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 기고 글

한국문인협회 고문 이유식 교수 근작/ 새문학신문에 기고

김현거사 2016. 5. 16. 11:09

한국문인협회 고문 이유식 교수 근작

<새로운 장르, 새로운 수필의 향연>을 읽고

                                                                                                        김창현/수필가

 

 '수필가는 많지만 좋은 수필은 만나기 어렵다'는 이야긴 어제 오늘 이야기가 아니다. 문인협회에 등록된 수필가와 지류 샛강의 수필가를 합치면 어림잡아 4천에 가까울 것이다. 그 결과 내허외화(內虛外華), 물결은 도도해졌으나 탁해졌다. 6,70년대 엄격한 등용문 시절이 그립다.

 차제에 한국문인협회 고문 이유식 교수가 최근 내놓은 수필집, '새로운 장르, 새로운 수필의 향연'은 이런 수필계에 좋은 참고서가 되리라 생각된다. 

 이교수는 55년 전 1961년 8월, 이 나라의 최장수 문예지 <현대문학>에 '현대적 시인형'으로 조연현 선생 추천으로 문단에 혜성 같이 등단한 원로 평론가다. 그러면서 유달리 수필을 사랑해  그동안 '내 마지막 노을빛 사랑', 옥산봉에 걸린 조각달' 등 10 여권이 훨씬 넘는 수필집을 낸 한국 수필계의 숨은 후원자이다. 
'수필문학' 발행인이자 수필문학가협회 강석호 회장 말대로, '그의 수필활동은 상대적으로 평론활동에 가리어 다소 손해를 보고있다. 오로지 수필가로서 만으로도 사실은 독자적 평가를 받고도 남음이 있다'는 생각도 들지않는 바 아니지만, 흙에 묻혔다고 옥(玉)이 옥 아니랴. 그동안 문단의 시와 소설 등 주요 작품을 해부하고 평론해온 예리한 안목이 그의 수필엔 지적(智的) 에스프리와 날카롭고 청신한 감각으로 펼쳐져 있다.

 그의 '안개의 초상'을 보면,

 

'구름과 안개는 다 같이 물이란 씨앗에서 잉태된 수증기의 쌍생아다. 지표면에 있으면 안개가 되고, 하늘로 올라가면 구름이 된다. 안개가 보병이라면 구름은 하늘을 나는 파일럿이다.

안개는 자연이 창조해내는 마성(魔性)을 지닌 여인이다. 때나 분위기 그리고 그 정황에 따라 마(魔)의 여신 같기도 하고, 요정 같기도 하며, 이승에 한을 품고 헤매고 있는 원혼이나 원귀 같기도 하다. 또 이승의 사람으로 보면 청상과부나 가슴을 풀어치고 나다니는 미친 여자 같기도 하다.(후략)'

 

라고 쓰여있다.

 그의 수필을 근세 한국의 수필가 유달영 이양하 정비석 김진 피천덕 이어령 수필과 비교해보면, 이양하 김진섭과 궤가 같은듯 싶다. 흔히 수필가들이 범하는 흔해 빠진 신변잡기와, 감상적 심정을 비친 구절을 볼 수 없다. 그러면서 동서고금 해박한 지식이 함축된 언어의 마술로 사람을 홀린다.  

 이번에 나온 수필집의 첫째 마당을 보면, 주제가 주로, 안개, 이슬, 구름, 노을, 무지개, 바람, 달, 해, 별, 비, 물, 바다, 땅, 지평선, 숲, 뒷동산 같은 것들이다. 우리 주변에 흔한 일상적 대상을 50 여년 문필활동을 통한 노작가의 천의무봉 솜씨로 새롭게 비춰준다. 일종의 자연과 인문학의 융합 내지 결합시킨 수필로, 소위 그가 주창하는 테마 수필이다. 기존 수필들이 대개 과거 추수주의에 젖어 서정 일변도인데 비해, 진일보한 엎그레이드 자연수필이다.     

 '이슬의 수사학(修辭學)'이란 수필에서는,

 

'이슬은 자연이 선물해준 보석이다. 이 중 풀잎이나 싸리꽃, 연잎이나 거미줄에 맺혀 아침 햇살을 받고 있는 아침이슬이야말로 수정처럼 영롱하다. 하양, 노랑, 빨강, 자주 등으로 빛을 발하는 이슬은 그 얼마나 아름다운가. 자연이 걸어준 이어링이요, 목걸이이며, 손목걸이요, 물방울의 살아있는 예술이요, 설치미술이다.

 (중략)

 아무튼 이슬이 비록 단명과 덧없음의 대명사가 되어 있다 할지라도 아름답지 않다고 말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상큼하고 청순해 보인다. 그래서 이 단어가 작명에도 선호되어 여아나 아가씨들의 이름에서도 빛을 내고 있다. 이 뿐이 아니다. 전설의 동물 유니콘이 이슬을 먹고 산다는 말이 있듯, 술꾼들을 유혹하기 위해 술이름에도 참이슬, 아침이슬이 서로 경쟁을 벌리고 있는 세상이다. (후략)'

 

라고 이슬을 그려놓았는데, 여러 글에서 자연을 소재로 한만큼 자연보호 차원에서 환경문제도 살짝 내비치고 있다.

 오래 동안 대학에서 영문학을 가르친 교수답다. 글이 재미있고 구수하다. 정답고 친근감 들고 전혀 현학적 사변적이거나 어렵지 않다. 원래 미숙한 사람은 글을 쓰면 어렵게 쓰고, 노련한 사람은 쉽게 쓴다. 어떻게 이렇게 어렵지 않게 썼는지를 감탄케 한다. 절제되지 않은 감각은 저속하기 쉽지만, 적재적소에 우리에게 친숙한 술이름과 유행가 가사까지 넣어, 어떻게 이리 박자를 맞추고 감칠맛을 내는지 알 수 없다. 

  둘째 마당은 테마 수필의 또 하나 실험으로 '가계수필'인데, 집안의 내력, 선대조의 일화(逸話), 선대조들의 아호(雅號), 혼맥(婚脈), 직계 선조가 종유(從遊)했던 벗들, 묘갈명을 쓴 명유(名儒)들이 소개되고 있다. 그가 책머리의 '과연 새로운 수필은 없는 것인가?'란 제하의 글에서 보인 것처럼, 이 역시 수필의 새로운 장르로서 시험 제창해본 글이다. 시시한 일상사 타령을 벗어나 선조들의 삶의 모습을 수필로 재현해 봄으로서, 마치 미국의 작가 알렉스 헤일리가 <뿌리>란 작품을 통해 한 것처럼 뿌리 의식을 일깨워보자는 것이다. 수필계 작단이 소재가 빈약해 지나친 동음반복적 소재로 그침에 경고장을 낸 것이다.

 세째 마당은 정든 땅 정든 언덕의 진달래꽃, 초가지붕, 반딧불, 부산 시절의 회고, 다리, 등이 나온다. 고향  하동 옥종의 쑥이 돋아나던 논두렁, 진달래 꽃을 따먹던 소년 이야기가 나온다. 고추잠자리 날아다니던 초가지붕과 밤하늘 개똥벌레, 밤에 개천에서 알몸 목욕하던 동네 처녀들, 그를 몰래 지켜보던 풋고추들 체험이 나오고, 작가의 고향 면가(面歌)를 쓰게 된 내역이 소개되어 있다.

'부산 시절의 회고'는 1960년대 부산 문단 시절 회고인데, 당시 만난 유치환, 김상옥, 최계락, 천상병 조향 등 모습이 그려져 있다.

 일생에 명수필 한두 편 남겨도 성공일 것이다. 마지막 '다리'란 수필은 그의 '안개' '이슬'과 함께 저자의 대표작이지 싶다. 

 

'다리는 육지와 육지를 연결해주는 관문이요,땅과 땅의 중매쟁이요,허리띠며,길과 길의 악수다. 다리는 새로운 세계로 뻗어나가고자 하는 욕망의 콤마요 접속사며, 잠시 경관의 아름다움에 도취케하는 탄성의 감탄부호며, 종착지의 마침표를 향해 가는 욕망의 간이역이다.

 다리는 늘 두 다리를 뻗고 부동자세로 서있는 견인주의자다. 육로가 산문이라면 다리는 시다. 자연경관을 배경으로 물새가 날고, 물의 음악이 흐르며, 달빛이 흐르고 햇살이 반짝어린다. 자연의 조화가 하늘의 무지개라면 인간의 조화는 다리다. 지상에 놓여진 다리를 보아왔던 몽상가들이 문득 하늘의 은하수를 보고 상상해낸 창작품이 바로 오작교다. 지상의 다리가 하늘에 투영된 것이 이른바 견우직녀 이야기가 아닌가.' (후략)

 

 이런 수필은 마땅히 교과서에 실려 젊은이들이 배워야 마땅하다 생각된다. 수필은 서정, 서사, 비평적인 것까지 포함하지만, 그의 세련된 문체, 다양한 함축적 지식의 구사는 수필의 텍스트로 볼 수 있다 싶다. 아무튼 한국 문단의 뿌리 깊은 거목이 수필 분야에 깊은 애정과 관심을 보이는 것은 우리 수필계의 복이라 싶다.

 


위에 것은 이번에 새문학신문에 기고한 글입니다.

아래 것은 전에 동방문학에 게재한 글 입니다.

심심할 때 읽어보세요.  

 

 

이유식 수필의 맛과 멋

<새 시대 수필이론 다섯 마당>을 읽고

                                                                      김창현/수필가

 

수필이 온갖 양념과 고명을 잘 얹은 맛깔난 음식이라면 오죽이나 좋을까.그러나 애석하게도 하고많은 음식에서 맛깔난 음식이 드물듯,수필가는 많지만 <인생의 수면 위에 어리는 안개와 수증기,봄 들판에 아롱거리는 아지랑이,비 개인 하늘에 걸쳐있는 무지개 같은> 여운있는 수필을 내놓는 작가는 드문 것 같다.

수필을 어떻게 쓸 것인가.원로평론가 이유식 교수의 근작 <새시대 수필이론 다섯 마당>이 그 답이 될지 모른다.

이 다섯마당은 문학평론가로서 저자가 그동안 현대문학 수필문학 등 많은 전문지에 발표했거나,각종 수필 주제 세미나 강사로 강의한 내용을 엮은 것이다.

첫째 마당은 수필의 역사,둘째 마당은 수필의 영역,셋째 마당은 수필 고품질화를 위한 전략,넷째 마당은 저자의 작품을 통한 체험적 수필 작법,다섯째 마당은 수필계 원로들의 이교수 수필에 대한 평이 소개되어 있다.한마듸로 수필 이론과 실기가 함께 아우러져 멋진 수필을 염원하는 작가나 수필 애호가를 위한 수필입문 교과서,혹은 요점 정리 텍스트북이라 해도 손색이 없을법 하다.

원래 평론가란 면도칼처럼 예리하게 시나 수필을 조각조각 찢어발기고 해부해보는 외과의사요,작가 기량을 차급게 점수 매기는 까다로운 선생님이다.그래서 평론가의 손에서 나온 수필이론서라면 우선 딱딱하고 사변적일 것이 분명하다고 미리 예단하기 쉽다.그러나 이 경우는 매우 다르다.

이교수가 <넷째 마당>에서 인용한 본인의 체험적 수필 작법에 인용된 <다리>란 작품부터 우선 살펴보자.

 

다리는 육지와 육지를 연결해주는 관문이요,땅과 땅의 중매쟁이요,허리띠며,길과 길의 악수다.다리는 새로운 세계로 뻗어나가고자 하는 욕망의 콤마요 접속사며,잠시 경관의 아름다움에 도취케하는 탄성의 감탄부호며,종착지의 마침표를 향해 가는 욕망의 간이역이다.

다리는 늘 두 다리를 뻗고 부동자세로 서있는 견인주의자다.육로가 산문이라면 다리는 시다.자연경관을 배경으로 물새가 날고,물의 음악이 흐르며,달빛이 흐르고 햇살이 반짝어린다.자연의 조화가 하늘의 무지개라면 인간의 조화는 다리다.지상에 놓여진 다리를 보아왔던 몽상가들이 문득 하늘의 은하수를 보고 상상해낸 창작품이 바로 오작교다.지상의 다리가 하늘에 투영된 것이 이른바 견우직녀 이야기가 아닌가. (후략)


또다른 작품 <구름>을 살펴보자.


구름은 국적도 없이 비자도 없이 정처없이 떠다니는 방랑자요 여행객이며,자유주의자요 무정부주의자다.지상의 삶이 그 무엇에서건 구속당해야만 하는 인간들은 저 구름의 자유를 그 얼마나 부러워했던가.

구름은 변용의 천재요,조화자며,물의 딸이요 비의 어머니다.영국 시인 쉘리가 <구름>이라는 시에서 노래했듯 하늘이 길러주는 유아(幼兒)다.

구름은 신의 예복이요 옷자락이며,두루마기요 도포며,허리띠요 모자다.그런가하면 무욕주의자로서 떠다니다 자기 몸이 무거워진다 싶으면 금방 비를 뿌린다. (후략)


이처럼 아깃자깃 수필의 멋진 골목길로 재미있고 친절하게 끌고가는 작가는 드물다싶다. 비록 자신은 <비평활동을 오래 하다보니,사고훈련이 분석,종합,평가가 습관화 되어있어 수필을 쓸 때에는 자연히 논리적 수필에 맞는 소재와 주제를 찾는 것이 버릇인양 되었다>고 말하지만,글은 그렇지않다.사변적 현학적 구렁텅이에 빠져서,독자가 외면하여 도망가버리고 작가들만 남은 문학이 된 오늘의 현실을 이교수는 이미 오랜 문필 생활을 통하여 잘 터득하고 있는 것이다.그의 글은 이해하기 쉽고 뜻이 명료하다.

과문한 탓인지 모르나,나는 현재 한국 수필에서 이처럼 광범위한 독서를 통해서 얻어진 인용과 풍부한 비유로 글맛 풍기는 글을 별로 만나지 못했다.글 속에 에스프리와 지성과 윗트가 인기 가수 무대의상에 붙은 빤짝이처럼 빤작빤작 빛난다.목적 정하지않고 마음 내키는대로 나선 자유로운 산책이 수필이라면,수필은 모름지기 이래야 한다는 모범답안지인 것이다. 

<다섯째 마당>에서 수필문학가협회 회장 강석호씨가 말한 <그의 수필활동은 상대적으로 평론활동에 가리어 다소 손해를 보고있다.오로지 수필가로서 만으로도 사실은 독자적 평가를 받고도 남음이 있다>란 말에 탁 무릎이 쳐진다.사실 이교수는 89년도에 ‘스포츠서울’에 <유행가에 나타난 세태>란 테마에세이로 40여회 매주 연재하여 해당지의 지가를 올린 과거(?)를 가지고 있고,60년대 초에 부산 국제신보에 <회색의 자화상>이란 테마에세이를 연재하여 수필가로서 역량은 일찌기 검증된 바 있다.

독자가 그의 글 한두편만 읽다보면 흡사 불랙홀에 빠져드는 기분이 들어 전 작품을 단숨에 다 읽어버리게 하는 마력을 지녔다.이교수는 수필평론가 한상렬씨 표현대로,<그는 이미 80년대 초부터 여덟권의 수필집 내놓은 어느 수필작가보다 왕성한 수필작가요,수필작가 이전에 수필이론을 개척한 평론가>인 것이다. 

수필이 일단 이런 문필력 친화력에 이끌려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된 이상,그의 수필 이론 역시 다르겠는가.같은 뿌리에 달린 감자처럼,역시 이해하기 쉽고 뜻이 명료하다.

<셋째 마당>  '수필고품질화의 전략'에서,그는 '수필은 대형간판이 거창하게 붙은 '불고기집'이나 '불갈비집'이 아니라 골목 어귀에 있음직한 '꼬리곰탕집'이거나 '족발집'에 비유될 수 있다.'고 정의한다.유머와 위트의 필요성에서는 '수필의 오미(五味)를 들라면 새타이어,아이러니,패러독스,유머,위트가 아닐까 싶다.그것들은 수필의 독특한 맛을 내주는 양념이요,독자를 이끌어주는 고명이다.꽃으로 말한다면 향기와 같다.'는 식으로 설명해준다.그외 참신한 주제 찾기를 위한 발상법을 소개하고,경수필과 중수필의 차이,수필과 시의 관계를 논하고,수필에서의 허구 수용 문제 등 현안문제들을 다루고 있다.

지금은 시나 소설이 지나친 사변과 현학,난해성으로 독자들을 상실한 반면,그동안 서자시(庶子視) 당하던 수필이 오히려 가벼운 마음으로 글 읽고 싶은 독자층의 대두에 따라 더 매력적으로 부각되고 있다.수필작가들의 숫자도 괄목할만치 늘었다.늦둥이 수필이 이제 백화만발한 새로운 텃밭으로 대두될 시점이다.누가 수필에서 몽테뉴 베이컨같은 인생의 깊은 사색이나 예지를 담는가는 앞으로의 일이다.이 시점에서 이교수의 <새시대 수필이론 다섯마당>이 시의적절한 기폭제인 것은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