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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이야기

김현거사 2016. 5. 30. 12:50

 

 

 산 이야기

 

 나는 킬리만자로나 에베레스트산 오르는 사람들 뜻을 모른다. 거긴 눈과 얼음에 덮히고 공기 희박한 곳 아닌가. 나는 산이란 인간 육체의 한계점 시험하는 곳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사람(人)과 산(山) 두 글자가 합쳐지면 신선 선(仙) 자가 되질 않는가. 산은 고요히 자연과 정신의 합일 꾀하는 곳이지 운동하는 곳 아니다. 

 옛사람들은 산수화(山水畵)를 그릴 때 반드시 산과 물을 함께 그렸다. 대개 산의 아름다움은 산과 물이 어울어진 곳에 있기 때문이다. 그래 나는 산에 가면 물 없는 곳은 가지 않는다. 산정의 구름 볼만 하지만, 그건 밑에서도 보이기 때문이다. 바위와 소나무 볼만 하지만 그것도 밑에 다 있다. 나는 동네 약수터만 가도 볼만한 건 다 보고, 들을만한 소리 다 듣는다고 생각한다. 

 내가 사는 근처에 광교산이 있다. 수원시 용인시 의왕시를 접한 산이다. 그 초입에 요즘 붓꽃이 한창이다. 붓꽃은 일본 황실 정원에 반드시 심는 꽃이다. 파란 꽃색이 품위 있고 신비롭다. 프랑스 사람들은 이 꽃을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무지개의 여신'이라 부른다. 그들 나라꽃으로 삼고 있다. 이 꽃 추출물로 만든 이탈리아제 수제 향수는 오드리 햅번과 에바가드너가 애용한 향수다.

 찔레꽃도 피었다. '찔레꽃 붉게 피는 남쪽나라 내고향'이란 노래 있지만, 찔레꽃은 대개 달밤에 피는 박꽃처럼, 이조백자처럼, 순결한 하얀 색이다. 찔레 덤불 근처만 가면 향기가 코를 찌른다. 순결한 소녀의 살냄새 같다. 새순 따서 부드러운 맛을 음미한다.

 내가 숲에 들어 맨 먼저 하는 일은 산공기 마시는 일이다. 나는 급할 게 없다. 숨가쁘게 등산할 필요없다. 숲에 가능한한 오래 머무적거리는 일이 나의 일이다. 살랑거리는 나무잎 소리 듣는다. 살결 애무하는 수정처럼 맑은 공기 피부로 느낀다. 그걸 보느라면 마음을 풍덩 목욕 시켜주는 하늘이 있다. 요즘 한참 녹색인 굴참나무 신록 사이로 보이는 호수보다 푸른 하늘 이다. 내가 산에 오는 이유는 전적으로 이런 공기 마시고, 차그운 약수 마시고, 야생화와 푸른 하늘 보기 위해서다.

  매번 거기 앉아 새소리 듣는 바위가 하나 있다. 거기 앉아 음이온 가득한 산공기로 폐부를 씻노라면, 어디서 새가 운다. 들꽃은 향기 내품고 산새는 목소리 자랑한다. '호르르 호르르 휘릭!' 하고 우는 새는 아마 휘파람 새일 것이다. 어떤 놈은 바이올린이나 풀륫보다 더 고운 음을 낸다. '딱딱!' 나무를 하나의 목탁인양 두드리는 새가 있다. 아마 크낙새나 딱다구리일 것이다. 그 소리 들리면 나는 반야심경을 왼다. '관자재보살 행심반야바라밀다 시조견....' 금수도 불심에 젖어 목탁 치는데 사람이 가만히 있을 수 없다. 숲속에서 새와 장단 맞추며 자적(自適)의 경지 맛본다.

  가장 반가운 소리는 뻐꾸기 소리다. 고향 뒷동산에서 울던 놈이 언제 서울로 파견 나왔나. '뻐꾹뻐꾹!' 우는 소리 들으면 진주 신안동 들판이 떠오른다. 수건 쓰고 보리타작하던 우리 할배 생각난다. 금빛 보릿단 위로 지나가던 흰구름 , 그 아래 출렁이던 양푼 주전자 막걸리 생각난다. 사람들 모두 떠난 곳에 남았을 고향의 정자나무 그립다. '구구구구!' 한 맺힌듯 애달프게 우는 산비둘기도 반갑다. 심지어 '까악까악!' 우는 산까치도 반갑다. 이 셋은 모두 고향에서 울던 소리의 주인공이다. 

 좀 올라가면 물 흐르는 소리 들린다. 물소리는 멀리서 소리만 들어도 반갑다. 그 소리는 고요한 명상음악이다. 화장실 변기에 흘러 내리는 물소리만 듣던 사람들은 그 맛을 잘 모를 것이다. 졸졸 평지로 흐르는 물소리, 콸콸 돌에 부딪친 물거품 소리, 쏴아아 쏴아 무릅 정도 높이에서 떨어지는 물방울 소리 모두 휠링음악이다. 파장이 모두 우리가 어머니 뱃속에서 듣던 그 파장이다. 편안하다. 아무리 들어도 싫증 나지 않는다.

 나는 개울 옆에서 가능한한 오래 머무적 거린다. 돌을 뒤집어 혹시 가재가 있나 살펴본다. 차그운 물의 감촉이 손에서 몸으로 전해짐을 느껴본다. 젖은 바위의 비로도 보다 더 고운 이끼를 바라본다. 봄바람 지나가자 산벚꽃 다 졌다. 뻦지가 땅에 떨어져 있다. 성긴 비 지나가자 산복숭아꽃 다 졌다. 솜털 난 아이 젖무덤 같이 작은 산복숭아 맺혀있다.   

 산길 올라가면 길 옆에 잎이 난초같은 맥문동이 보인다. 숲 속에 엉컹퀴 꽃 피어있다. 맥문동은 폐결핵과 당뇨에 좋고, 엉컹퀴는 어혈을 풀어주고 남성 정력에 좋다. 발 밑에 질경이도 많다. 질경이는 소변을 잘 나가게 하고, 눈을 밝게한다. 칡순도 흔하다. 칡순은 갈용(葛茸)이라 부른다. 녹용처럼 여성 호르몬 에스트로겐이 많고 골다공증과 관절염에 좋다. 알고보면 산에 약초가 많다. 

 약수터 도착해 제일 먼저 하는 일은 돌계단 아래 세숫대야 물로 팔과 얼굴 씻는 일이다. 차그운 물로 속세에 찌든 피부를 세척한다. 그러면 바위에 핀 부처손처럼 얼굴과 팔의 세포가 싱싱하게 살아난다. 그다음 차거운 청수로 입을 두어번 헹군다. 세균 가득하던 입 속 물청소한다. 약수터로 올라가면 산의 정즙인 약수가 힘차게  쏟아진다. 두어 모금 마셔 저 아래 위장과 대장의 세포까지 깨끗히 세척한다.

 간혹 하산하는 길에 칡순이나 질경이 캐온다. 그걸로 산의 청향 담긴 약수차 다린다. 이만하면 된 거다.

  누가 피레네 산맥의 프랑스 '르르드' 샘 광천수가 좋다 하는가. 중국 청도 광천수와 일본 오이타현의 히타시 1000미터 넘는 고지대에서 나온 천연 '활성수소수(水)'만 좋다 하는가.

 나는 맥문동, 엉컹퀴, 질경이, 칡덩쿨 가득한 광교산 중턱 성불사(成佛寺 ) 밑 약수를 가장 선호한다. 호사가들 외국 광천수 타령은 귓가로 흘려버린다.

   시경(詩經)에 이런 시가 있다. '집이 누추하긴 해도 못 살 거야 없네. 졸졸대는 샘물에서도 가난은 즐길만 하네. 고기를 먹는 데에 꼭 황하의 잉어여야 하고, 아내를 얻는 데에 딱이 제나라 공주일 필요야 없네.'

 나는 우리 동네 약수터 가도 볼만한 건 다 보고, 들을만 한 건 다 듣고, 좋은 물 다 마신다고 생각한다. 야생화 곱고, 새소리 물소리 들을만 하고, 공기와 약수 모두 차급다. 부족해도 족함 아는 것이 노후의 지혜이다. 

 게다가 광교산은, 봄이면 꽃 피고, 여름이면 녹음 푸르고, 가을이면 단풍 붉고, 겨울이면 백설 만건곤 하질 않는가. 높은 봉우리 구름 속에 모습 감추었고, 맑은 시냇물 물소리 그윽하다. 천지조화 다 갖춘 이런 곳 두고 궂이 딴 곳을 탐하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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