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기

변산반도 단풍 여행!

김현거사 2011. 1. 19. 10:38

   변산반도 단풍 여행!


 올해처럼 단풍이 곱게 물든 가을엔 누군가와 훌쩍 먼 곳으로 여행을 떠나고 싶던 참이었다. 맘 맞는 누군가와 소주잔 앞에 놓고 한번 밤새도록 이야기 나누고 싶던 참이었다. 늘그막의 네 사람 다 그런 생각이었던 것 같다. 그래 인덕원에서 만나 승용차 하나에 탑승하여 변산반도로 떠났던 것이다.
 모두 어제 밤은 소풍가기 전날 초등학생처럼 잠 설쳤다고 한다. 핸들 잡은  운전수는 권순탁
합기도협회 회장. 그 옆에는 김두진 진단학회 회장. 뒤에는 이종규 전 육군소장과 수필가인
거사. 초판부터 농담으로 시작했다. 김지미 나훈아 이야기.
'이 발은 누구 발?'

'지미씨 발.''

이 팔은 누구 팔?'

'지미씨 팔'.

 

 한바탕 웃으며 밖을 내다보니, 산도 들판도 고속도로 휴게실도 단풍으로 울긋불긋 하다. 천지가 색동옷 입었다. 은행나무는 노란 레인코트 입은 빗속의 여인처럼 싱그럽고, 단풍나무는 밤 깊은 카페 마담 얼굴처럼 붉다. 산과 강 갈대들은 하얀 은발 날리며 날 부르고, 키다리 미루나무는 노란 빤짝이치마 입고 빤작빤짝 춤 추고 있다. 올 가을은 유독 단풍이 인상 깊다.

 부안 가서 먼저 백합죽 집을 찾아갔다. 소방소 옆 부안군 향토 음식 1호점 이화자씨 음식점이다.
집도 널찍했지만 깔끔한 음식은 과연 전라도답다. 퍼렇기에 청포묵인가 했더니, 흑깨묵이라 했고, 삭은 맛 사근사근 씹히는 것은 묵은지고, 하도 맛깔나서 두 번 청해 먹은 것은 대한민국 젓갈 일 번지 줄포만 곰소 멸치젖이다. 꿀처럼 단 것은 노란 단호박찜이요, 흑갈색으로 목젖을 술술 달콤하게 넘어가는 것은 모주였다. 허허, 그것 참 첫 단추부터 멋지게 잘 꿰었다.



 우째 이런 일이 벌어지나 싶었다. 격포 대명콘도는 권회장이 내민 VIP멤버쉽 카드 알아준다. 멤버쉽은 일반의 반값이고, VIP는 멤버들의 반값이라는 것이다. 4인실 하루밤이 단돈 2만5천원이란다. '이거 완전히 공짜다! 떡 본 김에 제사 지낸다고, 온 김에 한 일주일 쯤 놀다 가자.' 창밖에 하얀 파도는 백마처럼 힘차게 달려와 채석강 층층절벽에 부서지고 있다. 경치 좋다. 그 장관 내려다보면서 우리끼리 히쭉대면서 한 말이다.

 방에 짐 놓고 찾아간 곳은 능가산 내소사다. 철 늦어 절 입구 상가들이 전어 구워대는 연기 가득한 군침 도는 장면은 볼 수 없었다. 그대신 바지락 넣고 굽는 파전 냄새가 자극적이다. 푸른 전나무 숲길 걸어가면서는 내소사 땅 밑을 한번 파봐야겠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좌측 권순탁 합기도협회장.거사.이종규장군.김두진교수.


도대체 어디다 물감통을 얼마나 파묻었기에 내소사 단풍은 모두 저리 붉을까. 붉어도 그것이 어디 그냥 붉은 것이냐. 전문가가 나무를 샤넬이나 루이비통 화장품으로 화장시켜도 이리 세련되게 만들지 못한다 싶었다. 모두 깔끔 화려 선명하다. 이런 칼라감각은 탁월한 천재만이 구사할 수 있다. 네 노인을 깊이 감탄케 한 내소사 단풍이었다.

 다음 선운사로 갔다. 곰소에 들러 갈치 내장젖 한 통씩 차에 실었다. 그 다음 찾은 선운사 단풍 역시 내공이 고수이다. 여긴 한술 더 떴다. 가을 꽃무릇으로 유명한 선운사 도솔천 천변 단풍은 우선 노랑 주홍 진홍빛 매치부터 심창찮다.

 

 


마침 해는 서산에 지고, 사방은 어둠에 물드는 시각이었다. 숲은 가장 청정한 공기를 내뿜고 있었다. 신선의 세계가 이런 곳이라 싶었다. 이 장군과 김 교수는 법당에 들어가 부처님 전에 예를 올리고, 거사는 단풍한테 예를 올린다고 법당 앞에 서있었다.



천지가 화장세계고 만물이 부처인데, 귀의할 곳이 어디 쇠로 만든 그 분에게만 한정될 것인가.
법당 앞의 두 그루 늙은 목백일홍과 홍시 곱게 달린 키가 우리 키 다섯 배나 될 늙은 감나무한테도 예를 올렸다. 선운사 단풍은 나에게 좋은 화두를 하나 던진다. 사람도 나무도 어떻게 곱게 단풍이 들어 늙어가야 하는가.


 세상 뛰어난 단풍 구경한 그 밤에 할 일은 무엇인가. 갯내음 가득한 주점에 갈 일이다. 밖은 태풍이 오는지 먼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문을 덜컥대고 있었다. 두 손으로 전어 꼬리와 머리 잡고 전어구이 통째로 뜯으며 일잔하고, 세발낙지 먹고 일잔 하고, 소라 먹고 일잔 하고, 문어 먹고 일잔 하고, 우럭 매운탕 먹고 일잔하고, 전복 내장 오늘 운전수로 수고한 권회장에게 넘기면서 일잔하고, 일 배 일 배 부일배, 권커니 마시거니 웃으며 담소하며 자정을 넘겼다. 살아온 시간이 많았으니 화제도 끝이 없다. 사단장 출신 이장군은 부하가 많았기에 사람 다루는 솜씨 좋다. 몇 마디 말로 서빙 하는 아줌마 기분 완전히 살려놓는다. 쉽게 한 접시 서비스 전어구이 내오도록 스타트 끊는다. 그러자 권회장이 가만 있을 리 없다. 안주인 불러 목소리 낮춰 귀에다 뭐라고 손근대고 잔을 권하자, 그 잔 마신 여인이 가만있질 않는다. 서비스 안주 끝없이 나온다. 문일평 이병기 이병도 이희승 이은상 같은 거유가 창립한 진단학회 회장 김 교수는 선비답게 수줍게 웃기만 하고, 거사는 바다 건너 중국쪽 채석강에서 배 타고 술 마시며 강물에 뜬 달을 잡으려던 이태백을 생각했다. 인생은 한바탕 봄날의 꿈처럼 짧은 것, 그 좋은 양야(良夜)에 모름지기 백 잔의 술로 회포를 다스려야 하는 것이다. 이처럼 좋은 자리 또 몇 번 있을지 누가 아는가.



 익일 아침은 미끈한 온천물로 목욕한 후 잠시 바닷가 거닐었다. 전망대에 올라가 밀려오는 광활한 파도를 감상하였다. 사람도 저 파도 같을 것이다. 끝없이 밀려오고 밀려가고 할 것이다. 사람도 아마 어제 우리가 본 내소사 선운사 단풍 같을 것이다. 해마다 곱게 물들어 떨어져 사라질 것이다. 오직 기억할만한 일은 간밤처럼 좋은 벗과 맘껏 잔 권하며 정담 나눠본 일 아니겠는가. 차에 올라 서울로 향하니, 변산과 군산 연결하는 새만금 방조제는 백리나 된다고 했다. 사람도 사실 외로운 섬 아니던가. 섬을 연결한 그 긴 방조제와 바다 구경하면서 돌아오는 차속에서 그런 생각을 해보았다.

 

                                                                (11년 11월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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