 지낸다고,간 김에 주변도 좀 둘러보았다. 우선 청학동 원묵계 성낙근 시인의 <茶悟室>부터다. 시퍼런 물 위에 하얀 때죽나무 꽃잎들이 한없이 흘러가고 있었다. 그 옆 정자에 올라가니, 여기서 바둑 두거나, 낮잠 한번 깊이 들면, 세상의 그 시시한 일들 까맣게 잊어버릴만 하겠다 싶었다.
좌측부터 오태식교장 거사 김두진교수 이종규장군 성혜근.뒤가 최상호 싸부님.
황토방에 들어가 감잎차 마시며 벽면 가득한 차관 구경하였다.
성시인이 티벳과 중국 고원 지대에서 수집한 것들이다.
직접 만든 찻숟가락들도 이채로웠다.계곡에 떠내려온 나무가지를 주워와 조각한 것이란다. 제멋대로 생긴 나무숟가락들이 모두 지리산록 바람소리 물소리를 품고 있었다. 무심을 깍은 솜씨가 부러웠다. 지리산 골짝 골짝 안 가본데 없고, 지리산 깊은 골에 숨은 도인 모르는 이 없는 그의 삶이 부러웠다. 반가웠던 것은 그 분도 같은 진주 사람인 점이다. 무슨 인연인지 그분이 내 수필을 읽어본 적 있다고 말한 점이다. 감잎차 몇잔 대접 받고,화개장터로 떠났다.
화개장터서 참게탕과 메기탕 놓칠 수 있던가. 배불리 먹고 장터 둘러보니, 그것도 풍류다. 죽순 한보따리가 만원이요, 매실 10킬로가 2만5천원, 지리산 약초 천지다. 상황버섯, 꾸지뽕, 인진쑥, 가시오가피, 삼지구엽초같은 귀한 약재 가득하다. 이장군은 흔치않는 커다란 천문동 뿌리를 샀고, 최상무 역시 흔치않는 적하수오 커다란 덩어리를 샀다. 그 다음 간 곳이 달빛초당이다. 초당 주인 김필곤 시인은 마침 부산에 가서 어긋났지만, 茶心亭은 우릴 반긴다. 바위 아래 돌확에 떨어지는 석간수에 목 축인 후, 다심정에서 참외를 깍았다. 땅은 좋은 주인 만나 곳곳이 운치 있다. 위에 세 개 폭포 품은 계곡 야생복숭아나무는 고목이 되어 비스듬히 누워있고, 烏竹은 죽순이 싱싱하게 뻗어간다. 흙 털어내고 조성한 커다란 반석 아래 연못엔 白蓮이 심어져있고, 그 위에 올라가 참선삼매 빠지면 딱 좋겠다싶은 넓적바위는 멀리 지리산 능선 조망하고 있다.
달빛초당 취나물밭에서
임자없는 초당 둘러보고, 칠불사로 갔으니, 쌍계사서 운상원에 이르는 꼬불꼬불 산길은 겨울에 칡꽃이 피었다하여 화개동천이라 부른다고 한다. 칠불사 절 입구에 돌로 쌓은 둥그런 연못 있으니, 이 '天飛淵'에서 가락국 허황후가 수도하던 일곱 왕자가 성불하여 황금가사 입고 승천하는 모습을 보았다고 한다. 산이 절을 손바닥으로 감싸고있는듯한 산세였다. 단아한 석축 밟고 오르니 普說樓의, 동국제일선원이란 현판이 보였다.
보세루 지나니 亞字房이 왼편에 나타난다. 담공화상이 신비한 기술로 구둘을 놓아, 동안거 시작 때 세개의 아궁이에 불을 지피면, 다음 해 정월 보름 해제시까지 온기가 가시지 않는다 한다. 대웅전 측면의 일곱 왕자상 배관하고 내려와서 최상호 상무가 단소를 불었다. 최상무는 국창 안숙선씨 남편이다. 여기 운상원은 옥보고가 거문고 타던 곳이다. 창공을 올려다보니, 절 지붕 위 수목 울창한데, 모든 나무들 잠시 움직임 멈추고 고요한 단소 소리에 귀 기울이는듯, 하늘의 흰구름도 가던 걸음 멈추는듯 했다.
해질녂도 좋았다. 옥종 덕천강변 文岩亭에 올라가 이순신 장군 백의종군 길 돌아보았다. 푸른 갈대는 바람에 흔들리고, 하얀 새는 한가로이 황혼의 덕천강 날고 있다. 오교장 안내한 집도 특별했다. 죽순과 가죽나물, 피리찜이 별미였다. 천리 밖의 그런 집 고향 친구 아니었으면 어떻게 알았겠는가. 참숯집에서 샤워하고 개운한 몸으로 중산리 꼭대기 두류동 밤하늘을 구경했다. 밤도 좋았다. 달은 초생달, 청천하늘엔 잔별도 많고, 거기 내지르는 오교장의 시조창도 일품이었다.
<산촌(山村)에 밤이 드니 먼딋 개 즈져온다. 시비(柴扉)를 열고 보니 하늘이 챠고 달이로다.
이튿날도 좋았다. 하루 종일 약초 캐기로 한 날이다. 새벽에 일어나니, 찔레꽃 여기저기 만발했고,밭엔 도라지와 당귀 잘 자라고, 어딘선가 산비둘기 울고있다. 우리가 흔히 보는 자주빛 엉컹퀴 뿌리는 정력 허실한 남자의 보약이고, 도시 주변이나 길옆, 더러운 물이 흐르는 수채 주변에서 흔히 자라는 돼지풀이라고 부르는 소루쟁이는 모든 염증이나 암에 특효약이고, 우리 발에 자주 밞히는 질경이는 車前子라하여 이뇨에 좋고 혈압을 내려주는 약이다. 산마다 지천으로 깔린 그 흔한 山竹도 당뇨에 특효약이다. 산죽 중에 최상품은 지리산 산죽이다. 생강나무 잎으로는 쌈을 싸먹고 가지로는 차를 끓인다. 최상무는 보는 나무마다 풀마다 그 성능을 소개해준다. 장군 교수가 이렇게해서 처음에는 그를 선생님이라 부르다가, 나중에는 <本草선생>이란 고상한 아호를 지어 올렸다. 이날 제자들은 각자 한보따리씩 산죽 부위 중에서 가장 약효가 좋은 뿌리를 수확했다. 당뇨 고혈압 끼 있는 집사람들에게 점수 딸 일은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 즐거운 하루 노동이었다. 저녂엔 제피 부드러운 잎을 튀겨먹었다. 향긋한 제피 튀김에 삼천포 고등어와 민어조기의 고소한 배합을 속인들은 모를 것이다. 식후 덕산 수박 맛도 좋았고, 즉석에서 만든 생강나무 차도 그윽했다. 지리산은 온갖 약초와 나물로 덮힌 산이다. 생초 쯤에서 였을까. 상경하는 차 속에서 다시 높고 준수한 지리산 품을 돌아보았다. 내가 지금 뭐하러 공해에 덮힌 서울로 가고있나, 차를 돌리고 싶은 맘이 굴뚝같았다. (2011년 6월) |
동재 사는게 참 보기좋다.
따뜻이만 이끌어주시지만...
두 분다 진정한 문우.글 쓸 맘 납니다.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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