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2

자연인처럼 살아보기

김현거사 2016. 12. 28. 16:45

 

 

 

  자연인처럼 살아보기

 

  요즘 나는  '자연에 산다', '갈데까지 가보자'란 TV 프로그램 팬이 되었다. 어쩔 수 없는 사정으로 몸은 도심 아파트에 갇혀 살지만, 마음은 자연인처럼 산 속에 살고싶다.

 

 우선 도연명(陶淵明)의 '음주(飮酒)'란 시부터 한 수 감상하고 들어가자.

 

'사람 사는 곳에 집을 지었으나 수레의 시끄러운 소리 들리지 않네.

그대에게 묻노니 어찌 그럴 수 있는가. 마음이 속세와 멀어지니 사는 곳이 절로 외지네.

동쪽 울타리 밑에서 국화를 따다가 한가로이 남산을 바라보노라.

산기운은 아침 저녁이 아름답고 나르던 새들은 짝 지어 돌아오네.

이 속에 참된 뜻 있으매 말을 하려하나 이미 말을 잊었네.'

 

  나는 자연인을 보면서 많은 걸 배운다. 우선 마음의 평화를 배운다. 산 속의 자연인은 만날 사람이 없다. 낮엔 구름과 만나고 밤엔 달과 별만 만난다. 그러니 맘이 편하고 스트레스가 없다. 만병의 시초가 스트레스인데, 산에서 약초 캐고 돌아댕기는 사람에게 병이 오겠는가. 있던 병도 스스로 물러간다.

그래 나도 사람 만나는 일을 줄였다. 아무나 만나 껄꺼러운 인간관계 남길 일 없다. 전화는 핸드폰에 이름 수록된 사람 아니면 받지 않는다. 지금 와 이 나이에 새삼 청와대서 중요한 일로 날 찾는 전화 올 일 없다. 도연명처럼 동쪽 울타리 밑에서 국화를 따고 한가로히 남산을 바라보고 싶다. 아이로니컬하게도 이렇게 맘 먹고 왕래 줄이지, 사람 귀한 줄 알고 그리운 줄 알겠다.  

 

 두번 째, 나는 자연인처럼 약초 찾아가는 출행을 자주 한다. 자연인이 산을 두서너개 넘어가듯이 나는 전철 두서너번 갈아타고 경동시장 찾아간다. 자연인처럼 능선과 계곡을 헤매진 않지만, 이골목 저골목 시장 골목을 샅샅이 헤맨다. 가능한 한 운동량을 자연인처럼 늘인다.

 산삼이 몸에 좋다지만, 실제 산삼 먹는 사람보다 삼 캐러 다니는 심마니가 더 건강하다. 맑은 공기 마시며 산에서 운동 많이 하기 때문이다.  

 

 간혹 모란 닷새장 찾아간다. 한번은 통통하니 살이 오른 더덕이 눈에 딱 들어왔다. 그것이 해발 1천2백 미터 횡성 평창 고지대 것인지, 아니면 지리산 화개장터서 올라온 것인지 모르겠다. 껍질에 더 영양소가 많다고 믿어 벗기지 않고 물에 대충 씻어 방망이로 두들긴 후 고추장 발라 가스불에 구워 먹어 보았다. 

 자연인처럼 겨울 나목 휘감아 오른 하얀 마른 더덕 줄기 찾아 눈 속의 땅을 헤치고 아직 싹대 싱싱한 더덕을 캐내는 기쁨을 맛보거나, 흙을 털고 생으로 진한 향기 음미하는 그런 것도 아니고, 속살이 향기로운 장작을 패고 활활 타는 장작불 위에 굽는 생동감 나는 것도 아니지만, 나름대로 더덕 향기는 좋았다.

 

 자연인은 얼어붙은 땅에서 냉이 몇뿌리 캐고, 거기 된장 몇 점 넣고 국 끓여 만족한 표정 짓는다. 산이 주면 얻고, 주지 않으면 만다는 그 마음이 중요하다. 달래같은 산채를 발견해도 딱 그 날 필요한 양만 가져오는 그 마음이 중요하다. 무욕은 마음을 편하게 만든다.

 자연인은 소식(小食)과 생식(生食)을 즐긴다. 먹거리 귀해서 그렇겠지만, 소식하면 뱃 속이 편하다. 생식(生食)은  혈액이 맑아져 신선한 산소를 몸 속 구석구석에 잘 운반할 수 있어 정신이 또렷해진다. 이런 점이 매력이다. 

 

 그런데 서울 재래시장은 산나물이 흔하다. 양평 용문산, 포천 백운산, 원주 치악산, 홍천 공작산, 강원도 곰배령, 기린면 방태산, 평창 가리왕산, 제천 월악산 것이 다 모인다.  

 참나물, 두릅, 곰취, 병풍취, 곤드레, 당귀, 다래순, 고비, 고사리, 삽초싹, 민들레, 거제도 방풍나물, 울릉도 명이나물까지 나온다. 

 그래 나는 원칙을 세워두었다. 한번 가면 그날 먹을 것 딱 한가지만 사온다. 두번 세번 다시 가야 하지만 그건 운동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지난 번엔 왕고들빼기가 하도 크고 싱싱하길래 3천원에 사와서 내 텃밭의 당귀와 흰민들레 넣고 간장 물 식초 설탕 적당한 양 부어 한약 냄새 솔솔 나는 약선 장아찌로 만들어 보았다. 동양의학에서 약식동원(藥食同源)이라 하여 '약과 식품은 근원이 같다'고 한다. 고들빼기는 비타민이 풍부해 해독효과와 피부미용에 좋으며, 청열, 해독, 배농, 지통의 효능이 있다.

 그걸 한참 애용타가 건데기는 줄고 장만 남았길래, 표고와 곰취나물을 넣어두었다.  

 

  두릅과 참나물은 튀김옷 입혀 튀기고, 씀바퀴나 엉겅퀴는 어린 순과 뿌리 살짝 데쳐 들기름 넣어 무쳤다. 달래 연한 잎과 뿌리는 초고추장에 찍어 먹었다. 음식은 남자가 잘한다. 유명 중국집 주방장은 대개 남자이다.

 

 자연인이 조각배 저어 강에서 붕어나 쏘가리 잡는 모습을 보고 나도 붕어 사와서 붕어찜 만들어 보았다. 묵은지 밑에 깔고, 대파, 양파, 쑥갓, 고추장, 고춧가루, 물엿, 다진 마늘 양념 얹어, 자작자작 끓여 뼈가 뭉그러질 때 쯤 되면, 만원 짜리 월척 붕어 한마리가 천하일미 된다.

 

 마태복음에 '목슴을 부지할려고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걱정하지 말고, 몸을 감싸려고 무엇을 입을까 걱정하지 말라' 했다. '공중에 새를 보아라. 씨 뿌리지도 않고, 거두지 않아도 너희 아버지께서 그것들을 먹이신다.'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지 살펴보아라. 수고도 하지않고, 길쌈도 하지 않는다. 그러나 온갖 영화로 차려입은 솔로몬도 이 꽃 하나와 같이 잘 입지는 못하였다.'하였다.

 

 기독교인 아니지만 나는 말씀을 믿는다. 은퇴 후 수입이라곤 국민연금 밖에 없다. 비자금도 없다. 그러나 나는 걱정하지 않는다. 들의 백합화가 솔로몬 왕보다 낫다. 없으면 없는대로 살면 된다.

  

 차 만들기, 약술 담그기는 자연인의 취미다. 봄에 가장 먼저 꽃이 피는 것이 노란 생강나무 꽃이다. 꽃과 함께 가지도 꺽어 월정사 스님처럼 생강차 다려먹는다. 

 차 다리는 취미는 일종의 멋이다. 주전자에 하얀 김 모락모락 올라올 때, 그때 그 뜨거운 차를 따르고 마시는 그 멋은 아는 사람만 안다. 눈을 밝게 해주는 감국차와 결명자차. 술독 없애는 칡차, 몸살감기에 좋은 흰파뿌리와 생강차, 기억력 살려주는 원지와 석창포차. 새 살 돋게하는 황기차, 불로장생의 구기자차, 차는 약재 따라 효능이 다르다. 

 텃밭에 산뽕나무 두 그루가 있다. 산뽕은 당뇨에 특효약이다. 5월 어린 잎은 나물로 먹고, 6월엔 오디 따먹고, 10월엔 노란 뿌리 캐어 차를 다린다. 칡도 좋은 재료다. 왕성한 번식력으로 텃밭 농사꾼 귀찮게 하는 칡넝쿨 새순과 꽃은 효소 담그고, 뿌리는 캐어 차를 다린다. 

 

 복숭아 먹은 뒤 씨를 심어두었더니 텃밭 옆에 야생복숭아나무가 자랐다. 키가 나보다 크다. 내년 쯤 돌복숭아 몇개 열릴 것이다. 돌복숭아주는 살결을 곱게 하고, 대소변 잘 나오게 하고 결석을 삭이는 효과가 있다. 지난 번 지리산 중산리서 돌배를 사온 적 있다. 황금 빛 돌배주는 천식과 해소기침에 특효지만, 고유한 향기와 상쾌한 맛은 양주보다 한 수 위다. 

 몇가지 약초술이 있다. 30년 생 속초 도라지주, 오색약수 오가피열매주, 지리산 돌배주, 백두산 더덕주, 화성 송산 포도주가 그것이다.

 

 

약초꾼처럼 귀한 백하수오주, 백년 묵은 산삼주는 없지만, 재미는 있다.

 

  계림 여행 때 산수화 그림을 사온 적 있다. 그걸 그 방에 걸어두었다.

 

 

 조선 때 문장가 신흠(申欽)의 '야언선(野言選)'이란 글에 이런 구절 있다.

 

 '세상 밖에서 한가로움을 맛보고 세월이 부족해도 족함을 아는 것은 은둔 생활의 정(情)이요, 봄에 잔설(殘雪) 치우고 꽃씨를 뿌리고, 밤중에 향을 피우며 도록(圖籙)을 보는 것은 은둔 생활의 흥(興)이요, 벼루로 글씨를 쓰는데 글이 멋지게 잘 써지고, 술을 마심에 주곡(酒谷)에 언제나 봄 기운 감도는 것은 은둔해서 사는 사람의 맛(味)이다.

 차가 끓고 청향(淸香)이 감도는데 문 앞에 손님이 찾아오는 것도 기뻐할 일이지만, 새가 울고 꽃이 지는데 찾아 오는 사람 없어도 그 자체로 유연(悠然)할 뿐이다.

 봄이 장차 짙어지는 시절, 걸어서 숲속으로 들어가니, 오솔길이 어슴프레 뚫려있고, 소나무 대나무가 서로 비치는가 하면, 들꽃은 향기를 내뿜는데 산새는 목소리를 자랑한다. 거문고 안고 바위 위에 올라 두서너 곡조를 탄주하니, 내 몸은 마치 동천(洞天)의 신선인 듯 그림 속의 사람인 듯하다.' 

 

 나는 항상 자연인을 부러워 한다. 봄철엔 비단처럼 황홀한 산벚꽃, 진달래꽃이 산을 덮는다. 여름엔 부드러운 안개가 산을 에워싸고, 우렁찬 폭포소리 골을 울린다. 가을이면 만산홍엽이 산을 수놓고, 계곡엔 머루 다래가 익고, 소나무 아래는 향기로운 송이가 자란다. 겨울이면 눈 덮힌 자작나무에 차가버섯, 산뽕나무엔 상황버섯 달린다.

 나는 자연인처럼 맑은 개울에 산꽃이 떨어져 흐르는 걸 보고싶고, 구슬처럼 맑은 새소릴 듣고 싶다. 천지가 눈보라에 덮힌 밤 홀로 등잔 아래서 주어온 솔방울 화로에 불 붙이고 차를 다리고 싶다.

 

 그러나 현실이 어디 그런가. 도시 사람 모두가 그럴 것이다. 산이 없어 장뇌삼 못심고, 샘이 없어 약수 못먹고, 맑은 계곡물 없어 사시사철 냉수마찰 못한다. 감나무 없어 서리 맞은 홍시 구경 못하고, 대밭이 없어 죽순을 따지 못한다. 삽살개 키우지 못하고, 새벽마다 목청껒 우는 장닭 소리 듣지 못한다.  

 그래 그 천석고황(泉石膏肓)의 애달픈 심정을 글로 엮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