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기

고향 친구의 맛

김현거사 2011. 1. 19. 10:32

 

타향살이 50년 쯤 되면 그리운게 고향이다.사람도 연어같다. 고향 물맛까지 그립게 된다. 10월3일 출향 진주 문인들 '남강문학'2호 출판기념회 차 진주 갔다가,진주비빔밥과 삼천포 전어 맛 보고왔다.비빔밥은 古都 진주처럼 겉모양은 소박하나 맛은 깊었다.전어는 남해 선소방파제에서 콩대불로 구으면, 고소한 냄새가 삼천포까지 날라간다는 명물이다.둘 다 과연 이맛이었어 하고 무릅칠만 하다.그런데 이번 여행에서 음식보다 더 깊은 맛 보고왔다.지리산 골짝 골짝 달린 홍시처럼 달콤한 친구의 맛이다.

 

가자마자 버스 터미날 옆 고려병원 원장실로 갔다.얼굴에 금이 묻었나 뭐가 묻었나,반가운 눈빛부터 참 좋다. 복도에 대기하는 환자가 많아,흰 까운 입은 원장 붙들고 노닥거리는 것이 맘에 걸렸으나,차 한잔 마시고 얼굴 보고 가려던 일이 3시간  넘기고 말았다.

그는 요즘 불교에 심취하고 있었다.불교 관련 책에 깨알같은 메모를 해놓고 있었다.부인은 함양에 절을 하나 세웠다고 한다.불교 기자였던 나 역시 한 때 절을 물색한 적 있다.좋은 스님이 절에 계시니 일요일 밤을 함께 절에서 보내자는 걸,선약 때문에 미뤘다. 내게 '생활 참선'이란 책 한 권을 선물했다.종교는 실천이 중요하다는 내용이었다.서울공대 박희선 교수 저서였다. 진주 친구들에게도 책을 나눠준 모양이었다.

그는 내 전화를 받고 생각을 해봤다고 한다.캐비넷을 열더니 뭘 하나 끄집어 내었다. 도라지 담배 한 갑이었다. 단종된지 1년 넘은 담배다.도라지에 입맛 들였던 우리로선 가히 보물로 칠만한 것이다. 그와의 만남은 잠시였지만, 감회는 짜릿했다.

 

그날 밤 '남강문학'2호 출판기념회 성공리 끝나고,술과 음식 끝났는데, 밖은 가을비 내리고 있었다.50여 출향 문인들 숙소 이동이 문제였다.이때 합천 이영성 시인이 어디다 전화를 건다.그러자 가을비 나리는 그 밤에 한 친구가 차 가지고 나타나 우릴 숙소에 태워준다.마산 MBC 전무 퇴직한 병화란 친구다.그는 문우회 선배님들 대접하라면서 맥주 한보따리 안겨주고,이튿날 아침엔 다시 나타나 옛날 진주시청 뒤 해장국집에 데려가 막걸리 잔 채워주었다.

 

 촉석공원 돌아보고,박물관 돌아보고,개천예술제 백일장 돌아보고,백일장 심사차 진주에 온 유안진 교수와 점심 마치자.초등학교 동기 셋이 나타났다.어릴 때나 지금이나 얼굴 새카만 오태식 교장 첫마듸는 이랬다.'가을 아니가?북천 코스모스꽃 구경하러 가자.'함께 온 원호란 친구는 키가 일미터 팔십삼.그의 여동생은 키 크고 얼굴이 백인여자처럼 하앴었다.시집가서 남해 산다고 했다.삼영이란 친구 보니, 옥경이 노래 생각났다.'언젠가 어디선가 본듯한 얼굴인데...' 이름만 기억나는 친구였다.꽃도 고향꽃이 더 아름다운 법.코스모스 맨드라미 금송화 푸른 하늘 맑은 물, 초등학교 친구들과 맘껒 보았다. 나선김에 이병주문학관 둘러보고,다솔사 둘러 보았다.

 

다솔사는 언제 꼭 한번 가보고 싶던 절이다.주지 최범술스님은 배건너 우리집 옆에 사시던 분이다. 해인사서 두 인물 나왔으니,참선 실행은 성철스님이요,동경 유학 학승은 崔凡述스님이다.해인대학 학장 재직시 그 학교 교정에서 평행봉 하고 공도 차면서 스님 애먹이던 기억 남아있다. 장성하여 보니,스님은 차도(스님은 다도란 말을 쓰지 않으셨다)의 대가였으니,전라도 하면 의제 허백련이요,경상도 하면 曉堂 최범술 스님이다.항간에선 초의스님 '동다송'을 저술로 알지만,아니다.'동다송'은 육우의 '다경'을 요약한 편지에 불과하다.근세 한국 최고의 차 이론서는 효당스님의 '한국의 차도'란 책이다. 

다솔사 들어가니,장군대좌형 산세에 소나무가 장관이고,법당 오르는 계단 옆 파초도 장관이다.여기 요사채는 김동리씨가 10여년 머물던 곳이라 더 유심히 보았다.그는 여기서 그의 형 범부와 최범술스님 만해스님이 나누는 대화 중에서,중국의 燒身供養 이야기에 감명 받아 소설 '等身佛'을 썼다.

다솔사 적멸보궁 뒤편은 차밭이다. 이 죽로차 차밭은 꼭 한번 보고싶던 것이다. 최고의 차 이론가 효당스님이 조성한 차밭이고,당시 한국 최고 지식인이 모였던 곳이기 때문이다.차밭 보면서 나는 인사동에서 만났던 그분의 나중 부인을 생각해봤다.그분은 나와 같은 해 진주여고를 졸업, 연세대를 다녔으며,般若露 茶會를 운영하고 있었다. 그날 내가 차도 공부하는 동석한 여대생들에게 효당스님을 소개하여 반응이 좋자,그분은 날더러 같이 茶會를 운영하자고 제의한 적 있다.

 

 김동리 만해 효당이 마셨을 약수 한사발 마시고 절에서 나와 찾아간 곳이 진교  白蓮里다. 동네가 벼논 대신 모두 연밭이다. 백련만 심어 더 멋스러운데,마침 연밭에  젊은 새댁이 서있다.문득 이태백의 '작은 조각배를 타고 웃으며 연꽃 따는 약야계 아가씨'란 시가 생각났다.

이 동네는 16세기 전통 막사발 굽던 가마터가 발견된 곳이다.분청 상감 철화백자까지 만들었다 한다.일본 국보 찻잔인 '이또다완'(井戶茶碗)의 고향이 여기라는 설이 유력한 모양이다.동네 이름이 일명 새미골인데,샘은 한문으로 井자 아니던가.

 여기 진주여고 출신 한 미인이 가마를 운영하고 있다는 이야길 들은 적 있다.진주 대아고 이사장도 여기 가마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백련리 옆에 골프장 조성중인 동기 전춘식 사장은 한때 서울서 미모 떨치던 장금정씨를 여기서 만나 연꽃차 대접받은 모양이다.그러나 미인 보려는 기대반,막사발 보려는 기대반으로 전사장에게 전화로 위치 물어가며 찾아간 날이 마침 일요일이다.모두 문 닫고 아무도 없고, 취화선 촬영지란 팻말만 우릴 반겨준다.성질 급한 진주 친구들 퍽이나 실망하는 눈치였다.어쨌던 진주 최범술스님의 차밭, 진주 출신 두분이 재현하는 막사발 가마 본 것만으로도 맘 흐믓했다. 

 

'지리산 흑돼지가 좋나,삼천포 회가 좋나?'진주 돌아오며 오교장이 우리에게  묻고 데려간 곳이 역전 근방 횟집이다.거기 나온 우렁쉥이 개불 전어 도미 우럭 맛을 서울 횟집 것에 비하랴.이영성 시인은 간밤 술로 완전히 녹아있고,차속에 앉으면 참선한 거사는 술시 되어 원기왕성 고향 미각을 완벽히 음미했다.

 

장대동 오교장 집에서 자고 아침에 仙鶴山 覽德亭 射臺로 올라갔다.여뀌꽃 붉은 언덕 위에 오르니 남강과 촉석루 보이고 145미터 전방에 과녁이 보인다.나는 진작부터 친구의 국궁 쏘는 장면을 한번 보고 싶었다. 활은 몽고와 우리 한반도 동이족이 옛부터 유명했다.활은 쏠 때는 왼손으로 활대를 태산을 밀듯이 앞으로 밀고,오른손으로 화살을 힘센 호랑이 꼬리를 당기듯 뒤로 당긴다. 호홉을 조절하여 고요히 숨을 멈추고,집중하여 과녁에 시선을 모우면, 나중에는 목표점이 허공에 문짝처럼 커다랗게 보이고,이때 風勢를 가름하여 쏘면 백발백중이란다.국궁은 항상 자세를 바로하고 호홉을 참선하듯 하니 건강에 아니좋을 수 없다.참 좋은 취미생활이다.

 

활터에서 내려와 교장 집 거실에 차려놓은 황공무지한 밥상을 받았다.팔뚝만한 생선이 놓였길래 부인에게 이름을 물어보니 민어조기란다.간장게장과 버섯구이도 좋지만, 김치는 고향 땅낌 쐬고 자란 진주 배추로 담은 것 아닌가.손님이 맛있게 잘 먹자 곁에서 따뜻한 시선으로 지켜 보던 친구부인이 식사 도중에 또한마리 민어조기 구워내고,김도 구워 내놓는다.성의가 50년 전 진주 살 때 손님 대접하던 그 성의다.서울은 이런 미풍양속 사라진지 이미 오래.문득 황량한 페허에서 다시 따뜻한 사람 사는 곳에 온 기분 느꼈다.폐 끼치며 친구집에 잔 이유는 새벽 활 터 구경때문이었는데,의외의 감동이었다.

 

 차마시며 잠시 한담하는데,오교장은 덕산장은 4일 9일,함양장은 2일 7일. 곤양과 안의는 5일 10일,진교는 3일 8일.인근 5일장 날짜를 줄줄 왼다. 5일장 다니면서 철 따라 신선한 약초 채소 구해오는 것이 취미라 한다.지리산 아래 맑은 물가 에서 고동 잡는 것이 취미라 한다.'산촌에 밤이드니 먼뒷개 짖어온다' 그는 지난 제9회 전국 정가대회서 금상 받았다.맑은 산수를 앞에 두고 이렇게 혼자 창도 할 것이다.속세 벗어난 즐거움을 혼자 누리는 사람을 高人이라 할 것이다.

이윽고 집 나서자,부인은 날더러 이렇게 말했다.'간밤에 주무신 방은 선생님 방입니더,언제던지 다시 와서 쓰도 됩니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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