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고전·2편

초의선사의 <동다송>과 <다신전>

김현거사 2015. 10. 14. 09:47

 

 초의선사(草衣禪師)의 동다송(東茶頌)과 다신전(茶神傳)

 

  커피 문화와 차 문화는 오랫동안 인류와 함께 해왔다. 혹자는 양자의 비교 우위를 논하기도 하지만 둘 다 나름의 멋이 있다. 바바리 코트 걸치고 낙엽 날리는 고궁 거닐다가 마시는 한 잔 커피도 멋이요, 누마루에서 거문고 안고 달빛 감상하다가 마시는 한 잔 차도 멋이다.

 차는 우리나라를 비롯한 동양 3국에서 불교의 선(禪)과 함께 정신적 멋을 응축한 독특한 세계다. 초의선사(草衣禪師)는 '한국의 차경(茶經)'으로 칭송되는 동다송(東茶頌)과 다신전(茶神傳)을 남겨 차의 뜻을 정리했으니 차를 논 할 때 초의선사를 빼놓을 수 없다.

 

 선사의 성은 장(張)씨고 이름은 의순(意恂)이다. 법호는 초의(艸衣)이며, 당호는 일지암(一枝庵). 다도를 정립하여 다성(茶聖)이라 부른다.

1786년(정조10)에 태어나 15세에 남평 운흥사(雲興寺)에서 민성(敏聖)을 은사로 삼아 출가하고, 19세에 영암 월출산에 올라 해가 질 때 바다 위로 떠오르는 보름달을 바라보고 깨달음을 얻었다. 1866년 나이 80세. 법랍 65세로 대흥사에서 서쪽을 향해 가부좌하고 입적하였다.

 

여기서는 1975년 최범술(崔凡述) 스님이 보련각에서 간행한 <한국의 다도>에 수록된 글을 발췌 소개한다.

 

 동다송(東茶頌)

 

 초의스님이 40년간 살았던 일지암(一枝庵)이란 암자 이름은 장자(莊子)의 소요유(逍遙遊)에서 빌려왔다. '뱁새는 일생 한 곳에 작은 깃을 틀고 잔다.'는 뜻이다. 초의는 정약용에게 배웠고, 신위(申緯), 김정희(金正喜) 등과 사귀었다. 시(詩)·서(書)·화(畵)·다(茶)에 뛰어나 사절(四絶)이라 불리웠고, 그림도 잘 그렸다. 대흥사에 있는 불화, 인물화는 거의 스님 그림이고, 소치(小痴) 허련(許鍊)이 암자에 3년 머물며 화법을 배웠다.

동다송(東茶頌)은 1837년 정조(正祖)의 사위 해거도인(海居道人) 홍현주(洪顯周) 부탁으로 만든 송시(頌詩)이다.

  

 제 1송 : 남국의 아름다운 나무


后皇 嘉樹配橘德하니 受命不遷生南國이라
密葉鬪霰貫冬靑하고 素花濯霜發秋榮이로다

후황이 아름다운 나무를 귤의 덕과 짝지으시니 받은 명 변치 않아 남녘 땅에 자란다네
촘촘한 잎은 눈속에서 겨우내 푸르고 하얀 꽃은 서리 맞아 가을에 꽃 피우네.


제 2송 : 이슬을 머금은 취금의 혀

姑射仙子粉肌潔하고 閻浮檀金芳心結이라
沆瀣 淸碧玉條요 朝霞含潤翠禽舌이로다

고야산(姑射山)의 신선인가 뽀얀 살결마냥 깨끗하고, 염부(閻浮) 숲의 금모래 같은 황금 꽃술 맺혔는데,
맑은 이슬 흠뻑 젖은 푸른 가지 벽옥같고 안개 촉촉히 젖은 작설(雀舌) 잎은 참새 혀 같네.

 


차나무 잎은 치자(梔子)와 같으며, 꽃은 흰 장미와 같고, 꽃술은 황금 빛이다. 가을에 꽃 피니 맑은 향기가 은연하다.
이태백이 '형주 옥천사 맑은 시냇가 산에 차나무가 나 있는데, 가지와 잎이 푸른 옥(碧玉條) 같다. 옥천사 진공(眞公)스님이 항상 따다가 차로 마셨다.'고 했다.

제 3송 : 차는 하늘, 신선, 사람, 귀신이 다 사랑한다.

天仙人鬼俱愛重하니 知爾爲物誠奇絶이라
炎帝會嘗載食經하고 醍 甘露舊傳名이로다

하늘, 신선, 사람, 귀신 모두 아껴 사랑하니 됨됨이 참으로 기이하고 절묘하구나
옛날 염제신농씨가 너를 식경에 기재했고 제호라 감로라 예로부터 그 이름 전해왔네.

4송 : 차는 술을 깨게 하고 잠을 적게 한다.


解醒少眼證周聖하고 脫粟飮菜聞齊孀이라
虞洪薦 乞丹邱하고 毛仙示叢引秦精이로다

차는 술을 깨우고 잠을 줄임은 주공(周公)께서 증험하셨고, 거친 밥 차 한잔, 제의 안영 그랬다네
우홍은 제물 올려 단구자의 차를 얻었고, 모선(毛仙)을 끌어 무성한 차숲을 보여주었네. 



안자춘추(晏子春秋)에 '안영(晏孀)이 제 경공(齊景公)때 재상을 지내는 동안 '껍질만 벗긴 좁쌀로 만든 거친 밥(脫粟飯)에 구운 고기 세 꼬치, 계란 다섯 개, 차와 채소만을 먹었다'고 하였다.
신이기(神異記)에, '우홍(虞洪)이 산에 들어가 차를 따다가 우연히 도사를 만났는데, 세 마리 푸른 소를 이끌고 있었다. 우홍을 데리고 폭포산(瀑布山)에 다달아 말하기를, '나는 단구자(丹丘子)라 하네. 듣자니 그대가 차를 애음(愛飮)한다기에 항상 만나보고 싶었네. 이 산중에 굵다란 차나무가 있어 그대에게 주려고 하네. 부디 훗날 남은 차가 있으면 나에게도 보내주기를 바라네'라고 하였다.
진정(秦精)이 무창(武昌) 산 속에서 차를 따다가 신선을 만났는데, 머리털 길이가 한 발쯤 되어 보였다. 신선이 진정을 이끌고 산 아래로 내려와 떨기진 차나무를 가리켜 주고 떠났다가 얼마 후 돌아와 주머니 속에서 귤을 꺼내어 주자, 진정이 두려워하며 차를 등에 지고 돌아왔다고 한다.

제 5송 : 수 문제의 뇌골증을 낫게 한다

潛壤不惜謝萬錢하고 鼎食獨稱冠六情이라
開皇醫腦傳異事하고 雷笑茸香取次生이로다

지하에 묻힌 혼령도 만금의 보답 아니 아꼈고 벼슬아치 들도 모든 맛의 으뜸이라 하였네.
수 문제 뇌골통증 고쳤다는 신기한 일 전해오고 뇌소차 용향차 차례차례 생겨났네.

 


진무(陳務)의 아내가 두 아들을 데리고 과부가 되었는데 차를 즐겨 마셔왔다.
마침 집의 정원에 오래된 무덤이 하나 있어 차를 마실 때마다 먼저 무덤에 차를 올리곤 하였다. 부인의 두 아들이 이것을 마땅찮게 여기어 '그까짓 고총(古塚) 따위가 무엇을 안다고 헛수고를 하시는지 모르겠네' 하고 묘를 파헤쳐버리려고 하였는데 어머니가 한사코 이를 만류하였다.
그날 밤 꿈에 한 사람이 나타나 '내가 이 고총(古塚)에 누운 지 3백 년 넘는데, 얼마 전 그대 아드님이 내 무덤을 파 버리고자 했을 때 부인께서 보호해 주었을 뿐 아니라, 도리어 차까지 주시니 땅 속에 묻혀있는 썩은 뼈일 망정 어찌 보은을 잊을 수 있겠습니까?'라고 하였는데, 다음날 새벽 일어나보니 정원에 엽전 10만 냥이 쌓여 있었다고 한다.


수 문제(隋 文帝)가 아직 임금이 되기 전에 어느 날 밤 꿈을 꾸었는데, 신신이 나타나 그의 뇌골을 바꾸어 버렸는데 그 후로 줄곧 두통을 앓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스님을 만났는데, 스님이 이르기를, '산중의 명초(茗草)로 치유할 수 있으니, 달여 마시면 효험이 있다'고 하였다. 이를 계기로 천하의 모든 사람들이 차를 처음으로 마실 줄 알게 되었다.

당나라 각림사(覺林寺)의 스님, 지숭(志崇)이 세 종류로 차를 만들었다. 경뢰소(驚雷笑)는 자기가 애용하고 훤초대(萱草帶)는 부처님께 공양하고, 자용향(柴茸香)은 손님을 접대했다. 

제 6송 : 모든 음식 가운데 차가 으뜸이다.

 

巨唐尙食羞百珍이나 沁園唯獨記紫英이라
法製頭綱從此盛하야 淸賢名士誇雋永이로다

당나라 때는 음식에 백가지 진미가 있었으나, 심수공주(沁水公主) 심원(沁園)에는 오직 자영차(紫英茶)만 기록되었고. 차 만드는 요령이 그때부터 성행하여 명사들이 맛을 음미하고 준영차를 자랑했네.

 

당 덕종(唐 德宗)이 동창공주(同昌公主)에게 음식을 하사할 때에 녹화차(綠花茶) 자영차(紫英茶) 이름이 끼어 있었다. 다경(茶經)에서는 '차 맛(味)은 준영(雋永)이라' 하였다.

제 7송 : 다른 것에 물들면 참됨을 잃는다.


綵莊龍鳳團巧麗하야 費盡萬金成百餠이라
誰知自饒眞色香고 一經點染失眞性이로다 

용봉단(龍鳳團)은 장식이 도리어 사치로우니 떡차 백 개 만드는데 만금을 허비했네.

누가 풍요로운 참 빛깔 참 향을 알랴, 한 번 물들고 나면 참 성품 잃어버리네. 


크고 작은 용단(龍團) 봉단(鳳團)이 만들어진 것은 정위(丁謂)가 처음 시작했으나 채군모(蔡君謨)에 의해서 완성되었고, 향약(香藥)을 넣어 병차(餠茶)를 만들고 병차(餠茶) 위에 용과 봉황의 무늬를 장식하여 임금께 바칠 것은 금색으로 꾸몄다. 두루 정교하고 아름다웠으나, 만금(萬金)을 다 쓰야 백 개 떡차를 만들 수 있었다.

소동파(蘇東坡)는 시(詩)에 '수많은 붉은 금색 병차(餠茶)는 수만금을 허비하였다'고 하였다.
만보전서(萬寶全書)에 '차는 그 자체에 참된 향과 맛과 빛깔을 지니고 있는데, 한 번 다른 물질에 물들고 나면 곧 참됨을 잃게 된다'고 하였다.

제 8송 : 정성껏 가꾸고 만들어야 아름답다.


道人雅欲全其嘉하야 曾向蒙頂手栽那라
養得五斤獻君王하니 吉祥與聖楊花로다

도인이 평소에 차맛을 온전코자 몽산의 정상 오르시어 손수 차를 심으셨네.
다섯 근을 얻어 군왕에게 올렸나니 길상예와 성양화 그것이었네.

부대사(傅大士)는 몽산(蒙山) 꼭대기에 암자를 짓고 살면서 차를 가꾸어 3년이나 결려 가장 좋은 차를
만들어, 성양화(聖楊花), 길상예(吉祥 )라 이름지어 5근을 임금께 바쳤다. 

제 9송 : 명차 운간 월감

雪花雲 爭芳烈하고 雙井日注喧江浙이라
建陽丹山碧水鄕에 品製特尊雲澗月이로다
 
설화차 운유차 짙은 향기 다투고, 쌍정차 일주차는 강절에서 이름 높다.
건양 단산 물 푸른 고을에서 만들어진 운간차 월감차 질도 좋아라.

註 
소동파가 한 사원(寺院)을 찾으니, 범영(梵英) 스님이 사원을 잘 단장하여 말끔히 하고 향기 어린 차를 마시고 있었다. 이에 '이 차는 햇차입니까' 하고 묻자 범영이 '차의 성질은 햇차와 묵은차를 섞으면 차의 향기와 맛이 되살아난다'고 하였다.

설화차(雪花茶)와 운유차(雲腴茶)는 향기를 앞다투고, 쌍정차(雙井茶)와 일주차(日注茶)는 강서와 절강 땅에 나는 것이 제일이요, 건양(建陽)과 단산(丹山)은 물의 고장이라, 특별히 만감후(晩甘候)와 운간월(雲澗月)을 꼽는다.

다산 선생의 걸명소(乞茗疏)에 '아침 햇살에 일어나니 맑은 하 늘에 구름이 둥실거리고, 낮잠에서 깨어나니
푸른 시냇물에 밝은 달이 어른거리네'라 하였다.

 

제 10송 : 우리 차도 중국차와 한가지다.

 

東國所産元相同하니 色香氣味論一功이라
陸安之味蒙山藥을 古人高判兼兩宗이로다

우리 차는 중국차와 원래 같으니 색깔 향 느낌 맛 한가지라 말해오네.
육안차는 맛이요, 몽산차는 약효라하지만, 우리 차는 둘 다 겸했다고 옛사람이 칭송했네.


동다기(東茶記,정약용 저)에, '어떤 이는 우리 나라 차의 효능이 중국 월주(越州)에서 생산된 차에 미치지 못한다고 의심하는데, 내가 보기에는 색(色), 향(香), 기(氣), 미(味)에서 모두 별다른 차이가 없다. 차서(茶書)에 육안차(陸安茶)는 맛으로 뛰어나고 몽산차(蒙山茶)는 약효가 높다 하였으나, 우리 차는 이 두 가지를 모두 겸하고 있다. 이찬황(李贊皇)이나 육우 (陸羽)가 살아 있다면 반드시 나의 말을 수긍하리라 믿는다'라고 하였다.

제 11송 : 팔순 노인이 동안이 되다.

 

童振枯神驗速하야 牲顔如夭桃紅이라
我有乳泉하야 把成秀碧百壽湯하니 以持歸大覓山前獻海翁가

마른 가지 되살아나듯 동안되는 영험 있어 여든 노인 양빰이 도화처럼 붉어지네.
내가 사는 곳에 유천(乳泉,石間水)이 솟아 수벽탕 백수탕 그 물로 끓이니, 어이 목멱산 앞에 사는 해거도인에게 갖다 드릴수 없는가.

이태백은 '옥천사의 진스님은 나이 80이 넘었는데, 얼굴빛이 복숭아 빛처럼 붉다. 그 까닭은 마시는 차 향기가 맑고 기이한 데 있다. 마치 마른 나무에 싹이 돋는 듯, 아이로 환동(還童) 하는 듯 하였다.' 하였다.

 

 당나라 소리(蘇厘)의 <16탕품(湯品)> 가운데 백수탕(百壽湯)이 있다. 백수탕은 물을 열 번 이상 넘칠듯 끓여야 하는데, 그걸 복용하면 흰머리가 검어지고, 노인도 활로 과녁을 맞히게 되며, 활보하며, 백세 이상 살 수 있다 한다. 

 

 다산(茶山)은 '걸다소(乞茶疏)'에서 ' 차 빛깔은 아침 나절에는 맑은 하늘의 흰구름 같고, 오후에는 맑은 달이 푸른 시냇물 위에 비치는 것 같다' 하였다. 

 

 수벽탕(秀碧湯)이란 것이 있다. 돌은 천지(天地)의 수기(秀氣)가 엉겨 모여 형상이 이루어진 것이다. 수벽탕(秀碧湯)은 돌을 쪼아서 그릇을 만들어 천지의 수기(秀氣)가 담겨 있으니, 어찌 그 속에서 끓인 물이 길하지 않으랴. 

 

 근자에 신자하(申紫霞) 노인께서 내가 사는 두륜산을 지나는 길에 하루 밤 자우산방(紫芋山房, 一枝庵)에 유숙하시면서 유천(乳泉) 물을 마시고 '물맛이 우유보다도 훨씬 좋구나'하셨다.

 내게 유천(乳泉) 있으니, 그 샘물 뜨다가 수벽백수탕(秀碧百壽湯) 만들어, 어이 목멱산(木覓山남산) 해거도인(海居道人) 앞에 바칠 수 없는가.

제 12송 : 아홉가지 어려움과 네가지 향기

 

又有九難四香玄妙用하니 以敎汝玉浮臺上坐禪衆가
九難不犯四香全하니 味可獻九重供이로다

차에는 아홉가지 어려운 것이 있고, 네 가지 현묘한 향기 있으니, 무엇으로 화개 옥부대(玉浮臺) 위에서 좌선(坐禪)하는 그대들에게 가르칠꼬. 아홉가지 어려움을 범하지 않아야 네 가지 향이 온전하며, 그 지극한 맛이라야 궁궐에 받들어 올릴 수 있으리. 



다경(茶經)에 이르기를, 차에는 아홉 가지 어려움이 있다. 차 만드는 것, 차 품질 감별하는 것, 차 만드는 그릇과 차 마시는 도구, 불 다루는 법, 사용되는 물, 차를 덖는 일, 가루 만드는 일, 물 끓이는 법, 차 마시는 법 등이다.

 

 음산한 날씨에 찻잎을 따서 밤에 말리는 것은, 만드는 법(造法)에 어긋나는 것이며, 차 부스러기를 이로 깨물어 혀끝으로 맛을 보거나 코에 대고 냄새를 맡는 것은 식별(識別)이 아니며, 노린내 비린내 나는 솥과 그릇은 그릇이 아니며, 풋나무나 덜 탄 숯은 연료라 할 수 없다.

 세차게 떨어지는 폭포수와 장마비 고인 물은 물이라 할 수 없고, 겉은 익었으나 속이 설익은 것은 올바른 자(炙)라 할 수 없다. 푸르스름한 가루가 먼지처럼 나는 것은 제대로 작말한 것(作末)이라 할 수 없고, 급히 서둘러 휘젓는 것은 물 끓이는 법이 아니며, 여름엔 실컷 마시고 겨울에 그만 두는 것은 차 마시는 법이 아니다.

'만보전서(萬寶全書)'에 '차에는 참 향기(眞香), 난초향기(蘭香), 맑은 향기(淸香), 순박한 향기(純香)가 있다. 안팎이 똑같은 것을 순박한 향기(純香), 설지도 않고 너무 익지도 않은 것을 맑은 향기(淸香), 불이 고루 든 것을 난초향기(蘭香), 곡우 이전의 싱그러움을 갖춘 것을 참 향기(眞香)라 한다. 이를 네 가지 현묘한 향기라 한다.' 했다.

 

지리산 화개동(花開洞)에는 차나무가 사오십 리에 자라고 있는데, 우리나라 차나무 자생지로 이보다 더 넓은 곳은 없다. 거기 옥부대(玉浮臺)가 있고, 그 밑에 칠불선원(七佛禪院)이 있다.

 거기 좌선하는 스님들은 항상 찻잎을 늦게 따서, 땔감 말리듯 말려, 솥에다 시래기국 끓이듯 삶으니, 색은 탁하며 붉고, 맛은 몹시 쓰고 떫다. 이런 차를 마시니, 이것이 바로 "천하에 좋은 차가 속된 사람들 손에 의해 버려진다고 하는 것이다.


제 13송 : 총명하여 모든것에 막힘이 없다.

 

翠濤綠香裳入朝하니 聰明四達無滯壅이라
爾靈根托神山하니 仙風玉骨自 種이로다

비취빛 찻물(翠濤)과 초록빛 향기(綠香) 마음 깊이 스며들자, 총명함이 사방으로 통달하여 막히는 곳이 없네.

더구나 영험한 뿌리는 신령스런 산에 의탁하고 있으니, 선풍옥골(仙風玉骨)이 참으로 별종이네.

註  

'심군다(心君茶)' 서문에 이르기를 '차를 찻잔에 넣으면 잔 위에 취도(翠濤, 찻가루 넣었을 때 수면에 생기는 거품)가 뜨고 맷돌에 갈면 푸른 가루가 날더라.'하였고, 차는 맑고 푸른 빛(靑翠)을 가장 좋고, 여린 쪽빛에 흰빛 도는 남백(藍白)이 쓸 만 하고, 누른 빛, 검은 빛, 우중충한 빛은 하품으로 친다. 거품 빛은 구름이 뜨는 듯한 운도(雲濤)가 가장 좋고, 비취빛 취도(翠濤)가 그 다음이며, 누런 황도(黃濤)는 하품이다.

진미공() 시(詩)에서 '옅은 그늘 덮였는데 여린 움 깃대 같아라. 죽로(竹爐)는 그윽하고 솔가지 불티는 날아오른다. 물과 어울려 담담하여 고기 맛과 겨루네. 른 향기 길에 가득하니, 긴긴 날 돌아올 줄 모르네'라고 하였다.


지리산은 세칭 방장산(方丈山)이라고 한다

제 14송 : 바위틈에 자라는 푸른 싹

綠芽紫筍穿雲根하고 胡靴 臆皺水紋이라
吸盡 淸夜露하니 三昧手中上奇芬이로다.

녹아(綠芽)와 자순(紫筍)은 움이 삐죽삐죽 돌 틈을 뚫고나와, 호인(胡人)의 신발, 들소의 앞가슴 같이 주름진 모습이네. 깨끗한 밤이슬 마시고 훔뻑 젖었나니, 삼매경(三昧境)의 솜씨에서 기이한 향이 피어나도다.

 


다경(茶經)에 이르기를 '차는 난석(爛石) 사이에서 자란 것이 으뜸이요, 자갈 섞인 흙에서 자란 것이 그 다음이라' 하였다. 또 '골짜기에서 자란 차가 상품'이라 했는데, 화개동 차밭은 모두 난석(爛石) 골짜기 이다.

 또 '차는 자색(紫色)이 으뜸이요 주름진 것이 그 다음이요, 색(綠色)이 그 다음이며, 삐쭉히 솟아나는 첫 순(筍)이 상품이고, 싹이 다음 이다' 하였다.

 

 '모습이 마치 호인(胡人)의 가죽신 같다는 것은 주름졌다는 것이고, 들소( 牛)의 가슴 같다는 것은 반듯한 것을 말함이고, 바람이 수면(水面)을 살짝 스치는 것과 같다는 것은 함초롬함을 말함이니, 이 모두가 차의 정수(精髓) 이다.' 라고 하였다.

 

'다서(茶書)'에 '잎은 따는 시기가 중요하니, 지나치게 일찍 잎을 따면 차가 완전하지 못하고, 제때를 놓치면 신비함이 흩어지니, 곡우 전 5일이 가장 좋은 때이고 후 5일이 다음이며, 그 뒤 5일간이 그 다음'이라 하였다. 그러나 경험에 의하면, 우리 나라 차는 곡우 전후는 너무 빠르고, 입하 전후가 적당하다.

 

찻잎 따는 법은,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날에 밤이슬 흠뻑 머금은 잎 딴 것이 상품이고, 한낮에 딴 차는 그 다음이며, 흐린 날씨와 비가 올 때는 따지 말아야 한다. 하였다. 

 
제 15송 : 물과 차가 잘 어우러져야 한다.


有玄微妙難顯하니 精莫敎體神分하라
體神雖全이나 猶恐過中正이오 中正은 不過健靈倂이로다.

현미함이 있어 묘하여 나타내기 어려우니, 그 묘한 맛은 물과 차가 잘 어우러져야 하네.

과 차가 비록 잘 어우러져도 중정(中正)을 잃을까 두려우니, 중정은 다신(茶神)의 건전, 수성(水性)의 신령이 함께 아우름에 있다.


註 
조다편(造茶篇)에 이르기를 '새로 따온 찻잎은 늙은 잎을 가려내고, 뜨거운 솥에서 덖되 솥이 잘 달아올랐을 때 찻잎을 넣어 급히 덖고 불기를 늦춰서는 안 된다. 찻잎이 잘 익으면 꺼내어 체에 털어 부어 가볍게 비벼 그것을 몇 번이고 턴 다음 다시 솥에 넣어 점점 불을 줄이면서 말리는데 온도 조절을 잘 하여야 한다. 그 중에 현미(玄微)함이 있으니 말로 나타내기가 어렵다."고 하였다. 

 

천품(泉品)은 물에 관한 것이다. '차는 물의 신(神)이요, 물은 차의 체(體)이니, 진수(眞水)가 아니면 다신(茶神)을 나타낼 수 없고, 진차(眞茶)가 아니면 수체(水 體)를 나타낼 수 없다.' 하였다.

 

채다(採茶)는 그 묘(妙)를 얻어야 하고, 조다(造茶)는 그 정성을 다해야 하고, 물(水)은 그 진(眞)을 얻어야 하고, 포법(泡法)은 중정(中正)을 얻어야 한다.

 

포법(泡法)에 말하기를,'탕(湯)이 완전히 끓었을 때 화로에서 내려 먼저 차 관 안에 조금 부어 냉기를 가셔낸 다. 그 뒤에 부어 버리고 적절한 양의 차를 넣어 중정(中正)을 잃지 않아야 한다. 차의 양이 지나치면 쓴맛이 나고 향기가 묻혀 버리며, 물이 차의 양에 비해 많으면 차의 맛이 적어지고 빛깔이 맑아진다.

 

두 번 쓴 차관은 냉수로 깨끗하게 씻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차의 향이 떨어진다. 차관의 물이 너무 뜨거우면 다신(茶神)이 온전하지 못하고, 차관이 깨끗하면 수성(水性)이 영험해 진다. 차의 빛깔이 잘 우러나면 베에 걸러서 마시는데, 너무 일찍 거르면 다신(茶神)이 우러나지 않고, 지체하였다가 마시면 향기가 사라진다'고 하였다.

 

이를 총평하면, 차를 딸 때에는 그 오묘함을 다하고, 차를 만들 때에는 정성을 다하여야 한다. 물은 진수(眞水)이어야 하고, 탕(湯)은 중정(中正)을 얻어야 한다. 체(體)와 신(神)이 잘 어울리고 건(健)과 영(靈)이 함께하여야 한다. 여기에 이르면 다도는 완전히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16송 : 몸이 상청경에 오른다.

 

一傾玉花風生腋하야 身輕已涉上淸境이라
明月爲燭兼爲友하고 白雲鋪席因作屛이로다 

옥화 한 잔 기울이자 겨드랑이에 바람이 일고, 어느새 몸이 가벼워 상청(上淸)을 거니는 것 같네.

밝은 달 등촉으로 삼으니 나의 벗이요, 흰구름은 자리 펴고 병풍이 되어주네.

제 17송 : 청하여 마음이 깨이다.

 

竹籟松濤俱蕭然하니 淸寒瑩骨心肝惺이라
惟許白雲明月爲二客하니 道人座上此爲勝이로다 

대숲 소리 솔 물결 모두 다 서늘하니 맑고도 찬 기운 뼈에 스며 마음을 깨워주네
오직 허락한 건 흰 구름 밝은 달 두 손님이니, 도인의 자리 이것이면 훌륭하네.

 


차를 마시는 법은 한 자리에 차 마시는 손님이 많으면 주위가 소란스러우니, 소란하면 아취를 찾을 수 없다.
홀로 마시면 신(神)이요, 둘이 마시면, 승 (勝)이요, 서넛은 취미요, 대여섯은 덤덤할 뿐이요, 칠팔 인은 그저 베푸는 것일 뿐이다.

 

제 18송 :백파거사제

 

白坡居士題 莫數雲澗月.
艸衣新試綠香煙 禽舌初纖穀雨前
莫數丹山雲澗月 滿鍾雷莢可廷年

백파거사가 제하다 운간월을 헤지마라.
초의가 새로 녹향연을 시차(試茶)하니 새혓바닥 처음 여린 것이 곡우 앞에 것이라
단산의 운간월을 헤지 말라 종지 가득 뇌협차가 수명을 늘일수있다.

 

 다신전(茶神傳)

 

 1828년 지리산 칠불암에서 엮은 다신전(茶神傳)은 중국의 만보전서(萬寶全書)에서 뽑아 온 것이다.

 

1. 차 따기(採茶)

  차 따는 시기는  때에 맞는 것을 귀하게 여긴다. 너무 이르면 맛이 온전치 못하고, 늦으면 신묘함(神)이 흩어진다. 곡우 전 5일이 으뜸이고, 그 뒤 5일이 다음이며, 다시 5일 뒤가 또한 그 다음이다. 

 차의 싹이 자주 빛깔인 것이 으뜸이고, 차의 표면이 주름진 것이 그 다음이며, 잎이 둥글게 말린 것이 그 다음이고(찻잎이 둥글게 말린 것은 단엽(團葉)이라해서 대체로 찻잎말이 나방의 애벌래 피해를 입은 것이다), 조릿대 잎 같이 광택 나는 것이 가장 하품이다.

 

*차나무는 새로 난 가지(新枝)에 8~12잎이 나는데, 마지막 꼭지 잎이 펴지면 그 전까지 펴진 잎은 조릿대 잎처럼 광택이 난다. 이때 차 움에 아미노산, 특히 다신(茶神)으로 불리는 ‘데아닌’의 함량이 급격히 감소하며, 햇빛이 강하고 온도가 높으면 쓰고 떫은 맛이 나는 ‘카테친’ 함량이 증가하므로 감칠맛이 떨어진다. 

 

 밤새 구름이 없고 이슬에 젖었을  때 딴 것이 으뜸이고, 해가 비칠 때 딴 것이 그 다음이니, 흐리고 비 올 때는 따지 말아야 한다. 산골에서 나는 것이 으뜸이고,  대나무 밑에 있는 것이 그 다음이며, 자갈밭에 있는 것이 그 다음이며, 누런 모래흙에 있는 것이 그 다음이다.

  

2. 차 만들기(造茶)

 차를 새로 딸 때는 늙은 잎과 줄거리, 부스러기들을 골라 버리고, 두자 네 치[72cm정도] 넓이의 노구솥에, 차 한 근 반(750g정도)을 덖는다. 솥이 잘 달궈지기를 살펴, 비로소 차를 넣고 급히 볶는데, 불을 약하게 해서는 안 된다. 익기를 기다려 비로소 불을 물리고,  체 안에 펼쳐 담아  가볍게 굴려가며 수차례 펼쳐둔다. 다시 가마솥 안에 넣어 점차 불을 줄여가며 알맞게 말린다. 이러한 과정에 현미(玄微)함이 있는데, 말로 표현하기는 어렵다. 불기운이 고루 들면, 빛깔과 향기가 온전하고 아름다우니, 현미함을 궁구하지 못하면, 신묘한 맛이 모두 시들해진다.

 

3. 차의 식별(辨茶)

 차의 오묘함은 처음 만들 때의 정미함과 저장할 때의 적법함과 우려낼 때의 마땅함(宜)에 달려있다.

우열은 처음 가마솥에서 정해지고, 청탁은 끝 불과 관계가 있다. 불이 뜨거우면 향이 맑고, 솥이 차면 신묘함이 떨어진다. 불이 지나치게 뜨거우면 설익은 채로 타버리고, 땔감이 적으면 푸른 빛(翠)을 잃는다. 오래 지연되면 너무 익어버리고, 너무 일찍 꺼내면 도리어 설익는다. 너무 익으면 누렇게 되고, 설익으면 검게 착색된다. 순서에 맞게 하면 달고, 거스르면 떫어진다. 흰 점을 띤 것은 무방하며, 타지 않은 것이 가장 좋다.

 

4, 차의 보관(藏茶)

 차를 만들어 말릴 때는 먼저 오래 쓰던 합 그릇에 담아, 바깥은 종이로 입을 봉하고 삼일 지나 차의 성질이 회복되기를 기다려 다시 약한 불로 덖어 바짝 말리고, 식기를 기다려 병에다 저장한다.

 가볍게 쌓아 채워서 대껍질로 속을 봉한다. 꽃, 죽순 껍질 및 종이로 몇 겹으로 병 입구를 감아 봉한다. 위에는 불로 구운 벽돌을 식혀 눌러둔다. 다육기(茶育器) 속에 두되, 절대 바람에 닿거나 불을 가까이 해선 안 된다. 바람에 닿으면 냉해지기 쉽고, 불을 가까이 하면 먼저 누렇게 변한다.

 

5, 불의 세기(火候)

 차를 달이는 요령은 불의 세기 조절이 우선이다. 화로 불이 붉게(紅) 퍼지면 다관(茶罐)을 비로소 올리고, 부채질을 가볍고 빠르게 하다가 끓는 소리를 기다려 점점 세게 빨리 부치니, 이것이 문무(文武)의 살핌이다.

 문(文)이 지나치면 물의 성질이 유약해지니, 유약해지면 물이 차 기운을 가라앉히고, 무(武)가 지나치면 불의 성질이 거세지니, 거세지면 차가 물을 제압한다. 이들은 모두 중화(中和)에 부족하니, 다인(茶人)의 요지(要旨)가 아니다.

 

* 문무지후(文武之候): 불이 뭉근하게 또는 강하게 타면서 강유(强柔,文武)의 조화를 이루는지 살핀다는 뜻. 너무 빨리 끓으면 물에 녹아 있는 유기 오염물이 분해되지 않고, 너무 오래 끓이면 노수(老水)가 된다.

 

6. 끓는 물 분별법(湯辨)

 끓는 물은 3가지 큰 분별법과 15가지 작은 분별법이 있다.

 첫째를 형태 분별법이고, 둘째를 소리 분별법이며, 셋째를 김(氣) 분별법이다. 형태는 속(內)을 분별하기 위함이고, 소리는 겉(外)을 분별하기 위함이며, 김은 빠름(捷) 분별하기 위함이다.

 새우 눈(蝦眼), 게 눈(蟹眼), 물고기 눈(魚眼), 연이은 구슬(連珠) 같은 것은 모두 맹탕(萌湯)이다. 곧바로 솟구쳐 끓어올라 파도가 넘실대고 물결이 치는 것과 같아서 물 기운(水氣)이 완전히 사라져야 비로소 이것이 순숙(純熟)이다.

처음 소리(初聲), 구르는 소리(轉聲), 떨리는 소리(振聲), 달리는 소리(驟聲) 모두 맹탕이다. 곧바로 소리가 없어져야(無聲) 이것이 바로 순숙이다. 기운이 한 가닥(一縷) 두 가닥(二縷) 세 네 가닥( 三四縷)이 떠올라, 어지러히 분간 못함에 이르러 어지럽게 얽히는 것은 모두 맹탕이다. 곧바로 기운이 곧게 가운데로 꿰뚫고 나와야 비로소 이것이 순숙이다.

 

7. 끓는 물 사용법(湯用老嫩)

 

 송(宋)나라 사람으로 다록(茶錄)을 남긴 채군모는 탕은 부드러운 물 눈수(嫩水)를 쓰고 오래 끓인 물 노수(老水)는 쓰지 않는다고 하였다.

 

*노눈(老嫩): 너무 오래 끓인 물을 ‘노수(老水)’라 하고, 차 우리기에 알맞도록 부드럽게 끓인 물을 ‘눈수(嫩水)’라 한다.

 

 대개 옛사람들 차 제조법은, 차를 만들면 반드시 맷돌질하고, 맷돌질하면 반드시 갈고, 갈면 반드시 체질 하였으니, 곧 차는 티끌처럼 나부끼는 가루가 되었다. 재료들을 섞어서 용봉단(용과 봉황의 무늬를 앞뒤로 찍어 둥글게 만든 떡차)을 찍어 만들어, 탕을 만나면 차의 신묘함이 바로 떠올랐으니, 이것이 눈수를 쓰고 노수를 쓰지 않은 까닭이다.

 요새 차 만드는 법은 체 치거나 갈지 않고 본래의 잎 모양을 갖추고 있으니, 탕이 모름지기 순숙이라야 본래의 차의 신묘함이 비로소 피어나게 된다. 그러므로 '탕은 모름지기 다섯 단계(*五沸)로 끓여야 차의 세 가지 기이함(*三奇)이 갖춰진다.'고 하였다.

 

*오비(五沸): 형태․소리․ 기운, 각각의 다섯 가지 끓는 단계.

* 삼기(三奇): 세 가지 기이함, 진향(眞香), 진미(眞味), 진색(眞色)을 뜻한다.

 

8. 차 우리는 법(泡法)

 탕이 순숙이 되었음을 살폈으면 곧바로 들어올려서 찻주전자에 조금 따라 냉기를 제거하고, 그 물을 기울여 따라낸 뒤에 차를 넣는다.

 차의 양을 알맞게 가늠하여 중(中)을 지나치거나 정(正)을 잃어선 안 된다. 차가 많으면 맛이 쓰고 향이 가라앉으며, 물이 많으면 색이 묽고 기운이 약해진다.

 찻주전자를 두 번 쓴 뒤에는 다시 냉수로 씻어서 찻주전자를 서늘하고 깨끗하게 만든다. 그렇지 않으면 차의 향기가 감소한다. 다관(茶罐)이 뜨거우면 차의 신묘함이 온전하지 못하고, 찻주전자가 깨끗하면 물의 성질이 항상 신령스럽다.

 차와 물이 잘 어우러지기를 조금 기다린 후에 베(釃)에 걸러서 나누어 마신다. 이때 거르는 것은 빨라선 안 되고, 마시는 것은 지체해선 안 된다. 빠르면 차의 신묘함이 채 피어나지 못하고, 지체하면 오묘한 향기가 먼저 사라진다.

 

9. 차 넣는 법(投茶)

 차를 넣는 데는 차례가 있으니, 그 적절함을 잃어선 안 된다. 차를 먼저 넣고 끓인 물을 나중에 붓는 것을 하투(下投)라 하고, 끓인 물을 반 붓고 차를 넣고 다시 끓인 물로 채우는 것을 중투(中投)라 하며, 끓인 물을 먼저 붓고 차를 뒤에 넣는 것을 상투(上投)라 한다. 봄가을에는 중투(中投), 여름에는 상투(上投), 겨울에는 하투(下投)로 한다.

 

10. 차 마시는 법(飮茶)

 차 마실 때는 손님이 적은 것을 귀하게 여긴다. 손님이 많으면 시끄럽고, 시끄러우면 우아한 정취가 줄어든다. 홀로 마시는 것을 ‘신(神,신령스럽다)’이라 하고, 손님이 둘인 것을 ‘승(勝,뛰어나다)’이라 하며, 세넷인 것을 ‘취(趣,멋스럽다)’라 하고,대여섯인 것을 ‘범(泛, 떴다)’이라 하며, 일곱 여덟인 것을 ‘시(施,베푼다)’라 한다. 

 

11. 차의 향기(香)

 차에는 진향(眞香), 난향(蘭香), 청향(淸香), 순향(純香)이 있다. 겉과 속이 한결같은 것을 ‘순향’이라 하고, 설익거나 너무 익지 않은 것을 ‘청향’이라 하며, 불기(火候)가 고루 배어 있는 것을 ‘난향’이라 하고, 곡우 전의 신묘함이 갖춰진 것을 ‘진향’이라 한다. 다시 함향(含香), 누향(漏香), 부향(浮香), 간향(間香)이 있는데, 이들은 모두 바르지 못한 향기이다.

 

12. 차의 색(色)

 차는 푸른 비취 빛(靑翠)을 으뜸으로 여기고, 찻물은 남백색(藍白)을 아름답게 여긴다. 노랑, 검정, 빨강, 어두운 색은 모두 차의 품격에 들지 못한다. 

 눈 빛(雪濤) 찻물이 최상이고, 비취 빛(翠濤) 찻물이 중간이며, 누른 빛 찻물이 최하이다.

신선한 샘물과 활활 타는 불은 차 끓이는 오묘한 기교(玄工)이며, 옥 같은 차와 얼음 같은 찻물은 찻잔에 담긴 절묘한 기술(絶技)이다. 

 

13. 차의 맛

 맛은 달고 부드러운 것(甘潤)을 최상으로 여기고, 쓰고 떫은 것을 최하로 여긴다.

 

14. 차의 오염(點染失眞)

 차는 자연스런 참된 향기, 참된 빛깔이 있으며, 참된 맛이 있는데, 한 번 오염이 되면, 곧 그 참됨을 잃는다.

만약 물에 소금기가 있거나, 차에 불순물이 섞였거나, 찻잔에 과즙이 묻어 있으면, 모두 차의 참됨을 잃어버린다.

 

15. 차의 변질(茶變不可用)

 차가 처음 만들어졌을 때는 푸른색이다. 거두어 저장할 때 법도에 맞지 않으면, 처음에는 녹색으로 변하고, 두 번째는 누런색으로 변하며, 세 번째는 검은색으로 변하고, 네 번째는 흰색으로 변한다.

그러한 것을 마시면, 위장을 차게 하는데, 심하면 수척한 기운이 쌓이게 된다.

 

16. 물의 등급(品泉) 

 차는 물의 신묘함이고, 물은 차의 몸이다. 좋은 물(眞水)이 아니면, 그 신묘함을 드러내지 못하고, 정결한 차가 아니면, 어떻게 그 몸을 엿보겠는가.

산 위의 샘물(山頂泉)은 맑으면서 가볍고, 산 아래 샘물은 맑으면서 무거우며, 돌 사이 샘물(石中泉)은 맑으면서 달고, 모래 속 샘물은 맑으면서 차가우며, 흙 속 샘물은 싱거우면서 깨끗하다.

누런 돌(黃石)에서 흘러나오는 물은 좋지만, 푸른 돌(靑石)에서 새어나오는 물은 쓸모가 없다.

흐르는 물이 고인 물보다 낫고, 음지에서 나는 물이 양지의 물보다 낫다.

참된 근원의 물은 맛이 없고, 참된 물은 냄새가 없다.

 

17, 우물 물은 차에 부적합 하다(井水不宜茶)

 다경(茶經)에 이르기를 '산의 물이 최상이고, 강물이 다음이며, 우물 물이 최하'라 하였다.

강이 가깝지 않거나, 산에 샘물이 없을 때 제일의 방안은 오직 장마 비를 많이 저장해 두는 것이 마땅하다.

그 맛이 달고 조화로워, 만물을 잘 길러주는 물이다. 눈 녹은 물은 비록 맑기는 하나, 성질이 무겁고 음습하여, 사람의 비위를 차게 하므로, 저장해 두기에는 마땅치 않다.

 

18. 물의 저장(貯水)

 물을 저장하는 항아리는 그늘진 뜰 안에 두고서 비단으로 덮어두어 별과 이슬의 기운을 받도록 하여야,물의 빼어난 영험함이 흩어지지 않고, 신묘한 기운이 항상 보존된다.

가령 나무나 돌로 누르고 종이나 죽순껍질로 봉하여 양지에서 햇볕을 쪼이면, 밖으로는 그 신묘함이 소모되고, 안으로는 그 기운이 막혀서, 물의 신묘함이 사라지게 된다.

 차를 마실 때에는 오직 차의 신선함과 물의 신령함을 귀하게 여기니, 차가 그 신선함을 잃고 물이 그 신령함을 잃는다면, 도랑물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19. 차의 도구(茶具)

 상저옹(桑苧翁)은 ‘차를 달이는데 은그릇을 쓰다가 너무 사치스럽다고 하기에 나중에는 도자기를 썼는데, 또한 오래 쓸 수가 없어 마침내 은그릇으로 돌아갔다.'고 하였다.

내 생각에, 은그릇이라는 것은 부유한 집에서 장만해두는 것이 마땅하니, 산속 오두막이나 초가집의 경우는, 주석그릇을 쓰더라도 향기, 빛깔, 맛에 손색이 없다. 다만 구리그릇과 쇠그릇은 피해야 한다.

 

20. 찻잔(茶盞) 

 잔은 눈처럼 흰색을 최상으로 여기고, 남백(藍白) 색은 차의 빛깔을 해치지 않으니, 그 다음이다.

 

21. 행주(拭盞布) 

 차를 마시기 전후에는 모두 가는 마포(麻布)로 잔을 닦는다. 그 밖의 것들은 더러워지기 쉬우므로,

쓰기에 마땅치 않다.

 

22. 차에 대한 도리(茶衛)

 차를 만들 때는 정성스럽게 하고, 차를 저장할 때는 건조하게 하며, 차를 우릴 때는 청결하게 한다. 정성과 건조와 청결함이면, 차 마시는 도리는 다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