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뇌는 한량 없고 깨달음의 길은 멀어/원효(元曉)의 발심수행장(發心修行章)
원효대사(617-686)는 신라 진평왕 때 고승이니, 지금부터 1400년 전 사람이다. 성은 설(薛)씨이며, 경북 경산군 출신이다.
34세 때 의상(義湘)스님과 불법을 배우려고 당나라 가던 길에, 요동의 무덤 사이에서 잠을 자다가 잠결에 목이 말라 물 한 그릇을 마셨다. 그런데 간밤에 그렇게 맛있던 물이 아침에 깨어보니, 바로 해골 속에 고인 물이었다. 여기서 스님은 크게 깨쳤으니,'모든 것은 마음이 만든다'(一切唯心造)는 진리다. 그래 더 이상 배울 것이 없다며 혼자 신라로 돌아왔다.
후에 요석궁(遙石宮)의 홀로 된 공주와 연을 맺아 설총(薛聰)을 낳았으니, 설총은 신라 10현 중 제일인자로 꼽히었다. 파계한 후로는 이곳저곳을 떠돌다가 70세에 암굴(穴寺)에서 입적했다.
<대승기신론소(大乘起信論蔬)>, <금강삼매경론(金剛三昧經論)>같은 불교 핵심사상을 저술했는데, 여기서는 원효스님 본인의 체험이 생생히 느껴지는, 출가 수행 스님들에게 당부하는 글 <발심수행장(發心修行章)>을 소개한다. 한문으로 된 이 책은 조계종 전문강원의 사미과(沙彌科) 교과목의 하나이고, 수행인의 필독서로 읽힌다.
*<대승기신론소(大乘起信論蔬)>
불교사상 종합과 실천에 노력한 정토교의 선구자로서 대승불교의 교리를 실천한 원효는, *<대승기신론소(大乘起信論蔬)>를 크게 삼문으로 나누었다.
첫째 부분은 종체를 밝히고, 둘째 부분은 제명을 해석했으며, 셋째 부분은 본문 구절을 풀이하고 있다.
종체를 밝힌 부분에서는 〈대승기신론〉의 본질과 불교에서 차지하는 위치를 밝혔다. 제목에 대한 해설에서 '대'(大)는 포용한다는 뜻으로 진리를 의미하고 '승'(乘)은 수레를 뜻하는 것으로 '대승'은 곧 모든 사물과 사람에 적용되는 진리이며, '기신'은 믿음을 불러일으키는 것을 말한다.
본문 해석은 크게 중생심의 유전과 환멸의 여러 사항을 다룬 부분과 실천의 두 부분으로 나누어 있다. 유전과 환멸에서는 전체 내용을 일심이문, 이언진여, 알라야식(識), 생멸의 인연과 심(心), 각, 불각, 의(意), 훈습, 그릇된 집착 등 15가지 부분으로 나누어 풀이하고 있다. 실천에 대해서는 먼저 신심이 무엇인가를 밝히고, 덕을 완성하기 위한 실천법으로서 베풀 것(施), 계율을 지킬 것(戒), 인내할 것(忍), 정진할 것(進), 마음을 가라앉히고 바라볼 것(觀) 등을 제시했다.
*<금강삼매경론(金剛三昧經論)>
금강삼매경에 대해서 주석한 책이다. 처음 5권을 지었으나 도난당하고 새로 3권으로 <약소(略疏)> 지은 것이 현재 전해지고 있다.
내용은 서분(序分)ㆍ정설분(正說分)ㆍ유통분(流通分)으로 나누어진다. 서분에서는 금강삼매경의 근본 가르침과 종지(宗旨)의 대요 및 경의 제목이 갖는 의미 등을 설명하고, 정설분에서는 7품으로 나누어 금강삼매경의 내용을 해설한다. 이 논은 중국 남북조시대로부터 당나라까지 중국불교에서 제기되었던 교리를 두루 싣고, 대소승의 경전 11경과 논서 12종 등 많은 경론을 인용하였는데, 이론 체계가 탁월하여 중국 고승들도 존경했다고 한다.
<발심수행장(發心修行章)>
모든 부처님이 열반의 궁전에 장엄하게 자리하신 것은 억겁의 바다에서 욕심을 버리고 고행하신 때문이며, 중생들이 고해(苦海)의 불 속에 사는 것은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 때문이다.
입산수도(入山修道)한 사람들이 큰 도(道)를 성취하고 싶은 마음은 누구에게나 있지만, 애욕에 구속되어 실천하지 못하는 것이다. 가로막는 자 없는 천당이건만 가서 이르는 자가 적은 까닭은, 삼독과 번뇌로써 자기 집의 재물을 삼은 때문이며, 유혹하는 자 없는 지옥(惡道)이건만 가서 들어서는 자가 많은 까닭은, 네 마리 뱀과 다섯 가지 욕심으로 망녕스레 마음의 보물을 삼은 때문이다. 사람마다 어느 누가 산으로 돌아가 도 닦고자 아니 하겠는가마는, 그렇게 나아가지 못한 까닭은 애욕에 얽매여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깊은 산으로 돌아가 마음을 닦지 못하더라도 자신의 힘에 따라 착한 것을 행하는 일은 버리지 말라. 스스로 쾌락을 버릴 수 있으면 성인과도 같이 믿음과 공경을 받을 것이며, 행하기 어려운 일을 행할 수 있으면 부처님처럼 존중 받을 것이다. 재물을 아끼고 탐하는 자는 마귀의 권속이며, 자비를 베푸는 자는 부처님의 제자이다.
높은 산, 험준한 바위는 지혜로운 사람이 거처할 곳이요, 푸른 소나무 들어선 깊은 계곡은 수행하는 자가 머물 곳이다. 배고프면 나무 열매 먹어 주린 창자 달래고, 목마르면 흐르는 물 마셔 갈증을 풀어라. 맛있는 음식을 먹어도 언젠가는 이 몸은 반드시 죽을 것이고, 비단 옷으로 감싸 보아도 목숨은 마침내 끊어지고 만다.
메아리 울리는 바윗 굴을 염불당으로 삼고, 애처로이 우는 기러기 소리를 마음의 벗으로 삼으라. 절하는 무릎이 어름같이 시리더라도 불을 그리워하는 마음이 없어야 하며, 주린 창자가 끊어지듯 하더라도 음식 구하는 마음이 없어야 한다.
백년이 잠깐인데 어찌 배우지 아니하며, 평생이 얼마길래 수행하지 않고 놀기만 할 것인가.
마음 속의 애욕을 떨쳐 버린 이를 사문(沙門)이라 하고, 세상을 그리워하지 않는 것을 출가 (出家)라 한다.
수행자가 비단을 걸친 것은 개가 코끼리 가죽을 쓴 격이며, 도 닦는 사람이 애욕을 품는 것은 고슴도치가 쥐구멍에 들어간 격이다
재주와 학문이 있더라도 계행(戒行)이 없는 자는 마치 보물이 있는 곳으로 가려고 하면서 길을 떠나지 않는 것과 같고, 부지런히 수행하더라도 지혜(智慧)가 없는 자는 동쪽으로 가고자 하면서 서쪽으로 가는 것 같다.
지혜 있는 이의 수행은 쌀로 밥을 짓는 것이고, 어리석은 이가 하는 짓은 모래로 밥을 지으려는 것이다. 사람들은 밥을 먹어 주린 창자를 달랠 줄은 알면서도, 불법을 배워 어리석은 마음은 고칠 줄을 모르는구나.
죽을 얻고 축원을 하면서 그 뜻을 알지 못한다면 시주에게 수치스런 일이요, 밥을 얻고 심경(心經)을 외울 때에 그 이치를 모른다면 부처님께 부끄럽지 아니하랴.
세간의 시끄러움을 벗어버리고 천상으로 오르는 데는 계행(戒行)이 훌륭한 사다리이다.
계행을 깨트린 이가 남을 위하는 복밭(福田)이 되려는 것은, 마치 날개죽지 부러진 새가 거북을 업고 하늘로 오르려는 것과 같다. 제 허물도 벗지 못한 사람이 어찌 남의 죄를 풀어줄 수 있는가. 계행이 없는 이가 어찌 다른 사람의 공양을 받을 수 있겠는가.
덕이 높은 큰스님 되기를 바라면, 먼저 끝없는 긴 고통을 참아야 하며, 세상의 향략을 버려야 하며, 여색을 잊어야 한다.
사대(四大)는 곧 흩어지는 것이어서 오랫 살기 보증할 수 없으며, 오늘이라 하면 벌써 저녁이니, 아침부터 서둘러야 할 것이다. 세상의 쾌락이란 고통이 뒤따르는 것인데 무엇을 그리 탐내어 붙들 것이며, 한 번 참으면 길이 즐거울텐데 어찌 수행하지 않는가.
도인으로서 탐욕을 내는 것은 수행인의 수치요, 출가한 사람이 부귀를 원하는 것은 세상의 웃음거리이다.
일이 끝이 없는데 핑계만 많고 탐욕과 집착 버리지 못하고, 오늘이 끝이 없는데 나쁜 일은 날마다 늘어가고, 내일은 끝이 없는데, 착한 일 할 날은 많지 못하다. 금년 금년 하면서 번뇌는 한량 없고, 내년내년 하면서 깨달음(菩提)은 얻지 못한다. 시간은 어느새 지나가 하루가 흐르고, 하루는 어느새 한 달이 되고, 한 달은 흘러 문득 한 해가 되고, 한 해 두 해는 어느덧 죽음에 이르게 된다.
부서진 수레는 구르지 못하고 늙은 사람은 닦을 수 없다. 누우면 게으름과 나태만이 생기며, 앉으면 생각만 난잡해진다. 몇 생(生)을 닦지 않고서 헛되이 세월만 보내었으며,이 몸은 얼마를 살 것인데, 닦고 수행하지 않는가? 이 몸은 반드시 죽고야 말것인데, 내생(來生)은 어떻게 할 것인가?
이 어찌 급하고도 급한 일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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