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지도 여행 봄도다리를 낚아서 도다리쑥국 끓여볼까. 통영 향남동 유명한 멍게비빔밥 먹어볼까. 참도미 낚아 도미 머리 양념구이나 해볼까 하는 생각 분분했다. 도다리와 도미, 두 '도'씨 중에 잡히는 걸로 요리 한번 해볼 요량이었다.
도미머리 구이는 뉴욕서 의사하는 친구 왔을 때 얻어먹어 봤는데 그때 챙피 좀 당했다. 모처럼 동기 왔다고 서울대병원 부원장이 한턱 쐈는데, 혜화동 그 일본집은 네시간 전에 예약해야 된다는 집이다. 그런데 가보니 통도미가 아니라 도미머리 구이가 아닌가. 뭐가 아까워서 하필이면 도미 대가리만 달랑시키냐고 묻자, 두 의사는 웃기만 했다. 옆에서 주문 받던 일식 주방장도 싱그레 웃으면서 잡숴보시면 안다고 했다. 도미의 진미는 머리구이에 있었던 것이다. 필요없는 건 다 제외하고 딱 진미 그 부분만 먹는 음식이었다. 어쨌던 촌티 내고 얻어먹은 일식집 도미머리 구이는 내 생전 처음 맛본 천하일미였다. 고객이라고 아무나 예약 받는 물건도 아니었다. 만드는 시간이 있고해서 하루 딱 두어군데만 예약 받는다고 했다. 옆 방 예약손님은 재벌회사 회장이었다. 비서들이 밖에 대기하고 있었다.
여하간 욕지도서 도미 낚아 도미머리 구이 할 희망 가지고 서울서 7시간 승용차 몰고 통영으로 갔다. 통영서 통영맛집 멍게비빔밥 찾아헤매다가 포기하고 삼덕항에서 욕지도행 카페리 탔다. 배가 바다에 뜨자 이 섬 저 섬 여기저기 하얀 산벚꽃 보이고, 초록 바다 물결 위엔 흰 갈매기 너울너울 나른다.
정태수 선생님 제자 문교장님 댁 찾아간 것이다. 정총장님은 진주사범 아버님 제자다. 한번 내가 미금역 음식점에 초대했을 때다. 계산 하러갔더니 이미 선생님이 중간에 계산을 하셨다. 왜 이러시느냐고 물었더니, '선생님은 내가 가장 존경하는 스승이고, 그냥 스승님이 아니라 일생의 은인입니다. 그 스승님 자제분을 대접한 것입니다' 하셨다. 참으로 인품 엿보이는 대목이었다. 시인은 문교부 차관, 서울 교육대 총장, 대진대 총장을 거치신 분이다.
욕지도 여행은 우연한 동기로 이뤄졌다. 남강문학회 인사동 모임에서, '나는 산해진미를 제자들이 철마다 보내옵니다. 지리산 사는 제자는 산에서 나는 걸 보내고, 욕지도 제자는 바다서 나는 걸 보냅니다.' 하시길래 욕지도 분 성함이 어떻게 되느냐고 했더니. 문모 교장선생님 이름이 나왔다. 욕지도에서 진주 사람 두사람이 교장 했을리 만무하다. 그 분은 내 가형(家兄) 동기다. 형님을 욕지도로 초대한 적 있고, 동생인 내 이름까지 기억했던 분이다. 이런 이야기 끝에 어느 일기 화창한 날 차 몰고 욕지도행을 감행한 것이다.
교장님은 초등학교 교장직 마감하고 풍광 좋은 곳에 초막 엮어놓고 여생을 보내고 있었다. 마당에 차 한대 겨우 주차할 수 있었다. 밑은 가파른 절벽이었다. 무화과 나무 사이로 푸른 파도가 밀려오는 것이 보였다. 집이 비둘기 둥지 같았다. 진입도로는 만리향 팔손이나무 대나무 노나무 짙푸른 아열대 상록림에 덮혀있다. 차 하나 겨우 통과한 아슬아슬한 길엔 하얀 산딸기꽃 만발하였다. 대밭의 산벚꽃나무 꽃잎 바람에 휘날리고, 손바닥만한 유채밭 복숭아나무 한그루는 빨간 꽃을 흐드러지게 피우고 비스듬이 누워있다.
그날 밤 혼자 마당에 나오니, 초생달 뜬 바다에 등불 밝힌 배들이 봄물결에 흔들리고 있다. 철썩 철썩 파도소리 너머 칠흑같은 어둠 속에 희미한 등불 하나 내게 손짓하고 있다. 아마 그 섬에 아직 누가 호롱불 켜고 사는 모양이었다. 초도엔 내 젊은 시절 추억이 숨어있다. 스물 한살 때 나는 초도에서 '춘희'의 주인공 보다 아름다운 처녀를 만난 적 있다.
이튿날 아침에 문교장님 안내로 낙시터로 갔다. 생전 바다낚시 해본적 없는 사람들이다. 우리 손에 교장선생님은 낚싯대 쥐어주고, 손수 새우와 청갯지렁이 미끼 달아주었다. 감동적인 장면이었다.
가두리 양식장 근처는 수심 20미터 쯤 된다고 했다. 우럭과 도다리가 잡힌다고 했다. '앞 포구 안개 걷히고 뒷 산에 해 비친다. 배 띄워라 배 띄워라...' 나는 앞산 꽃을 보며 '강촌 온갖 꽃이 먼 빛으로 더욱 좋다'던 어부사시사 확인하며, 낚시란 기다림의 미학이라는 걸 알았다.
파드득 떨린다는 손맛은 어떤 것일까. 두 숙녀분들은 궁금했을 것일다. 흥분 되었을 것이다. ‘도다리한테 끌려 들어갈라. 한손으로 뱃전 단디 잡으소’ ‘아니 갈매기가 채 갈라, 갈매기가 옆에 날아오면 뱃전에 납작 엎디리소.' 수다부터 떤다. 그러나 아무리 기다려도 갈매기만 날아올뿐 어신은 없다. 고기도 촌사람은 아는 모양이다. 왕초보는 무시하는 모양이다.
‘고기잡기가 이렇게 힘드니 앞으로 생선 드실 때는 어부들의 노고를 알고나 묵읍시다.’ 총장님 훈시가 나올 때 쯤 어신이 왔다. ‘왔는갑다!’ 첫 고기는 사모님. ‘뭔가 땡긴다’ 두번째는 집사람. ‘걸렸다!’ 세번째는 나다.
잡은 고기 이름은 섬마을 교장선생님이 알려주었다. 첫번째는 새끼 복어, 두번째는 노래미, 세번째는 우럭이다.
‘저 고기는 아직도 안죽고 와 저리 푸덕거리노?’ 이렇게 남이 낚은 노래미에 시비를 거신 분은 총장님 사모님이다. 누가 옆에서 ‘뭐가 당긴다.’고 소리치면, ‘아닐 거예요......’ 황급히 바람 빼던 분도 그 분이다. 핸드폰으로 ‘언니가 지금 욕지도서 도다리 큰 거 잡았다. 소문 좀 내어도라.’ 서울에 전화 걸어 좌중을 폭소 금치못하게 하신 분도 그 분이다. 지구를 낚아 바늘만 잃고 손맛 근처도 못가보신 분은 총장님이다.
배 위에 초장과 회칼 있었지만 우리에겐 필요없었다. 기대하던 선상 파티는 취소되었다. 그 신기하고 아깝던 포획물은 너무 작아서 바다로 돌려보냈다.
입맛 다시며 집에 돌아와 생선 파티 열었다. 문교장님이 미리 잡아놓은 고기가 많았다. 큰놈은 회를 뜨고 작은 놈은 구이가 되었지만 도미는 없었다. 도미대가리 구이는 물 건너 갔다. 그러나 욕지도 고기맛을 제대로 보았다. 옆에 남새밭 있고, 밑에 만장같이 넓은 바다 있다. 생각나면 채소 뜯고, 고기 낚아오면 된다. 거긴 시장갈 필요가 없는 동네였다.
다음 날이었을 것이다. 문교장님 배로 초도를 둘러보았다. 뒤에 '내가 만난 절세미인'이란 수필 배경이 된 그 섬엔 제주도에서 흘러온 노부부가 흑염소 키우며 산다고 하였다. 무성하던 동백숲이 없어진 걸로 보아선 50년 전 뭍으로 간 그 처녀가 동백꽃 그늘에서 미소 띄우고 다시 나타날 리는 만무했다.
섬에 올라가보자는 권유 사양하고 배로 한바퀴 섬 둘러보니, 한쪽은 절벽이다. 절벽에 가마우지 날갯짓 요란하다. 고기가 많이 모이는 지점인 모양이다. 계림에선 물고기 잡는 가마우지가 소 한마리 값으로 거래된다고 한다. 내가 초도에 살았으면 그 새 길들여 고기 잡았을 것이다. 사슴도 키웠을 것이다. 들장미도 키웠을 것이다. 초도는 제철 하루 입장객 2만명 몰린다는 외도보다 더 유명한 섬이 되었을지 모른다.
떠나올 때 두번째 감동적인 장면이 연출되었다. 문교장님은 살이 통통한 우럭 도다리 생물은 아이스박스에 넣어주고, 반건조 시킨 생선도 차 트렁크에 실어주었다. 노스승 방문 전 꼬빡 3일 동안 잡은 고기란다. 7순 제자는 부두에서 떠나는 스승에게 손을 흔들었다.
배가 통영에 닿자 눈 앞에 붉은 동백꽃 한송이가 떠올랐다. 노스승과 제자 모습이 그 위에 겹쳐졌다. 이번에 헤어지면 두 분은 언제 다시 만날까? 문교장님 홀로 남아있을 욕지도 파도소리가 귓전에 울렸다. 지금도 총장님이 메일을 보내면 문교장님은 한밤중에도 일어나 읽는다고 한다. 서울에 사는 문교장님 자제분 주례도 총장님이 섰다고 한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제간의 정을 보고온 여행이었다.
(09년4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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