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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와 진주를 다녀와서

김현거사 2014. 5. 11. 16:26

      진주를 다녀와서

                                                                                               김창현

 

 동국여지승람에 '북평양 남진주'라는 말이 있다. 북에 평양이 있고, 남에 진주가 있다는 말이다. 평양에 대동강 있으면, 진주에 남강 있고, 평양에 부벽루 있으면 진주에 촉석루 있다. 평양에 계월향 있으면, 진주에 논개 있다. 태조 이성계는 '조정인재(朝廷人才) 반재영남(半在嶺南), 영남인재(嶺南人才) 반재진주(半在晉州)'라고 했다. 이런 고향을, 나는 서울 출신 아내에게 항상 자랑 해오던 차였다. 그래 지난 6월1일, 큰맘 먹고 같이 진주로 향했다.  

 

 우선 냉면집부터 찾아갔다. 양반은 그 집 음식을 보면 안다. 음식문화부터 선보이기 위해서다. 진주는 맛고장이다. 육회비빔밥 냉면 헛제사밥이 유명하다. 지리산과 남해안에 신선한 재료가 풍부하기 때문이다. 진주냉면은 교방요리 이다. 교방요리란 무엇인가. 상차림 화려한 기생집 요리를 말한다. 한 시대 전에는, 한양 풍류객들이 천리길 멀다않고 진주를 찾아왔다. 냉면은 진주기생들이 이 풍류객들과 야참으로 먹은 별미다. 진주 기생들은 어떤 사람들인가. 평양기생과 함께 조정의 큰 잔치에 초대되던 전국 제일 기생이다. 시서화는 물론 가무 기예에 통달한 예술가들 이다. 진주엔 일제시대에 기생조합이 있었다.  품계에 따라 일급 기생을 불러 주연을 열라치면, 인력거를 보내 데려와 인력거로 모셔 보냈다. 그들의 보수는 일반 사람의 수 십 배 였다. 그 입맛이 얼마나 고급스러웠겠는가. 냉면은 그 전통 이어온 것이다.

 '잡으시오 잡으시오. 이 술 한 잔 잡으시오. 불노초로 술을 빚고 신선이 사는 연못 복숭아로 안주 삼아 만수무강 하십시오'. 권주가다. 그때 연주한 악기는 사용한 재질에 따라 8 종류다. 쇠(金)로 만든 것은 '편종' '요' '탁 '정' '순' '방향' '향발' '동발'이 있고, 나무(木)로 만든 것은 '부' '축' '어'가 있다. 돌(石)로 만든 것은  '경'(12매)이 있고, 실(絲)로 만든 것은  '금' '슬' '현금' '가야금' '월금' '해금' '비파' '대쟁'이 있다. 대(竹)로 만든 것은 '소' '약' '관' '적' '지' '당적' '퉁소' '대금' '중금' '소금' '당필률' '태평소'가 있고, 바가지(匏)로 만든 것은 '생' '우' '화'가 있다. 흙(土)으로 만든 것은 '훈' '상' '부' '토고'가 있고, 가죽(革)으로 만든 것은 '진고' '뇌도' '응고' '대고' '소고' '교방고' '장고' '세요고' 가 있다. 이를  팔음(八音)이라 하니, 팔음은 순임금 때부터 사용된 말이다. 팔(八)은 우주만물의 생성원리인 '팔쾌'를 의미한다. 

  이런 악기 연주 속에 권주가와 가무를 보고 듣고 즐기다가 잡숫던 냉면 이다. 그 역사를 생각하며, <하연각> 냉면을 살펴보았다. 우선 묵직한 놋그릇이 맘에 든다. 기품 있고, 고풍스럽고, 격조 있다. 육수도 맛 있다. 주재료가 해물이라, 맛은 깊으면서 산뜻하다. 느끼한 구석이 없고 시원하다. 고명으로 얹은 쇠고기 육전 매우 고소하다. 사각사각 씹히는 배와 오이 감촉도 좋다. 이 정도면 되었다 싶은데, 마침 가는 날이 장날이다.  KBS 7 TV에서 취재를 나왔다. 그리고 나에게 카메라를 들이대길래, 아내 앞에서 떡 본 김에 제사 지냈다. 기꺼이 응해, 늙은이답게, 한번 걸쭉하게 진주 냉면 역사를 읊어주었다. 

 

 다음날은 새벽 일찍 진주성을 돌아보았다. 성에 올라가니, 성곽은 안개 속에 덮혔는데, 먼저 눈에 띄는 것이 성벽에 구멍을 뚫어 밖에서 성벽을 기어오르는 적에서 활을 쏘도록 만든 치(雉)다. 총구 사이로 보이는 물안개 피는 남강이 운치있다. 강 건너 대숲은 봉황의 먹이인 죽실(竹實) 열리라고 조성한 숲이다. 비봉산 옛이름이 대봉산이다. 산 밑에 봉이 알 품으라고 봉의 알자리가 있다. 대숲 뒤편은 망경동으로, 50년 전에 내가 살던 동네다. 그리운 망경산도 보인다. 촉석루의 촉석(矗石)이란 말은 돌이 삐죽삐죽 높이 솟은 모양을 말한다. 그 아래 물 속의 의암(義岩)은 왜장을 껴안고 논개가 남강에 뛰어든 유서 깊은 바위다. 촉석루에서 서장대 가는 길 잔듸밭은 너무나 정갈하다. 새삼 맘에 사무쳐 오는 것이 고향의 푸른 언덕 이다. 임진난 때 사용한 천자총통·비격진천뢰가 보인다. 아침 햇살은 절벽에 우거진 고목의 잎 사이로 금실을 수놓는다. 프랑스를 다녀온 사람들 하는 말 들은 적 있다. 쎄느강이 한강 보다 생각보다 초라하더라고. 나는 라인강의 고성들을 떠올려 보았다. 어느 성이 진주성과 비교가 되는가. 어느 성이 임진난에 유일하게 승전한 비장한 역사를 품고, 논개같은 충절의 여인을 가졌던가. 새벽의 공원을 조용히 산책하는 사람이 한 없이 부러웠다. 무지개를 찾아 떠난 소년이 나였을 것이다. 돌아보니 무지개는 어느새 등뒤에 솟아있다. 촉석루는 퇴계와 다산을 비롯한 이 땅의 역대 글쟁이 모두 다녀간 곳이다. 관련된 시와 글이 640여편이나 남아 있다. 한가지 아쉬운 점은, 이 고풍의 성에 어울릴 설창수 이현기 최계락 박재삼 ... 진주를 대표하는 문인들 시비가 하나도 없는 점이다. 

 

 산책 후 아침 식사는 초등학교 동창인 오교장 집에서 했다. 진주 중앙시장은 '중 상투와 처녀 불알 빼곤 다 있다는 곳'이다. 부인 음식솜씨가 좋아, 죽순요리와 뽈래기 구이가 그야말로 별미다. 죽순은 싱싱하고, 뽈래기는 통통한 놈이 탄력 있다. 모과차 한 잔 한 후, <습지원>과 진양호를 둘러보았다. 가는 길 차속에서 성 밑의 골동품 거리를 구경했다. 여기는 우연히 서울 인사동과 동명이 같다. 진주 인사동이다. 돌절구 맷돌 불상 돌탑 갖가지 석물들이 많다. 습지원은 진양호 아래 만든 수중공원이다. 물속에는 창포와 노란 붓꽃 싱싱하다. 수련은 봉오리 맺었고, 수련 밑에는 개구리가 헤엄친다. 물버들 드리운 아래 잔잔한 강물 속에 놓여진 꼬부라진 화강암 징검다리는 마치 그림 같다. 그 아래 헤엄치는 오리는 동화같다. 푸른 산빛은 건너편 절벽을 싱그럽게 가리웠고, 물가를 한가로이 거니는 것은 하얀 해오라비다. ' 진주가 이렇게 좋은 곳인 줄 예전엔 미쳐 몰랐어요.' 아내의 감탄에, '저 산그늘에 낚싯배 하나 띄우고 그냥 여기 와서 삽시다.' 맞장구 쳐줬다.

 마침 청보리 피는 철이다. 습지원 산책길에 뽕나무가 많다. 즐겁게 오디 따먹고 진양호 전망대 올라가는 산길에 벚나무 차나무들이 보인다. 봄철 화사하게 만드는 것이 벚꽃이요, 가을철 청량하게 만드는 것이 차꽃이다. 그 아래 노란 인동초, 하얀 야생 자스민꽃 피어있다. 시내의 아파트 울타리에도 자스민꽃은 피어 있다. 갑자기 고향 이미지가 그윽한 자스민 향기에 덮힌다. 새삼 내고향에 이리 아름다운 꽃이 많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전망대 커피점에서 차를 시켜놓고 바라보는 호수는 일망무제다. 하늘은 흰구름 품었고, 물결은 굴곡 많은 섬을 품었다. 연초록 신록 흔드는 바람은 그리도 싱그럽다. 바로 눈 앞의 섬에는 산책길이 있다. 점점이 가로등이 서있다. 달 뜨는 밤, 물에 비친 등불은 서리서리 낭만이 어리리라. 선경이 따로 없다. 아! 이곳이 나의 고향이다. 혼자 속으로 가만히 진주 옛노래를 불러보았다. 

 

<삼천리 방방곡곡 아니간곳 없다만은
비봉산 품에 안고 남강에 꿈을 꾸는
내고향 진주만은 진정 못해라
유랑천리 십년만에 고향 찾아왔노라
마음을 채찍치며 달려왔노라>

(2013년 7월>남강문학 2013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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