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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이 혹독할수록 봄은 더 아름답다

김현거사 2015. 3. 19. 08:51

  겨울이 혹독할수록 봄은 더 아름답다

 

 겨울이 혹독할수록 봄은 더 아름답다. 수선화가 올라오고 있다. 3월 초순인데 아파트 화단에 수선화 새 촉들이 얼굴 내밀고 있다. 그 신비한 생명을 보며, 나는 땅 속에서 오랜 겨울을 지낸 수선화 알뿌리를 생각하였다.

  젊은 시절 나는 생명의 신비를 역행해본 적 있다. 인생을 카오스요, 부조리라 생각하였다. 일군의 작가들 덕택이다.

 나는 그들이 소개한 시를 무턱대고 좋아했다. TS 엘리옷의 <황무지>에는. '4월은 잔인한 달이다.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내고, 추억과 욕정을 뒤섞고, 봄비로 잠든 뿌리를 깨운다'는 구절이 나온다. 나는 그 구절을 무조건 좋아했다. 실존주의를 동경했다. 알지도 못하는 하이데카나 싸르트르를 존경했다. 

  나는 철학과에 입학한 후, 자원 입대했다. 수송병과를 택하여 밤마다 물 적신 고무호스로 엉덩이에 불을 부쳤고, 몰던 차에 자살용 실탄을 싣고 다녔다. 섬에서 2년여 세월을 보냈다.

 실존주의 소설을 흉내 낸 그 5년은 참으로 철 없던 시간이다. 나는 밤마다 자살을 생각했다. 소등한 운전병 내무반에서 쇼펜하우엘을 읽으며 생의 무의미를 되새겼다.

 서너번 자살을 기도하기도 했다. 수영비행장은 그 옆에서 내가 차량보초 서면서 칼빈 총구를 목에 대보던 곳이다. 욕지도 동항리 절벽은 내가 유서를 감춰놓았던 곳이다. 쪽지엔 '술에 취한채 바다에 떨어져 익사한 청년은,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없었던 철학도'였다고 적혀 있었다.

  그러다가 끝장을 보았다. 언제부턴가 나는 후회하기 시작했다. 나는 생이 무의미했다. 그래 낙서만 그려 제출했던 시험지를 대학에서 모두 F학점으로 처리하여, 내가 학점 미달로 제적되었다는 사실을 알았다. 두 친구는 자살로 잃었다. 

 나는 외톨이였다. 그리운 곳이 서울이었다. 언제던지 돌아갈 수 있다고 믿었던 대학은 영원히 문을 걸어잠가 버렸다. '종암동 후암동 가요' 학교 앞을 지나다니던 버스 차장 목소리가 가슴 저리게 그리웠다. 돌이킬 수 없는 것이 과거였다. 파도소리에 잠이 깨어, 나는 촛불을 켜놓고 성경을 읽으며 눈물을 흘렸다. 해무(海霧)에 덮힌 해변의 자갈밭은 저승처럼 컴컴했다. 나는 그 속을 한없이 걷었다. 그러나 때는 이미 지나간 후 였다. 

 인생이란 무엇인가. 존로크에 의하면 우리가 경험하기 이전의 인생은 아무 것도 그려지지않은 석판(Tabula rasa)과 같다. 거기 검은 칠을 하던 흰 칠을 하던 그건 본인 생각이다. 나는 후회 속에서 이 명제를 곰곰히 되뇌어보곤 했다.  

  1968년에 내가 섬에서 살아 서울로 귀환한 것은 기적이다. 우여곡절 끝에 복학하자, 내가 맨 처음 한 일은, 미련 없이 서양철학을 동양철학으로 바꾼 일이다. 

 서양철학은 논리적이다. 그러나 현학적 말작난에 불과했다. 절망에 빠진 나를 구해줄 한 오라기 지푸라기도 아니었다. 더 이상 심오하지 않았고, 뭔가 과장된 말이었다. 그런 면에서 진실이 아니었다.

 그동안 내가 거기 흥미를 가졌던 것은 정신적 빈곤을 메꾸려는 허세에 불과했다. 나는 새로운 철학을 발견했다. 노장과 불교철학 이다. 거기 필사적으로 매달리면서 비로서 나는 음지에서 양지로 탈출한 것이다. 아침마다 뜨는 해가 축복인 것을 깨달았다.

 밤 깊으면 날이 샌다. 비 지나면 날이 개인다. 나는 반대 각도에서 인생을 보기 시작했다. 축복과 은총이란 말에 관심 기울이기 시작했다. 

 봄이면 들판에 돌미나리, 냉이, 달래, 씀바귀, 고들빼기가 돋아난다. 이어서 산딸기, 참외, 수박, 사과가 나온다. 바다에선 톳, 미역, 굴, 바지락, 대합, 모시조개가 나온다. 만추의 게는 껍질 안에 있는 노렇고 흰 황고백방((黃膏白肪)이 얼마나 고소하며, 도미는 볼살이 얼마나 통통하고 탄력있는가. 배밑살은 얼마나 부드럽고 기름진가. 그것은 축복이다.

 비 그친 후 무지개는 황홀하고, 산들바람은 정답다. 밤이면 은쟁반 달이 뜨고, 아침이면 금빛 태양 솟는다. 그것은 은총이다.

 이를 카오스니, 부조리니 하고 표현하는 것은, 정신 올바른 사람이 할 일 아니었다.

 산은 바라보는 방향에 따라 모습이 달라진다. 나는 되도록 산을 밝은 쪽에서 보기 시작했다.

 우리에게 아내는 어떤 존재인가. 감사의 대상이다. 그는 폴세데카의 노래다. 우리 모두 젊은 시절 그 여성에게 황홀한 감정을 가졌다. 그는 내 외로운 기도의 응답이었고(You are the answer to my lonely prayer), 하늘에서 내려온 한 천사였고,( You are an angel from above.) 그가 경이로운 사랑과 함께 우리에게 오기 전엔 우리는 몹씨 외로웠다. (I was so lonely till you come to me with the wonder of your love.)  

  이제 세월이 흘러 그 여인은 늦가을 장미처럼 애련하다. 그는 간혹 자다가 내가 덮은 이불이 벗겨졌나, 보살펴 준다. 시장 다녀올  때 군것질거리 사온다. 부부싸움 칼로 물베기란 말 있지만, 그는 볼 때마다 우리에게 잔소리 하고, 겨자처럼 톡톡 쏜다. 그러나 초심(初心)에 돌아가, 우리는 이 사랑스런 여인에게 깊이 깊이 감사드리고 또 감사드려야 한다.

 사는 일은 깨소금 볶을 때 같이 항상 고소한 냄새 퐁퐁 풍기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실망할 필요 없다. 아내와 시장에서 냉이나 고들빼기 한 줌은 살 수 있을 것이다. 고추장에 비벼낸 쌉쌀한 봄채소 겉절이는 어떤 맛인가. 멍게 두어 점도 살 수 있을 것이다. 향긋한 멍게 비빔밥을 입맛 다시며 음미할 수 있다. 

  우리에게 친구란 어떤 존재인가. 고마움의 대상이다. 그들은 나처럼 고민이 많다. 돈도 자식도 마음대로 되는 것 아니다. 나처럼 몸에 작은 병이 있다. 치아는 부실하고, 시력은 약해졌다. 그러나 그들은 얼마나 마음 편한 친구들인가. 

  그가 고관대작 아니라도 상관없다. 학문이 없어도 상관 없다. 성격이 독선적이고 자랑쟁이라도 상관 없다. 음치라도 상관 없고, 파산한 사람이라도 상관 없다. 곁에 있기만 해도 고맙다. 

 젊은 시절 우리는 특별하기를 원했고, 중년에는 보통을 원했고, 지금은 보통 이하도 관용한다. 우리는 벼라별 일을 다 겪은 사람들이다. 아프지 말자고 서로 기원하고, 작은 장점을 서로 알아준다. 

 우리는 철 지난 가을 하늘 날라가는 철새이다. 서리 내린 들판에서 외롭게 시드는 들국화다. 우리는 무작정 오래 살수 없다. 곧 손을 흔들고 헤어질 존재이다.   

  그와 재래시장 구석쟁이 쪽의자에 앉아, 순대 한조각 막걸리 한 잔 마실수 있는 것도 눈물겹도록 고마운 일이다. 그와 실버극장 찾아가서 흘러간 명화를 볼 수 있고, 함께 동사무소에 등록하여 낮선 여인 손 잡고 탱고를 즐길 수도 있다. 그와 지하철 타고 온천을 찾아 갈 수 있고, 산에 가서 신록을 구경할 수 있고, 계류에 발 씻을 수 있다. 이 모두 얼마나 고맙고 고맙고 또 고마운 일인가.

 우리가 사후에 가는 곳이 천국이 아니다. 살아생전 이곳이 천당이고, 유토피아다. 자연은 은총의 대상이고, 아내는 감사의 대상이며, 친구는 고마움의 대상이다. 이 세가지만으로도 인생은 축복이다. 

 살아있다는 것은 축복이다. 뜰에 핀 한떨기 수선화를 보면서, 나는 이런 생각에 오래 잠겨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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