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예정 글

고향의 작은 웅덩이

김현거사 2011. 6. 16. 16:46

고향의 작은 웅덩이  


지금 진주 신안동은 아파트촌이다.그러나 옛날은 낮으막한 야산 기슭에 이십여 가구 올망졸망 모여 살던 작은 동네다.앞은 하동 가는 신작로와 들판과 망진산  남강이 있었다.대밭과 과수원 달린 우리 할아버지집은 이 동네 맨 위 전망 좋은 곳인데 옆의 큰 정자나무는 사람들이 그 아래 잿마당에 모여 쑥불 피우고 멍석 위에서 한담을 즐겼다.우리 작은 아버지는 그 아래 산밑에 탱자나무 울 속에 새집을 짓고 살았다.여나믄 마지기 논이 있어 거기 물대려고 개골짝에서 흘러온 물을 담아놓는 작은 웅덩이가 있었다.

 

그 웅덩이 풍경이 지금도 생생히 기억난다.웅덩이 주변은 해거름이면 빨간 고추잠자리 떼가 하늘을 덮었고,햇빛 쨍쨍한 오후엔 몸통이 유난히 길쭉하고 날개가 모시같은 검푸른 물잠자리가 풀섶에 앉아 꼬리를 수면에 담갔다 올렸다 몸을 적시곤 했다.간혹 왕잠자리 암컷 <또니>와 수컷 <수벵이>가 날아오면,아이들이 <수벵이>를 잡으려고 안달이 났다.작대기 끝에 매단 실에 <또니>를 매달아 공중에 빙빙 돌리면,공중에 날아가던 <수벵이>가 즉각 달라들어 암놈과 교미할려고 붙는다.그러면 풀밭이나 물 위로 살살 회전 각도를 내리면서 끌어내려 손으로 덮쳐잡았다.그 스릴과 손맛이 가히 일품이었다.

<수벵이>는 몸이 하늘빛으로 푸르고,<또니>는 호박색인데,둘이 교미를 한 채 허공에 날아다니기도 했다.암컷은 귀해서 우리는 호박꽃을 따서 수놈의 날개와 엉덩이 부분을 노랗게 물들여,가짜 <호박 또니> 만들어,<수벵이>를 낚곤 했다.

 

물 속에는 방개와 소금쟁이도 있었다.거북선처럼 동그랗게 생긴 방개는 노처럼 생긴 뒷발로 헤엄쳐 다녔는데,아이들이 잡아서 땅에 뒤집어 놓으면 딱정벌레같이 두껍고 반질반질한 등으로 뱅글뱅글 돌다가 날개 밑에서 또하나 부드러운 날개를 펴고는 공중으로 획 날아가기 일수였다.소금쟁이는 몸이 가늘고 긴데,기름처럼 부드러운 물 표면을 슬슬 미끄럼질 쳐가곤 했다.

 

이것만 해도 웅덩이는 아이들의 좋은 놀이터였다.충분히 호기심 만족시킬만 했다.그런데 웅덩이에 <수벵이> 방개만 있던가.물속엔 붕어 송사리를 위시해서,잡으면 손가락 사이로 미끈히 빠져나가는 미꾸라지가 있고,간혹 자라도 있었다.초록과 검정 얼룩무뉘 해병대 옷 입고 시도때도 없이 울어 사람들에게 괄시받던 개구리도 있었다.

봄은 못물에 가득한 까만 올챙이 떼로 시작되고,보리타작 끝나고 모 심는 여름은 논 가득한 개구리 울음으로 지나갔다.비 오면 웅덩이 근처는 개구리 합창으로 난장판 된다.그러면 아이들이 시끄럽다고 보는 족족 돌을 던졌고,닭 모이 한다고 잡아서 집에 가져가기도 했다.소낙비 온 후엔 풀잎에 등이 녹색이고 배가 하얀 작은 청개구리가 나타났다.피부가 보드럽고 이뻐서 아이들이 손바닥에 올려놓고 가지고 놀았다.

 

그러나 우리가 둠벙이라 부르던 웅덩이 주인공은 어디까지나 붕어 새끼였다.아이들은 진흙 묻을까봐 바지를 걷어부치고,개구리밥이 뜨있는 풀섶을 헤치면서 물속에 들어가서 고무신짝으로 붕어를 잡았다.몸이 납작하고 전신에 금빛 기와처럼 찬란한 비늘 덮힌 붕어는 귀했고,버들피리나 송사리가 잘 잡혔다.간혹 메기나 장어도 있지만 그건 아이들 차지가 아니었다.풀밭에 놓아둔 또다른 검정 고무신에 물을 붇고 신나게 자랑스런 포획물을 담아놓곤 했다.

 

스르르 물 위로 포물선 그으며 나타난 물뱀에게 혼쭐이 나기도 했다.하늘 무너질듯 갑자기 번개불이 뻔쩍 벼락치면서 소나기 내려도 개의치 않았다.머리칼과 웃통이 훔뻑 젖어도 한나절 놀고나면 다 말랐다.뭉게구름은 더 찬란하고,이윽고 황혼이 오면 붉게 물든다.대밭가엔 저녂 짓는 연기 하얗게 피어오르고,이때 쯤 둠벙이 내려다 뵈는 산 기슭 메뜽 위에 올라간 어른들이 ‘xx야 밥 묵으러 오이라’ 자기집 아이들을 하나 둘 불러갔다.아이들은 허연 배를 내놓고 죽은 송사리와 아직 살아서 도망다니는,살아있는 작난감인 붕어를 살려주고,고무신을 둠벙에 씻은 후,신을 신고 집으로 가곤 하였다.

 

작은 집 누이 이름은 인정이와 인자였다.누이들은 메뚜기와 여치를 잡았고,할일 없는 아이들이 그 일을 거들었다.방아잽이 여치는 뒷다리를 잡으면 덜렁덜렁 방아를 찧었고,메뚜기를 풀에다 뀌거나 유리병에 넣어가서 튀기면 짭조름한 반찬이 되었다.간혹 김이 하얗게 오르는 고구마도 삶아 내오고,가을이면 우리 할아버지 과수원 단감을 따와서 우리에게 주었다.어른들은 웅덩이 근처 무성한 풀을 거름할려고 베어 논둑에 말렸고,가뭄에는 물을 논에다 빼고 진흙 속에서 미꾸라지를 잡아 추어탕 잔치 벌였다.

 

도심의 어린이 놀이터처럼 그네도 미끄럼틀도 없건만,봄에 둠벙가에 찔레꽃 하얗게 피던 우리 작은 집 웅덩이가 이젠 환상처럼 그립다.별로 배운 것 없지만 인정 많던 누이,비행하던 잠자리,물속의 붕어와 방개,논에서 톡톡 뛰던 메뚜기,벼란간 천둥치며 얼굴을 씻어주던 소나기가 그립다.신안동의 그 생명이 숨쉬던 놀이터 모든 것이 매양 그립다.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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