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중국편 최종완결 원고

간밤에 꿈 꾼 사랑/ 일연스님의 <삼국유사>

김현거사 2016. 5. 20. 09:33

 간밤에 꿈 꾼 사랑/ 일연(一然)스님의 <삼국유사>

 

 

  이 이야기는 삼국유사에 나오는 조신(調信)스님 이야기다. 인생은 한바탕 꿈이라는 것이 그 줄거리다.

조신스님 이야기는 이광수가 쓴 <꿈>이란 소설과 닮았고,  중국 당나라 때 이공좌(李公佐)가 쓴 <남가일몽> 고사와 닮았다. 헤르만 헤세가 쓴 <인도의 이력서>라는 단편도 놀라우리만치 이와 닮았다.

 이야기의 출전인 <삼국유사>는 단군조선, 기자조선, 부여, 신라, 백제, 고구려의 역사인데, 향가, 전승 전설, 민간 신앙에 대한 내용이 풍부하게 수록되어 있다. 1285년(고려 충렬왕 때)에 보각국존(普覺國尊) 일연스님이 저술했다.

 

 옛날 신라의 서울이 서라벌에 있을 때, 지금 경기도에 세달사(世達寺)란 큰 절이 있고, 이 절의 장원(莊園)이 강원도 영월 근처에 있었다.

 본사인 세달사 장원관리인으로 조신스님이 있었는데, 스님은 그 곳에 사는 김흔공(金昕公)의 딸에게 깊이 반하였다. 그래서 여러번 낙산사 관음보살상 앞에 나아가서 그 여자와 인연이 맺어지기를 몰래 빌었는데, 얼마 후 그 여자에게 이미 배필이 생긴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자 조신스님은 불당에 가서 관음보살이 자기의 소원을 들어주지 않음을 원망하며 날이 저물도록 슬피 울다 지쳐서, 옷을 입은 채 그 자리에서 잠이 들었다.

 꿈에 문득 김씨 낭자가 기쁜 얼굴로 찾아와 반가이 웃으며 말했다.

 '저는 일찍이 스님을 잠깐 보고 속으로 사랑하여 잠시도 잊지 못했는데, 부모의 명령에 못이겨 억지로 다른 사람에게 시집갔습니다. 그러나 이제 스님과 부부의 연을 맺고싶어 찾아왔습니다.'

 조신은 매우 기뻐, 함께 향리로 돌아가 그로부터 40년을 살았다.

그동안 자녀 다섯을 두었으나, 집이 가난해서 조식조차 대지 못하자 초야를 돌아다니면 걸식을 하기 시작했는데, 갈가리 찢어진 옷은 몸뚱이를 가릴 수도 없을 정도였다.

 그러던 중 명주 해현령(蟹縣嶺)을 지나다가 열다섯 살 된 큰아이가 굶어죽자, 부부는 통곡을 하면서 길가에 묻어주었다. 부부가 우곡현(羽曲縣)이란 곳에 이르렀을 때는, 늙고 병들고 굶주려서 일어나지도 못할 처지였다.

 그들은 길가 모옥에 살았는데, 열 살 된 딸아이가 부모 대신 밥을 얻으러 다니다가, 마을 개에 물려 아품을 호소하며 돌아와 눕자, 부부는 흐느끼며 목이 메어 말도 못했다.

 이리되니 부인은 눈물을 훔치면서 창졸히 말했다.

 '제가 처음 당신을 만났을 때는 얼굴도 아름답고 나이도 젊었으며 의복도 깨끗했습니다. 그 때는 한가지 음식도 당신과 나눠먹으며 정을 나누었습니다.

그러나 근년에 와서는 병은 해마다 깊어지고, 굶주림과 추위는 더욱 닥쳐오니, 곁방살이와 보잘 것 없는 음식도 얻기가 어렵습니다. 천문만호(千門萬戶)에 걸식하는 그 부끄러움은 산더미를 진 것보다 더 무겁습니다.

아이들이 추위에 떨고 굶주려도 미쳐 돌보지 못하는데, 어느 틈에 부부의 정을 즐길 수 있겠습니까? 혈색 좋던 얼굴과 어여쁜 웃음도 풀 위의 이슬처럼 사라져 버렸고, 지란같은 백년가약도 버들강아지가 바람에 날아가듯 없어졌습니다.

 이제 당신은 저 때문에 괴로움을 받고, 저는 당신 때문에 근심만 느니, 곰곰히 생각해보면, 옛날의 기쁨이 바로 지금 우환의 터전이었습니다.

 당신과 제가 어찌해서 이 지경에 이르렀는지요? 역경을 당하면 버리고, 순경(順境)을 만나면 친하는 것은 차마 인정상 못 할 일이지만, 모두가 인력으로 되는 것도 아니고, 헤어지고 만나는 것도 운명이니, 제발 이제는 헤어집시다.'

 조신은 이 말을 듣고 크게 기뻐하며 각각 아이를 둘 씩 맡아 막 떠나려 하는데, 여인이 말했다.

 '저는 고향으로 가겠습니다. 당신은 남쪽으로 가십시오.'

 부부가 헤어져 길을 떠나려 할 때 조신은 그만 꿈을 깨었다. 이때 등잔불은 법당에 깜박거리고, 어느 틈에 날이 밝으려 하고 있었다.

 아침이 되니 조신의 수염과 머리털은 모두 희어지고 전혀 세상사에 뜻이 없어져, 한평생 신고(辛苦)를 겪은 것처럼 탐염의 마음도 얼음 녹듯 깨끗이 없어져 버렸다.

 조신이 큰아이를 묻었던 해현령에 가서 그 자리를 파 보니, 거기에서 돌부처가 나왔다.

 이에 크게 깨우친 조신은 돌부처를 물에 씻어 부근의 절에 모시고 본사에 돌아가, 장원의 소임을 그만두고 사재를 털어 정토사(淨土寺)란 절을 세우고, 착한 일을 근실히 닦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