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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의 작은 웅덩이

김현거사 2014. 5. 11. 14:26

  고향의 작은 웅덩이  


 지금 신안동은 진주 중산층이 모여사는 아파트촌이다. 그러나 옛날은 달랐다. 낮으막한 야산 기슭에 이십여 가구가 들판과 남강과 망진산이 보이는 양지 쪽에  올망졸망 있었다. 앞에는 신작로가 있어 하동 가는 버스가 비포장 도로에 먼지를 가득 날리며 달리곤 했다. 우리 할아버지집은 이 동네 맨 위 전망 좋은 곳인데, 옆에 큰 정자나무가 있어 사람들이 잿마당에 쑥불을 피우고 멍석을 펴고 모여 한담을 즐겼다.

 우리 작은 아버지는 방랑벽이 있어 만주로 전라도로 쏘다니다가 결혼하여 신작로 옆에 새집을 짓고 살았다. 지금 이야기 하려는 고향의 작은 웅덩이는 우리 작은 아버지 집 밑에 있었다. 산에서 탱자나무 울타리 밑 개골짝을 통해 내려온 물을 모아 논에 물을 대던 우리 작은 집 웅덩이 이야기다.

 

 웅덩이 주변은 해거름이면 빨간 고추잠자리 떼가 하늘을 덮곤 했다.  한낮엔 몸통이 유난히 길고 날개가 모시같은 검푸른 물잠자리가 풀섶에 앉아 꼬리를 수면에 담갔다 올렸다 하곤 했다.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던 놀이는 <수벵이> 잡는 놀이였다.  대작대기 끝에 실로 <또니>를 매달아 공중에 빙빙 돌리면서 <수벵이> 잡는 놀이였다. 왕잠자리 수컷인 <수벵이>는 몸이 하늘빛 청색이고, 암컷인 <또니>는 호박색이다. 암컷인 <또니>를 공중에 이리저리 돌리면, 날라가던 수컷 <수벵이>가 <또니>를 보고 교미할려고 달라 붙는다. 그러면 아이들이 <또니>를 살살 회전 각도를 내리면서 풀밭에 내려놓고 손으로 덮쳐잡는 것이다. 상당한  스릴과 손맛이 있었다. 간혹 암컷인 <또니>를 구할 수 없으면,  호박꽃을 따서 수놈 <수벵이> 날개와 엉덩이 부분을 노랗게 물들여, 가짜 <호박 또니>로 <수벵이>를 낚기도 했다.

 

 웅덩이 표면에는 방개와 소금쟁이가 있었다. 거북선처럼 생긴 방개는 노처럼 생긴 뒷발로 물무늬를 그리며 헤엄쳐 다닌다. 아이들이 잡아서 땅에 뒤집어 놓으면,  뱅글뱅글 돌다가, 두껍고 반질반질한 등 밑에서 부드러운 날개를 펴고는 공중으로 날아가곤 했다. 소금쟁이는 몸이 가늘고 길쭉하게 생겼는데, 기름이 묻었는지, 물 표면을 거미처럼 슬슬 미끄럼질 쳐다니곤 했다.

 물속에는 붕어와 송사리가 있었다. 잡으면 손가락 사이로 미끈미끈 빠져나가는 미꾸라지도 있고, 얼룩무뉘 해병대 옷 입고 시도때도 없이 울어대던 개구리도 있었다. 간혹 자라도 있었다.

 이것들은 아이들의 좋은 작난감이었다. 살아있는 것들이고, 충분한 호기심의 대상이었다. 스스로 애를 태우며 회득한 노획물 이었다. 그것은 돈만 주면 구멍가게서 살 수 있는 그런 작난감이 아니었다. 웅덩이는 아이들의 가장 좋은 놀이터 였다.

 

 봄은 늘어난 못물에 가득한 까만 올챙이 떼로 붐빈다. 보리타작 끝나 모 심는 여름 웅덩이 근처는 개구리 합창으로 난장판이 된다. 그러면 우리는 시끄럽다고 돌을 던지기도 하고, 닭 모이 할려고 잡아서 집에 가져가기도 했다. 소낙비 온 후엔 풀잎에 등이 녹색이고 배가 하얀 작은 청개구리가 나타나, 우리는 피부가 보드럽고 이뻐서 손바닥에 올려놓고 놀았다.  

그러나 둠벙 주인은 어디까지나 붕어다. 아이들은 바지를 걷어부치고, 개구리밥이 뜨있는 풀섶을 헤치면서 고무신짝으로 붕어를 잡았다. 몸이 납작하고 전신에 금빛 기와처럼 찬란한 비늘 덮힌 붕어와 버들피리와 송사리를 잡았다. 간혹 메기나 장어도 나왔다. 그건 풀밭에 놓아둔 검정 고무신에 물을 붇고 담가놓았다가, 신나는 포획물로 집에 가져가곤 했다.

 

 간혹 스르르 물 위로 포물선 그으며 물뱀이 나타나기도 했다. 하늘이 무너질듯 갑자기 번개불이 뻔쩍 벼락치면서 소나기가 내리기도 했다. 그러나 아이들은 소나기 같은 건 개의치 않았다. 머리와 웃통을 훔뻑 젖셔도 한나절 놀고나면 다 마르기 때문이다. 그때 하늘의 뭉게구름은 더욱 찬란하고, 비 온 날 황혼은 더욱 붉게 물든다. 저녂이 되면 대밭가에 밥 짓는 연기가 하얗게 오르고, 이때 쯤 어른들이 ‘xx야 밥 묵으러 오이라’ 둠벙이 내려다 뵈는 메뜽 위에서 자기집 아이들을 부른다. 그제사 아이들은 살아있는 작난감 송사리와  붕어를 물에 돌려주고, 고무신을 신고 집으로 가곤 하였다.

 

 작은 집 두 누이 이름은 인정이와 인자다. 누이들은 메뚜기와 여치를 잡곤 했다. 여치는 뒷다리를 잡으면 덜렁덜렁 방아를 찧었다. 메뚜기는 풀에 뀌거나 유리병에 넣어가 튀기면 짭조름한 반찬이 되었다. 간혹 김이 하얗게 오르는 삶은 고구마나, 과수원 단감을 따와서 우리에게 주었다.

 

 나는 지금도 고향 웅덩이가 그립다. 별로 배운 것 없지만 인정 많던 누이들, 나중에 가난한 집에 시집가서 고생하며 산다던 그 누이들이 그립다. 둠벙가에 하얗게 피던 찔레꽃 향기가 그립고, 환상처럼 날라다니던 빨간 잠자리떼가 그립다. 물속의 붕어와 방개, 논에서 톡톡 뛰던 메뚜기가 그립고, 쿵쾅! 벼란간 천둥치며 얼굴을 씻어주던 소나기가 그립다. 웅덩이 둑에 어른들이 거름할려고 베어놓은 무성한 풀이 마르며 풍기던 냄새가 그립고, 물을 논에 뺀 후 둠벙 진흙 속에서 잡던 미꾸라지 장어의 손맛이 그립다.

 도심의 어린이 놀이터처럼 그네도 미끄럼틀도 없건만, 나에겐  그 생명이 숨쉬던 놀이터, 우리 작은 집 웅덩이가 환상처럼 떠오른다.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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