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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백제왕국을 찾아서

김현거사 2016. 10. 16. 19:59

잃어버린 백제왕국을 찾아서


마침 연꽃 피는 철이다.부여 궁남지 백련 홍련 가시연꽃 향기가 사방으로 퍼질 때다.백제 문화 유적 찾아 떠나는 문학기행 오사카행 한국문인협회 일행 태운 비행기가 현해탄 나르는 기내에서 나는 낙화암 3천궁녀 얼굴 적시던 눈물에 궁남지 연꽃 향기를 칵테일 해보고 있었다.

칸사이(關西) 공항은 커턴처럼 구름 덮혀있다.천4백년 전 조각배에 몸 싣고 온 백제 도라이진(渡來人) 이야기 펼쳐줄 무대같다.목 쉰 ‘진도 아리랑’ 한대목이 아쉽던 것은 그래서다.

공항에서 오사카 가는 길 만개한 무궁화가 반갑다.미풍에 흔들리는 안개 속 대밭에 실비 옥구슬로 떨어지고,푸른 삼나무 덮힌 산에 물소리 가득하다.교외의 빛바랜 2층 목조주택 기와는 오랜 풍상 후 더 정갈하고,뜰의 잘 전지된 오엽송과 호랑가시나무 단정한 일본이다.


일본이 세계에 자랑하는 짧은 정형시 ‘와까(和歌)’의 탄생지는 오사카시(市) 와까현(和歌縣)이고,‘와까’의 시원은 왕인박사의 ‘매화송’(梅花頌)이다.지금도 왕족과 귀족 자제들이 ‘아버지 노래’(父歌)라며 붓글씨 교본으로 삼는 이 시는 단 두 행이다.

‘난파진(難波津)에는 피는구나 이 꽃이.

겨울 잠자고 봄이라고 피는구나 이 꽃이.'

(홍윤기 박사 역).

 

이 시는 얼핏 보면 겨울 지난 봄에 핀 매화 읊은 일견 단순한 것 같지만 ‘매화송’에 왕인박사의 깊은 회포 엿보인다. 난파진으로 입도(入島)했으니 봄마다 난파진 바닷가 매화 보면, 바다 건너 고향 영암의 봄이 그리웠을 터이다.지금 난파진 옛이름은 아득히 시로만 남고, 오사카항엔 신일본제철 간판과 육중한 골리앗 클레인만 보인다.


스다하치만신사(隅田神社)에 도착하니 하얗고 긴 옷소매가 우리 도포자락 연상시키는 궁사(宮司) 데라모토씨가 안내해준다.6세기에 백제 무령왕이 일본 오사카궁에 살던 친동생 ‘오도호왕자(南弟王)’에게 보낸 청동거울을 보관한 곳이다.거울 뒤 명문과 말을 탄 백제왕과 왕족 인물이 부각되어 있다해서 ‘인물화상경’(人物畵象鏡)이라 부른다.

 

뜰에서 ‘백제시(詩) 낭송회’가 열렸다. 백제 관음같이 기품있는 김후란 시인이 자작시 ‘인물화상경’ 읊고,홍윤기 교수는 ‘일본 교또(京都)에 가시거던’을 읊었다.

잇달아 추영수 김지연 정영옥 시인의 낭송은,아롱아롱 왕관에 매달린 곡옥(曲玉) 부딪치는 소리,청동거울 위로 자수정 구르는 소리처럼 맑다.

김년균 문인협회 이사장 인사말도 뜻깊었다.

헤아려보면,왕인박사 도일 후 천4백년만의 한국문인협회 단체 방문이다.

 

 밤에 나도 백제관음을 시로 한번 읊어보았다.

 

법륭사 백제관음


그의 미소는 마른 종이꽃

육탈한 피안의 미소인지 모른다.

중생의 괴로움 구제하려고

천개의 손 천개의 눈 가진 백제 관음보살.

오른손 부드럽게 들어 손바닥 보인 뜻은

중생의 고난 보듬으려는 자비요,

왼손 연꽃인양 내려 淨甁 잡은 뜻은

중생에게 감로수 내리려는 자애다.

누가 그를 동양의 비너스라 부르던가.

녹나무 깍아만든 

늘씬한 선 감춘 하반신 옷무뉘 

그 자비의 미소와 부드러운 손을 조각한

백제인의 이름은 아무도 모른다.

 

 

*千手千眼;천개의 손과 눈을 가진 만능의 보살. 중생의 고난을 살피는 보살. 관자재보살 혹은 관세음보살로 불리움

*白衣관음;  水月관음,천수천안관음이라고도 불리움


 백제 의자왕의 누이 사이메이(齋明)천황의 황태자였던 덴지(天智) 천황 모신 오우미(近江) 신궁은 백제계인 사또(佐藤) 궁사(宮司)가 지키고 있었다.그는 창 밖에 숲과 푸른 이끼 보이는 다다미방에 우릴 안내해,은행잎 새겨진 과자와 초록 ‘곤피’차를 대접했다.한 여류가 미남이라 칭찬하자,‘일본은 아이누족 남만족 인종 20 퍼센트 빼면,나머지는 다 대륙에서 온 도래인(渡來人)인데,그 중에서 특히 백제계 후손이 잘생겼다’고 웃으며 응수한다.백제 후손 자부심 엿보였다.버스 떠날 때 뜰에서 손 흔들던 데라모토씨 하얀 소매가 가는 사람 마음 흔든다.


 이튿날 아침 비야코호수(琵琶湖)를 방문했다.호수가 비파잎 같이 생겼는지,근처에 비파나무가 많은지,‘비파호수’ 이름 자체가 아름답다.덴지(天智)천황은 백제가 패망하여 외삼촌인 의자왕이 당나라로 잡혀갔다는 소식에 흰 삼베옷을 입고 정사를 돌봤으며,2만7천명의 구원군을 파견했다고 한다.그 지원군이 백촌강(白村江=금강) 전투에서 궤멸되자,백제 유민 2천명이 비파호 주변으로 이주해왔다고 한다.그 백제 유민은 아마 부여 정림사 5층탑 위에 스치던 달빛,고란사 종소리 그리워하며 망국의 아품으로 눈물지었을것이다.어찌 비파호 주변의 사찰 불상 신사 탑 도자기 와당 하나하나를 무심히 보아넘길 수 있을까.

 

바다같이 넓은 호반에 석산사(石山寺)가 있었다.비 내리는 산사 늙은 자미화(紫微花) 붉은 꽃잎 곱고,본당 올라가는 화강암 계단 밑 연못의 팔뚝만한 비단잉어는 샘물에 목 축이는 나그네 기척에 꼬리치며 모여든다.

여행의 묘미는 이런 걸까.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다보탑과 파초암(芭蕉庵) 월견암(月見庵) 찾아가는 그 선경(仙境) 속에서 나혼자 세 선녀 독차지하고 산책하는 행운 맛보았다.일행에 뒤쳐진 세 분 중 마침 두 분은 백제 쪽이다.경치도 절경이거니와 우산 속 여인들이 특히 미인들이었다.

정여옥 시인과


나라(奈良)는 사찰과 전통찻집이 매력있다.좁고 오래된 골목길 한가로히 거닐다가,몇그루 대나무 심어진 손바닥만한 화단 곁 스기나무 현관 미닫이 스르르 열고 들어가,두어개 탁자 놓인 작은 찻집의 기모노 차림 여주인과 마주앉아 그가 따르는 전통차를 마셔보라.이 때가 일본여행 중 가장 운치있을 것이다.고도(古都)의 향기가 고요히 느껴져올 것이다.

흰 사슴 타고 신이 내려왔다는 전설이 있었다고 한다.도다이지(東大寺) 경내는 사슴을 방치해놓고 있다.아장아장 걸어가는 어린 소녀 쫒아가서 고사리 손에서 셈베 얻어먹으려는 사슴과,호수에 비친 노송을 보니,여기가 낙원같다.박목월의 ‘청노루 맑은 눈에 도는 구름’이란 싯귀 절로 떠오른다.

비는 낮으막한 회랑의 지붕을 적시고,봄이면 흰구름 아래 매화향기 그윽할 비단같은 녹색 이끼 낀 매화나무들을 적시고,작은 연못과 우물과 까마귀 나르는 동대사 대불전 용마루 양쪽 황금빛 치미(鴟尾) 적시고 있었다.

동대사는 모계가 백제 후지하라 가문인 쇼무(聖武)천황이 대승정으로 모신 백제승 행기(行基)스님이 조성한 사찰이다.세계 최대 목조건물인 대불전 청동대불 크기는 15미터이니 부처님 손가락 하나 크기가 사람만 하다.

‘구다라나이’란 일본말이 있다.‘백제 것이 아니다’란 이 말은 과거 일본인이 얼마나 백제 문화 숭상했는지 보여준다.오늘날 ‘혼마’ 골프채 챙기는 골퍼나,향수라면 ‘샤넬’ 고집하는 여성 보면 이 말이 쉽게 이해될 것이다.


일본의 교또 나라 오사카 지역은 백제 영향권 이다.왕인공원 백제왕신사 백제촌 백제역 백제천 호류지(法隆寺) 도다이지(東大寺) 등 아스까(飛鳥) 문화의 배경이 백제다.‘나라’란 지명 자체가 우리 말 ‘나라’에서 간 것이다.고향말은 잊어도 고향은 그리운 법.해마다 공주 백제문화제에 일본 관광객 10만명이 찾는다고 한다.


천자문과 경전을 일본에 전한 왕인박사 묘소 둘러본 마지막 밤,평론가 이유식 선배님과 목로주점을 찾았다.문학기행에 꼭 있어야 할 탐방이다.일본 젊은이와 따끈한 오뎅 정종 맛을 보고 싶었다.

 

 

요크 사람이 대서양 건너가 뉴욕 건설한 것과 백제 사람이 현해탄 건너간 것이 유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역사는 돌고도는 것이다.과거는 그들이 우리에게 배웠듯이,지금 우리는 그들에게 배워 무방하리란 생각도 들었다.따지고 보면 서로 사촌간 이다.반일 극일 보다 혈통과 뿌리를 정리해보는 일이 양국에 더 미래지향적 사고일 수 있다.이야기 하다보니,밤은 12시를 넘어갔다.(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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