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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난 대학총장/2편

김현거사 2014. 6. 21. 17:20

 

  내 일찌기 위수(渭水)에서 낚시로  주나라 문왕(文王)을 낚은 강태공 여상(呂尙)은 아니지만, 화양동 한강변에서 미끼를 드리우고 때를 기다리다가, Y대 총장님을 낚은 적은 있다. 

 내가 이 은린월척(銀鱗越尺) 대어(大魚)를 걸어, 밀고땡기는 짜릿한 손맛을 본 경위는 이러하다.

 내가 모시던 분은 국회의원도 했고, 한국의 30대 재벌이기도 했다. 자식 셋이 박사라, 돈과 명예, 어느 것 하나 부족하지 않았다. 단하나 부족한 것은 전남 강진의 국민학교 졸업이라는 자신의 학벌 이었다.

그분은 하얀 수염을 기르고 다녔는데, 인물도 마치 헤밍웨이처럼 멋 있고, 집념도 보통 우리 주변 갑남을녀가 도저히 미치지 못할 초인적 집념을 가진 분이다.

 소년 때 일본인이 운영하는 자전거포에 들어가 일했는데, 들어간지 두어달 후는 주인이 아예 가게를 그에게 맡겼다고 한다. 주인보다 열성적으로 일 했기 때문이다. 

 내가 이 양반 자서전을 쓰다가 발견한 것은, 본인은 일본의 모 대학 통신강의록으로 2년 공부했다하여 자기 이력서에 대학 중퇴라고 썼지만, 뭔가 찜찜한 구석이 있었다.

그래 이 양반에게 정식으로 명예박사 학위를 얻어 드려야겠다는 생각으로, 직원을 시켜 서울 시내 H대 S대 J대 명예박사 학위 단가를 조사시켜보았다. 그랬더니 표준단가는 대략 10억원 정도였다.

 

 그래 우선 내 모교인  K대 문과대학장과 통화해봤다. 그랬더니, K대는 학위를 돈 받고 판 적 없다는 자랑만 하는데, 내가 사전에 따로 조사한 바로도, 사실 그 학교는 개교이래, 동아일보 회장이라던지, 국가적 공훈이 있는 극히 소수에게 학위 주었지 기업인에게 준 적 없기는 했다.

 그러나 내가 '국가 산업발전에 기여한 기업인에게 명예 학위를 주고, 대신 거액의 돈을 학교로 들여와 학생과 교수들 발전을 위한 일을 해보라'고 말해봤더니, 그는 완전히 마이동풍이다. 40억을 그 학교에 기증하여 연구동 건물을 세워준  H재벌도 그런 건 꿈도 못꾼다고 자랑만 한다. 이런 순진한 사람하고 이야기 해봐야 시간만 낭비다.

 그래 딱 한마듸 하고 전화 끊었다. '내가 명예박사 이야기 할 곳 없어서 K대 전화 한것 아니다. 내 모교라서 전화 한 것이다. 나중에 딴 데 돈 주고 일 성사시킨 후 원망은 마세요.'

사실 나는 그전에 모교 출판부에, 거액의 회사돈을 기부한 적도 있고, 그 덕으로 나를 찾아와 부탁했던 그 은사님이 큰 승진을 하여, 나를 일식집에 초대하여 대접한 적도 있다.

 

 이렇게 미끼 낚시에 달고, 고기 기다리고 있는데, 어느날 Y대에서 찌를 건들인다.

 공대 건물을 짓는데 기부금을 좀 내라는 것이다. 

Y대 공대 P학장이 그 대학에 입학했다가 금방 미국 건너간 회장 둘째 아들 좀 만나자고, 날이 새면 전화하기 시작한 것이다.

 사장은 기부금 소리 듣기싫어, 여비서를 비서실장이던 내 앞에 데려와, 절대 그런 전화 바꾸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한다. 

일은 시작된 것이다. 찌가 수면에서 슬며서 올랐다 내려갔다 시작한 것이다.

 그래 내가 '그  P학장 전화오면 나에게 바꾸라'고 해두었다. 

 사장은 비서실장이 전화 받으면 되겠지 싶어 그래라고 했다.

 

그후 멋진 한판 승부 벌린 것이다.

 '기업은 자금으로 대학을  돕고, 대학은 학문 연구로 기업을 돕는다'는게 산학협동 근본정신이다. 

 비서실장이 전화 받으니, P학장은, 이게 웬 떡인가 싶었을 것이다. 

 그동안 자기가 재벌 비서실에 전화해서 '산학협동' 한마듸만 하면 대부분 비서실장과는 통화도 못해보고 끝났다고 나중에 실토한 분이 그분 이다.

 미꾸라지보다 매끄러운게 재벌 비서실장이다.

그런데 여긴 웬일 인가. 통화도 쉽게 해줄 뿐더러 자기 이야기 옳다고 동조하지 않는가.

 P학장은 흥겨워서 덩실덩실 춤이라도 추고싶었을 것이다.

이틀이 멀다하고 나에게 전화 했다. 나는 이틀 멀다하고 맛있는 미끼 갈아 주었다.

'대학이 산학협동을 모르는 한, 한국의 산업 발전은 어렵다. 하바드는 학교 운영이 거의 후원금으로 충당된다.' 는 둥 연신 꼬리를 쳐주었다.  

 자 이쯤 일이 되면 만나서 매듭을 지워야 하지 않겠는가.

 P 학장이 이젠 한번 시간 내달라고 조른다. 자기가 회사를 방문해도 좋고, 아니면 밖에서 실장님 좀 만나자며 애가 탄다.

이때가 낚싯대 획 낚아챌 때인 것이다. 몇번 거절하여 애 좀 더 태워주고, 시간과 장소 합의했다.

 장소는 압구정동 '어유도' 라는 횟집이다. 부자 동네 압구정에서 괜찮은 집이다.

상석에 내가 앉고, 학장님은 하석이다. 년배가 위인 분은 지극정성으로 술과 안주 권했고, 나는 사양없이 마셔주었다. 술이사 원래 내 전문이다. 

'회장님이 재계에 왕소금으로 소문난 분이니, 갑자기 거액을 승인하긴 어렵고, 앞으로 학장님과 공동작전으로 이 일을 꼭 성사시키자.' 그것이 그날 두사람 협의 사항이다.

 학장님은 어려운 일이 좀 진척 있다고 기뻐하며 돌아갔는데, 다시 한없는 정적의 세월이 이어졌다.

 헤일 수 없이 수많은 밤을 P학장은 동백아가씨 였을 것이다. 내 가슴 도려내는 아품과 안타까움의 시간이었을 것이다.

그러다 못참아서 두번째 '어유도' 만남을 그분이 제의하고, 이때 상석 내 옆에는 시중 드는 미인까지 한사람 앉혀준다.

그리고 헤어지면 다시 상황은 예전 그대로 이다. 기다림 끝에 전화하면 '이야기는 회장님께 올렸지만, 아직은 시기가 아니다.'는 대답이다.

 그는 혼삿날 기다리는 노처녀 심정이었을 것이다.

 그런 3개월 후, 드디어 상대편이 마지막 카드를 흔들었다.

 '내가 총장님 모시고 귀회사 근처 워커힐호텔 예약해놓고 갈테니, 실장님은 회장님 모시고 나와달라'는 것이다.

 처음 만난 Y대 총장님은 철학과 출신으로 김해 사람이다. 외모는 어딘가 <죄와 벌>의  라스콜리니코프 비슷하고, 성품은 봄바람이다. 그분 만나서 할 말은 내 미리 준비해두었다.

그런데 마지막 꼴인 지점에서 막상 회장이 문제를 만든다. 

느긎이 아주 관심도 없는체 딴 전 피운다. 못나간다는 것이다. 자기는 명예박사에 관심 없다는 것이다.

 회장이 이러는걸 내 한두번 본 사람 아니다. 다 처방이 있다. 원래 욕심 많은 분일수록 좋아하는 게 있다. 그걸 긁어야 한다.

 'Y대 총장은 인격으로 따지면 우리나라에서 대통령에 버금갈 존경할 인물입니다. 회장님처럼 욕심 없는 분을, 일부러 찾아와서 한번 모시겠다는데, 이런 기회에 나가시어 서로 인사라도 나누시지요,'

 말하자면 우리 회장이 아무 욕심없는 분이라서 국내 굴지의 대학총장이 찾아온다는 거다.

 이렇게 워커힐에 네사람이 좌정하자, 내가 본론을 꺼냈다.

 박 총장님께 물었다.

'Y대 공대 대학원에선 매년 졸업식 때 박사학위 몇 명 배출합니까?'

그러자 총장이 몇명이라고 대답했다.

 '우리 회장님은 년간 20억불 첨단 반도체 수출 하면서, 휘하 종업원 만여명 중엔, 모토롤라, TI, 페어차일드 등 세계 최첨단 회사의 기술자를 상대할 수 있는 전문가들을 양산하여, 그들과 국제무대에서 어깨를 나란히 하여, 자랑스럽게 일하도록 만드신 분 입니다. 한국 산업의 미래를 놓고 볼 때, 우리 회장님과 대학원 출신 박사 중 누가 공헌도가 높다고 생각하십니까?'

 그 말 뜻은 명석한 박총장님이 대번에 알아챈다.

 공대 대학원 박사 스무명 서른명보다 우리 회장 혼자 공헌도가 더 높은 것이다. 

 '내가 학교 돌아가서 책임지고 회장님 명예박사 학위 껀 재단과 교수진에 설득하여 추진하겠습니다.'

 박총장님 이 말 한마듸로 일은 끝났다.

 후에 문교장관 하신 그분은 학교 내 신망이 높았다. 일은 일사천리 진행되어, 나중에 Y대 졸업식 날자 연락이 왔다.

 우리 회장님은 가족과 그룹 전 중역 대동하고,  Y대 캠퍼스에 가서 사각모자 쓰고 기념촬영했다.

 그 학교 동문된 기념으로, 교내 식당에서 축하객들과 연회를 베푼 후, 기분 좋게 돌아왔다.

 일생의 숙원을 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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